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30. 13:46

 

818일 개이고 더웁다.

 

 

아침에 早坂 씨가 찾아와서 간다는 하직인사 겸 저금을 내어달라는 말을 하러 왔었다. 간밤엔 내가 병원에 간 동안에 坂田 씨가 두 번이나 찾아왔다고 하고 길에서 竹內 씨와 小田 씨 부인이 만나서 역시 같은 부탁이 있었다.

 

그들이 우리 땅에 와서 잘했건 못했건 이제 고국으로 쫓겨가는 통에 여비 한푼 없다고 하니 매우 난처한 일이었다. 더욱이 평소에 그들의 여유금을 전부 받아오던 조합으로서는 인정으로 보아서 매우 미안한 점이 있으므로 한 세대에 2백원씩 내어주기로 하였다.

 

早坂 씨는 풍문에 아침저녁으로 운다더니 부석부석하니 충혈된 눈으로 맥이 없고 간밤에도 군중이 돌질을 해서 유리창경을 부쉈고 아이는 벽장 속에 숨겨두었노라고 하기 지방의 한 사람으로서 유감인 뜻을 말하고 앞으로도 이웃나라 사람으로서 의좋게 지내자고 삭막한 회견을 마치었다.

 

오후엔 新里 泉南의 풍물이 왔으므로 조합 일동이 정문에 나서서 내가 선창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삼창하였다. 마을사람들도 매우 좋아서 화창하였다. 그리고나서 이내 행진을 계속하는 것 같더니 未幾에 수선해지므로 내다보니 含怨한 면서기를 찾아서 그를 추적하느라고 야단이었다. 柳在烘 군이 우연히 밖에 나갔다가 면서기로 오인되어서 꼼짝없이 포위를 당했는데 그 사람들 중에 식별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니다. 조합서기다.” 하고 외쳐서 겨우 봉변을 면하고 당황히 사무실로 달려왔는데 마을사람들도 이 광경을 보고 새삼스레 조합을 칭송하였다. 이 통에 면서기는 모두 도망해 버렸다.

 

모두들 이름을 還姓名했으나 우선 서로 만났을 때 무어라 인사했으면 좋을까,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하는 것이 문제였다. 기쁘고 어려운 한 가지 문제다. 아침마다 오하이요고자이마스하던 사람들도 그저 고개만 꾸뻑할 뿐.

 

면서기 이아무개가 어제밤에 硯朴서 맞았다는 소문. 그는 저번 식량조사 때 남의 집 죽 쑤는 솥뚜껑을 열고 막대를 죽솥에 넣어 흔들면서 죽이 너무 걸찍하다고 야단했다고 한다. 저희들은 술 빚고 떡 해서 아이 돌잔치를 야단스럽게 했으면서.

 

학교에 선생 세 사람이 몹시 맞았다는 소문. 청년훈련소생이 배가 고파서 간혹 결석을 하면 그 이튿날은 몹시 매를 때리기 때문에 집에 가면 앓아눕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그들이다.

 

용산의 일본 군대가 일단 놓았던 무기를 다시 잡고 또 경원선을 폭파했기 때문에 김일성 군의 경성 입성이 늦어진다는 뉴스를 듣고 직원들 중에 다소 危懼의 념을 품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므로 세계 대세는 이미 결정되었는데 일본의 현지군으로서 망동하는 일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 평화 회복의 詔書背逆함이고 따라서 국가의 자멸을 초래하는 愚擧이니 개의할 것 없다고 일러주었다.

 

밤에는 백운면장이 신변의 위험을 느껴서 자정 가까이 도망해 와서 자고 갔다.

 

'해방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 8. 20  (2) 2024.11.03
1945. 8. 19  (0) 2024.11.01
1945. 8. 17  (0) 2024.10.27
1945. 8. 16  (3) 2024.10.26
연구서에서 교양서로 넘어왔으면... / 정병준 <1945년 해방 직후사> 리뷰  (1) 2023.12.21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