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올바르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고,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형벌이 적절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절하지 못하면 백성이 어찌할 바를 모른다.(名不正 言不順, 言不順 事不成, 事不成 刑罰不中, 刑罰不中, 民無所措手足)”

 

정치의 기본원리라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백성을 편하게 해주는 데 있지만, ‘명정언순(名正言順)’ 없이 입에 발린 “민생” 립서비스만으로 좋은 정치가 되지 못함을 가르쳐주는 말입니다. 명정언순 없는 민생은 어쩌다 그럴싸하게 보일 때가 있더라도 국부적이고 일시적인 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지성인이라면 스스로를 반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잘 안 될 때, 함께 하는 이들과 말이 잘 안 통할 때,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으려 들지 않고 혹시 내가 ‘정명(正名)’에서 벗어난 게 아닐까 반성할 줄 아는 것이 지성인입니다.

 

지난 4일에서 5일에 걸친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장장 17시간 동안 사회를 보는 모습, 그리고 그 후 당신의 언행에서 지성인답게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머리 좋고 아는 것 많은 분이기에, 그리고 변호사로서나 정치인으로서나 책임 있는 자세를 많이 보여준 분이기에,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일이 잘 안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말이 충분히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당연히 있어야 할 반성의 기색이 이 의원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의 ‘패거리’에서 국회의원 자리 몇 잡았으니 일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당을 함께 해 온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하기 바라는 마음이 애초에 없었던 것입니까?

 

이 의원을 훌륭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실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놀라자빠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의 하나일 겁니다.

 

당신과 몇 번이나마 만나 당신의 사람됨을 알아보았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했고, 그래서 당신의 언동이 어쩌다 물의를 일으킬 때도 그것을 타당한 것으로 보는 내 관점을 글로 밝힌 일이 두 차례 있습니다.

 

그 글들 쓴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대로 쓴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의원에게 ‘실드’ 쳐준다는 세평을 들어 온 사람으로서, 이제 더 이상은 실드 쳐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도 알려야겠습니다. 그래서 공개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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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연분을 돌아봅니다. 밥을 세 차례 같이 먹은 것 같아요. 두 차례는 아이필드 출판사 유연식 사장의 박정희 명예훼손 사건을 당신과 최병모 변호사 두 분이 맡아주었을 때 네 사람이 함께 한 자리였죠. 목소리도 큰 최 변호사가 어찌 그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지 우리 사이에 별 이야기는 없었지만, 나서지 않으면서도 역할에 충실한 태도에 큰 호감을 느꼈습니다. 그 후 재판 진행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참 믿음직한 분이라는 인상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국회 들어가신 후로는 여의도에서 한 차례 만났죠. 유 사장 사건 대법원 판결을 받은 뒤 자축하는 자리였죠. 마침 일기 쓰던 때라 적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책으로도 낸 일기죠.

 

공교로운 날이었다. 점심을 이정희 선생님께 얻어먹은 것이 모처럼의 일이었는데, 저녁때는 민노당 이정희 의원과 약속이 있었다. 이 의원 부부, 중앙일보사 함께 있던 북한 전문가 유영구 선생, 그리고 박정희 명예훼손 문제로 이 의원의 변호를 받았던 유연식 사장이 함께였다. 옆에 앉은 이 의원에게 점심을 어느 분이 사주셨나 얘기한 다음 “잘하면 이름 같은 두 분에게 점심과 저녁을 얻어먹는 기록을 오늘 세울 수 있겠다.”고 했더니 박장대소하며 “그 기록을 꼭 세워드리겠습니다.” 다짐했다.

 

그 다짐을 이 의원은 어겼다. 이 의원의 변호를 너무나 고마워하는 유 사장이 곁에 있는 이상 애당초 지켜질 수 없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이 ‘위약’을 빌미로 이 의원과 함께 이정희 선생님 모시는 자리는 한 번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독재정권 비판에 반생을 몰두해온 이 선생님이 요즘 이 의원을 무척 대견해하시는데, 그런 자리 만들어드리면 무척 기뻐하실 것이다. (<아흔 개의 봄> 2009년 2월 9일자)

 

그 자리에서도 이 의원 태도를 아주 훌륭하게 봤습니다. 일에 대해 투철하면서도 인간관계를 아낄 줄 아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직후 <프레시안>에서 “10년 후에는”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할 때도 이 의원 모실 생각을 바로 하게 되었죠.

 

10년 후를 바라보는 정치 이야기를 앞으로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는 분들에게 듣자는 기획이었는데, 도입부에서는 내가 직접 아는 분들로 시작하는 게 안전하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홍세화, 박원순, 유시민, 이 의원 네 분으로 4번까지 타순을 짜며 작업 진행을 의논하고 있던 차에 노 대통령 서거가 터졌습니다. 내가 꼭지가 너무 돌아 버리는 바람에 그 작업을 내팽개치고 말았고, 그 후로는 이 의원께 연락드릴 일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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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없이 지내는 동안에도 국회의원 노릇과 당 대표 노릇을 더할 나위 없이 잘 하시는 것을 보며 늘 마음속으로 흐뭇했습니다. 이 의원 이야기를 드러내 쓴 일은 별로 없는데, 꼭 한 차례가 생각납니다. 정운찬 총리 인준 청문회를 보며 정 총리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이런 말을 했죠.

 

어제 이정희 의원에게 혼나셨죠. 오늘도 혼나고 계시겠죠. 이 의원이 다른 야당 의원들에 비해 온건한 표현을 쓰지만, 그분의 질책을 정말 형님이 아프게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서면으로 제출한 답변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형님 말씀에 그분이 공인 자격을 들먹이기도 했죠. 정말 기가 막히는 장면입니다. 형님 이름으로 제출한 답변 내용을 형님이 모른다면 어쩝니까? 청문회에서야 어차피 싫은 소리 들을 만큼 들은 뒤에 국회 동의야 어떻게든 따낼 거니까, 답변 준비할 시간 아껴서 더 중요한 일에 쓰셨습니까? 국회 답변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기회란 걸 모르셨나요? 아니면 국민의 신뢰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나요?

 

바로 이정희 의원에게 공인의 자격과 자세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발언 중에는 민주노동당만을 위한 내용이 없었죠. 시종일관 한국 사회를 위한 한 마디 한 마디였고, 그 속에 민주노동당을 위한 크나큰 공헌이 저절로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분이 왜 그렇게 훌륭한 공인의 자세를 갖출 수 있는 걸까요? 다른 무엇보다, 그분에게는 분수를 넘는 풍족한 생활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때 청문회에서 본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을 요즘 이 의원에게서 보며 이 의원의 ‘능력’에 대해서는 전보다도 더욱 탄복합니다. 공인의 자세를 그만큼 갖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런 자세를 꾸며서 보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입니다. 능력에 탄복하면서도 성실성에 대한 믿음을 거둬야 하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북한의 3대 세습 문제로 종북주의 논란이 일어났을 때 나는 이 의원의 태도가 정당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관악을 부정투표 사태 때 사퇴를 최대한 늦춘 것도 타당한 행동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열심히 글로 써서 발표한 것은 당신의 성실성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사소한 오해 때문에 흔들리지 않기 바란 때문입니다.

 

두 차례 글 모두 이 의원에게 ‘실드’ 쳐준다는 평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실드 쳐드릴 수 없다고 했죠. 앞으로 당신의 ‘행동’이 정당하고 타당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당신의 ‘생각’을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정희 의원, 당신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 모르는 사람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알게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내가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서도 정치행위에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은 본질적 사안을 바라보는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의 숨겨진 이해관계에 나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 의원이 취하는 행동의 이유에 나는 관심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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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내가 이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고맙게 생각한 일이 있죠. 2010년 4월에 낸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 10년을 넘어>에 추천사를 써준 일 말입니다. 정세현, 홍세화, 이정우, 박인규, 유시민 다섯 분과 이 의원에게 부탁했고, 모두 좋은 글을 써줬습니다. 여섯 분 글을 받아놓고 편집자가 기뻐하며 “야권 연대는 이 책에서 이뤄졌다!” 외치던 생각이 납니다.

 

그 글 다시 펼쳐 읽어봅니다. 참 좋은 글입니다. 그 글 준 데 대해 고마운 마음도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찍을 책에서는 그 글을 빼도록 출판사에 부탁하려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쓴 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10여 년 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는 희망을 가질 만 했다. 군부독재자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던 정치범은 대통령에 당선되어 대한민국을 사형제 실질적 폐지의 길로 들어서게 했고, 6.15 공동선언을 만들어낸 그의 얼굴은 빛났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닥쳐온 탄핵의 위기에, 시민들은 촛불을 들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러나 10년 동안, 한국 사회를 더 진전시켜야 할 책임을 진 사람들은 점차 갈라졌다. 민주주의는 이미 반석 위에 올라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촛불의 힘쯤이야 언제든 가로막힘 없이 빌릴 수 있다고 여긴 것일까. 그래서 감히 실패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로부터 고작 한 두 해 만에,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수 십 년 어렵게 쌓아온 시간을 일거에 거슬러 올라가 후퇴했다. 그 아픔이 우리를 성찰로 이끌고 움직이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그 아픔을 쉽게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지금 우리의 마음은 쓰리고 아프다.

 

1990년대 후반, 그리고 2010년. 저자는 두 시기의 한국사회를 오가고 국경을 넘나들며, 역사는 드러내 보이기만 하면 스스로 말한다는 확신을 드러내 보인다. 저자는 그 근거로 “공자가 《춘추》를 정리하매 난신적자가 떨었다”는 옛말만을 적었으나, 저자가 이 책에서 짚어낸 생애는 역사 앞에 감당해야 할 임무를 피하지 않고 맞닥뜨린 분들의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아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통념을 이기고 이익과 권세를 멀리하며 생명까지 내던진 분들이 만들어낸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저자가 씨줄과 날줄을 일일이 살펴 넓은 시야로 찾아낸 역사의 흐름은,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을 타오르게 하는 밑불이 된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질타조차 모질지 않다. 이것이 깊고 넓은 탐구와 사색의 힘이리라.

 

글 끝에서 말씀해 준 것처럼 나는 모질지 못한 사람입니다. 모진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상식과 원칙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들,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다른 세상에서 나는 살고자 합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