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를 전술무기(tactical weapons)로 사용하려는 시도도 약간 있었지만, 핵무기는 원래 전략무기(strategic weapons)의 성격을 가진 것이다. 전술무기란 전술적 목표를 위해 전술적 판단에 따라 사용되는 무기다. 전략무기는 사용이 아니라 존재를 통해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며, 실제 사용에 이르게 될 경우 그 자체가 전략적 실패를 뜻하는 것이다.


재래식 화학폭탄도 전략무기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조선 전기에 남부 해안 지역과 북부 국경 지역에 배치된 대포는 전략무기의 기능을 발휘했다. 화약 기술을 가지지 못한 여진인과 왜인의 도발을 그 존재만으로 억제한 것이다. 실제로 대포가 사용된 일은 거의 없고, 제조된 화약은 거의 모두가 사용기간을 넘겨 폐기되었다. <삼국지연의>에 제갈공명이 남만 정벌 중 한 전투에서 화약을 대량으로 쓴 후 이를 깊이 자책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화약을 전략무기로 본 동아시아인들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차별적이고 큰 파괴력을 가진 대량살상무기가 전술무기로 널리 채택되는 추세는 근대 유럽에서 일어난 것이다. 국가주의의 심화로 인해 비전투원까지도 적국 국민은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전투방법이 극한적으로 잔인해지고 전쟁에 따르는 잔혹행위가 늘어났다. 적십자운동을 비롯한 인도주의 움직임은 이 추세에 대한 미약한 반발이었다.


독일 국민 전체를 처벌 대상으로 여긴 루즈벨트의 태도를 그저께 설명했는데, ‘적국’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 태도가 비쳐진 것이다. 유럽의 경제-사회 체제를 좀먹는 유태인에 대한 나치의 증오심과 세계 평화를 해친 독일인에 대한 루즈벨트의 증오심은 같은 틀이다. 승전국들의 이런 인식 틀로 인해 패전 후 많은 독일인들이 전에 자기들이 저질렀던 것과 큰 차이 없는 참상을 겪었다.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결정도 같은 인식 틀 위에서 이뤄졌다. 핵폭탄의 사용에는 종래 전쟁의 잔인성과 다른 차원의 참혹성이 있다. 일본의 잔인성이 극한으로 나타난 1937년 12월의 남경대학살과 비교해 보자. 남경대학살과 원폭 투하의 피해 규모는 서로 비교할 만한 범위의 것이다. 그런데 양적으로는 비슷해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 원폭 피해자들은 살려달라고 빌어볼 상대도 없이, 자기 삶이 끝나고 있다는 인식도 없이 죽어갔다. 남경대학살의 잔인성이 인간성의 타락이라면 원폭의 참혹성은 인간성의 증발이었다.


이 차이가 1945년 8월 이후의 전 인류를 원폭 피해자로 만들었다. 직접 피해자는 당시 두 도시에 있던 수십만 명이었지만, 전 인류가 핵폭탄의 그림자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핵폭탄이 실제로 사용되지 않고 전략무기로서의 기능만 발휘했다면 그 존재가 인류 평화에 기여하는 면이 더 컸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번 사용해 본 경험 때문에 핵폭탄은 전술무기로서의 위험성을 가지게 되었고, 핵무기를 보유한 초강국의 오만과 횡포가 냉전시대의 억압구조를 심화시키게 되었다.


포츠담 선언 전에 일본이 제출한 ‘평화’조건에는 ‘항복’의 뜻이 분명한 것으로 나는 본다. 본토 점령의 반대 등 연합국 진영의 요구조건과의 차이는 협상을 통해 처리할 수 있는 범위로 보인다. 원폭 투하 결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원폭을 투하하지 않았을 경우 전쟁이 오래 계속되고 원폭 투하보다 더 큰 피해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그와 반대로 보는 내 의견과 똑같이 입증도 반증도 불가능한 ‘주장’일 뿐이다. 설령 전쟁이 오래갈 것을 걱정한다 하더라도 원자폭탄에서 해결의 길을 찾는 것은 나치의 ‘궁극적 해법(die Endlosung <'o'에 움라우트>, final solution)’과 같은 차원의 사고방식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바란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면, 그냥 체념해 버릴 것이 아니라 핵무기가 전술무기 아닌 전략무기로만 존재하기를 바라고 그를 위해 노력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화를 파괴하는 위협의 수단이 아니라 위협을 억지함으로써 평화를 지키고 키우는 수단이 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북핵 문제를 생각해 보자. 북한이 전략무기로서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적 태도 때문에 그런 필요를 느낀다고 주장한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악의 축” 운운 하는 것이나 북한이 개혁개방의 의지를 보이는데도 봉쇄정책을 거두지 않는 것을 보면 타당성이 느껴지는 주장이다.


“악의 축.”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는 정말 무서운 말이다.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극악한 전쟁범죄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담았던 ‘axis’라는 말을 뒤집어씌우는 데 어떤 뜻이 담길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부시의 이 말에 대해 오바마가 북한에게 사과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이 전략무기로 존재만 하고 전술무기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사실, 북한도 전략무기로서 억지력을 바라는 것이지, 이것을 진짜 사용할 생각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폐쇄된 체제라 하더라도 핵무기의 실제 사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모를 수는 없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류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미국의 핵무기 감축이다. 철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미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전략무기로서 적정 수준을 너무 많이 넘어서 있다. 그리고 미국 극우파는 핵무기의 전술적 사용 주장을 그치지 않아 왔다. 엄청난 예산과 외교적 노력을 쏟아 부어 온 미사일디펜스(MD)도 핵무기의 전술무기화를 뒷받침하는 사업이다. 미국이 핵무기를 전술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분명히 한다면 북한 같은 나라의 핵무기 보유 필요성이 해소될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