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님이 돌베개를 떠난다. 편집자에게 이토록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도움을 지난 3년간 받아 왔다. 어디서든 출판 일을 계속할 것이니 또 도움 받을 일도 있을 수 있지만, 돌베개라는 틀 안에서 함께 일하던 단계를 넘어서면서 한 차례 그 동안의 고마운 일들을 돌아보게 된다.
희진님 입장에서도 필자에게 능동적인 도움을 주며 역량을 발휘하는 데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참 좋은 인연이다. 어제 저녁 대접이라도 하겠다고 청해 가까운 몇 분과 함께 앉아 있다 보니 처음 만나던 때 상황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한철희 사장과도 여러 해 안 보고 지내던 중 어느 날 돌베개에서 낸 책의 서평을 부탁받았는데,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평을 써내고는 미안한 마음에 한 번 들르게 되었던가? 3년 전 일이 벌써 가물가물하니 큰일이다. 맞다. 작업 중이던 <밖에서 본 한국사> 출판을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하러 갔었다. 그때 희진님을 소개받았다.
희진님이 필자로서 내 잠재적 가치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이후 일이 잘 풀려나갈 출발점이 되었다. 지금에 비해 3년 전에는 내 글쓰기의 방향과 스타일이 많이 협소했다. 그런데도 희진님은 내가 가진 얼마간의 장점을 중시해 준 것이다. 지금까지 글쓰기의 폭을 꽤 넓혀 오는 데 그분의 도움이 컸던 것을 무엇보다 고맙게 생각한다.
<밖에서 본 한국사>를 그만큼 안정된 틀로 짜내는 과정에서 필자와 편집자 사이의 거의 절대적인 신뢰관계가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그 책의 의미에 대해 편집자가 필자에 못지 않은 식견과 이해심을 가졌다고 필자가 믿었기에 편집자의 능동적인 의견을 청할 수 있었고, 편집자는 필자가 자기 의견을 충분히 존중한다고 믿었기에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뉴라이트 비판>은 기획부터 그 신뢰관계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나로서는 그런 쪽으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과연 책의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나 혼자서는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희진님은 내가 가진 밑천을 잘 풀어내면 좋은 성과를 바라볼 수 있다고 격려해 주고, 내게 아쉬운 점을 여러 모로 보완해 주었기 때문에 그 작업을 해낼 수 있었다.
2008년에 두 권을 함께 잘 만들어내고, 2009년 중에 생산적인 작업을 바로 이어나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망국 100년> 구상을 시작하고 있다가 노 대통령 서거 사태로 내가 꼭지가 돌아버리는 바람에 <역사 속의 참여정부>를 해야겠다고 날뛰면서 시간을 다소 허비한 셈이다. 아주 허비한 건 아니다. 가을 들어 <망국 100년>으로 돌아올 때는 내 시야가 반년 전과 꽤 달라져 있었는데, 글쓰기의 폭이 크게 늘어난 셈이니까.
<망국 100년> 마무리를 희진님이 못하고 떠나는 것이 유감이다. 다음 사업으로 너무 급박하게 넘어가지 않고 여유가 좀 있다면 모니터링이라도 해주리라 믿지만 형편이 어찌 돌아갈지는 두고 봐야 알 일. 희진님도 아쉬운 마음을 웃음을 곁들여 표한다. "사실, 이 책을 제가 가지고 나갈 수는 없을까 욕심도 얼핏 들었는데, 그랬다간 한 사장님 얼굴 보기가 힘들게 될까봐 참습니다." 정말 너무 속을 털어놓고 지내다 보니까 못하는 소리가 없다. 나도 희진님이 어디로든 들고 가서 계속해 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세상 일을 마음대로만 할 수 없다는 정도는 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는 거지.
돌베개에서는 태권님이 함께 나왔고, 서해문집의 선정님과 김일신 부장이 나와 줬다. 태권님은 회사 밖에서 어울리는 게 처음인데, 함께 있는 사람들을 참 편안하게 해준다. 희진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대비되는 느낌 때문에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뭐 이제부터 쌓아갈 수 있는 대로 쌓아가야지.
희진님이 맡고 있던 '필자 관리'를 넘겨받을 사람이 태권님과 선정님인 셈이다. 선정님과 희진님 사이에도 어떤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7,8년 전 어느 출판사에 희진님이 입사할 바로 그 때 퇴사하는 선정님의 뒤통수를 봤다는 것. 그 후로 어울릴 일 없이 지내온 모양인데, 모처럼 마주친 자리에서 피차 기분좋고 편안하게 어울린다. 김기협이라는 필자를 두 사람 다 좋아하기 때문에 같은 동호인으로서 의기투합하는 것인지? ^^
선정님 다시 마주친 지가 이제 두 달쯤 됐나? 볼수록 참 신통한 사람인데, 무엇보다 '인연'을 잘 살리는 사람이라는 점이 크게 보인다. 어제는 유연식 사장도 나와 줬고, 저녁 자리에 앉다 보니 이상각 선생과 유 사장, 선정님과 내가 한 쪽으로 몰려 앉았다. 옛날 얘기 하다가 그 생각이 나서 "이쪽은 아이필드 동창회구만." 소리가 나왔다. 우일문 선생 못 온 것 하나가 아쉬웠다. 한 7년쯤 전 일인가? 유 사장의 아이필드에서 우 선생과 선정님이 일하고 있을 때 이 선생과 나는 늘 곁에서 놀고 있었지. 그때도 그만하면 중견 편집인이었는데, 그 사무실에서는 제일 연하의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게다가 체수도 아담해서) '꼬맹이'로만 인식하고 지냈었다. 그런데 지금 내 책 낼 길을 저렇게 넓혀주고 있으니, 정말 고마운 인연이다.
희진님이 떠난 뒤 돌베개에서 계속 책을 내게 될까? 내가 돌베개에서 책을 내는 것이 무엇보다 내가 필요로 하는 편집인 때문이라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그 점을 강조해서 한 이야기고, 브랜드 파워도 무시할 것이 아니다. 이번 <망국 100년>까지 세 권을 돌베개에서 내게 된 인연을 (<공자 평전>까지 네 권이구나.) 희진님이 없더라도 잘 지켜나가고 싶다. 희진님 후임자는 물론, 태권님과도 아직 일을 별로 같이 해보지 않았는데, 잘 풀어나가도록 열심히 해 봐야지. 3년 전에 비해 편집자의 도움에 대한 내 필요는 많이 줄어든 셈이니까 웬만큼 풀어나갈 수 있을 것도 같다.
편집자의 도움을 3년 전에 비해 적게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내 말을 희진님이 들으면 콧방귀를 뀔 지도 모르겠다. "많이 크셨습니다~" 야지를 놓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 크기야 큰 거지. 고마워요, 희진님.
'사는 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자 평전> 역자 후기 (5) | 2010.06.17 |
---|---|
K 병장님! 돤~결! 김 이병입니다. (1) | 2010.06.07 |
<역사 앞에서> 원본의 나들이 (5) | 2010.04.28 |
4월 27일 산행 (5) | 2010.04.25 |
17일 한겨레 기사 유감 (3) | 2010.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