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진이 차를 타고 갔다. 자유로 병원에 계실 때는 집도 가깝고 학교도 가까워 자주 찾아뵙던 놈이 학교 일이 빡빡해지고 박사과정까지 겹치다 보니 요양원 옮기신 후로 처음 가 뵙는 것이다.
모처럼 느긋하게 경치를 구경하면서 가려니 나이를 스스로 느끼게 된다. 20년 전 대구에서 일할 때 더러 차 몰고 서울 올 때 이 구간 경치가 마음에 들어서 이쪽으로 즐겨 다녔는데, 이제 내가 운전하고 다니려면 길바닥에 몰두하느라 그때처럼 경치를 즐기지 못한다.
3시쯤 도착하니 방에 누워 계셨다. 창 쪽에 머리를 두고 계셔서 고개를 들지 않고도 들어오는 사람을 알아보실 수 있다. 둘이 나란히 들어갔는데, 영진이는 힐끗 봐 치우고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떠올리신다. 늘 그렇듯 그냥 편안하고 흐뭇한 웃음이다.
손을 내밀어 내 손을 한 차례 어루만진 뒤에야 영진이에게 다시 눈길을 돌리며 "이건 누구야?" 지나치듯 물으신다. 영진이 인상이 편안하게 느껴지신 모양이다.
"영진이 모르세요? 어머니 손자."
"우리 어머니 손자라구? 그럼 누구 아들인가?"
"어머니의 어머니 손자가 아니고, 제 어머니의 손자예요."
"네 어머니는 난데... 그럼 내 손자? 얘가 내 손자란 말이야?"
이제야 본인이 나선다. "네, 할머니. 제가 할머니 손자 영진이예요."
아직도 미심쩍으시다. "아니, 내 손자라니... 애비가 있을 게 아냐? 그게 누구야?"
나를 가리키며 빈틈없이 설명드리려 애쓴다. "할머니의 아드님인 이분이 제 아버지예요."
몇 초의 공백... 이제 꽂히신다. 옥타브가 올라간다. "그럼... 네가 내 손자로구나! 내 손자가 왔어!" 완전히 그리로 쏠리신다. "어디 좀 보자. 네가... 영진이?"
영진이가 모시고 앉아 있는 동안 복도에 나와 치료사 김 선생에게 어머니 몸 상태에 대한 설명을 한참 듣고 돌아왔을 때, 아주 새로운 말씀을 하셨다.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영진이에게 "네 아버지가 참 착한 사람이야." 하신 뒤에 놀라운 말씀이 나왔다. "그런데 참 나랑은 멀었어." 거듭 강조하신다. "참 머나먼 모자간이었어."
그러더니 마침 생각나셨다는 듯이 내게 마구 따지신다. "야! 왜 그랬는지 설명 좀 해봐라. 너랑 나랑 왜 그렇게 멀었냐?" 그러다가 아주 막말까지 나오신다. "너 나한테 뭐가 그렇게 불만이었냐? 내가 오입이라도 했단 말이냐?" 오입?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지난 봄 낸 <페리스코프> 머리말에서 어머니와 근년 지내온 곡절이 내 일하는 자세의 변화와 겹쳐지는 느낌을 적은 것이 누설되었나? 요즘 정신이 아주 좋아지시고 간병인 신 여사가 틈틈이 <불광> 읽어드리는 줄은 알고 있는데, 그 책까지 읽어드렸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불화의 시절' 말씀을 꺼내신 것은 영진이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몇 달 전까지는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늘 보였다. 그런데 근래에는 많은 생각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가 그 때 그 때 골라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나랑 편안하지 못하던 시절 생각이 어머니 마음에 떠올라 있었다. 그러다가 영진이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에 관한 분석적 시각이 발동하신 것 같다.
그 참, 그 시비를 지금 와서 또 되풀이할 수도 없고... 겨우 얼렁뚱땅 수습해서 반야심경 외우시게 한 다음 바깥바람 쏘이시지 않겠냐고 권했더니 뜻밖에 거절하신다. 피곤해서 쉬고 싶으시다고.
점심식사 후 내내 앉아 계시다가 우리 오기 조금 전에 누우셨다고 신 여사가 설명해 준다. 그러면 잠깐 쉬시라고, 그 동안 우리는 산보 좀 하고 오겠다고 말씀드리니 선선히 허락하신다. 부자간에 정원을 산책했다. 넉넉하고 잘 다듬어진 정원에 영진이는 탄복해 마지않는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마침 나뭇가지 다듬고 있던 이사장님 부부 쉬는 시간이 맞아 함께 차 한 잔을 했다. 영진이는 한 차례 방문으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주 깊이 있게 파악하는 기회가 되었다.
어머니께 돌아가니 네 시가 넘어 있었다. 아직도 바깥바람 생각이 별로인 듯하다가 신 여사도 함께 권해드리니까 승낙하고 휠체어에 앉히도록 몸을 맡기신다. 그런데 막상 테라스에 나가니까 너무 좋아하신다. 햇볕과 바람 속에 앉아서는 표정에서도 말씨에서도 충족감이 저절로 넘쳐난다. 행복감을 적극적으로 느끼시는 것 같다.
지난 달 <불광>에 올린 글에서 어머니의 신체 활동을 늘릴 가능성에 대한 생각 적은 것을 보고 원장님과 치료사 김 선생이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이번 방문길에는 김 선생과 한 번 의논해 보고 싶었는데, 김 선생이 나를 보자 먼저 얘기를 꺼낸다. 역시 근래 어머니의 회복은 놀라운 수준이다. 진지도 거의 손수 떠 잡수신다고 한다. 근육의 힘이 많이 느셔서 기저귀 대신 화장실 이용을 권해드릴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화장실 수발까지 해드리려면 근무자들 수고가 더 늘어날 텐데... 그러나 간병인 신 여사도 치료사 김 선생도 어머니 회복을 진심으로 기뻐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마음이 하나의 가식 없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 요양원의 운영 기준이 양심적이어서 그럴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주변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는 소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계시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김 선생이 얘기를 마치고 일어나다가 불쑥 생각난 듯 웃으며 한 가지 얘기를 해줬다. 신 여사가 얼마 전부터 어머니 목욕날을 꼭 피해서 휴가를 간다고. 다른 분이 목욕시켜 드리면 "쌍년" 소리를 많이 하신다고. 그 욕을 기분 나쁘게 듣는 사람도 없지만, 신 여사는 어머니가 욕을 하신다는 게 마음 아프다고 휴가 날짜를 조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까 잠깐 인용했지만, 손자 듣는 앞에서 아들에게 "오입" 얘기를 태연하게 하는 것도 보통 경지가 아니시다. 아마 같이 지내는 분들에게도 그 정도 표현은 스스럼없이 하면서 지내시니까 우리 앞에서도 거침없이 나오겠지. 아주 어릴 때 이후 할머니를 못 보면서 큰 영진이, 돌아오는 길에 거듭거듭 감탄한다. "할머니... 기질이 참 대단하신 분이네요."
식탁 앞에 앉아 우리 작별 인사를 대범하게 받으시는 장면도 영진이에겐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자리에 앉혀 드리니까 옆의 할머니가 "이제 어서 가세요들." 하시기에 "어머니께서 숟갈은 드시는 걸 보고 가야죠." 했더니 숟가락을 집어 하늘높이 쳐들고 "나 숟갈 들었다. 가라!" 하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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