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만수의 글 “육탄십용사, 날조로 탄생한 신화!”를 읽다가 마음에 걸린 대목이 하나 있다.

 

물론 전쟁은 모든 물자를 급격한 속도로 소비한다. 한국 전쟁의 배후 군수 기지 노릇을 했던 일본이 그 덕분에 패전의 폐허에서 벗어났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공황 탈출책으로 유력하게 동원되어 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전쟁은 언젠가 끝나게 마련이고 그러면 다시 소비는 줄어들며 다시 공황을 맞는다. 그때쯤 정치가와 기업인은 다시 전쟁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일본제국은 끝없이 침략 전쟁을 벌여야 하지 않았던가.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세계 어느 곳에선가 전쟁이 일어날 징후라고들 하지 않던가.

 

반박이 아니라 보완의 의미에서 떠오른 생각을 적고 싶다. 경제 측면에서는 전쟁에도 바람직한 점이 있다는 통념을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전쟁, 또는 군비 증강에 경제 활성화의 효과가 있다는 ‘군사적 케인스주의’가 20세기 후반에 유행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의 상식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보면 문명 발생 이래 전쟁을 바람직한 경제정책으로 추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전쟁의 파괴가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 동서고금 거의 모든 사회의 보편적 상식이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전쟁의 경제 활성화 효과가 부각된 현상을 그 시대의 특수한 조건에 따른 일로 봐야 할 것이다.

 

연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작업을 할 때 이 점에 생각이 미쳐 정리한 것이 있다.

 

오랫동안 고전의 권위를 누린 이 책(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1832)에 담긴 “전쟁은 정치 행위의 연장”이라는 말은 전쟁 개념의 유력한 정의로 통해 왔다. 그러나 이 정의에는 당시 유럽의 상황에 의해 규정된 면이 있다. 전쟁에 관해 그런 형태의 담론이 나왔다는 사실부터가 근세 이전과 달리 전쟁이 ‘수지맞는 사업’으로 떠오르는 상황을 보여준다.

 

18세기까지 전쟁은 그리 수지맞는 사업이 아니었다. 근세 잉글랜드 경우를 보면 웬만한 전쟁에 경상수지보다 더 큰 비용이 들었고, 전리품을 충분히 얻을 만한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정권이 위기에 처하곤 했다. 전쟁 비용을 귀족 영주들에게 빌렸다가 왕의 직할지를 떼어서 갚는 일이 다반사였다. 17세기부터 귀족 영주들 대신 상업자본가가 전쟁 비용 담당의 역할을 넘겨받기 시작했다.

 

1756~1763년의 7년전쟁에 투자한 잉글랜드 자본가들은 엄청난 배당으로 거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겼을 경우의 이득이 졌을 경우의 손해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당사자 모두를 놓고 보면 제로섬이나 마이너스섬 게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19세기 들어와서는 차츰 플러스섬의 양상이 나타났다. 이길 때의 이득이 질 때의 손해보다 훨씬 큰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군사적 케인스주의가 타당하게 적용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일이다. 대량생산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것은 자원 활용도가 낮은 상태에서 소비 촉진으로 경제 활성화의 길을 여는 케인스주의 정책 노선이 효과를 가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전쟁 수행을 위한 소비와 파괴 복구를 위한 수요가 생산력 증대를 촉구했고, 그에 따른 기술 발전으로 생산비 자체를 대폭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86-287쪽)

 

경제에 대한 전쟁의 긍정적 측면을 사람들이 생각한 시대에 “소비는 미덕”이란 믿음이 널리 퍼진 사실을 함께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미덕으로 여긴 것도 인류 역사상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이 관점을 오랫동안 대표해 온 이야기가 ‘깨진 유리창’ 우화다. (이것을 ‘이론’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원도 불확실한 이 이야기에는 이론의 엄밀성이 없기 때문에 나는 하나의 ‘우화’로 치부한다.) 빵집 아이가 유리창을 깨뜨리면 손해가 일어난 것 같이 보이지만 유리가게 주인에게 일거리가 생기고, 거기서 번 돈이 다시 소비를 일으켜 연쇄적인 경제 활성화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경제에는 보탬이 된다는 이야기다.

 

프레데리크 바스티아가 1850년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란 글에서 이 우화의 허점을 지적했다.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면 빵집 주인이 그 돈을 얼마든지 다른 소비행위에 쓸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유리가게 주인의 이득이 빵집 주인의 손실보다 작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손해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바스티아의 글 제목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근대 학문에는 분야를 막론하고 ‘보이는 것’에 너무 집착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일반적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경제학에서는 바스티아의 지적을 바탕으로 ‘기회비용’ 개념이 보완되었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소홀히 해 왔기 때문에 그런 보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보완이 어쩌다가 단편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홀히 하는 일반적 경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소비를 미덕으로 보고 전쟁에서 긍정적 경제효과를 찾은 것은 인류 역사상 예외적인 현상이다. 산업혁명에 따른 대량생산의 기술 발달이 그런 현상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일시적으로. 산업혁명의 효과에 도취된 근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많았다. 자원과 환경의 한계가 대표적인 예다.

 

40년 전만 해도 자원과 환경의 한계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주인이 달에 발을 딛는 모습을 보며, 이제 몇 십 년 후면 달은 물론, 적어도 화성과 목성의 자원은 가져다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지구 밖에 식민지를 만들 꿈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자원과 환경의 한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믿음과 꿈은 이제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체르노빌에 이어 후쿠시마를 목격하고 있다. ‘보이는 것’에 매달려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한 전형적 분야가 원자력산업이다. 초창기의 원자력산업은 폐기물 처리 문제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채로 덩치를 키워나갔다. 갖다버릴 곳이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았고, 기술의 계속 발달에 따라 버리기도 더 쉬워질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폐기물 처리 비용은 계속 커져서 시설비용을 앞지르고 있고, 안전한 처리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함에 있어서 원자력산업보다도 더 극심할 수 있는 분야가 전쟁이다. 전쟁에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온갖 요소들이 개재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쟁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는 것이 합리적 사고인데, 그 합리적 사고마저 경제 활성화의 효과 운운 하며 전쟁을 부추길 때 어떤 현상이 벌어졌던가?

 

산업혁명이 가져온 ‘근대’는 ‘대량살상의 시대’였다. 근대 이전에도 참혹한 전쟁은 있었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전쟁에서 전투원의 범위가 제한되고 비전투원의 대량살상이 예외적인 것이었음에 반해 근대 전쟁에서는 비전투원의 대량희생과 환경의 파괴가 필수적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근대세계에서는 전쟁 외에도 ‘대량살상’과 ‘초토화’의 길이 많이 열려 있다.

 

전쟁을 비롯한 여러 가지 파괴적 행동이 ‘수지맞는 사업’이 된 결과다. 일반인이 고통을 겪는 일이라도 자본가나 권력자에게 수지맞는 일이라면 어떤 명분과 방법으로든 저지르게 되는 추세가 근대세계에 있어 왔다.

 

이런 ‘악덕’ 자본가나 권력자의 행동을 도덕 강의로 바로잡아 줄 여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쟁이 예전처럼 수지맞는 사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는 편이 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에서 누구도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