<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를 대표로 하는 민주독립당(민독당)에서는 1월 13일 남조선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일부에서 소련의 비협력으로 남북통일 완전독립이 불가능할 때에는 남부만의 단선에 의한 정부 수립을 적극 주장하는 편도 있으나 이 결과는 우리 독립을 포기하는 것이고 우리 민족을 멸망의 구렁이로 몰아놓는 것 이외에 아무 소득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지적한다.” (<조선일보) 1948년 1월 14일)

 

유엔조선위원단이 들어와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런 담화를 발표한 것은 유엔을 통한 건국이 분단건국이 될 전망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유엔위원단의 임무는 1948년 3월 말 이전에 총선거를 시행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그 선거는 남북을 통한 총선거여야 할 것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소련이 협조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뤄질 수 없는 임무였다. 이남 반공세력은 소련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남조선에서만이라도 정해진 기일 내에 선거를 시행하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남 인구가 조선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니 남조선 선거로 뽑은 대표를 전 민족의 대표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북한지역까지 영토로 규정하는 대한민국 헌법도 이 주장에서 파생된 것이다.

 

좌익은 유엔의 개입 자체에 반대였는데, 중간파의 입장은 어정쩡했다. 유엔이 도와주는 선거를 반대하는 것은 아닌데, 남조선만의 선거에는 반대였다. 그런데 현실상 유엔이 도와주는 선거는 남조선만의 선거가 되기 쉬운 상황이었다.

 

남조선 단독선거의 개연성 또는 필연성에 대한 당시 사람들 생각은 어땠을까? 유엔이 도와주는 선거가 남북 총선거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었을까? 오기영의 글을 보면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5월 10일의 남조선 선거가 지난 7월 17일에 쓴 것이지만, 유엔위원단 입국 전부터 단독선거의 불가피성은 확실했다고 적고 있으며, 그 불가피성의 원인을 분명히 밝히면서 이 예견이 상식적 추론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북조선정부”

 

조선에는 또 하나의 정부가 선다.

 

남조선에서 이른바 가능지역선거에 의하여 수립되는 정부가 전 조선을 대표하는 정부라 하는데 북조선에서 수립되는 정부도 전 조선을 대표할 정부라고 한다. 이리하여 하나의 조국을 대표하는 두 개의 정부가 생겼다.

 

나는 별고(別稿)에서 가능지역정부가 아무리 전 조선을 대표한다 할지라도 실제에 있어서 반쪽밖에 더 볼 수 없는 애꾸적 성격을 말한 바 있거니와 이로써 또 하나의 정부도 그것이 실제에 있어서 북조선을 대표하는 이상의 아무 능력도 없을 때에 그 역시 반쪽밖에 더 볼 수 없는 애꾸적 성격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왼쪽 눈이 멀었거나 오른쪽 눈이 멀었거나 멀기는 마찬가지라, 애꾸는 마찬가지 애꾸다.

 

이것은 결코 다행한 일이 아니다. 두 개의 애꾸적 반쪽 정부를 우리가 바라지 않고 하나의 구안적(具眼的) 통일정부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현재 불구의 신세를 비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태는 오늘에 의외로 나타난 사태는 아니다. 조선 문제에 대한 미소의 합의가 불가능할 때에 넉넉히 예견할 수 있었던 바요, 드디어 소련과의 협조를 단념한 미국이 조선 문제를 UN에 제소할 때에 결정적으로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1월 초 내한하는 UN위원단에게 보내는 공개장에서 그들의 임무가 미국 점령 하의 남조선에 국한될 가능성을 지적하였고 그래서, “아무리 한 편이 주장하기를 조선을 대표할 자는 오직 UN위원의 감시 하에 선거된 자뿐이라 하더라도 실제에 있어서 이를 반대하고 배격하여 보이콧한 세력 하에서 그 세력의 지지 하에 선출된 대표자도 조선의 대표자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통일정부가 아니라 두 개의 분열정부를 의미한다”고 말해둔 것도 그게 무슨 나 혼자 용한 점을 쳐서 알아낸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론의 강조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불행한 예측은 드디어 불행하게도 적중하는 사태의 진전을 보이고 있으니 UN위원단 입경의 불가능지역이요 선거 감시의 불가능지역인 북조선에서도 8월 25일 선거를 실시한다는 평양방송이 그것이다. 이 선거에 대한 UP통신의 해설에 의하면, “이 투표는 북조선 소련 점령 지역 내의 입법의원 의원을 선거하려는 것이며 이 입법의원은 북조선과 남조선 미국 점령 지역의 양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점령 지역인 남조선에서는 이미 입법의원이 성립되었으며 그도 역시 전 조선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누가 몰라서 새삼스럽게 외인의 친절한 해설이 필요하랴. 이를테면 두 애꾸가 서로 애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셈인데 이것이 남의 연극이라면 웃고 말아서 무방하려니와 우리 자신의 현실이니 웃지 못 할 비극인 것이다.

남조선 제헌의회는 드디어 ‘대한민국 헌법’을 오늘 공포하였고 급히 서두는 품이 정부도 한 달 내에 성립할 기세다.

 

이것은 물론 9월의 UN총회에 나가서 발언권 내지 정식 가입을 목표로 하는 것인 줄 알겠거니와 북조선에서도 일찍 북조선 인민회의 특별회의에서 결정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7월 10일부터 실시하며 8월 25일에 선거가 실시되면 곧장 정부의 수립을 보게 될 것도 확실한 일이라 이것은 9월 UN총회로 하여금 가능지역에서 수립된 정부의 발언 내지 가입을 불가능하게 하려는 중대한 포석인 것도 확실한 일이다.

 

이로써 UN은 두 개의 조선정부를 앞에 놓고 어느 것을 승인하거나 어느 것을 불승인하거나 말썽이 일어날 가능성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어떻게 된다?

 

그러기에 애당초 UN에서 소련의 보이콧을 무시하고 조선의 선거 실시와 그 감시를 위한 위원단의 파견을 46 대 0으로 결정할 때 많은 사람이 작약(雀躍)하였지마는 그들은 막상 조선에 벌어진 냉엄한 현실은 46 대 0이 아니라 1 대 1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음을 필자는 지적했던 것이다.

 

이제야 UN은 46 찬성에 의한 가능지역 선거와 그 정부를 지지하려 할지라도 0에도 기능이 있어서 불가능지역이 생겼고 이 불가능지역에서도 선거를 실시하며 헌법을 발포하며 정부를 수립하였음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설혹 무시가 가능할지라도 이 가능한 무시는 역시 가능지역에서만 가능할 것이지, 불가능지역인 북조선에서는 일찍 46 찬성이 무시된 역사를 반복하는 데 불과할 것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두 개의 정부는 서로 각자의 능력을 육성하기까지 그 기반의 강화에 노력할 것은 각자의 입장에서 틀림없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 위하여 38선은 철폐는커녕 더욱 더 철벽화할 것이다. 비록 미소 양군이 무슨 생각이 들어서 철퇴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처음에 미소의 국경선이던 38선이 이제는 조선민족끼리 이 동혈동육끼리의 국경선으로 정하는 것이거니와 두렵건대 이 동혈동육을 찢어놓은 배후세력으로서의 미소 양군은 철퇴는커녕 장기 주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부당한 이유가 국제적으로 승인되는 결과가 없으리라고 보장할 자신은 아무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하나의 조국이 국제적 승인 하에 결정적으로 분열되는 것이라는 기막힌 사실을 누가 또 모르겠기에 구태여 설명이 필요할 거냐. 그리하여 우리는 현재 이상의 불행을 - 그 암담과 비참과 내지 유혈을 보게 될 위험한 가능성을 누가 모르겠기에 또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냐.

 

이론이야 어떻거나 남의 정부가 반쪽 정부라면 북의 정부도 반쪽 정부를 면하지 못한다. 명분이야 어떻거나 남의 정부가 미국의 세력 하에서만 권위를 유지할 때에 북의 정부도 소련의 세력 하에서만 권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장차 이 두 개의 정부는 각자의 권위를 민중에게서 획득하려고 노력할 모양이지만 모르거니와 이 노력은 부자연한 흥분상태에서 발휘되지 않을까?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민중에게 진정한 자유가 용인되기 어려우리라는 말이다. 남의 민중이 남의 정부를 반대할 자유가 허락되지 않고 북의 민중이 북의 정부를 반대할 자유가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개의 반쪽 정부를 원치 않고 하나의 통일정부를 원하는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의 정부도 그대로 완전한 정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짜 무궁화>(성균관대학교 출판부 펴냄) 94-98쪽)

 

유엔총회에서 미국이 제안한 조선 관계 결의안은 찬성 46국에 반대 없이 통과되었다. 소련과 그 휘하의 동구권 국가들이 반대를 하지 않고 기권을 한 데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 결의안을 유엔총회에서 다룰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원천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만약 46 대 6의 표결이 이뤄졌다면 반대자들도 다수결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소련 등 공산국들은 결의안의 성립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보이콧 입장을 밝힌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조선위원단 참여를 거부한 것도 이 보이콧의 일환이었다.

 

조선 문제가 46 대 0의 문제가 아니라 1 대 1의 문제라고 오기영이 말한 것은 사태의 본질을 꿰뚫은 탁견이다. 소련은 조선에 현실적 영향력을 가장 크게 끼치고 있는 두 나라 중 하나인데, 유엔 결정은 소련을 설득하는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 것이었고, 따라서 조선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오기영의 위 글에는 이미 일어난 일과 일어나고 있던 일만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전망도 담겨 있다. 분단 건국이 어떤 사태를 몰고 올까 하는 것이다.

 

분단건국의 문제점은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미진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일되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민족이 두 국가로 분단되어 있을 때 그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전쟁과 독재다. 자연스러운 통합 상태로 돌아가려는 민중의 의지가 분단 상대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나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이쪽 체제만 정당하다는 양보할 수 없는 주장에 매달리면 어느 쪽도 국민에게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허락할 수 없을 것이다.

 

오기영의 말대로 모두 상식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식견 있는 사람들이 모두 걱정을 하고 있는 중에 1948년의 조선은 분단, 독재,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