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8. 13:15
경기도박물관의 두 분 학예사가 다녀갔다. 6월 19일부터 8월 15일까지 임진각 내 경기평화센터에서 열릴 <6-25전쟁 60주년 특별전>에 아버지 일기를 전시하기 위해 대여하러 온 것이다. 중앙일보 정재숙 기자가 전화로 소개를 해주며 "좋은 전시회"라고 보장하기에 마음놓고 응한 것인데, 학예사들이 와서 설명해주는 것을 들으니 정말 좋은 전시회 같다. 6-25 기념사업이라면 그저 "반공"만 외치던 시절과는 격세지감이 든다. 이런 구성이라고 한다.
1부 : 끝나지 않은 전쟁
2부 : 이방인의 아리랑
3부 : 삶과 죽음의 기억, 피난일기
4부 : 철마는 달리고 싶다.
아버지 일기는 3부에 전시할 것이고, 1부에는 좋은 사진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2부에서 외국인 참전 장병들의 사연을 나타낸다는 것도 참 좋은 방향 같다.
잠깐 앉아 얘기하다가 한 차례 셋이 크게 웃은 것은 1994년인가? KBS에서 만들었던 다큐 때문이었다. 아버지 일기를 바탕으로 만든 다큐니까 그것도 필름을 구해서 전시하려 한다고 하기에 "그 다큐는 나도 다시 보고 싶지 않고, 사람들도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니까 어리둥절해서 왜 그러냐고. "유인촌이 주연이었거든요." 했더니 그 자리에서 뒤집어진다. 두 분 다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기색이다.
연락을 받은 뒤 생각한 일 한 가지를 얘기했다. 이 일기에 보존이나 전시의 가치가 있다고 경기도박물관이든 어느 기관이든 인정한다면 기증하고 싶다고. 책으로 내는 데는 일기에 지우고 고쳐 쓴 곳이라든가 미묘한 내용을 다 담지 못한 한계가 있다. 그런 내용을 다 확인하고 싶은 연구자가 있을 경우 유족이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보다 적절한 기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유물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면 개인보다 사회에 귀속시키는 편이 옳을 것이다.
두 분 중 선임자인 박 선생이 의견을 얘기해 주었다. 경기도박물관을 선택하신다면 반갑게 받아들일 것을 확신한다고. 그러나 더 적절한 기관이 있을지 생각해 보고 알아보겠다고. 진짜 모범답안이다.
최근 낸 책 머리말에서도 밝혔지만, 그 일기는 내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나름대로 크고작은 영향을 이 일기로부터 받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그 원본이 개인 서재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보다 공공 관리를 받는 편이 쓰신 분의 뜻에 더 맞을 것 같다.
(이 글 읽는 분들 중에 어느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일기 원본을 관리하기에 좋은 곳일지 의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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