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세상에 싫은 사람은 많고 좋은 사람은 적어서 어두운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좋아하는 사람만 골라 뽑아서도 이만한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 한량없고, 이제 좀 더 밝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으므로 한 차례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가족들, 아내 리미옥 여사와 두 딸, 민경과 예화가 와줬습니다.

 

다음으로 프레시안의 박인규 대표님, 여러 해 동안 알게 모르게 제 일과 생활을 뒷받침해 준 분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지식분자 중 제가 유일하게 '형님'으로 모시는 홍세화 선생님이 와주셨습니다.

 

서해문집 김선정 주간님은 제 책 여러 권을 만들어주시고, 대를 이어 충성하는 정신으로 이병한 선생의 책도 만들어주고 있는 분입니다.

 

우리 내외가 딸 하나 더 뒀으면 하는 마음으로 눈독을 들이는 최유진 양이 와줬고, 그 곁에 이병한 선생이 묻어 왔습니다.

 

작은 대부님인 조광 선생님과 그 수행원 권영파 선생, 그리고 큰 대부님인 윤여준 선생님과 그 수행원 윤여익 선생입니다."

 

"아비가 둘인 자식, '二父之子'는 전통시대의 욕 중에 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 분 대부님 모시고 이부지자 된 일이 기쁘기만 합니다. 아버지를 일찍 잃고 아버지 없이 큰 설움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엊그제 견진성사에 여러 분이 축하하러 와줬고, 여러 사람 모이다 보니 하객들 사이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자리가 되었다. 그 김에 가까이 사는 홍세화 선생과 박인규 대표에게도, 미사까지 참례하지는 않더라도 뒷풀이 자리에 와 달라고 청했다.

 

맥주 정도로 넘어갈 줄 생각한 자리였는데, 가만 눈치를 보니 그게 아니다. 그래서 비주류를 위해 고량주도 시켰는데, 그게 주류가 되어 버렸다. 두 시간 안 되는 동안 고량주 다섯 병을 비웠으니 술 밝히는 분들도 너무 서운하지는 않을 만큼 된 셈이다.

 

모인 명분은 내 견진 축하인데, 관심의 초점은 단연 Y와 B에 모인다. 유진을 아는 사람들에게나 병한을 아는 사람들에게나 신기한 일 아닌가. 각자 자기 세상을 크게 아쉬운 것 없이 살아 온 두 사람이 말 튼 지 5개월 만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온몸으로 표현하며 곁의 사람들 마음까지 흐못하게 만들어주고 있으니.

 

모임의 명분과 실제 사이의 간격이 그리 불편하지 않다. 내게는 나름대로 연관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회 다닐 생각 난 게 신앙심이 타올라서가 아니다. 개인으로만 살아온 자세를 바꿀 필요 때문에 '공동체'를 찾은 것이고, 천주교회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온 것뿐이다. 신앙의 발판이 될 '영성'이 내 안에 있는지 없는지, 서둘러 따질 생각 없다. 공동체 안에서 이웃들과 잘 어울리다 보면, 살아날 영성이 있다면 제풀에 살아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유진과 병한의 '기적적' 결합에 내가 한 몫을 한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내 위치를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자세 덕분이다. 예전의 나 같으면, 유진 예쁘면 예뻐하고 병한 좋으면 좋아하고, 그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오지랖 넓게 찾아서 함께 아끼게 된 것이다. 교회 나가는 자세와 둘을 맺어준 자세가 서로 통하는 것이다.

 

두 사람 만이 아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만나는 기쁨을 나눴다. 내가 제일 신경 쓴 점은 두 분 대부님 중심으로 민족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향한 마음이 어울리는 것이었다. 홍 선생과 박 대표를 추가로 청하는 데도 그 점을 생각했다. 그 주제에 관한 깊은 생각을 가진 '고수'들이 모였으니 토론이 흥겹기까지 했다. 특히 박 대표가 너무나 신이 나서 열변을 토하는 모습은 나만 처음 본 게 아니었다. 나오면서 본인은 열쩍은 기색을 보였지만 함께 한 사람들은 모두 즐거웠다.

 

조광 선생은 천주교회 안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인 반면 윤여준 선생은 교인인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남궁 신부님도 이분을 대부로 모시려 한다는 말씀을 듣고 "그분이 교인이셨나요?" 했다. 이 점을 의식하고 하신 말씀이리라. "나도 나이롱 신자인데 김 선생도 나이롱 신자 소질이 보여서 우리 대부-대자 사이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나이롱 신자? 좋다. 내가 비단결처럼 곱고 아름다운 신앙을 꽃피울 일은 없을 것 같다. 귀하게 여겨지지 않더라도 질깃질깃 버티며 내 몫을 하는 나이롱 교인이 되고 싶다. 윤 선생 따라서.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