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중순 베이징 워크숍을 마치고 연변으로 가서 여름을 지낸 후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연변 도착 후 계획을 바꿨다. 여름 일정만 바꾼 게 아니라, 여생을 보낼 장소를 한국에서 연변으로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살면서 여름만 연변에 가서 지내는 식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연변에서 살면서 겨울만 한국에 와서 지내기로 했다. 그래서 며칠 전 서둘러 귀국한 후 몇 주일 한국에서 필요한 볼일을 봐놓은 다음 8월부터는 연변에 가서 길게 지낼 참이다.

 

"천하" 워크숍이 계기가 되었다. 6월 20일 포스팅 후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마음속에 감돌았지만 연변 집의 컴퓨터에 문제가 있어서 그때그때 적지 못했다. 새로 정리한 생각의 큰 줄기는 내 정체성을 "한국인"에 묶어놓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내 공부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묶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몸이 한국에 묶여 있다 보니 생각이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공부는 세계인의 관점 내지 동아시아인의 관점에 입각해서 진행해 오면서도 그 발표는 한국사회의 관심사에 투영하는 방식으로밖에 할 수 없었다. "You are what you say." 입력 용량이 아무리 커도 출력 용량이 제한되어 있으면 전체 시스템의 용량도 거기에 묶이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역사 분야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학문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야를 넓힐 필요가 많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인이 생산한 글 중 학문적 가치가 큰 것을 영어로 옮기고 싶은 마음에 찾아볼 때도, 외국 독자들에게 꼭 보이고 싶은 것을 찾기 어려웠다. 한국의 고유한 제 문제에 관심이 너무 집중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워크숍에서 보니 나랑 학문적 관심을 상당 수준 공유하는 사람들이 방에 가득한 것이었다. 내 취향이 그렇게 별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 일본, 서양의 여러 연구자들이 나랑 비슷한 동기에서 비슷한 주제들을 탐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제도적 뒷받침이 별로 없던 방면이니까. 그런데 그 방향으로 제도적 뒷받침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학문은 제도적 틀에 너무 묶여 있고 그 제도적 틀이 변화에 둔감하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다.

 

십여 년 전 연변에 3년간 머무르며 한-중 간의 2중 정체성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고, 그 생각에 입각해서 <밖에서 본 한국사>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그후 한국에서만 지내며 한국인의 정체성에만 너무 치중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그 2중 정체성을 실현하는 데 노력을 집중하려 한다. 중국어로 말하고 글쓰기를 영어 수준으로만 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까지 고군분투해 온 학술활동을 훨씬 더 편안하고 보람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생활도 훨씬 더 만족스럽게 될 것이고.

 

내일모레 일흔이 될, 퇴각로에 서 있다는 사람이 이제부터 일에 의욕을 불태우며 객지살이를 하겠다는 게 어이없는 일 같기도 하다. 하지만 퇴각도 팔자 좋은 병사들은 후송열차 타고 아무 생각 없이 돌아갈 수도 있지만, 전투의 마무리에서 큰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연변을 "객지"로만 볼 것인가? 다른 곳에 뿌리를 둔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자기 동네로 만들었다.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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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