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3. 17:41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검찰청사 有感
기사입력 오후 4:20:38
검찰청사 有感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판사가 될 수도 있고 검사가 될 수도 있다. 30년 전까지는 판사의 길이 더 인기 있었다. 판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국가기관으로서 막중한 권위를 가진 몸임을 생각하면 그럴싸한 일이었다. 국회의원에도 판사 출신이 검사 출신보다 많았다. 판사로 뽑힐 자격이 되는 연수원생이 검사를 지망한다면 특별한 뜻을 가진 사람으로 보곤 했다. 70년대 들어 이런 사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검찰을 지망하는 우수한 연수원생이 늘어나 때에 따라서는 법원을 앞지르기까지 하게 됐다. 스스로 3D 직종이라 칭하는 검사의 인기가 늘어난 까닭이 무엇일까. 국가 기능이 강화됨에 따라 배당된 사건을 받아 판결만 하는 판사의 수동성보다 사건을 찾아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검사의 능동성이 국가와 사회에 더 훌륭한 공헌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론 검사의 길이 출세에 더 유리하다는 인식도 늘어났다. 판사보다 검사가 언론의 각광을 받는 일이 많아졌고 정계 진출도 많아졌다. 재력가들은 학교 후배나 먼 친척 중에라도 검사가 있으면 후원자 노릇을 맡으려 안달이라고 한다. 권력기관으로서 검찰의 비중도 크게 늘어났다.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덕수궁 옆에 있을 때, 두 건물의 모습은 두 기관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냈다. 고풍 어린 법원청사가 '권위'를 몸으로 말해준다면 멋대가리 없는 현대식 검찰청사는 '기능'의 상징으로 보였다. 그런데 서초동으로 옮기며 양쪽 건물의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다. 외장만 다를 뿐, 규모나 기본 형태가 거의 똑같게 된 것이다. 서초동뿐 아니라 1980년대 이후 지은 전국 각지의 법원과 검찰 건물이 모두 이런 식이다. 법정 중심의 법원 건물과 사무실 위주의 검찰 건물을 한 켤레 신발처럼 꼭 맞춰 지은 것은 검찰의 권위를 법원과 대등하게 보이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80~90년대는 이런 의지가 관철된 시기였다. 얼마 전 청주지검에서 '검찰 갤러리'를 열었다. 청사 건물의 여유를 지역사회에 문화 공간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뜻은 좋지만 과연 범죄인을 수사하는 검찰청사가 그런 목적에 적합한 것인지 의아하기도 하다. 법원청사에 지지 않게 웅장하게 지어놓고 보니 과분한 공간을 가지게 된 것도 같다.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청사를 지어도 이 건물을 등지는 예비 법조인이 늘어나고 있다. '권력의 시녀'가 되기보다 세계화시대의 선두주자를 바라보고 로펌으로 최정예 연수원생들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특히 검찰 외면 추세가 몇 년째 극심해서 관계자들의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다. 옛날의 왕조들도 망할 무렵에 화려한 궁궐을 지은 일이 많았던 생각이 난다. |
▲ 4월 30일 대검찰청 앞에 도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 왜 대한민국 검찰은 '못하는 짓'이 없는 것일까? 이성도, 윤리도, 상식도, 원칙도 왜 검찰의 '광란'을 억제해 주지 못하는 것일까? 군사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권력의 파편 하나가 21세기 깊숙이까지 살아남아 한국 사회의 내출혈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제거 수술의 필요성이 시급하다. ⓒ프레시안 |
생각해 보니 나이 육십이 되도록 피의자는커녕 참고인으로도 검찰 신세를 져본 일이 없다. 그렇게 그야말로 법 없이 살아온 나도 요즘 와서는 한국 검찰이 이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드는 존재란 생각이 든다.
검찰이 할 노릇은 못하면서 못된 짓만 하는 것을 비난할 때 "권력의 주구"란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근년에는 검찰이 주구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재정권 때는 주구 맞았다. 그러나 민주화시대 들어 검찰의 '독립성'이 보장되기 시작했다. 힘은 그대로 가진 채 정권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되었으니 주인 없는 들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조직의 이기성에 대한 흥미로운 지적들이 있다. 로널드 코스는 <기업의 본질(The Nature of the Firm)>(1937)에서 조직의 역량이 조직의 목적 달성보다 조직의 자기 보전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을 지적했다. 더 널리 알려진 것으로 사회조직의 자기증식성을 지적한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이 있다. 직업적으로 종사하는 조직 구성원들이 승진 기회와 권한 확대를 위해 조직의 확장을 꾀하고 축소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독재시대에 통치의 도구로 삼기 위해 권력기관으로 키워놓은 것이다. 독재 권력이 사라졌으면 검찰도 권력기관 아닌 봉사기구로 환원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노무현 정부와 검찰 사이의 긴장 관계는 이 당위성에 대한 검찰의 저항으로 빚어진 것이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도 이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검찰 권력은 살아남아 이명박 시대를 맞았다. 지금의 검찰 권력은 이명박 정권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다. 군사독재의 유물이 스스로를 지켜내 한국 사회의 '괴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의 검찰은 어둠 속의 권력답게 국민을 괴롭히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것을 역할로 삼고 있다. 물론 검찰 구성원 전부를 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수뇌부'라 흔히 지칭되는 엘리트 그룹이 이 사회 특권층의 주축으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이 사회의 특권 구조를 유지, 강화하는 데 검찰 조직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덕적 잣대만을 들이대는 게 아니다. 헌법을 초월하는 권력을 검찰이 가지는 것은 국가 안보의 취약점이기도 하다.
병참기지를 교통 요충지에 집중시켜 놓으면 물류 비용을 줄이고 능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집중은 전략적 취약점이 될 수 있다. 적군이 좁은 범위만 공격해도 쉽게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 집중도 마찬가지다. 독재국가는 지도자의 안위가 곧바로 국가 안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한민국 옆에 '삼성돈국'이란 적성국가가 있다 치자. 삼성돈국이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삼고 싶을 때, 선전포고를 하고 정면으로 침공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검찰이란 불법 권력이 요충을 장악하고 있으면 손쉽게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검찰 수뇌부만 포섭하면 된다. 검찰 수뇌부에게는 자기네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실질적 식민지로 만드는 데 협조할 동기가 있다. 수십 명만 꾸준히 '관리'하면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 저항을 봉쇄하는 데 검찰과 언론만큼 유능한 협조자가 어디 있는가?
국가의 검찰 기능을 아주 없애자는 게 아니다. 기능은 남겨두되 권력기관으로서의 성격을 약화시키자는 것이다. 그토록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가 검찰에 꼭 필요한 것인가? 정연한 지휘 체계가 능률에는 조금 보탬이 되는 면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그 경직성이 검찰을 국가의 암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용산 사태를 놓고는 수사 기록을 제출하라는 법원의 명령조차 거부하고 있는 대한민국 검찰이다. 법원의 명령이 없더라도 모든 수사 기록을 피의자에게 공개하는 것은 검찰 직업 윤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형사 사건은 정부 대 개인의 소송인데, 검찰이 정부 측 소송대리인이지만 국가 공무원으로서 국민을 보호할 책임도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에 대한 수사는 어땠는가? 몇십억 원 뇌물의 혐의를 잡아냈다고 주장하는데, 감사원에서 검찰 장부를 한 번 조사해 보면 좋겠다. 검사들 월급을 비롯해서 국민 혈세를 쏟아 부은 금액이 더 크겠다. 게다가 '빨대질'은 또 어떻고? 직업 윤리는커녕 시정잡배의 기본 상식에도 못 미치는 언론플레이는 그야말로 막가파 수준이었다.
미국처럼 선거로 뽑거나 단기간 계약직인 검사는 이런 미친 짓을 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검사는 양심에 따라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하는 조직에 묶여 있다. 검사동일체 원칙을 제거했다고 하지만,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가 그대로 있는 한 이름만 없어진 것일 뿐이다.
돌아가신 분이 남긴 글에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그는 자신을 핍박한 사람들의 인간성 문제보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제도와 환경에서 더 큰 문제를 본 것이다. 이번 사태를 놓고 검찰의 문제점을 생각한다면 몇몇 사람의 문책 따위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검찰을 혁파해야 한다. 일선 검사들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업무에 임하게 함으로써 '수뇌부'가 권력을 참칭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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