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광복 1년이 되어 갑니다. 참, 지금은 ‘광복절’이란 말이 모두 입에 붙어 있지만, 그것은 정부 수립 후의 일이고, 그때는 ‘해방 1주년’이라고 했죠?

지금의 상황이 1년 전 갖고 계시던 희망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굳이 말씀 안 하셔도 잘 압니다. 선생님께서, 그리고 대다수 조선인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사태가 굴러오게 된 가장 큰 고비가 무엇이었습니까?


안: 지난 연말 연초의 반탁운동 폭발이 큰 고비였습니다. 11월 말 임정 귀국 후 임정 중심으로 통일전선을 만들려는 노력이 익어가고 있을 때였죠. 임정 비주류 인사들이 나서서 만든 특별정치위원회(조소앙, 김붕준, 김성숙, 최동오, 장건상, 유림, 김원봉)가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좌익이 인공을 내세워 임정에 맞서고 있었지만, 이 특별정치위원회를 외면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김구 선생도 교착 상황의 돌파를 위해 특별정치위원회를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탁 운동 한 방으로 이런 노력이 모두 깨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통일전선을 만들려면 합작과 절충이 있어야 할 텐데 “절대 반대”와 “절대 지지”가 휩쓰는 와중에 합작과 절충이 어디서 이뤄지겠습니까? 특별정치위원회를 통한 합작 노력이 1월 초 겨우 ‘4당 코뮈니케’를 만들어냈지만, 공산당과 한민당의 독단적인 태도 앞에 그냥 날아가 버리고 말았지요.

2월 중순 민주의원과 민전을 중심으로 양 진영이 고착되기까지 반탁운동의 격류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어 버렸습니다. 특별정치위원회 멤버 태반이 민전으로 넘어갔고, 모두 ‘좌익’ 딱지를 달게 되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저와 생각이 거의 같은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민전에 참여했다 해서 좌익이 되고 저는 민주의원에 남았다 해서 우익이 된 것이죠. 중도파의 입장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김: 선생님은 해방 당일 건준 부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독촉,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비상정치회의, 비상국민회의, 민주의원에 이르기까지 우익 조직활동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왔고, 그밖에도 국민당을 이끌고 <한성일보>를 주재해 왔습니다. 지난 1년간 조선 정치계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한 인물의 한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에 이르고 보면 해 오신 일에서 보람을 느끼기보다 회한을 느끼는 면이 많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스스로 제일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지요?


안: 특정한 어느 일을 꼽을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일에서 제 능력 부족을 한탄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한탄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습니다. 욕심이 없기 때문에 후회가 없는 겁니다. 내가 아무 욕심 없는 성인군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무슨 일에 임하든, 내 욕심이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하는 거죠. 누가 하든 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 일을 맡으러 나서고, 그 일을 내가 하지 않을 경우보다 좋은 결과를 얻도록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맡지도 않고 나서지도 않습니다.

가장 큰 번뇌를 느낀 일이 국민당과 한독당의 합당이었습니다. 말이 합당이지, 이름도 ‘한독당’을 그대로 쓰고 간부진도 구 한독당계가 장악했으니 시정의 말대로 국민당을 갖다 바친 겁니다. 반 년간 함께 해온 동지들에게 면목 없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국민당을 그대로 지켜서 내가, 그리고 국민당 동지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냉철하게 생각하고 결행했습니다. 국민당 사람들은 고통과 좌절을 겪더라도 국민당을 통해 받들어온 뜻을 살리는 길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김: 국민-한독 합당에 이르기까지 지난 1년간 선생님의 행동을 좌우해 온 가장 큰 요소의 하나가 이승만-김구 두 영수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충성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2월의 민주의원 참여와 4월의 합당 때까지 선생님의 행동은 그 관점에서 거의 설명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익의 비민주적 한계로 지목되는 ‘영수체제’ 확립에 선생님이 한 몫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런데 좌우합작에 참여하는 지금 단계에서는 두 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두 분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있었는가요?


안: 물론 변화가 있지요. 그러나 종래의 내 태도를 ‘절대적’ 신뢰와 충성이라 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철저한’ 신뢰와 충성이라면 몰라도.

임정 봉대(奉戴)론에서 한민당의 직진론과 내 보강론의 차이 같은 거죠. 그리고 지난 번(7월 8일) 만났을 때 신탁통치를 둘러싼 ‘절대 지지’와 ‘절대 반대’를 놓고도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내 어떤 소망과 판단에 대해서도 ‘절대’를 내세울 자신감이 없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일의 결정에 내 욕심을 앞세우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했는데, 욕심을 앞세우지 않으면 ‘절대’를 내세울 일이 없죠.

그러나 어떤 결정과 행동에도 ‘철저’하기 위한 노력은 합니다. 우리 민족사회는 큰 변화에 임해 있습니다. 큰 고통과 큰 성취가 걸려 있는 변화입니다. 고통을 줄이고 성취를 늘리기 위해 강한 영도력이 필요합니다. 강한 영도력의 형성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회의감이 좀 일어나더라도 억누르고 행동을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두 분 영수에 대한 시각 변화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김구 선생에 대해서는 움직임이 너무 적고 정치적 태도가 유연하지 못하다는 아쉬움 정도가 얘기되는데, 이승만 박사에 대해서는 극히 부정적인 인식이 일반인들 사이에 확산, 심화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근래 방송연설(7월 17일 “좌우합작의 정치적 의의”와 7월 19일 “민족위기 타개의 일로”, <민세 안재홍 선집 2> 129-138쪽)에서 극좌와 극우에 대한 경계심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진행 중인 좌우합작에 주체로 참여할 희망이 없는, 장애물일 뿐인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파의 이익을 위해 민족의 장래를 도외시하는 세력으로 극좌와 극우가 일반인들에게도 인식되고 있는데, 그 가장 뚜렷한 표지가 신탁통치 문제에 대한 ‘절대 지지’와 ‘절대 반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은 민족의 영도자가 아니라 극우파의 영수 아닙니까? 선생님도 두 분을 그렇게 보게 되지 않았습니까?


안: 김구 선생에 대해서는 주변에서도 많이들 답답해합니다. 합당 후 구 한독당계의 횡포가 너무 심하기에 한번 찾아가 말씀드리니 선선히 수긍하고 함께 정상화를 위해 진력하자고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두드러진 행동을 하시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의 반탁운동 출범 이래 그분은 태도를 크게 바꾸시는 일 없이 조심스러운 자세를 지키고 있죠. 노선을 확정짓지 못한 점들이 있는 것 같으니 나도 더 두고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승만 박사는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3월에 불거진 광산권 스캔들로 도덕적 권위가 무너져 버렸죠. 그런데 그 스캔들이 그토록 치명적이었던 것은 그때까지 그분의 행보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책략을 앞세우고 다니지 않았다면 그 정도 소문은 적당히 해명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죠. 나도 2월에 민주의원 참여를 망설일 때 그분이 “이게 건국 후에 장관 자리로 이어질 거야.” 권하는 데 환멸감을 느꼈습니다. 관직을 미끼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한 영도력이 아니죠.

그러나 그분의 독촉 사업 도와드린 일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분이 결국은 극우파 영수가 되었지만, 그런 길로 빠지시지 않도록 기회를 드리기 위해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죠. 독촉국민회체제로 극우 색채를 분명히 한 후로는 거리를 두고 지냅니다.

좌익에서는 두 분을 ‘파쇼영수’로 지목하며 배제를 주장하는데, 그것도 지나친다고 봅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그분들이 나서지 않는 가운데 좌우합작을 진행하고, 합작의 성과가 좋으면 다음 단계에서 그분들이 맡아줄 만한 역할이 있겠죠.


김: 지금 좌우합작 회담 대표의 면면을 보면 우익은 모두 진심으로 통일전선 결성을 바라는 분들인 반면, 좌익 대표는 정말로 합작을 원하는지 의심스러운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 예정되었던 회담이 여운형 선생 몸이 안 좋다고 유회가 되었는데, 좌익 대표들은 회담장에 나타나지도 않았죠. 여 선생의 병은 핑계일 뿐이라고 누구나 생각합니다.

민전에서 일전 ‘합작 5원칙’을 발표했는데, 회담이 이미 성립된 뒤에 좌익 내의 원칙이라면 몰라도 합작의 원칙이라며 일방적으로 발표한다는 것은 정말 심하군요. 게다가 민전 공동의장이기도 한 여 선생 몰래 그 5원칙이란 걸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여 선생을 흔들어 합작 회담을 무너뜨리려는 속셈이 분명하죠. 여 선생의 몸이 안 좋은 게 아니라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습니다.

회담의 한 쪽이 이토록 무성의한데 과연 회담의 성공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회담의 성공을 위해 어떤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안: 좌익의 대표 구성에는 사실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백남운 씨나 김원봉 씨처럼 대표성이 크고 합작에 긍정적인 분들이 꼭 나왔어야 하는데. 공산당에서도 김철수 씨 같은 원로분이 나서면 좋을 텐데. 여운형 씨 입장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공산당 박헌영계의 참여가 좌우합작의 실질을 보장하는 중요한 목표인 만큼, 그쪽 주장을 많이 받아주지 않을 수 없겠죠.

좌익의 합작에 대한 태도가 석연치 않은 것은 회담의 계기가 미군정의 결단으로 이뤄졌다는 사실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 태도가 돌아서도록 관계된 사람들이 모두 최선을 다해야죠. 이번 합작회담이 통일전선을 위한 진정한 기회라는 인식을 가지는 데 따라 좌익의 태도도 보다 긍정적인 쪽으로 바뀌리라 기대합니다.


김: 합작 회담 출범을 앞두고 ‘입법기관’ 얘기를 꺼내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태도 같지 않습니다. 민주의원 만드는 데 앞장섰던 선생님마저 민주의원이 “고궁에서 한담”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탄식했죠. 미군정이 그럴싸한 기구를 만든다고 서둘러서 극우파의 입지만 넓혀준 결과를 가져온 것이 좌익의 반발만이 아니라 일반인의 냉소를 불러오지 않았습니까?

좌우합작의 최대 목표는 미소공위의 재개와 원활한 진행을 위한 여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소공위를 통하지 않고 미군정에 협력할 ‘입법기관’을 만들려는 것은 합작의 근본 목표에 배치되는 일입니다. 이런 목표를 내세운다는 것이 합작 회담의 계기를 만든 미군정의 의도를 의심하게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안: 지금 단계에서 입법기관 얘기 나오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래서 우익 대표들도 합작 회담과 입법기관은 별개의 일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합작을 지원하는 하지 사령관의 태도가 확고하다는 사실입니다. 입법기관 얘기를 러치 군정장관이 6월 29일에 공개편지로 꺼냈고, 하지는 7월 9일에 성명서로 응답했습니다. 하지는 러치의 요구 때문에 입법기관 얘기를 하는 것이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고, 입법기관의 성격을 제한하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우익 대표들도 입법기관이 합작 회담과 별개의 일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죠.

미국사람들 솔직한 점은 정말 인정해 줘야 합니다. 사령관과 군정장관 사이에 이견이 있다는 사실을 저렇게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것을 보면. 버치 중위도 러치 장관과 자기 의견이 매사에 부딪친다는 사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여러 사람에게 얘기하더군요.


김: 오늘 정판사사건 첫 공판이 열렸습니다. 공산당이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수천 명 군중이 몰려들어 재판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다가 경찰 발포로 젊은 학생이 죽기까지 했다죠. 공산당의 시위가 예상보다도 강력했던 모양입니다.

공산당의 동원이 잘 된 것은 이 사건에서 공산당이 억울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겠죠. 선생님 보기에 이 사건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생각을 말씀해 주시죠.


안: 군정청과 공산당의 주장이 정면으로 반대되는데, 그 동안 군정청 쪽 조치에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제3자도 공산당에 동정하는 생각이 많은 것 같습니다.

5월 15일에 사건의 첫 공식 발표를 군정청에서 한 것부터 이상합니다. 선진국에서는 ‘피의사실 공표’를 못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 경찰은 일제시대부터의 관습으로 그런 일을 예사로 하지만, 군정청의 미군 당국자들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경찰에서 두 달 동안이나 붙잡고 있다가 검찰로 보내자 열흘 만에 기소하고, 기소를 접수하자 열흘 만에 공판을 연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죠. 검사와 판사가 검찰과 법원에 넘어오기 전부터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경찰, 검찰, 법원을 모두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어디 있습니까? 미군정이지요. 그러니까 모두 이 사건을 공산당에 대한 미군정의 공격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재판 과정을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법원장 김병로 씨는 훌륭한 인격자입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법원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죠. 최근에도 일부 판사들을 좌익이라고 좌천하고 몰아냈는데, 그중에는 강중인 씨처럼 좌익도 결코 아니며 능력과 인품이 모두 뛰어난 분들도 있었습니다. 1년 동안 군정청의 권위가 잘 자리 잡지 못했는데, 이번 일로 더욱 민심을 잃을 것이 걱정됩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