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29. 23:15



어제는 이정희 선생님과 김호순 선생님을 보셔 가기로 여러 날 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었다. 강인숙 선생님 생신을 하루 늦게라도 세 분이 축하하는 점심 뒤에 어머니께 가시겠다고 나까지 점심 자리에 부르셨다. 마침 한국 다니어 온 예화도 양할머님 인사드리러 가고 싶다 해서 선생님들께 양해를 얻고 같이 갔다.


세 분 선생님은 십여 년 동안 평창동에서 서로 걸어다닐 만한 거리에 살며 교분을 다진 사이다. 어머니도 87년 퇴직 후 1년 남짓 그 동네에서 지내신 것이 그 분들 의지하는 마음에서였다. 포천 마명리의 형 집으로 가시기 전의 중간 단계였던 셈이다. 출근할 필요 없는 생활을 서울에서 지내실 취향이 아니신데, 그래도 익숙했던 서울 생활의 마무리를 하기에 북한산 등산로에 바로 접어들 수 있는 평창동이 괜찮은 곳이었다.


강 선생님만이 아직도 평창동에서 사신다. 부군 이어녕 선생님과 함께 운영하는 영인문학관 일이 여간 많지 않으신 것 같다.


김 선생님은 오래 지내시던 평창동 아담한 집을 떠나 ‘경희궁의 아침’인가? 편리한 거처로 옮기신 지 몇 해 된다. ‘내 집’ 가꾸며 사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학교 그만두고 서울 올라와 제주도 가기 전까지 그 댁 지하실에서 지내며 박사논문 쓰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되어 가는구나. 평창동 떠나실 무렵부터 운전도 그만두신 것 같다.


이 선생님은 정말 도깨비시다. 나도 도깨비 소리 꽤 들으며 살지만, 이 선생님 앞에서는 작은 도깨비다. 어머니보다 한 살 아래인 90세이신데, 아직도 세상을 치열하게 사신다. 80년 신군부 때 어디 잡혀가서 “두 사람 조직도 못해 여태 독신으로 살아온 사람한테 무슨 조직 활동 같은 것 뒤집어씌울 생각 말라”고 큰소리치신 이야기를 말로 글로 몇 번 풀다보니, “두 사람 조직도 못한 분”이라고 하면 주변에서 대개 알아듣는다.


평창동 시절이 이 선생님께는 ‘도깨비 전성시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네 꼭대기 해원사던가? 절 옆에, 으리으리한 저택들보다 더 넓은 대지인데, 축대 빼놓고는 완전 자연 상태의 솔밭 가운데 열 평가량 오두막집이 이 선생님 거처였다. 그 외진 곳에서 “나는 자연이 좋아!” 문명을 냉소하며 지내실 때 얼마나 뽀다구 나셨는지! 김 선생님 댁에서 지낼 때, 산책길에 들르면 대한민국에서 잘 나간다는 이들이 그 외진 곳까지 찾아온 것을 마주칠 때가 많았다. 그분들도 이 선생님의 뽀다구에 나처럼 뿅 간 기색이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 양평동의 오피스텔로 옮기신 후 문명 누리시는 것을 보면서는 한쪽으로 마음이 놓이면서도 약간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낀다. 어제 들으니 에어컨까지 즐기며 사신단다.


도깨비니 뭐니 하며 노인께 무례한 언사를 늘어놓는 것을 보고 놀라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선생님은 도무지 예의 차릴 상대가 아니시다. 사람들 대하실 때(우리 어머니 포함해서) 당신께서 워낙 무례하시다. 남이 당신께 예의 차리는 것도 못 견뎌 하신다. 그런데 근년에 내가 현 정권 까는 거 보고 너무너무 예뻐하신다. 말씀하시는 데 내가 가로막는 것은 많이 노여워하시지 않을 정도다. 모시고 있을 때 말씀 가로막을 필요를 수시로 느낀다. 함께 있는 다른 분들을 언어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같은 편인 나까지 괴로울 때가 많은 것을 보면 언어폭력 이전에 음성폭력이시다.)


수십 년간 자별하게 지내오신 분들이 요즘 정치상황 때문에 힘들어들 하신다. 이 선생님이 김대중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사실은 오래된 것인데, 친구 분들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표현이 격해지신 것은 근년의 정치 상황 탓이 큰 것 같다. 김 선생님도 강 선생님도 친여 성향이기는 하지만 그리 편협한 분들이 아니고, 이 선생님의 정치 성향을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현 정권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다년간 한나라당을 지지해 온 분들이 너무들 힘들어 하신다.


어제는 어머니를 많이 관찰하지 못했다. 3시 반경 도착해 5시에 식탁에 앉혀 드리고 떠날 때까지 현관 앞 테라스에 모시고 앉았었는데, 두 분 선생님과 회포를 푸시게 하고 나는 운영을 맡고 있는 이사장님 작은 아드님과 탄원서 의논을 많이 했다.


지난 주 원장님이 메일로 도움을 청했었다. 노인보험공단의 감사에서 문제점이 지적되어 매우 심각한 수준의 벌칙을 통고받았다는 것이다. 입원자 보호자 중 내가 이런저런 사정을 잘 아는 편이니 보호자 입장에서 탄원서를 써줄 수 없겠느냐고 청했다. 지적된 문제는 간병인으로 무자격자를 고용한 사실이라고 한다.


그 문제라면 운영자들의 부탁이 아니라도 기회가 있다면 보험공단에 의견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기꺼이 탄원서 초안을 만들어 보내놓았다가 어제 만나 조정할 내용을 의논했다.


장기요양보험 적용을 받는 요양원에서는 입원자 몇 명당 한 명씩 자격증 가진 간병인을 고용하게 되어 있다. 당연한 기준이다. 그러나 실제 운용에 있어서 현실 조건에 더 잘 맞출 길이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해 왔다. 병원에 계신 2년 동안 거의 매일 들르면서 간병인 사정에 대해서는 내가 꽤 식견을 쌓아 왔다.


병원의 간병인은 거의 다 중국 국적 조선족으로, 병원에 상주하는 분들이었다. 병원 측은 간병인의 상주가 환자들 관리를 위해 여러 모로 좋고, 간병인들은 숙식 문제가 해결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환자들도 익숙한 간병인이 계속해서 돌봐주니 좋다. 이렇게 모두에게 해피한 일이 보험공단의 기준에 따를 때는 힘들게 된다.


먼저 자격증 문제. 간병인은 의료직이 아니다. 능력보다 품성과 태도가 중요한 역할이다. 제한된 기간 동안 국내에 체류하는 조선족 중에 간병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 달씩 시간을 내고 돈 들여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은 없다. 집 근처의 간병인 양성소를 찾아가 알아본 일이 있는데, 별 교육 내용이 없다. 간병인 교육은 민간 사업자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보험공단이나 보건소 같은 공공기관에서 하루 이틀 정도 이론교육을 받고 보름 정도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연수를 받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둘째, 고용 인원 문제에서 상주 간병인의 고용을 1.5인으로 인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월 200시간인가 얼마인가 이상 근무하는 사람을 1인 고용으로 인정해 준다고 하는데, 시설에 상주하는 간병인은 휴식시간이라도 입원자들 가까이 있다는 사실로 해서 실질적인 효과를 일으킨다. 하루 8시간의 본격 근무 외에 8시간의 ‘준 근무’를 인정해 준다면 간병인, 시설, 입원자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간병인 전원이 상주할 필요는 없다. 입원자들 중에는 생활의 일부에만 간병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는 정해진 시간 동안 도움을 드려도 된다. 그러나 전면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은 간병인들이 시간 맞춰 교대하며 돌봐드리는 것보다 정해진 간병인이 내내 가까이 있는 편이 훨씬 낫다. 가족과 같은 전면적 인간관계가 바람직한 것이다.


간병인 중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출퇴근을 바란다. 한편 일하러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나, 종교관, 또는 인생관에 따라 별도의 생활 없이 간병인 일에 몰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가급적 우대받고 또한 잘 활용되는 것이 ‘복지’의 효과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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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