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전통문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

 

21세기 들어 인류의 문명유산 내용을 되돌아볼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근대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앞으로도 진보의 길이 확실하다는 믿음이 19세기와 20세기를 지배했다. 근대문명의 주인공을 자임한 유럽(서양)문명 측만이 아니라 정복 대상이 된 다른 문명권에서도 널리 공유된 믿음이었다. 이 믿음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근대문명의 가치에 대한 불안감은 여러 방면에서 제기되어 왔거니와 대개는 단편적인 문제가 주변부에서 제기되는 정도였다. 문명의 중심부에서 구조적 문제가 제기된 대표적 사례로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 Wallerstein)을 중심으로 한 세계체제론이 있다. 1970년대에 틀을 잡은 세계체제론이 처음에는 학계 일각의 삐딱한 시선 정도로 보였지만, 공산권 붕괴 이후 그 타당성에 대한 인식이 확충-확장되어 왔다. 근대문명의 정치경제적 표현인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이제 더 이상 소수파 의견으로 단정할 수 없게 되었다.

영원한 진보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무너지면서 근대문명이 전통문명보다 무조건 우월하다는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 전통문명의 중요한 가치를 묵살해 왔기 때문에 인류가 너무 큰 고통을 받아 온 것은 아닌가, 인류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는 외면해 온 전통문명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힘쓸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문명유산의 재검토가 지적 활동의 중요한 영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마침 21세기에 접어든 후 중국의 성장이 세계질서 변화의 중심축으로 나타나고 있다. 20세기 동안 상당한 성장을 이뤄 온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문명권(“동남아시아로 인식되어 온 일부 지역 포함) 여러 국가들의 위상과 결합되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가 세계경제의 가장 큰 주체로 등장할 조건이 마련되고 있다. 경제에 이어 정치, 문화 등 세계질서의 다른 방면에서도 동아시아의 역할이 크게 자라날 개연성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문명 배경이 과연 현대세계에서 경제권과 정치권 재형성의 근거로 작용할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S. Huntington)<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에서 그 개연성을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문명의 어떤 요소들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 구체적인 분석은 없지만, 근현대세계의 조직 원리로서 이데올로기의 힘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은 분명히 타당한 것이고, 그렇다면 수면 밑에 잠복해 있던 전통문명의 원리들이 역할을 늘릴 개연성 또한 분명하다.

인류문명과 세계체제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전통문명의 틀이 그대로 복원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명유산의 재검토를 통해 재활용할 원리와 요소들을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러 전통문명이 (유럽)근대문명에 의해 정복당하던 과정을 복기(復碁)하는 것도 이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여러 문명유산 중에도 동아시아문명의 재검토가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동아시아문명권이 지금 당장 세계 최대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유럽으로부터 먼 곳에 있어서 근대 이전의 교섭이 가장 적었기 때문에 근대문명의 주축이 된 유럽문명과의 대비가 제일 확실하다. 셋째, 교섭 기간이 가장 짧았기 때문에 정복의 과정을 명료하게 살펴볼 수 있다.

 

 

생각의 내용만이 아니라 생각의 방법도 바뀔 필요

 

문명유산의 재검토 작업에서는 연구방법에도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익숙한 근대학문 연구방법은 유럽문명의 전통에 의해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문명의 고찰에서는 상당한 편향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방법의 변화가 아직 체계적인 방향을 잡지는 못하고 있지만, 산발적으로라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변화를 포괄적으로 파악하려고 애써 보지 않았지만 근래 읽은 책에서 눈에 띈 것이 적지 않다.

자오팅양(趙汀陽)<天下體系>(2005). 근대 정치철학이 국내정치에만 치중하고 세계정치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세계정치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천하사상의 재활용을 권한 책이다. 정치, 또는 정치학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정치학의 관심이 국내정치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중대한 결함이 아닐 수 없다.

근대세계에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정치라면 국제정치가 있을 뿐인데, 주권국가들 사이의 상호관계로만 파악되는 국제정치는 인류사회의 정치적 과제를 다룰 세계정치의 한 측면일 뿐이다. 환경, 자원, 기후, 평화 등의 과제 앞에서 종래의 국제정치와 다른 차원의 세계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근대 정치학의 정치개념은 국민국가들이 경쟁하는 근대 초기 유럽의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고 그 개념이 지금까지 세계정치의 길을 가로막아 온 것이다.

옌쉐퉁(閻學通)Ancient Chinese Thought, Modern Chinese Power(2011). 중국 전국시대 정치사상을 국제정치학의 틀에 따라 분석을 시도한 책이다. 저자 자신은 서양 학계의 분석 틀을 철저히 준용하려 애쓰는데, 애쓰는 만큼 서양 학계의 분석 틀 안에 중국 고대 정치사상을 담기 어려운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부록으로 실린 “Why is There no Chinese School of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에서 저자는 기존 분석 틀의 조정을 제안하는데, 과연 조정(調整)정도에 그칠 수 있는지 확언하기 어렵다. 예컨대 주권(主權)개념을 축소시키는 변화라면 기존 국제정치학의 원리를 무너트리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대니얼 벨(D. A. Bell)The China Model: Political Meritocracy and the Limits of Democracy(2015). 민주주의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을 밝히면서 능력주의[尙賢主義] 원리의 병행 필요를 논한 책이다. 역시 서양 정치철학의 분석 틀을 준용하지만 정치의 의미를 근본까지 탐구해 들어가기 위해서는 근대정치학의 틀을 넘어설 필요성이 제기됨을 알아볼 수 있다.

그밖에 원톄쥔(溫鐵軍)과 왕후이(汪暉) 등의 논설에서도 20세기 주류 학풍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보인다. 이런 경향이 아직은 확실한 귀착점을 보여주지 않고 있으나 기존 학풍에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사회과학 여러 분과는 대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근대적 가치체계의 틀 안에서 연구방법이 빚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학에서 기회비용개념이 채택되는 과정에서 그런 사정을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비저(F. von Wieser)1914년 제안을 계기로 기회비용이 경제학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폰 비저는 그 개념을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F. Bastiat)1848년 글 “Ce qu'on voit et ce qu'on ne voit pas”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바스티아는 그 글에서 당시 유행하던 깨진 유리창담론을 반박했다. 빵집 유리창이 깨졌을 때 빵집 주인의 돈이 유리가게를 거쳐 경제 작용을 일으키는 눈에 보이는사실만 생각하고,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더라도 그 돈이 다른 가게를 통해 경제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을, 필연적이지만 보이지 않는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바스티아가 명쾌하게 제시한 이 개념이 경제학 용어로 자리 잡는 데 66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데 있다. 66년 동안 유럽사회는 기술 발전이 자원 공급을 무한히 확대해 줄 것으로 믿으며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를 외치고 있었다. 제국주의 경쟁이 한계에 이르러 세계대전의 위기에 직면해서야 보이지 않는 사실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프랑크푸르트학파 철학자 악셀 호네트(A. Honneth)<사회주의 재발명> The Idea of Socialism(영문판 2016)을 읽으면서, 추상적인 개념이 뒤얽혀 읽기 힘든 책이지만 저자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저자 자신 쓰는 데 무척 힘들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대목에서 불현 듯 생각이 떠올랐다. 호네트는 사회주의의 진정한 원리로 사회적 자유란 것을 들고 나왔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전통사상의 仁義같은 개념을 쓴다면 설명이 훨씬 더 쉽지 않겠는가?

근대문명 안에서 자유는 개인주의 원리에 묶여 있었다. 호네트는 개인주의를 벗어나야 진정한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공산당선언>(1848) 이전의 사회주의, 개인주의에 맞서던 원초적 사회주의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을 근대적 개념과 언어로 표현하려니 그렇게 힘든 것이다.

전통문명의 개념과 언어에 의지해야 생각하고 설명하기 쉬운 주제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더 많이 떠오를 것이 예상된다. 문명유산의 재검토라는 과제는 생각의 내용만이 아니라 생각의 방법까지 바꿀 것을 요구한다. 그 변화는 고찰을 필요로 하는 구체적 주제들이 떠오르는 데 따라 점진적으로 방향이 잡혀 가겠지만, 한 가지 필요성은 분명하다. 근대학문의 원리 중 도그마의 속성을 가진 것을 적극적으로 솎아낼 필요다.

 

 

혼란 없는 변화를 위한 균형의 중요성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의 문명교섭사에 대한 고찰은 유럽문명의 우월성을 전제로 통상 행해져 왔다. 20세기 중반까지는 문명교섭이란 의식조차 보이지 않았다. 교섭의 상대가 될 만한 문명으로 동아시아문명을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초기 교섭의 내용에 관한 연구에서 기독교 선교사(宣敎史)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1950년대에 시작된 조지프 니덤 J. Needham의 동아시아 과학기술사 작업과 도널드 라크 D. LachAsia in the Making of Europe(1965~ )은 당시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진취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동서문명 교섭의 초기 단계에 대해 자크 제르네(J. Gernet)Chine et christianisme: Action et réaction(1982)에서 획기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안했다. 예수회 선교사들의 유럽 학술 소개와 선교노선 형성이 중국 측 필요에 의해 좌우된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교섭사를 중국사의 맥락에서 읽으려는 최초의 중요한 시도였다.

제르네의 제안은 관련 학계에서 제르네 쇼크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르네의 학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 2010년이 마테오 리치의 서거 400주년이었기 때문에 그 무렵에 많은 연구성과가 새로 발표되었는데, 마테오 리치와 예수회의 활동 내용에 관한 실증적 연구가 크게 늘어난 반면 제르네가 제안한 시각의 전환은 크게 진척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회과학 여러 분야에서 뚜렷이 일어나 온 변화가 인문학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근대 초기 동서문명 교섭에 관한 연구가 중국에서 많이 행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1980년대 이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놓은 연구자 중 중국계 이름은 로니 샤(R. P. Hsia)만이 눈에 띄는데 그 또한 중국 학계가 아니라 서양 학계에 속하는 사람이다.

인문학보다 사회과학이 중시되어 온 중국의 학술계 상황을 감안하면 중국에서 인문학 분야의 중요한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한 번 인문학의 변화가 시작되면 사회과학에서보다 더 빠른 변화가 예상되고, 어쩌면 학술 변화의 중심축이 인문학 방면으로 크게 옮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형성 과정에서 근대적 조건의 영향을 덜 받은 편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연구 방향이 국가의 연구 지원정책에 좌우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인문학 연구에도 사회의 지원 여건이 작용한다. 초기 동서문명 교섭의 연구에는 지원 주체로서 교회의 존재가 큰 작용을 해왔다. 20세기 후반에는 교회의 역할이 줄어들었지만 서양문명의 우월성에 집착하는 서양사회의 분위기가 연구 분위기를 계속해서 주도했다. 라크, 제르네 같은 독립 연구자가 새로운 파장을 이따금 일으켜도 큰 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중국의 자라난 국력을 배경으로 인문학 연구 환경에 큰 변화가 시작될 것이 예상된다. 이 변화에는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 형태의 애국심이 편향성을 일으킬 것도 예상된다. 그러나 중국문명에 대한 중국 외부의 관심이 또한 자라나고 있어서 그 편향성을 어느 정도 견제해 줄 것을 기대한다. 조반니 아리기(G. Arrighi)Adam Smith in Beijing: Lineages of the Twenty-First Century(2007)을 중국 외부의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아리기(1937-2009)1970년대부터 월러스틴과 함께 세계체제론 구성에 중심 역할을 맡은 인물인데 만년의 그가 중국사에 관심을 쏟은 것은 세계체제론의 발전 방향을(적어도 그 중 하나를) 시사해 주는 사실이다. 그는 애덤 스미스가 근대 자본주의 전개 양상을 유일한 경제 발전의 타당한 경로로 규정하지 않았고, 근세 중국의 경제 발전 방식을 자연스러운 경로로 평가한 점을 지적하며 중국의 경제현상을 살피는 데 새로운 시각을 찾을 필요를 역설했다. 일종의 중국 대안론(代案論)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리기는 이 책에서 스기하라 가오루(杉原薰)근면혁명 Industrious Revolution” 개념을 중시했다. 자본이 주도권을 쥔 근대 유럽식 발전 방식과 달리 노동을 중심으로 진행된 근세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방식에도 타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이 원래는 도쿠가와시대 일본의 경제발전 양상을 설명하는 데 쓰인 것인데 스기하라가 중국에도 적용한 것이라고 아리기는 설명했다.

아리기와 스기하라 사이에 이루어진 것과 같은 접점이 앞으로 문명유산의 재검토 작업에서 귀중한 역할을 맡을 것을 기대한다. 중국의 국력 신장을 배경으로 동아시아 문명유산의 재평가 노력이 크게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데, 그 노력의 질적 가치는 다양한 관점이 균형을 이루는 데 달려 있다. 그리고 외부의 관점과 내부의 관점이 균형을 이루는 데는 외부와 내부의 양쪽에 걸쳐 있는 동아시아문명 주변부의 관점이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 학계는 특별한 임무를 찾을 수 있는 입장이다.

 

 

다시 생각해 볼 인간과 자연의 관계

 

문명의 전환이 과연 일어난다면, 어떤 방향을 바라볼 것인가? 근대문명의 궤적에서 나타난 문제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보인다. 자원의 한계와 환경의 훼손 등 자연과의 관계가 가장 뚜렷한 위협으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의 존재는 자연의 일부로 출발했다가 문명의 발전에 따라 자연과의 사이에 거리를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거리를 아무리 키운다 해도 자연과 완전히 절연될 수는 없다. 자연 밖으로 나가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여러 문명사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연과 不可近 不可遠의 관계를 설정했다. 문명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연과 不可近이었고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不可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19-20세기 세계를 지배한 근대문명은 자연과의 단절로 치우쳤다. 인간의 가치를 절대시하며 자연을 이용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근현대의 문명인에게 보편화되었다. 자연에 대해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을 외면하는 자세는 인간사회의 운영 원리에도 투영되었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모두 인간의 권리[人權] 주장을 핵심 원리로 발전해 왔다.

인간의 권리는 문명의 핵심 요소다. 인권 없는 사회는 문명사회라 할 수 없다. 다만 문제는 인권을 인간 외의 모든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절대적-배타적인 가치로 보는 도그마에 있다. 이 도그마가 근대문명의 지속성을 제한한다. 지속성의 한계를 의식할 때, 근대문명 2백년보다 훨씬 더 긴 기간 지속했던 여러 문명으로부터 배울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모든 문명은 근대문명보다 열등했기 때문에 패퇴하고 정복당한 것이 아닌가? 근대문명보다 더 나은 문명으로 발전할 길을 찾아야 하는 이 때 더 열등했던 문명을 돌아볼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근대인의 오만의 바닥에는 근대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주축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자신감에 있다. 물질의 풍요와 평균수명의 연장 등 근대 이전에 이르지 못한 경지에 인류사회가 와 있는 것은 근대문명의 과학기술 덕분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이 환경 파괴와 핵무기의 위협 등 근대 이전보다 열악한 조건을 현대인에게 가져온 점도 생각해야 한다. 앞에 인용한 바스티아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이익에 현혹되어 보이지 않는손실을 모르는 사이에 감수해 온 것이다.

인간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근대적 가치체계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갈라 왔다. 자연과의 상호관계에 눈감고 인간의 이익 증진에 단선적으로 몰두한 과학기술 발전은 인간과 자연을 포괄하는 시스템 전체의 위험을 초래했다. 능률 위주의 발전 평가가 효과 위주로 옮겨져야 하고, 효과를 판정하는 가치체계에 전면적 반성이 필요하다.

20세기 후반 과학사를 비롯한 과학학의 발전은 과학기술의 의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버널(J. D. Bernal)<역사 속의 과학 Science in History>(1954)과 토머스 쿤(T. S. Kuhn)<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1962)가 이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21세기에 들어온 이제 문명 전환의 가능성을 앞에 두고 문명유산의 재검토라는 과제에 관심이 모이기 바란다. 가장 중요한 재검토 대상인 동아시아문명의 주변부에 위치한 한국과 일본 과학사학자들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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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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