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3. 17:39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미국이 북한과 싸우려는 이유
기사입력 오전 11:45:18
당선자 확정을 지켜본 뒤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메일을 확인해 보니 파리에서 클레망텡 교수의 쪽지가 와 있다. "좋지(glad)?" 하는 제목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이 말에 조금 전 들은 당선자의 "그냥 참 좋습니다~" 하던 말이 떠올랐다. 누가 당선되기 바라는지 이야기한 적도 없는 것 같지만, 1980년대 초 한국에서 몇 해 지낸 적이 있는 그는 내가 얼마나 정치를 재미없어 하는지 안다. 한국 정치가 얼마나 재미없는 것인지도 안다. 그래서 모처럼 재미있는 방향이 열린 것을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것이다. 그곳 라디오에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 확정을 보도하며 당선자의 특징 두 가지를 소개했다고 한다. "체구가 작지만 선이 굵은 풍모"와 "미국 안 가 본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중 후자는 프랑스에서도 널리 통할 만한 자랑거리라고 덧붙였다. "반미(反美)면 또 어떠냐?" 이번 선거에서 정책 대결의 양상 중 한 중요한 방면을 상징한 말이다. 정몽준 씨의 이탈 핑계도 우방 미국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내세운 것이었다. 상식을 초월하는, 신앙 수준의 이런 절대적 신뢰가 그런 장면에서 핑계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데서 대한민국 반세기 역사가 이 우방관계에 어떻게 묶여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를 상식의 차원에 갖다놓는 것은 새 대통령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과제다. 그 길이 모처럼 열린 것을 멀리서 구경하는 프랑스 친구도 그래서 축하해 주는 것이다. 부시 정권의 초강경 패권주의가 이런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구경꾼은 더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구경꾼이야 재미있겠지만 당사자로서는 여러 모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외교-군사 등 대외관계만이 아니라 국내 경제 구조에서 지식층의 사고방식, 대중의 소비 패턴까지 깊이 미국화되어 있는 이 나라가 아닌가. 미국 중심 체제에서 실제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변화가 닥치면 일부 친미주의 세력이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이 상당한 고통과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우산 속에 영원히 안주할 수는 없다. 미국 자신이 한국을 자기네 우산 속에 길이길이 안주시킬 동기를 잃는 쪽으로 여건이 바뀌고 있다. 한국 방향, 동북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어떻게 바뀌는지 이해하고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의 새로운 위치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불안하더라도. 미국 우파는 중국을 21세기의 스파링 파트너로 점찍고 있다. 대결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패권주의 세력에게 '악의 축'으로 찍힌 조무래기 나라들은 성에 안 찬다. 한두 차례는 몰라도 체급이 너무 틀리는 상대만 계속 데리고 놀아서는 국민에게 흥행이 안 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돈 많이 들이는 사업인 미사일 방어망도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경제 경쟁의 측면에서는 중국이 과거 소련과 비교도 안 되게 벅찬 상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군사 분야로 경쟁의 주무대를 옮기는 것이 미국 우파의 바라는 바다. 군비 수준을 높여야 인적 자원보다 물적 자원의 중요성이 큰, 미국이 유리한 싸움터로 중국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평화를 위협하는 패권주의 정책이 정상적 상황에서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힘들다. 뭔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어줄 꼬투리가 필요하다. 과거 소련은 폐쇄된 체제로 이런 꼬투리를 오랫동안 잘 만들어줬다. 그런데 중국의 개방 추세로 인해 꼬투리 잡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지나면 미국 국민에게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슬람 지역을 둘러싼 테러 전쟁에 편승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서둘러 규정하고 북한의 개방을 최대한 방해하며 극한적 대립으로 북한을 몰아가는 부시 정권의 압박 정책도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오랜 맹방 북한을 집적거리며 중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는 것이다. 중국이 발끈해서 삿대질하고 나오면 당장 중국을 소련을 잇는 주적(主敵)으로 규정한다. 중국이 참고 있으면 중국 옆구리에 시한폭탄을 계속 키운다. 부시 정권이 바라는 한국의 역할은 북한 압박 정책에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는 것은 전혀 부시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쟤 나쁜 애래요, 쟤 좀 혼내 주세요" 하고 고자질할 것을 바란다. 이런 부시의 소망을 김대중 정부가 속 시원하게 들어주지 않았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며 화물선을 나포하는 난리까지 벌였을까. 대한민국은 반세기 가까이 소련과의 대결에서 미국의 첨병 노릇을 했다. 그리고 이제 중국과의 대결에서 또 하나의 역할을 부탁받고 있다. 생산성을 추구하는 경제적 대결 속에서 선의의 경쟁에 끼어드는 역할이라면 우리 국익에 부합할지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 대결 속에서 대립과 위험을 늘리는 역할이라면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 경제적 이유로는 한국을 위성국가로 더 이상 묶어놓을 동기가 미국에게 없다. 군사적 동기가 있을 뿐이다. 6·25 후 수십 년간 '전쟁의 나라'로만 외국에 알려졌던 한국이 지금은 '번영의 나라'로 더 널리 알려졌다. 군사적 중요성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경제적 중요성을 가진 나라로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벗어나 같은 지역 안의 '진짜 이웃'들과의 관계에 관심을 집중하고 능동적 역할을 찾아야 한다. 어버이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어린 대한민국에게 우방이 아니라 어버이 노릇을 했다. 낳아주고 지켜주고 먹여주고 입혀줬다. 친구와 애인, 전공과 직업까지 정해줬다. 그리고 말만 잘 들으면 계속해서 슬하에 두고 싶어 한다. 그 무릎을 떠나면 힘들고 괴롭고 불안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만큼 덩치도 크고 생각도 자란 이제 떠나야 한다. 우리 일은 우리가 결정해 나가면서 힘닿는 대로 그 동안의 은공을 갚아야지. |
▲ 4월 30일 대검찰청 앞에 도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 그 날 신문들은 그가 전두환, 노태우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검찰에 소환된 전직 대통령임을 대서특필했다. 다수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전임자들과 같은 범주에 넣어 망신을 주면 그의 영향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까? 이런 것을 '삽질'이라고 하나보다. 그의 유죄가 입증되더라도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고, 입증되지 못할 경우 영향력이 엄청나게 증폭될 조건을 검찰이 만들어 왔다. ⓒ프레시안 |
2002년의 대통령 선거는 내게 모처럼 즐거운 선택이었다. 이회창 후보는 보수정당의 역대 대통령 후보 중 가장 호감과 신뢰감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씨는 더욱 큰 기대감을 주는 후보였다. 언론에 비쳐진 모습을 넘어 그 사람됨을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그에게 큰 기대감을 품은 것은 그가 후보 위치에 이르는 과정이 당당했기 때문이다.
한국 현실 정치에서 거대정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를 따내는 데는 돈과 조직의 힘이 필수적이다. 노무현 씨는 돈과 조직의 열세를 무릅쓰고 이 일을 해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는 그가 후보로 선출된 후 당시 민주당의 실세들이 후단협(후보 단일화 협의회)을 통해 그를 흔들어댄 사실에 비추어서도 알아볼 수 있다.
돈과 조직의 열세는 본선에서 더욱 심했다. 그럼에도 그는 비전을 무기로 승리를 거뒀다. 그 때문에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더욱 큰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돈과 조직을 제공한 자들에게 빚으로 묶이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그런 빚이 적은 대통령을 가지게 된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정치공학보다 정치철학에 의지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2002년 선거 직후 위 칼럼을 쓴 것은 정치적 빚에서 자유로운 새 대통령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건 것이 한미 관계의 조정과 남북 관계의 발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는 새 대통령을 기다리는 요긴한 과제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러나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는 다른 과제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달린 과제이기 때문이다.
냉전 해소 때까지 대한민국은 온전한 독립국이 아니었다. 이승만 정권이야 아예 식민지 총독부와 별 차이 없는 존재였고, 그 후에도 예속이 종속 수준으로 완화되었을 뿐,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미국의 그늘 속에 묶여 있었다. 무엇보다, 민족 분단 문제를 주동적으로 풀어나갈 위치에 있지 못했던 것이 종속 상태의 가장 뚜렷한 지표였다.
냉전 해소 덕분에 한국은 위성국가 위치를 벗어날 기회를 맞았다. 미국에게 위성국가를 거느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 한국이 종속 상태를 벗어날 노력을 기울인 것이 아니었다. 종속 상태에 너무 익숙해진 많은 한국인들이 이를 벗어나는 데 불안감을 느꼈다. 엘리트 계층만이 아니라 중간 계층까지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다.
종속 중독증의 가장 큰 증세가 경제 성장 집착이다. 한국의 자칭 중산층이 모델로 삼는 것은 미국 중산층이다. 유럽과 일본 중산층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미국 중산층의 자원 낭비적 라이프스타일이 많은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생활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표준을 향해 고속 성장의 강박이 계속되는 것이다. 100평방미터 안팎의 임대아파트에 만족하는 유럽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려 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정치가 돈과 조직으로만 움직여지는 상황은 종속 관계의 청산에 제약을 준다. 돈과 조직의 힘은 기득권층에 집중되어 있고, 기득권층은 대미 종속 관계에 집착이 크기 때문이다. 출신 배경이 기득권층과 거리가 있고, 또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도 기득권층의 힘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관계의 변화를 추구하는 데 적합한 조건을 가진 지도자였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참여정부 5년을 지켜봤다. 대북 교섭 특검,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부분적으로는 석연치 않은 일들도 있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고, 그 사실을 정권이 바뀐 후 더욱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한미 관계의 조정과 남북 관계의 발전이라는 과제에 대한 엄청난 저항이 우리 사회 안팎에 있으며, 그 저항을 무릅쓰고 그만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상당 수준의 양보가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가 정체성의 기준에서 나는 참여정부에 합격점을 준다. 남북 관계 발전은 더 빠르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일관성 있게 신뢰의 근거를 다져 왔다. 개성 공단과 6자회담 등 이런 근거들이 남북 관계를 퇴행시키려는 현 정권의 노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에는 큰 굴곡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에도 응했고 FTA도 추진했다. 그러나 대북 관계를 둘러싼 부시 행정부와의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미 관계는 적지 않은 실질적 변화를 말없이 겪어왔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동맹관계 복원을 부르짖은 데서 이 변화를 비쳐볼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가 줄어든 빈자리의 큰 부분이 한중 관계의 발전으로 채워졌다.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커지는 과정 속에서 한국은 인접국으로서 적절한 관계를 키워 왔다. 작년 이래 세계적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세계 무대에서 중국의 역할이 계속 자라나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과 협력할 태세는 어느 나라 못지않게 잘 갖춰져 있다. 근년 극우파가 득세해 온 일본은 훨씬 불리한 처지에 놓여있다.
북한, 미국, 중국과의 관계 변화를 통한 한국의 국가 정체성 확립 과제는 사실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것이고 노무현 정부는 이를 이어받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2003년 이래 5년간 안팎의 상황에 비춰보면 제대로 이어받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북 교섭 특검 요구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내부 저항과 미국 부시 정권의 패권 정책이 끊임없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노무현 씨와 참여정부가 현 정권의 악착스러운 공격을 받고 있는 근래 상황 속에도 남북 관계와 관련된 꼬투리를 전혀 주지 않고 있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조그만 빈틈이라도 있었다면 남북 관계 퇴행을 간절히 바라는 현 정권이 이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노무현 씨는 몇 달째 검찰의 전면적 공격에 직면해 있다. 그에게 어떤 허물이 있었는지는 앞으로 밝혀질 만큼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도 검찰의 공격은 그 내용에 앞서서 그 방법에서 문제점을 너무 많이 드러내고 있다. 박연차의 진술을 중계방송하고 박연차와의 대질 계획을 일방적으로 공표한다든지, 노무현 씨가 조사받고 있는 동안 부인의 재소환 가능성을 흘린다든지, 시정잡배들도 야비하다고 침 뱉을 짓을 가리지 않는 것을 보면 검찰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기능을 발휘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노무현 씨에게 돈과 관련해 남들 눈에서 가렸으면 하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정치와 돈의 관계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정치공학 아닌 정치철학에 힘입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돈과 조직을 전혀 쳐다보지 않고 현실정치 속에 자리를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이전과 비교해 10분의 1 수준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면 대단히 훌륭한 일이다.
박연차 외의 다른 사람 돈도 받아먹은 것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가성 없는 돈을 흔적 없이 받아먹은 것이라면 밝혀졌을 때 본인이 면구스러워 할 수는 있을지언정 검찰이 대들 일이 아니다. 당장 박연차가 대가성 있는 돈을 주었다니까 문제를 삼는다고 하는데, 증거 없는 일방적 진술만 가지고 오라 가라 한다면 전임 대통령 아니라 일개 시민이라도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아무튼 검찰이건 현 정권이건 노무현 씨에게 조그만 허물이라도 있으면 가만 두지 않을 속셈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당장은 죄인 꾸짖듯 하는 큰 목소리로 국민의 이목을 모으고 있지만, 가만 생각하면 떠들고 있는 문제 외에는 노무현 씨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씨 입장이 편하게 됐다. 공인 입장에서 의혹이 있다면 법률적 필요와 관계없이 해명할 부담이 어느 정도 느껴질 것인데, 검찰에서 너무 속 보이고 달려드니 최소한의 방어만 하면 되는 입장이 되었다.
북한, 미국, 중국을 상대로 한 국가 정체성 과제에 대한 참여정부의 실적은 그에 역행하는 현 정권의 정책 때문에 더 두드러져 보인다. 추위가 닥칠 때 송백(松柏)의 푸름이 드러난다는 이치일까? 돈 관계 도덕성 문제에도 같은 이치가 작용하는 것 같다. 남들이 가만히 있는데 본인이 스스로 도덕적 인간임을 입증하려면 절대적 도덕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온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다가 무고함이 밝혀지면 상대적 도덕성이라도 큰 평가를 받게 된다. 현 정권과 검찰은 노무현 씨의 도덕적 지도력을 크게 키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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