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8. 10:27

형들이 다녀간 뒤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신다. 음식 더 달라는 것을 비롯해 분노의 표현이 극단적이 될 때가 많다. 별 것 아닌 일이나 아무 이유 없이도 역정을 내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신다. 금강경을 읽어드리거나 노래를 불러드리면 웬만큼 가라앉으시지만, 조금 지나면 무슨 꼬투리든 찾아 심술 모드로 금세 들어가신다. 음식 욕심도 즐기는 선을 넘어 맹목적인 탐욕에 가깝게 나타내실 때가 많다.

무엇보다 간병인들 눈치가 보인다. 호통을 치셔도 전처럼 장난기 있는 것이 아니라 역정기가 뚝뚝 흐르고, 쌍욕까지 불쑥불쑥 끼어드니 아무리 직업으로 하는 일이라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분들이 좋은 기분으로 대해 드리지 못한다면 보살핌의 질과 양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아내와 내가 기회만 있으면 좋은 말로 여사님들 비위를 맞춰주려 애쓰는데, 그분들은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준다. 자기네에겐 그리 심한 태도를 안 보이시는데, 왜 아드님과 며느님에게 그리 박하신지 모르겠다고.

사흘 전(수요일) 작은형이 다녀간 뒤로 문제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점심 때 아내가 다녀오고 저녁때 내가 갔는데, 그 사이에 다녀갔다고 한다. 간식 권하는 일에 여사님들이 참견하는 일이 좀체 없는데, 식사 후에 과자를 권해 드리려 했더니 방에 있던 두 분이 모두 나서서 오늘은 그만 권해드리라고 한다. 옆에서 보기에 걱정스러울 만큼 많이 대접해 드렸던 모양이다. 형이 매주 들르겠다고 한 것이 진심인 모양이라 반갑기는 한데, 어머니랑 노는 방법에 관해선 한 차례 의견을 얘기해 줘야겠다.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한 물리치료에 자극받으신 면도 있을 것 같다. 지난 주 닥터 한에게 물리치료 받으시는 게 좋을지 한 번 검토해 봐 달라고 부탁해서 받으시게 된 것인데, 2시에 6층의 치료실로 모셔가 30분간 받으신다. 별건 아니다. 치료사가 그림을 보여드리며 말을 시키고 팔을 조금 주물러드리는 정도다. 그런데 오랫만의 자극이기 때문에 예민하게 느껴지시는 것 같다. 다음 주에는 일단 중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제 참관해 보니 치료사의 교양 수준이 낮아 나라도 짜증이 날 만한 대목이 종종 나온다. 그저께 아내가 참관할 때 어머니가 폭발하시는 것을 봤다는 대목은 진짜 심했다. 학력, 경력을 묻다가 "할머니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셨으면 부자시겠네요." 하는 소리에 어머니가 펄펄 뛰시더라고.

오늘은 점심때 아내가 갔다가 영 풀이 죽어서 돌아왔다. 얘기를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얼러서 입을 열게 하니 막 쏟아져나온다. 왕년에 며느리마다 못 살게 구시던 진면목이 되살아나신 듯하다. 이걸 반가워할 일인지? 회복은 회복이신데.

6시 조금 넘어 병원으로 갔다. 어제보다도 나와의 커뮤니케이션에 흥미가 줄어들어 보이신다. 뭔가 휘황한 일에 정신이 쏠려 있는 듯하고, 불쑥 밑도끝도 없는 얘기를 내게 던지시고는 원하는 응대를 해드리지 못한다고 버럭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신다. "내가 그 동안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으니 너, 지금부터 내 예언을 들어라. 이 예언을 절대 믿어야 한다." 이렇게 시작하시고는 "그 사람 성은 누를 황이다. 그리고 이름 둘째 글자는 일천 천. 너 그런 사람을 아느냐?" 이름 끝자가 뭐냐고 여쭈니 터 기라 하시고,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니까 어째 모르냐고 역정. 그리고 말씀이 끊어지실 때는 오른 팔을 위로 뻗어 뭔가를 가늠하며 쳐다보시는 듯이 천장을 바라보신다. 그러다가 "이쪽 절반, 이 방은 너희가 쓰고, 저쪽 방은 걔랑 내가 쓸 테니 너희는 우리쪽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영이 얘기를 하시는 것 같다.

형들이 오기 전까지 단순한 생활패턴이 조금씩 확장되는 가운데 생각과 느낌의 범위가 실질적 감각의 뒷받침 위에서 차분히 늘어나고 있던 것이 며칠 사이에 추상의 범위로 넘어가 버린 것이 아닐지? 당분간 자극을 좀 줄여드려야겠다. 우울한 기분을 느끼실 때가 있는 것도 회복의 한 측면이겠지만, 요즈음의 맹목적인 분노는 너무 불안정한 양상을 보이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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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