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의 8할만"!
RE: 진보와 진화
백 선생님이 언젠가 '민두기 평전'을 쓰겠노라 한 적이 있습니다. 전 여러 필자들의 집합적 작업으로 쓰여지면 좋겠더군요. 서울대 동양사학의 기틀을 추적해 보는 학술사적 가치도 있지만, 워낙 이채로운 활극들이 다이나믹하게 펼쳐질 듯해서요. ^^
블로그의 댓글도 그러하고, 이번 메일도 그러하고, 제가 그렇게 노티 나는가, 곰곰 돌아보게 됩니다. ^^; 제 쪽글을 두고, 예쁜 얼굴의 여자가 잔뜩 분칠을 하고, 향수도 마구 뿌린 것 같다며, 혹평을 당하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요. 대학원 수련 5년으로 노화되었나 봅니다.^^
근대(성)에 대한 상대화는 저로서는 자연스러웠습니다. 제가 98학번인데요.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정기였습니다. 칸트, 헤겔 읽기 전에 푸코, 들뢰즈부터 읽었던 것이지요. 근대(성) 비판 자체가 하나의 '유행'이었습니다. 모 영화잡지에서 일을 거들었는데, 당시 평론들도 온통 그러했고요. 탈근대의 풍월을 읊어야 '폼'이 났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근대에 대한 회의조차도 저쪽에서 빌려와서 포즈만 취한 것에 가까웠지만요.
한편 <녹색평론>도 열심히 읽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위로부터의 근대(성) 비판이라면, 녹평의 작업은 아래로부터 근대(성) 비판이 아니었나 합니다. 탈근대보다는 '비근대'의 옹호에 가까웠다 해야겠죠. 한때는 영국의 Resurgence까지 챙겨 읽을만큼, 김종철 선생에도 깊이 감화되었습니다.
그런데 탈근대론이나 생태론이나 '장소 감각'은 부족했지 싶습니다. 결국 말하는 내용과 어법들이 장소 불문 비슷했거든요. 자연스레 장소에 깃든 역사성도 약해 보였고요. 포스트모던과 생태주의를 배회하다, 최종적으로 동아시아론에 안착하게 된 것도, 그 장소 감각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탈근대'를 가더라도, 적색 대신에 녹색 일변도로 가는 것은 근대의 '반복'이지 싶고, Resurgence의 다양한 길이 열리는게 '진화'에도 부합한다 여긴 것이지요. 동방은 동방의 길을 찾는게 인류라는 종의 진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할까요. 그런 생각이 자꾸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라는 발상에 의탁하는 까닭이지 싶습니다.
저는 결국 인류사도 생물학이나 진화론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머리 식힐 때 자연과학서를 즐겨 읽는 것도 그래서이고요. 물론 한때 과학도를 꿈꾸시고, 과학사도 연마하셨던 것에 비할 바는 못되겠지요.
20세기 좌파들의 가장 약한 부분도 문명의 식생에 대한 공부였지 싶습니다. 정작 발딛고 있는 장소와 뿌리 감각이 없으니, 혹은 그것을 한사코 부정하고자 했으니, 다들 사상누각이 되어 제풀에 고꾸라진게 아니었나. 이성에 비해, 野性과 根性이 부족했다고 할까. 고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전통이라고 해도 무방할 그 문명의 탯줄과 끊어지면서, 관념적 급진성으로만 내달리고 말았다고 여겨집니다.
제 학위논문은 동아시아론의 부족한 점을 메우는 작업에서 출발합니다. 일단 가장 부족하다 보이는, 냉전기 중국과 아시아를 주제로 잡았습니다. '죽의 장막' 너머에서 만들어 갔던 '또 하나의 아시아'에 대해서는 공백 지대 같거든요. 북조선,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등등. 그들이 중국과 함께 만들어 가려했던 지역 구상과 실천이 있었습니다. 곧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이들 나라끼리 모여서 대안적 올림픽과 대안적 아시안게임을 펼치기도 했고요. 이러한 동향들을 최대한 복원해 내려고 합니다. 이들이 적극 개입했던 아시아-아프리카 작가운동도 정리하고 있고요. 훗날 김지하 선생이 로터스 상을 수상한 그 AA 작가운동이죠. 대저 비동맹, 중립주의, 제3세계론 등등으로 표출된 운동들인데, 저는 그 뿌리가 아프로-유라시아의 긴 역사와 무관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저항의 거점에 복원이 있던 것이지요. 본인들 스스로도 '르네상스'를 언급하기도 했고요. 21세기는 그 복원이 점차 여실해지는 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당장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종군했던 중국 지식인의 글들을 모아 읽고 있습니다. 그들의 세계관이라고 할까, 제가 잠정적으로 '중화 사회주의'라고 명명한 미묘한 심리/인식의 지도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사회주의 국제주의를 국제와 당제 간의 모순으로 접근하곤 하는데, 중국와 주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는 소련-동유럽과는 또 다른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았지만, 중화주의의 유산이 끼친 연대와 갈등의 역동성을 밝히는 것이, '20세기 동아시아'를 다룰 때도 매우 중요한 지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좀 내쳐 말하면, 저는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면 할수록, 그 언어와 발상과 실천에서 점점 '중화제국'화 되어갔다고도 여기고 있습니다. 만주국의 건국이상(오족협화)이나 영미/소련 너머 근대를 초극하자는 대동아 이념 등, 지배의 논리만큼은 점차 '중화제국'화 되어 갔던 것 같아요. 일본도 청과 마찬가지로 중원으로 진출하면 할수록 중화의 논리를 말했던 것이지요. 저는 그 관성과 지구력이 몹시 흥미롭습니다. 반미-반제국주의, 반소-반수정주의 외쳤던 문화대혁명 또한, '사상적으로는' 대동아와 계승되는 지점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아니, 대동아를 훌쩍 넘어 AALA까지 확산될 정도였죠. 당시 마오의 세계관, 그리고 마오에 열광하며 그의 어록을 품고 다녔던 68혁명 세대들과, 무장투쟁의 동기를 얻었던 제3세계 게릴라들의 공명도 제 논문의 한 부분입니다. 반면 '중국혁명의 세계화'가 절정을 구가할 때, 정작 북조선과 북베트남은 척을 졌던 대목도 재미가 동합니다. 특히 머물기도 하셨던 연변의 경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이렇게 중화제국의 잔상과 변용, 복원과 탈구 등을 제대로 짚는 것이, 20세기 동아시아를 정리하는데 열쇠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사가 아니라 '미래학'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종종 들고요.
오전에 메일을 받고, 생각을 궁리하다 글로 정리하니 점심이 되었습니다. 두서없는 거친 생각들을 툭툭 뱉어 두었으니, 대화를 잇는 소재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몇은 앞으로 프레시안 연재로도 소화할 예정입니다. 이곳 도서관에도 선생님 책이 네 권이나 있더군요. 틈틈이 읽으며, 저 나름으로 질문 보따리를 채우고 있겠습니다.
<해방일기>의 대장정에 기대와 응원을 표하며.
-이병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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