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공자가 본 한국 : 인간적인 '聖人'을 기억하며

기사입력 오전 9:03:54

  <공자 평전>이란 제목으로 내려는 책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원서는 안핑 친(Annping Chin)의 The Authentic Confucius(2007)입니다.

안핑 친은 <천안문>,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등의 책으로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조너선 스펜스의 부인으로 부부가 함께 쓴 책이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김희교 옮김, 북폴리오 펴냄)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 문명의 중요한 한 축이었던 공자를 밖에서 바라보는 대범함과 안에서 바라보는 치밀함이 얽힌 그의 시각은 중국계 미국인의 위치가 잘 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전의 주제를 현대인의 시각으로 본다는 데 이 책의 첫 번째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목대목 오늘 우리의 문제를 공자를 비롯한 중국 고대 사상가들이 우리 곁에서 함께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작업하다가 눈에 띄는 대목을 뽑아 내놓으며 제 의견을 약간씩 덧붙이겠습니다.

이 책의 번역은 인세 계약으로 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내놓는 데
판촉의 의미도 없지 않음을 자백합니다. 그래도 그런 의미보다는 독자 여러 분과 나누고 싶은 뜻이 훨씬 더 큰 것이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확한 읽기보다 쉬운 읽기를 위해 내용 일부를 줄인 것임을 밝힙니다. <필자>

인간적인 '聖人'을 기억하며

공자가 섭 지방에 있을 때 그곳 장관이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었다. "우리 동네에 직궁(곧은 활)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는데, 자기 아버지가 양을 훔쳤을 때 고발하고 나섰답니다." 공자는 이렇게 대꾸했다. "우리 동네에서 곧다고 하는 것은 이와 다릅니다. 아비는 아들을 감싸주고 아들은 아비를 감싸줍니다. 그 안에 곧음이 있습니다."

직궁이라는 자는 한 좀도둑의 아들일 뿐이었지만, 그의 행동은 중국 역사를 통해 가장 뜨거운 논쟁 주제의 하나를 불러냈다. 도덕철학가들과 역사가들을 그만큼 많이 끌어들인 주제는 아마 주공과 그 못된 형제들 사이의 관계 정도일 것이다. 주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개인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따지는 주제였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사회에 대한 의무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둘이 상치될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공자는 직궁이 곧은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다. "아비는 아들을 감싸주고 아들은 아비를 감싸주는" 것이 정상이고, 곧음은 그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18세기의 학자 정요전이 <통예록>에 실은 글 한 편이 내가 보기에는 이 관점의 가장 효과적인 표현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공변됨이 자리 잡으면 사사로움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이 말이 공변됨을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 사실, 공변됨과 별 관계가 없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가르침은 모든 것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모든 사람을 구별 없이 사랑하자는 것이다.

정요전은 오직 공익만을 위해 행동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의심을 품는다.

모든 사람이 사사로운 동기로 행동할 때 한 사람만이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진정 사사로운 동기가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성현들조차도 공변됨을 실천하기 어려워했는데 그것을 쉽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모든 사람이 어려워하는 것을 쉽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것일까? 자기가 가졌다고 우기는 것을 정말로 가진 것일까?

그런 사람은 공익의 옹호자로서 명성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사람도 아닐 것이라고 정요전은 말한다. 사람이라면 자기 가족을 남보다 더 사랑하고 자기 아들을 이웃집 아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에 앞뒤가 있다는 것은 원초적인 인간의 조건이며, 그것 때문에 성현들조차도 공변됨처럼 고상하고 중요한 미덕을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이 인간의 조건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공변되고 정당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일지라도 진정한 인격의 표출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정요전의 주장이다. "곧음이 그 속에 있다"는 공자의 말씀을 그는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다.

직궁이 아비를 고발한 뒤에 어떤 일을 겪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기원전 3세기의 기록 중에 서로 엇갈리는 적어도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한비자는 관리가 직궁을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임금에 대해서는 곧은 태도를 보였지만 아비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한비자는 이 관리의 결정을 무능하고 혼란스러운 것으로 그린다.

<여씨춘추>에 실린 또 하나의 기록에서는 직궁이 아비의 처형 직전에 아버지의 벌을 대신 받겠다고 나서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직궁을 처형하려 하는데 그가 고개를 들어 관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아비의 죄를 고발한 것은 정직한 일 아닙니까? 그리고 아비가 받을 처형을 대신 받겠다고 나선 것은 효성스러운 일 아닙니까? 정직하고 효성스러운 일을 한 것 때문에 제가 처형을 받는다면 이 나라에 처형을 면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여씨춘추>에 인용된 공자의 이 일에 대한 논평은 2000년 후의 정요전이 하고 싶었을 말이었다. "직궁이 '정직'하다고 하는 말이 괴이하구나. 그가 아비를 팔아 얻고자 한 것은 이름이 아니었는가?"

ⓒ프레시안(그림=손문상)

  지고의 인간상을 "성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기독교 문명이나 유교 문명이나 마찬가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같은 말을 쓰지만, 원래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 기독교의 "saint"를 동양 말로 옮길 때 동양에서 지고의 인간상이라는 뜻으로 쓰여 온 "성인"이란 말을 빌려 쓴 것일 뿐이다.

기독교의 성인은 초인적인 존재인 반면 유교의 성인은 인간적인 존재라는 차이점을 위 글에서 알아볼 수 있다. 기독교의 초월적 신앙과 유교의 세속적 합리성을 대비시켜 유교를 하나의 종교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많이 있어 왔거니와, 그 차이가 지고의 인간상 사이의 차이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유교를 종교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에 달린 일이겠지만 유교에 세속적 측면이 강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독교에도 세속적인 측면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느 종교나 초월적 측면과 세속적 측면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유교도 예법 방면에서는 초월적 특성을 상당히 보이지만, 윤리 방면에서 세속적 특성이 압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고의 인간상이란 윤리관의 초점이다. 기독교의 성인은 신자들에게 자기 곁에 서기 위해 현실을 초월할 것을 요구한다. 유교의 성인은 이와 달리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성인 자신도 인간적 번민에 시달리는 '사람'이며, 번민을 피하지 않고 치열하게 끌어안는 고통 속에서 도덕적 가치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자는 한국 인구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서양문명 안에 체화된 기독교적 관념과 태도가 19세기 이래 이 사회에 들어와 신자가 아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속에까지 자리 잡은 것이 적지 않다. "훌륭한 인간"을 어떤 사람으로 보느냐 하는 윤리적 지표로 "초월적 존재"를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게 된 것도 이런 변화의 하나일 것이다.

내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몇 해 전까지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데도 "초월적 존재"를 요구하는 마음이 작용했다. 나는 그의 모든 장점과 공로에도 불구하고 그의 "3김식" 행태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가 퇴임하고 난 뒤에야 남북관계 발전을 비롯한 그의 탁월한 업적을 음미하며 그가 현실을 끌어안은 자세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을 반가워한 것도 애초에는 "악을 미워하는" 부정적 심리 때문이었다. 김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치계를 모두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던 터에 구태를 벗어난 인물의 등장이 반가웠던 것이다.

반가운 만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시작해 현실 속에서 그의 번민을 관찰하게 되었다. 더러 이런저런 차원에서 그의 오류가 눈에 띠어도 내 마음이 부정적 심리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 편파적 태도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내 자세가 성숙해 온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김 대통령에 대한 관점도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내 마음이 너그러워진 것은 두 분 대통령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몇몇 인물들에 대해서도 전에는 "어떻게 저런 너절한 정당에 몸을 담을 수 있을까?" 하고 쳐다보기도 싫어하던 것을 차츰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아, 이런 상황에서 저런 역할을 맡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이 사회를 위해 참 고마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동양학을 전공하는 나 같은 사람까지도 50대를 지나면서야 유교 윤리관을 새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서양적, 기독교적 윤리관에 많이 물들어 있는지 절감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어느 쪽 윤리관이 우리 사회를 위해 더 좋은 것인가를 재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최소한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유교적 관점의 보완 필요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일단 든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