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2 12:23

두 달쯤 전에 홍 회장이 중앙일보 인터넷판에 연재 기고를 권했다. 근년 들어 이 친구 보며 이렇게 느긋한 점이 참 마음에 든다. 다시 보고 지낸 지 2년 가까이 지나 얘기 꺼내는 것부터, 신문 사정보다 내 사정을 앞세워 살펴주는 것 같이 느껴진다.

 

꾸준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중앙일보에서였다. 1990년 대학을 떠날 때는 이 사회에서 조직을 벗어난 활동이 아직 여러 모로 불편할 때였다. 그래서 홍 회장에게 부탁해 중앙일보에 객원연구위원으로 적을 두었고, 적을 둔 김에 간간이 글을 올리게 되었는데 나도 재미있고 회사에서도 좋아해서 칼럼니스트 노릇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글쓰기의 계기를 만들어준 친구가 권해주는 일인 만큼 내키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생각해 보니 "퇴각일기"를 그리 가져가는 게 "딱!"일 것 같다. 1년 전부터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시작해 놓았는데 그리 많이 쓰게 되지 않는다. 쓸 만한 얘기가 있어도 꼭 써야 하나? 망설이다가 덮어놓고 지나가기 일쑤다. 다른 글보다 주관성이 강한 내용이어서 "꼭" 쓸 필요가 분명한 얘기가 많지 않다. 비슷한 성격의 글로 시병일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 상황을 여러분께 전해드린다는 목적 때문에 써도 되고 안 써도 될 글을 꽤 많이 쓰게 되었던 것이다. "퇴각일기"도 연재를 정해 놓고 매주 한 차례 좀 의무감을 갖고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 생산성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신문사의 담당자들에게 이런 생각을 전하니 환영하는 기색이다. 추천한 사람 체면을 생각해서만이 아니라 아이템 자체를 재미있게 생각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내 말씀대로 내가 "자아감각"이 좋아서일지도 모르겠지만.

 

6월 말에 연재를 시작하기로 방침을 정해놓고 베이징 워크숍에 갔는데, 거기서 혼선이 시작되었다. "내가 퇴각 중인 거 맞아?" 앞으로의 활동에 의욕이 너무 치솟는 것이다. 오랫동안 혼자 모색해 온 관심분야의 상상도 못했던 활발한 토론공간에 마주쳐 "난 이제부터야!" 신이 났으니.

 

이 흥분을 좀 가라앉힌 뒤에야 연재를 시작할 수 있겠다 생각되어 신문사에 늦출 것을 연락해 놓았는데... 흥분은 가라앉아도 의욕은 계속 치솟는 걸 어쩌나. 앞으로 한국보다 연변에서 주로 지낼 방침을 정한 것은 중국어를 익히고 중국 학계와의 접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2002년부터 3년간 연변에서 지낸 것도 비슷한 뜻에서였는데 이제 돌아보면 그때는 내 밑천이 짧았던 것 같다. 좀 늦어진 감은 있지만 이제부터 중국에서 살며 꿈도 중국어로 꾸며 지내는 게 내게 자연스러운 길로 느껴진다.

 

소시쩍에 영어 열심히 익히던 생각이 난다. 정신세계를 넓히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서 한가한 시간에 소설을 읽어도 영문으로만 읽었다. 중국사를 전공했지만 당시는 중국 학계의 생산성이 형편없어서 연구성과도 영문으로 접수한 것이 압도적이었다. 해외생활을 많이 안해서 회화는 시원찮지만 읽기와 쓰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이번 워크숍 발표문도 내용 좋다는 얘기보다 글 좋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 그렇게 좋은 내용인데도!

 

어려서 <삼국지연의>에 빠져 지내다 영창서관 판 <懸吐 三國志>까지 섭렵하며 한문을 자연스럽게 익힌 이래 중국-동아시아 문명을 내 바탕으로 삼게 되었다. 서양 고전보다 동양 고전이 내 마음속에 더 두텁게 쌓여 있다. 그런데도 내가 성장하고 활동한 20세기 후반은 영어가 세계의 고급문화를 지배한 시대였다. 이제 중국어가 자기 역할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워크숍에서 확인했다. 그렇다면 내가 이제부터 중국에서 살며 중국어로 내 생각을 표현하며 살겠다는 의욕은 다른 자리로 나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인 셈이다. "퇴각"의 의미에서 벗어나는 길은 아닌 것 같다.

 

지난 주 윤여준 선생을 만났을 때 내 정체성에 '조정'을 가하려는 참이라고 말씀드렸다. 혼자 공부만 할 때는 내 정체성이 '자유인'이었는데 40대 이래 글쓰기를 통해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강화되어 왔다. 이제 學人의 자세로 돌아가며 한국인의 위치에서는 조금 물러서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이제 중국어 소통에 치중하면서는 영어에 매달릴 때 바라보던 '자유인'과는 다른 정체성이 되겠지만, 그것을 "동아시아인"이라 하기도 그렇고 뭐라 해야 할지 애매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분다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한 마디 대꾸: "천하인이 되겠다는 거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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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