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6. 19:22
아버지 일기 원본을 어머니께 가져갔다. 실질적으로 결정은 내가 이미 내려놓았지만, 어머니가 자식들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36년간 지키셨던 아버지 육필을 어머니가 손수 떠나보내시게 하고 싶었다.
작년 초 경기도박물관에서 전시회 대여를 부탁했을 때부터 생각한 일이다. 어머니께 넘겨받은 후 20여 년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내 물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이들에게는 제공해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 제공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넘겨줄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 전시회가 끝나 반환받을 때까지 몇 군데를 생각해 봤다. 국립도서관, 국회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 그런데 요즘 웬만한 도서관에는 모두 이런 자료의 보관과 활용에 필요한 기술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기왕이면 아버지와 각별한 인연을 가진 기관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도서관에도 잠깐 생각이 머물렀지만 금세 제쳐놓았다. 서울대라는 기관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존재 의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큰형 내외가 서울대에 장학기금 만든 사실을 나중에 알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일도 다소 겹쳐졌다.
그리고는 아버지 고향인 경북 지역의 연구기관에 보낼 생각을 했다. 더 오래 사셨다면 고향을 위해서도 뭔가 애쓰셨을 분이라고 내게는 생각되는데, 못 이루신 뜻을 조금이라도 메워드릴 수 있었으면...
그러다가 한 달 전 병원에 계신 어머니 얼굴을 쳐다보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쓰신 분과의 인연에도 의미가 있지만 그 일기를 나를 포함한 후세사람들에게 전해준 분의 역할에 더 생각할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정병준 교수에게 전화했다. <역사앞에서> 개정판을 준비해 준 정 교수가 마침 이대에 봉직한다는 것도 인연이 겹쳐지는 일이다. 이 자료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 세상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아는 정 교수는 박물관이든 도서관이든 적당한 쪽에서 받아들이도록 주선하는 일에 기꺼이 나서 주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알려주었다. 도서관에서 접수하기로 했다고.
점심 때 다녀온 아내에게 들으니 어머니께 이런 일 말씀드려도 될 만큼 상태가 안정되신 것 같았다. 그래서 일기를 들고 가 보니 마침 테이블 가에 앉아 계셨다. 꺼내서 앞에 놓아드리니 힐끗 쳐다보신 다음 내게 고개를 돌리고 무심히 말씀하신다. "책? 이건 또 무슨 책이야?"
1950년 6월 25일자를 펼쳐드리며 "어머니, 이 글 보신 생각 나지요?" 했더니 소리내어 몇 자 읽다가 주변의 모든것을 잊어버리고 아득한 생각에 잠기시는 표정이다.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대 도서관에 기증하려는 뜻을 말씀드렸다. 아무 대꾸 없이 설명을 들으시지만 대개 알아들으시는 것 같았다.
끝으로 말씀드렸다. "어머니, 미우나고우나 이화대학이 어머니와 인연이 큰 곳이잖아요? 어머니가 오래도록 지켜 오신 이 일기를 다른 곳보다 이화대학에서 이제 지켜주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아직 일기에서 눈을 떼지 않으신 채로 가볍게 말씀하셨다. "그래, 잘했다."
열흘 후면 이대 도서관에 넘겨줄 것이다. 그때까지는 어머니께 갈 때마다 들고 가서 이 일기와 작별하실 시간을 마련해 드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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