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양구에서 떠나셨겠지요.
<해방일기>를 감당하는 저력을 그곳에서 충전하시나 보군요.
저도 매주 북한산을 올랐는데,
산행을 하지 못함이 이 곳 생활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입니다.
그 서너 시간의 '한가'가 창조의 요람이었는데 말이죠.
공연히 바빠, 통 답신할 짬을 내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미루는 건 도리가 아니지 싶어, 몇 자 올립니다.
저는 아직 젊어서인지, 타고난 기질 탓인지,
새 것에 쉬이 현혹되는 편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열심히 포스트 담론들을 살폈지 싶습니다.
학생 때 별명이 '후까시'였는데요.
뽀다구를 내려고 탐서했던 구석이 큽니다.
그런데 그토록 새 것만을 탐식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옛 것처럼 '순수하게' 새로운 것이 없더군요.
19세기 이후 서구에서 나온 지식/학문만을 배회하던 저에게,
이웃나라의 존재와 (동)아시아의 역사만큼 '새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신구 사이의 일대 반전이었죠.
저는 그러한 반전이 저의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실은 세계사의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남다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경험이겠다 싶은 것이지요.
돌아보면 각종 포스트 담론의 조류는 68혁명의 후폭풍이었나 봅니다.
탈근대, 탈식민, 탈구조 등등등.
헌데 전 요즘 68혁명 당시 서구의 '동방'에 대한 소비에 흥미가 끌립니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기저에 (베트남과) 알제리 전쟁이 있었고,
호치민, 마오쩌둥, 체게바라 등 제3세계 혁명가에 대한 호응이 정점을 쳤습니다.
그것을 서구의 아카데미가 재전유한 것이 포스트 담론들 같습니다.
미완으로 끝난 탈혁명 증후군이었다 할까요.
90년대 한국의 대학에서 포스트 담론 열풍이 불었던 것도,
87년 이래의 상황이 서구의 68 이후와 비슷해서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68혁명 이후 동방을 소비하는 또 하나의 갈래가 뉴에이지 같습니다.
호치민/마오/체와는 다른 동방,
특히 비틀즈와 히피들이 사랑했던 인도와 티베트(불교)의 소비에서 출발한다 할까요.
사회의 변혁이 아닌 개인의 영성/각성에 방점을 둔다는 차원에서,
70년대 이래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로의 전환과도 딱 맞아들었지 싶고요.
포스트 담론이 대학이 흡수한 68혁명의 유산이라면,
New Age는 시장이 기민하게 낙아챈 트렌드라고 여겨집니다.
히피가 여피가 된 것이죠.
마지막 하나가 디지털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등 가상의 '신대륙'이 열리게 되는 것이지요.
디지털 문화의 거점이 실리콘 벨리를 비롯해 대저,
68 당시 반문화의 거점인 캘리포니아입니다.
근대의 보루인 동부의 정통 명문대학을 탈출한 청춘들도 결합하고요.
소유가 아닌 공유, 경쟁이 아닌 협동 등 반문화(counter-culture)의 가치가,
디지털 문화(cyber-culture)로 전환되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서구 자본주의와 동구 사회주의를 모두 돌파하자던,
68혁명의 가치를 가장 온전히 계승하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하고요.
저는 이 디지털 미디어와 동방 고전이 만난다면? 이라는 상상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야말로 르-네상스 인 것이지요.
저편의 르네상스가 이쪽에서 건너간 인쇄술과 (이슬람이 전해준) 자신들의 고전과의 결합이었듯이,
이번에는 저쪽에서 전해 준 디지털 미디어에 이쪽의 고전을 결부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탈근대의 르-네상스가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진짜 New Age가 아닌가.
진보하는 혁명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반전의 혁명이지 않는가 등등등.
특히 한자, 라는 독특한 문자도 주목하게 됩니다.
일단 저부터가 한자라는 매체를 통해서 마침내 '옛 것'과 접속하게 되었고요.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독일어, 프랑스어만 공부했지,
'낡고 후진' 한문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연세대 사회학과에 송복 선생이라고 계셨죠.
그 분은 보고서를 원고지에 한자로 써서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질겁하고 곧바로 수강 철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문자, 야말로 최초이자 최상의 '타임머신'이지요.
특히나 한자는 가장 오래된 과거=거대한 뿌리와 연결시켜주는 신통한 문자입니다.
가장 새로운 매체=인터넷과 가장 오래된 문자=한자가 만난다면?
새 것을 빌어 옛 것과 재회하게 된다면?
지난 일백년간 버려두었던 '전통'이라는 대륙에 다시 현대인이 발을 들이게 된다면?
탈근대의 '지리 상의 발견'이지 않을까요.
캘리포니아에 머물다 보니, 이런 공상이 한결 더해지지 싶습니다.
이 또한 '장소 감각'일지,
혹은 무중력 상태의 망상일지요.
이 곳 햇살은 무척 뜨겁습니다.
대신 그늘로만 들어가면 시원합니다.
전형적인 사막성 기후입니다.
좀처럼 비도 내리지 않고요.
그런데도 풀과 나무가 무성하지요.
살기는 참 좋은데, 간혹 무섭기도 합니다.
이곳은 식물들도 석유를 먹고 자라나고 있는 것이니까요.
LA로 끌어오는 수량이 엄청나다 들었습니다.
인공 낙원이 따로 없지요.
이런 시스템이 얼마나 지속할지 모르겠습니다.
석유 공급이 멈추면 식생은 물론이요,
'미국의 민주주의'도 순간 작동을 멈추지 않을까요.
공연한 실소리만 길게 늘어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더위 탓이려니, 어여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이병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