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6. 20:12

며칠 전 목포 사는 형님을 찾아갔을 때 "이건 네가 처리할 일 같다." 하면서 두툼한 일기장 하나를 건네주더군요. 1945년 8월 16일부터 11월 29일까지 아버지 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1989년에 어머니께서 아버지 일기장을 넘겨주셔서 1993년 <역사 앞에서>로 출간하게 되었는데, 그 일기는 1945년 11월 30일자로 시작했습니다. 새 일기장이에 11월 30일자부터 적혀 있었죠. 그래서 그 전부터 적어 오던 일기의 앞부분이 일실된 것인가보다, 짐작했습니다. 간략하게 뜨문뜨문 적던 일기가 1950년 6월 25일자부터 치밀해진 것에 비춰보면, 아마 1945년 8월 15일부터 치밀한 기록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짐작이 가고요.

 

그 짐작이 대충 맞았습니다. 새로 얻은 일기를 한 차례 훑어봐도, 어머니가 일부러 빼놓을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절로 거처를 옮기실 무렵이라 실수로 빠트리신 것을 형님이 보관해 온 어머니 유품 중에서 찾아낸 것이겠죠.

 

출간된 일기는 대부분 전쟁 상황 속에 적으신 것인데, 이번에 얻은 일기는 해방 직후의 백여 일간에 적은 것입니다.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많고, '해방'의 의미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어제 집에 돌아와 창비에 알렸습니다. 이 일기를 넣어 증보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쟁 중심의 기존 판본에 해방 직후의 일기를 합친다면 <역사 앞에서> 제목의 의미가 더 잘 뒷받침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 사이에 몇 해 동안 "해방일기" 작업을 했는데, 이제 진짜 "해방일기"를 모시려 합니다. 정리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8월 16일자부터 시작합니다.

 

 

 

816일 개이고 더웁다.

 

아침에 부면장 曺必煥 씨가 찾아와서 일본의 항복한 사실을 전하고 앞으로의 지도를 요청한 바 있었으나 나는 어떠한 세상이 오건 한낱 학구로서 여생을 보낼 작정이므로 주경야독함에는 雨順風調만이 염원이고 세상사는 나의 아랑곳할 바 아니라고 말하였다.

 

기연미연했더니 오전 중에 御廚 씨 부인이 달려와서 예금 전액을 내어달라고 애걸복걸함을 보고 비로소 적확한 사실임을 알았다. 서기를 제천 보냈더니 돌아와서 아이들처럼 좋아하고 올 때 주재소에서 서류 불사르는 걸 보았다고 한다.

 

오늘부터 매일 숙직하도록 말하고 조합장에게 부탁해서 쌀 한 가마니를 얻었다.

 

시간 파한 후에 여늬때처럼 소채 씨를 뿌리노라니 안해는 참으로 허릴없는 백성이라고 익살을 피웠건만 나는 내일 이곳을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뿌릴 씨는 뿌리고야 말리라고 생각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

 

저녁때 保禮徐 朴 양인이 찾아와서 대단히 좋아하고 건국위원장에 안재홍 씨, 대통령에 김구, 총리대신에 이승만, 외무대신에 여운형, 육군대신에 김일성 제씨가 취임하기로 결정된 라디오가 들어왔다는 말을 전하였다. 우리들은 굳은 악수를 하고 이 기쁜 결말이 아주 적당한 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축복하였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日政 하의 고초를 뼈에 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그리고도 우리 삼천리가 戰場化해서 한 겨레끼리 自相踐踏하기에 이를 직전에 이처럼 좋은 해결이 지어졌음으로써이다. 전부터 안해와도 이러기를 衷心念願했던 바이다.

 

경성일보에 소위 大詔가 발표되었었다. 비통한 글이었다. 일본 신민 된 자 이를 읽고 어찌 통곡치 않을 수 있으랴.

 

저녁에 면에서 긴급회의가 있다기에 가보았다. 역시 잘난 사람의 객쩍은 노릇. 아직도 지극히 충성된 신민인 척하는 그가 오늘날은 어떠한 태도를 지닐까 생각하니 한심스럽기도 하다. 이 점은 내 자신 오십보백보일 터이지마는.

 

朴齊勳 씨가 와서 전에 조선사람 관리나부랭이의 유난히 각박하던 일을 말하고 앞날에 대해서 약간의 杞憂를 품는 듯하기에 그네들은 지위와 생활의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無恒心이므로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단 말을 일러주었다.

 

병중의 안해가 너무 기뻐서 떡과 술 준비를 하느라고 밤늦게까지 애쓰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불안스럽기도 하다.

 

밤에는 자리에 들어도 한동안 잠들지 않았다. 내 마음 흥분했음일까.

 

오늘 기봉이의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414(구력 삼월삼진날)로부터 125일째. 주먹을 빨다 지치면 뒤치려고 몸을 들먹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고 궁둥이의 각도만 엄청나게 돌아간다. 이즈음은 통혀 우는 일이 없으니 그 어머니의 지성에 말미암음이겠지만 또한 기봉이가 순하디 순한 때문이리라.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