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어느 자리에서 홍세화 선생을 "대한민국 지식분자 중 내가 '형님'으로 부르는 유일한 분"이라고 소개한 일이 있다. 살아 오면서 "형님"이라 부른 분이 꽤 있었고, 그중에는 지금이라도 마주치면 "형님" 소리 나올 분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자주 보며 "형님"으로 대하는 분은 지금 홍 선생 한 분뿐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내가 근년 살아온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편안한 관계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여유가 너무 없었다는 생각.
홍 선생도 그냥 기억 속에 묻어놓고 30년을 지냈던 분이다. 그분이 대봉산업 파리 주재원으로 출발하던 전날인지 당일인지 만난 것은 마침 나도 그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 귀국하고도 굳이 볼 일이 없어서 여러 해 그냥 지내다가, 역시 오랜만에 만난 정세현 선배과 앉았다가 홍 선생 생각이 났고, 생각이 나자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게 일어나 곧 찾아뵙게 되었다. 그게 근 10년 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만나자 생각 나눌 것도 줄줄이 떠올라 종종 보게 되었는데, 몇 해 전 마침 우리 동네로 이사 오시는 바람에 아주 자주 보게 되었다. 이사 오실 무렵까지도 이 양반과 마주치면 긴장된 마음이 꽤 들었다. 그분이 내 책 <페리스코프> 추천사에 이런 대목 쓴 걸 보면 긴장된 마음이 어떤 건지 누구라도 이해해 줄 거다.
“그가 바탕을 두고 있는 현실 논리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바꾸어야 할 현실’을 지나치게 압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데, 스스로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지키려고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런데 자주 보다 보니까 긴장이 풀린다. 아마 근년 들어 내가 "퇴각"의 길에 접어들어 있다는 자각도 여기 작용한 것 같다. 만나서 꼭 뭔가 뾰족한 얘기를 나눠야겠다는 강박이 없이, 그냥 같이 노는 게 편안한 것이다. 바둑도 두고, 당구도 치고, 놀다가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몇 마디 나누기도 하고, 그럴 뿐이다.
설날 우리집에 건너와 떡국을 함께 먹었다. 부인이 프랑스 가 계실 때는 "독거노인"이라고 엄살하는 분을 방치할 수 있나. 점심을 함께 하고는 댁으로 건너가 바둑을 두 판 뒀는데, 얼마 전 석 점으로 한 판 따내고는 두 점으로 올라갈 열망에 들뜬 분에게 찬물을 끼얹고 넉 점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넉 점은 말도 안 되지!"
"겪어보지 않으니까 엄두가 안 나시겠지만, 막상 해보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새로운 경지로 한 번 나아가 보시지요~"
그 경지로 당장 나아갈 마음은 도저히 들지 않으시는 듯, 당구장으로 가자신다.
"잘 생각하셨어요. 형님은 머리보다 몸이죠~"
천하의 홍 선생에게 몸 칭찬 해드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재미있어 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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