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8. 20:00
6시 반쯤 갔더니 식사 후 아직 앉아 계신 노인들도 많았는데,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정신은 맑으신 것 같은데 기분이 가라앉아 보였다. "노래 부를까요?" 했더니 "자신 있냐?" 하신다. "자신 없어도 열심히 부를께요. 어머니도 같이 부르시죠." 하니까 "나는 자신 없다." "네 어머니, 제가 부를 테니까 어머니도 부르실 만하면 부르시고 정 자신 없으면 듣기만 하세요." 하고 "푸른 하늘 으은하수~" 시작하니까 한 소절 뒤부터 따라 부르셨다.
이어서 "송아지~ 송아지~"로 들어가니까 가만히 듣기만 하시는데, 부르다 보니까 어머니가 속으로 이놈은 그 노래 밖에 모르나, 하고 계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곡 뒤에 아버지 일기를 꺼냈다. 침대 등을 올려드리고 앞에 펼쳐 드리니까 가만히 쳐다보신다. "어머니, 누가 쓴 건지 아시겠어요?" 여쭈니 즉각 "몰라." 짧게 대답하신다. 아내가 낮에 다녀와서 "오늘은 아무거나 '몰라.'만 하시던데요?" 하던 생각이 난다. 대답이 아주 빨리 나오신 것으로 보아, 역시 몰라서 모른다고 하신 게 아니라 "몰라." 소리를 하고 싶어서 하신 것 같다.
이틀치 정도 읽어드린 후 반야심경을 외우는데, 얼굴이 울상으로 찌푸려지고 눈물이 배어나온다. 아주 조금 배어나오기 때문에 심리적 현상인지 생리적 현상인지 판단하기 어려운데, 느낌으로는 심리적 현상 같다. 그래서 최루 효과가 있는 레퍼토리 "그리워 그리워서~"를 꺼내니까 확인이 된다. 그에 이어 "장막을 걷어라~"를 불러드리는 동안 눈물도 걷히고 표정도 덤덤해졌다.
그런데 잠시 후 입을 떼어 말씀하시는 데 화들짝 놀랐다. 요즘은 입을 떼셔도 상대를 쳐다보지 않는 채 들리면 듣고 아니면 말라는 식으로 많이 하시는데, 이번에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말씀하셨다. "이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그럴싸한 대꾸가 얼른 나온 걸 보면 내가 참 머리가 좋다. "어머니, 몸이 아픈 것이나 마음이 아픈 것이나 아플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기도 해요." 제대로 받았으니까 어머니 말씀도 바로 이어지신다. "그래, 아픈 것을 모른다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지."
심한 우울증은 아니라도 사흘 전 이곳에 오신 이래 밝고 활기찬 모습을 잘 보이지 않고 계셨는데, 몇 마디 교감이 잘 된 것이 무척 기분좋으신 모양이다. 잠시 후 내 얼굴을 쳐다보며 아주 깊고 넓은 웃음을 지으신다. <아흔 개의 봄> 표지 사진보다 조금 더 밝은 웃음. 장난기가 동했다. "어머니, 조금 전에는 울다가, 지금은 웃다가, 왜 그렇게 오락가락하세요?" 혹시나 유쾌한 호통이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까불었는데, 그냥 싱긋이 웃으신다.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다는 것이 제대로 사는 거겠죠?" 사족을 붙이는 데는 그냥 "그래." 하신다.
10분 가량 더 있는 동안 말씀은 더 없었지만 내가 막 들어왔을 때보다는 기분이 훨씬 좋아 보이셨다. "이제 일하러 갈게요." 하고 일어서는데도 반가운 일이나 되는 것처럼 웃음 속에 보내주신다. 오늘은 뭣 좀 해드린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다.
이어서 "송아지~ 송아지~"로 들어가니까 가만히 듣기만 하시는데, 부르다 보니까 어머니가 속으로 이놈은 그 노래 밖에 모르나, 하고 계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곡 뒤에 아버지 일기를 꺼냈다. 침대 등을 올려드리고 앞에 펼쳐 드리니까 가만히 쳐다보신다. "어머니, 누가 쓴 건지 아시겠어요?" 여쭈니 즉각 "몰라." 짧게 대답하신다. 아내가 낮에 다녀와서 "오늘은 아무거나 '몰라.'만 하시던데요?" 하던 생각이 난다. 대답이 아주 빨리 나오신 것으로 보아, 역시 몰라서 모른다고 하신 게 아니라 "몰라." 소리를 하고 싶어서 하신 것 같다.
이틀치 정도 읽어드린 후 반야심경을 외우는데, 얼굴이 울상으로 찌푸려지고 눈물이 배어나온다. 아주 조금 배어나오기 때문에 심리적 현상인지 생리적 현상인지 판단하기 어려운데, 느낌으로는 심리적 현상 같다. 그래서 최루 효과가 있는 레퍼토리 "그리워 그리워서~"를 꺼내니까 확인이 된다. 그에 이어 "장막을 걷어라~"를 불러드리는 동안 눈물도 걷히고 표정도 덤덤해졌다.
그런데 잠시 후 입을 떼어 말씀하시는 데 화들짝 놀랐다. 요즘은 입을 떼셔도 상대를 쳐다보지 않는 채 들리면 듣고 아니면 말라는 식으로 많이 하시는데, 이번에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말씀하셨다. "이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그럴싸한 대꾸가 얼른 나온 걸 보면 내가 참 머리가 좋다. "어머니, 몸이 아픈 것이나 마음이 아픈 것이나 아플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기도 해요." 제대로 받았으니까 어머니 말씀도 바로 이어지신다. "그래, 아픈 것을 모른다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지."
심한 우울증은 아니라도 사흘 전 이곳에 오신 이래 밝고 활기찬 모습을 잘 보이지 않고 계셨는데, 몇 마디 교감이 잘 된 것이 무척 기분좋으신 모양이다. 잠시 후 내 얼굴을 쳐다보며 아주 깊고 넓은 웃음을 지으신다. <아흔 개의 봄> 표지 사진보다 조금 더 밝은 웃음. 장난기가 동했다. "어머니, 조금 전에는 울다가, 지금은 웃다가, 왜 그렇게 오락가락하세요?" 혹시나 유쾌한 호통이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까불었는데, 그냥 싱긋이 웃으신다.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다는 것이 제대로 사는 거겠죠?" 사족을 붙이는 데는 그냥 "그래." 하신다.
10분 가량 더 있는 동안 말씀은 더 없었지만 내가 막 들어왔을 때보다는 기분이 훨씬 좋아 보이셨다. "이제 일하러 갈게요." 하고 일어서는데도 반가운 일이나 되는 것처럼 웃음 속에 보내주신다. 오늘은 뭣 좀 해드린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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