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은 남의 탓, 통일은 내손으로!

 

 

전론: 인류사회의 정치 환경이 바뀌고 있다.

 

 

평화통일 운동을 실천하는 분들에게 문명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의견을 내놓게 된 이 기회를 반갑게 생각합니다. 지금 인류사회가 문명사의 큰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으며, 그에 따라 평화통일 운동을 둘러싼 전 지구적 정치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평화통일 운동의 전망과 바람직한 방향에 관한 의견을 내놓고자 합니다.

제 의견이 유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전제로 하는 사실의 타당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 아닌 분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에서 이런 명제의 엄밀한 확인은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최근 과학사 연구자들에게 이 명제를 제시한 강연 내용을 붙여 놓고 각자 편안한 시간에 천천히 검토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 그 내용 중 오늘의 본론과 관련하여 유의할 점만을 요약해서 뒤에 붙이겠습니다.

 

 

근대 東西文明 交涉決算을 앞두고 (2017. 3. 25. 7회 한일과학사세미나 폐막강연)

 

동아시아 전통문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

 

21세기 들어 인류의 문명유산 내용을 되돌아볼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근대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앞으로도 진보의 길이 확실하다는 믿음이 19세기와 20세기를 지배했다. 근대문명의 주인공을 자임한 유럽(서양)문명 측만이 아니라 정복 대상이 된 다른 문명권에서도 널리 공유된 믿음이었다. 이 믿음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근대문명의 가치에 대한 불안감은 여러 방면에서 제기되어 왔거니와 대개는 단편적인 문제가 주변부에서 제기되는 정도였다. 문명의 중심부에서 구조적 문제가 제기된 대표적 사례로는 이매뉴얼 월러스틴 I. Wallerstein을 중심으로 한 세계체제론이 있다. 1970년대에 틀을 잡은 세계체제론이 처음에는 학계 일각의 삐딱한 시선 정도로 보였지만, 공산권 붕괴 이후 그 타당성에 대한 인식이 확충-확장되어 왔다. 근대문명의 정치경제적 표현인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이제 더 이상 소수파 의견으로 단정할 수 없게 되었다.

영원한 진보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무너지면서 근대문명이 전통문명보다 무조건 우월하다는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 전통문명의 중요한 가치를 묵살해 왔기 때문에 인류가 너무 큰 고통을 받아 온 것은 아닌가, 인류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는 외면해 온 전통문명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힘쓸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문명유산의 재검토가 지적 활동의 중요한 영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마침 21세기에 접어든 후 중국의 성장이 세계질서 변화의 중심축으로 나타나고 있다. 20세기 동안 상당한 성장을 이뤄 온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문명권(“동남아시아로 인식되어 온 일부 지역 포함) 여러 국가들의 위상과 결합되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가 세계경제의 가장 큰 주체로 등장할 조건이 마련되고 있다. 경제에 이어 정치, 문화 등 세계질서의 다른 방면에서도 동아시아의 역할이 크게 자라날 개연성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문명 배경이 과연 현대세계에서 경제권과 정치권 재형성의 근거로 작용할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 S. Huntington<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에서 그 개연성을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문명의 어떤 요소들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 구체적인 분석은 없지만, 근현대세계의 조직 원리로서 이데올로기의 힘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은 분명히 타당한 것이고, 그렇다면 수면 밑에 잠복해 있던 전통문명의 원리들이 역할을 늘릴 개연성 또한 분명하다.

인류문명과 세계체제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전통문명의 틀이 그대로 복원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명유산의 재검토를 통해 재활용할 원리와 요소들을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러 전통문명이 (유럽)근대문명에 의해 정복당하던 과정을 복기復碁하는 것도 이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여러 문명유산 중에도 동아시아문명의 재검토가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동아시아문명권이 지금 당장 세계 최대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유럽으로부터 먼 곳에 있어서 근대 이전의 교섭이 가장 적었기 때문에 근대문명의 주축이 된 유럽문명과의 대비가 제일 확실하다. 셋째, 교섭 기간이 가장 짧았기 때문에 정복의 과정을 명료하게 살펴볼 수 있다.

 

생각의 내용만이 아니라 생각의 방법도 바뀔 필요

 

문명유산의 재검토 작업에서는 연구방법에도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익숙한 근대학문 연구방법은 유럽문명의 전통에 의해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문명의 고찰에서는 상당한 편향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방법의 변화가 아직 체계적인 방향을 잡지는 못하고 있지만, 산발적으로라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변화를 포괄적으로 파악하려고 애써 보지 않았지만 근래 읽은 책에서 눈에 띈 것이 적지 않다.

자오팅양趙汀陽<天下體系>(2005). 근대 정치철학이 국내정치에만 치중하고 세계정치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세계정치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천하사상의 재활용을 권한 책이다. 정치, 또는 정치학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정치학의 관심이 국내정치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중대한 결함이 아닐 수 없다.

근대세계에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정치라면 국제정치가 있을 뿐인데, 주권국가들 사이의 상호관계로만 파악되는 국제정치는 인류사회의 정치적 과제를 다룰 세계정치의 한 측면일 뿐이다. 환경, 자원, 기후, 평화 등의 과제 앞에서 종래의 국제정치와 다른 차원의 세계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근대 정치학의 정치개념은 국민국가들이 경쟁하는 근대 초기 유럽의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고 그 개념이 지금까지 세계정치의 길을 가로막아 온 것이다.

옌쉐퉁閻學通Ancient Chinese Thought, Modern Chinese Power(2011). 중국 전국시대 정치사상을 국제정치학의 틀에 따라 분석을 시도한 책이다. 저자 자신은 서양 학계의 분석 틀을 철저히 준용하려 애쓰는데, 애쓰는 만큼 서양 학계의 분석 틀 안에 중국 고대 정치사상을 담기 어려운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부록으로 실린 “Why is There no Chinese School of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에서 저자는 기존 분석 틀의 조정을 제안하는데, 과연 조정調整정도에 그칠 수 있는지 확언하기 어렵다. 예컨대 주권主權개념을 축소시키는 변화라면 기존 국제정치학의 원리를 무너트리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대니얼 벨D. A. BellThe China Model: Political Meritocracy and the Limits of Democracy(2015). 민주주의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을 밝히면서 능력주의[尙賢主義] 원리의 병행 필요를 논한 책이다. 역시 서양 정치철학의 분석 틀을 준용하지만 정치의 의미를 근본까지 탐구해 들어가기 위해서는 근대정치학의 틀을 넘어설 필요성이 제기됨을 알아볼 수 있다.

그밖에 원톄쥔 溫鐵軍과 왕후이 汪暉 등의 논설에서도 20세기 주류 학풍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보인다. 이런 경향이 아직은 확실한 귀착점을 보여주지 않고 있으나 기존 학풍에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사회과학 여러 분과는 대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근대적 가치체계의 틀 안에서 연구방법이 빚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학에서 기회비용개념이 채택되는 과정에서 그런 사정을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비저 F. von Wieser1914년 제안을 계기로 기회비용이 경제학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폰 비저는 그 개념을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 F. Bastiat1848년 글 “Ce qu'on voit et ce qu'on ne voit pas”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바스티아는 그 글에서 당시 유행하던 깨진 유리창담론을 반박했다. 빵집 유리창이 깨졌을 때 빵집 주인의 돈이 유리가게를 거쳐 경제 작용을 일으키는 눈에 보이는사실만 생각하고,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더라도 그 돈이 다른 가게를 통해 경제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을, 필연적이지만 보이지 않는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바스티아가 명쾌하게 제시한 이 개념이 경제학 용어로 자리 잡는 데 66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데 있다. 66년 동안 유럽사회는 기술 발전이 자원 공급을 무한히 확대해 줄 것으로 믿으며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를 외치고 있었다. 제국주의 경쟁이 한계에 이르러 세계대전의 위기에 직면해서야 보이지 않는 사실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프랑크푸르트학파 철학자 악셀 호네트 A. Honneth<사회주의 재발명> The Idea of Socialism(영문판 2016)을 읽으면서, 추상적인 개념이 뒤얽혀 읽기 힘든 책이지만 저자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저자 자신 쓰는 데 무척 힘들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대목에서 불현 듯 생각이 떠올랐다. 호네트는 사회주의의 진정한 원리로 사회적 자유란 것을 들고 나왔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전통사상의 仁義같은 개념을 쓴다면 설명이 훨씬 더 쉽지 않겠는가?

근대문명 안에서 자유는 개인주의 원리에 묶여 있었다. 호네트는 개인주의를 벗어나야 진정한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공산당선언>(1848) 이전의 사회주의, 개인주의에 맞서던 원초적 사회주의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을 근대적 개념과 언어로 표현하려니 그렇게 힘든 것이다.

전통문명의 개념과 언어에 의지해야 생각하고 설명하기 쉬운 주제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더 많이 떠오를 것이 예상된다. 문명유산의 재검토라는 과제는 생각의 내용만이 아니라 생각의 방법까지 바꿀 것을 요구한다. 그 변화는 고찰을 필요로 하는 구체적 주제들이 떠오르는 데 따라 점진적으로 방향이 잡혀 가겠지만, 한 가지 필요성은 분명하다. 근대학문의 원리 중 도그마의 속성을 가진 것을 적극적으로 솎아낼 필요다.

 

혼란 없는 변화를 위한 균형의 중요성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의 문명교섭사에 대한 고찰은 유럽문명의 우월성을 전제로 통상 행해져 왔다. 20세기 중반까지는 문명교섭이란 의식조차 보이지 않았다. 교섭의 상대가 될 만한 문명으로 동아시아문명을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초기 교섭의 내용에 관한 연구에서 기독교 선교사宣敎史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1950년대에 시작된 조지프 니덤 J. Needham의 동아시아 과학기술사 작업과 도널드 라크 D. LachAsia in the Making of Europe(1965~ )은 당시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진취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동서문명 교섭의 초기 단계에 대해 자크 제르네 J. GernetChine et christianisme: Action et réaction(1982)에서 획기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안했다. 예수회 선교사들의 유럽 학술 소개와 선교노선 형성이 중국 측 필요에 의해 좌우된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교섭사를 중국사의 맥락에서 읽으려는 최초의 중요한 시도였다.

제르네의 제안은 관련 학계에서 제르네 쇼크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르네의 학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 2010년이 마테오 리치의 서거 400주년이었기 때문에 그 무렵에 많은 연구성과가 새로 발표되었는데, 마테오 리치와 예수회의 활동 내용에 관한 실증적 연구가 크게 늘어난 반면 제르네가 제안한 시각의 전환은 크게 진척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회과학 여러 분야에서 뚜렷이 일어나 온 변화가 인문학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근대 초기 동서문명 교섭에 관한 연구가 중국에서 많이 행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1980년대 이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놓은 연구자 중 중국계 이름은 로니 샤 R. P. Hsia만이 눈에 띄는데 그 또한 중국 학계가 아니라 서양 학계에 속하는 사람이다.

인문학보다 사회과학이 중시되어 온 중국의 학술계 상황을 감안하면 중국에서 인문학 분야의 중요한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한 번 인문학의 변화가 시작되면 사회과학에서보다 더 빠른 변화가 예상되고, 어쩌면 학술 변화의 중심축이 인문학 방면으로 크게 옮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형성 과정에서 근대적 조건의 영향을 덜 받은 편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연구 방향이 국가의 연구 지원정책에 좌우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인문학 연구에도 사회의 지원 여건이 작용한다. 초기 동서문명 교섭의 연구에는 지원 주체로서 교회의 존재가 큰 작용을 해왔다. 20세기 후반에는 교회의 역할이 줄어들었지만 서양문명의 우월성에 집착하는 서양사회의 분위기가 연구 분위기를 계속해서 주도했다. 라크, 제르네 같은 독립 연구자가 새로운 파장을 이따금 일으켜도 큰 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중국의 자라난 국력을 배경으로 인문학 연구 환경에 큰 변화가 시작될 것이 예상된다. 이 변화에는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 형태의 애국심이 편향성을 일으킬 것도 예상된다. 그러나 중국문명에 대한 중국 외부의 관심이 또한 자라나고 있어서 그 편향성을 어느 정도 견제해 줄 것을 기대한다. 조반니 아리기 G. ArrighiAdam Smith in Beijing: Lineages of the Twenty-First Century(2007)을 중국 외부의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아리기(1937-2009)1970년대부터 월러스틴과 함께 세계체제론 구성에 중심 역할을 맡은 인물인데 만년의 그가 중국사에 관심을 쏟은 것은 세계체제론의 발전 방향을(적어도 그 중 하나를) 시사해 주는 사실이다. 그는 애덤 스미스가 근대 자본주의 전개 양상을 유일한 경제 발전의 타당한 경로로 규정하지 않았고, 근세 중국의 경제 발전 방식을 자연스러운 경로로 평가한 점을 지적하며 중국의 경제현상을 살피는 데 새로운 시각을 찾을 필요를 역설했다. 일종의 중국 대안론代案論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리기는 이 책에서 스기하라 가오루杉原薰근면혁명 Industrious Revolution” 개념을 중시했다. 자본이 주도권을 쥔 근대 유럽식 발전 방식과 달리 노동을 중심으로 진행된 근세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방식에도 타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이 원래는 도쿠가와시대 일본의 경제발전 양상을 설명하는 데 쓰인 것인데 스기하라가 중국에도 적용한 것이라고 아리기는 설명했다.

아리기와 스기하라 사이에 이루어진 것과 같은 접점이 앞으로 문명유산의 재검토 작업에서 귀중한 역할을 맡을 것을 기대한다. 중국의 국력 신장을 배경으로 동아시아 문명유산의 재평가 노력이 크게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데, 그 노력의 질적 가치는 다양한 관점이 균형을 이루는 데 달려 있다. 그리고 외부의 관점과 내부의 관점이 균형을 이루는 데는 외부와 내부의 양쪽에 걸쳐 있는 동아시아문명 주변부의 관점이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 학계는 특별한 임무를 찾을 수 있는 입장이다.

 

다시 생각해 볼 인간과 자연의 관계

 

문명의 전환이 과연 일어난다면, 어떤 방향을 바라볼 것인가? 근대문명의 궤적에서 나타난 문제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보인다. 자원의 한계와 환경의 훼손 등 자연과의 관계가 가장 뚜렷한 위협으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의 존재는 자연의 일부로 출발했다가 문명의 발전에 따라 자연과의 사이에 거리를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거리를 아무리 키운다 해도 자연과 완전히 절연될 수는 없다. 자연 밖으로 나가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여러 문명사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연과 不可近 不可遠의 관계를 설정했다. 문명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연과 不可近이었고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不可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19-20세기 세계를 지배한 근대문명은 자연과의 단절로 치우쳤다. 인간의 가치를 절대시하며 자연을 이용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근현대의 문명인에게 보편화되었다. 자연에 대해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을 외면하는 자세는 인간사회의 운영 원리에도 투영되었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모두 인간의 권리[人權] 주장을 핵심 원리로 발전해 왔다.

인간의 권리는 문명의 핵심 요소다. 인권 없는 사회는 문명사회라 할 수 없다. 다만 문제는 인권을 인간 외의 모든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절대적-배타적인 가치로 보는 도그마에 있다. 이 도그마가 근대문명의 지속성을 제한한다. 지속성의 한계를 의식할 때, 근대문명 2백년보다 훨씬 더 긴 기간 지속했던 여러 문명으로부터 배울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모든 문명은 근대문명보다 열등했기 때문에 패퇴하고 정복당한 것이 아닌가? 근대문명보다 더 나은 문명으로 발전할 길을 찾아야 하는 이 때 더 열등했던 문명을 돌아볼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근대인의 오만의 바닥에는 근대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주축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자신감에 있다. 물질의 풍요와 평균수명의 연장 등 근대 이전에 이르지 못한 경지에 인류사회가 와 있는 것은 근대문명의 과학기술 덕분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이 환경 파괴와 핵무기의 위협 등 근대 이전보다 열악한 조건을 현대인에게 가져온 점도 생각해야 한다. 앞에 인용한 바스티아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이익에 현혹되어 보이지 않는손실을 모르는 사이에 감수해 온 것이다.

인간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근대적 가치체계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갈라 왔다. 자연과의 상호관계에 눈감고 인간의 이익 증진에 단선적으로 몰두한 과학기술 발전은 인간과 자연을 포괄하는 시스템 전체의 위험을 초래했다. 능률 위주의 발전 평가가 효과 위주로 옮겨져야 하고, 효과를 판정하는 가치체계에 전면적 반성이 필요하다.

20세기 후반 과학사를 비롯한 과학학의 발전은 과학기술의 의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버널 J. D. Bernal<역사 속의 과학 Science in History>(1954)과 토머스 쿤 T. S. Kuhn<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1962)가 이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21세기에 들어온 이제 문명 전환의 가능성을 앞에 두고 문명유산의 재검토라는 과제에 관심이 모이기 바란다. 가장 중요한 재검토 대상인 동아시아문명의 주변부에 위치한 한국과 일본 과학사학자들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장면이다.

 

 

요점은 유럽에서 발원해 19-20세기 동안 인류사회를 휩쓴 근대문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른 현상 중 오늘의 주제와 관련해서 생각할 점을 몇 가지 뽑아 놓겠습니다.

 

1. “西勢東漸”, 즉 서양 사정의 변화가 다른 곳의 사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19-20세기 동안 전개되었던 형세가 해소되고 있습니다.

 

2. 개인주의 원리에 입각한 자본주의체제의 유지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역시 개인주의 원리에 입각한 선거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근대인이 경멸감을 품고 봉건적이라고 불렀던 유기론적 질서 원리의 복원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3. 절대주권의 주체인 국가를 앞세운 세계질서의 원리가 효용성을 잃고 있습니다. 국가보다는 민족이 공동체의 틀로서 역할이 커지겠지만, 그 또한 근대 민족주의와 같은 배타성을 극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자연과의 긴장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로서 인권보다 인류사회의 총체적 득실로 관심이 옮겨갑니다.

 

 

본론: 평화통일의 전망과 그에 따르는 과제들

 

 

제목에 남의 탓을 넣었습니다. 통일처럼 민족 주체성을 강조해야 할 과업 앞에서 남의 탓 앞세우는 것이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요. 도덕적 수련을 위해서는 내 탓을 앞세우는 것이 좋지만 현실 속의 사업을 놓고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일을 놓고 반성할 것은 투철히 반성하되, 상황이 바뀔 때는 변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포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현대사를 통해 우리 민족공동체의 대응에 반성할 잘못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많은 잘못이 있었는데, 그 대부분이 외부 사정으로 촉발된 것이었습니다. 그 외부 사정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우리의 잘못된 자세가 굳어진 것도 많습니다. 그 외적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내부 투쟁에 너무 치우쳐 주체 형성에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외부 사정이 크게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정확한 이해와 판단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세계정세 변화의 네 가지 측면을 전론에서 짚었습니다. 이제 그 각각의 측면을 놓고 우리의 통일 과제에 관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치욕과 고통의 역사에서 벗어날 기회

 

개항기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한국근현대사를 정리하면서 저는 외인론(外因論)에 기운 입장을 취합니다. 어느 시기에나 착한 사람, 악한 사람이 있었고 현명한 사람, 우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백여 년 동안 착하고 현명한 사람들의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악하고 우둔한 사람들이 활개를 친 일이 많았던 것은 민족사회 외부의 형세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1945년까지는 일본의 위세가 민족사의 흐름을 수렁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이후에는 미국의 존재가 한반도 형세에 질곡으로 작용했습니다. 을사오적이 도장을 찍은 것은 일본의 압력 때문이었고 이승만이 힘을 쓴 것은 미국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함으로써 한반도를 긴장 상태에 묶어놓고 있습니다.

서세(西勢)가 가장 강한 때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였습니다. 거의 전 세계가 열강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서세의 끄트머리에 달라붙은 일본의 위세만으로도 동아시아 천하체제를 무너트리고 한반도를 넘어 중국까지 유린할 정도였지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계기로 서양의 위세가 내리막으로 접어들었지만 변화는 완만했습니다. 20세기 말까지도 미국의 패권이 당당한 것으로 보였지요.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자원과 환경 문제가 갈수록 두드러지게 부각된 것은 문명과 자연의 관계가 한계에 이른 결과였고, 서양의 위세를 위한 근거가 무너진다는 신호였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반동노선이 나온 것은 체제 운용이 어렵게 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냉전이란 이름으로 반세기를 끌어 온 두 진영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무너졌습니다. “세계경찰이란 이름으로 제시된 미국 패권의 1극체제는 신기루였습니다. 경쟁자가 보이지 않으니 유일패권처럼 보였지만, 그 기반이 무너져 있었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드러나 왔지요. 21세기 들어 중국의 부상 앞에서 미국의 모습은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정권이란 괴이한 지도부를 갖게 된 것도 미국인 대다수가 만족할 만한 밝은 전망을 누구도 제시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결과로 보입니다.

사드 배치 문제에서도 미국의 곤경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드만이 아니라 어떤 미사일방어망도 실용 가치가 없는 무기 개념입니다. 투척무기(projectile weapon)는 던지기 전에 못 던지도록 막아야 방어가 됩니다. 일단 발사된 투사체를 맞추는 데는 고정된 표적 맞추는 데와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높은 기술이 필요하고, 설령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 해도 비현실적 수준의 비용이 듭니다. 미사일방어망은 현대인의 과학 신앙을 이용해서 군수산업에 돈을 끌어들이는 야바위일 뿐입니다. [정욱식의 <사드의 모든 것>, 크레이그 아이젠드래스 등의 <미사일 디펜스 - MD, 환상을 좇는 미국의 방위전략> 참고.]

그 야바위의 대상은 한국보다도 미국 국민입니다. 지난 30년간 미국 정권이 이 야바위에 국고를 털어 넣은 것은 군수산업의 지지가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체제의 기반조건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상황에 순탄하게 적응하는 길을 틀어막으며 미국인의 삶의 질을 형편없이 악화시킨 반동노선의 대표적 정책이 이것입니다.

그런 엉터리 정책으로 국제관계까지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 사드 배치 문제입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이 정책으로 인해 일부 한국인이 아직도 갖고 있는 혈맹의식조차 크게 위축될 것이 예상됩니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일반 한국인의 대외관계 인식을 일거에 중국 쪽으로 기울게 하고 있습니다.

사드 문제를 놓고 중국이 피해자 시늉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콧노래를 부르며 표정관리에 바쁘다고 저는 봅니다. 물론 사드 배치가 이론적으로는 중국에 불리한 조치이지만 그에 비해 정치적 이득이 엄청나게 더 큰 꽃놀이패라고 보는 것입니다. -미간의 혈맹관계 약화는 약간의 군사적 부담과 비교할 수 없는 중국의 큰 이득입니다.

20세기 후반을 통해 서세의 주축 노릇을 한 미국 패권의 퇴조에 따라 한민족의 장래를 위한 자주적 결정의 공간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정책은 한반도 정세에 계속해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서 그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입니다.

 

 

2. 새로운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워싱턴에서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리는입장을 아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영향력에 묶이게 된 원래 원인은 미국의 막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의 경제력이 크게 쇠퇴하고 있고 절대적 군사력도 흔들리기 시작하는 상황까지 한국의 예속성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큰 이유가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선거민주주의, 두 측면을 담는 믿음입니다. 그중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 전부터 빨갱이로 몰려 왔습니다만, 지금은 빨갱이 소리 듣지 않고도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도록 여건도 바뀌고 연구도 축적돼 있습니다. 그 측면은 경제학자들에게 맡기고, 저는 오늘 다른 측면, 선거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선거민주주의에 관련된 문제들은 아직도 잘 부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리한 비판의식을 가진 연구자와 운동가들도 선거민주주의 강화를 통해 자본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흔히 갖고 있지요. 단기적으로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본주의와 선거민주주의가 근대문명의 특성인 개인주의의 제도적 장치로서 표리관계에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 주는, 불가분의 한 세트로 보는 겁니다.

이번 정권교체는 선거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촛불의 승리라고 저는 봅니다.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새누리당 정권의 행태 때문에 시민이 광장에 나선 것은 선거민주주의체제로부터의 일탈이었습니다. 대통령선거는 선거민주주의 형식에 따라 치러졌지만 변화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그 형식을 벗어난 시민운동이었습니다. 그 결과 훨씬 말 되는 정권이 세워진 지금도 그 정권이 국가사회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세우고 수행하는 데 선거민주주의 제도가 (특히 국회를 통해) 상당한 제약을 가할 것이 전망됩니다.

선거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살피는 데는 제가 최근 번역한 대니얼 벨의 <차이나 모델>을 권합니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유일한 절대적 정치 원리로 채택하는 데 따르는 문제들을 지적하며 민주주의와 현능주의(meritocracy)의 병용을 제안합니다. 모든 주요 공직을 임기제 선거로 선출하는 선거민주주의는 현능주의든 뭐든 다른 원리의 병용을 배제하는 성질을 가졌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의 실현마저 가로막아 왔다는 것입니다.

판웨이의 <중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모델론>도 참고할 만합니다. 그는 다수결의 원리에 아무 정치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나마 선거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소수결로 전락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런 주장들이 중국을 배경으로 활발하게 나오는 것은 중국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대안의 타당성은 차치하고, 선거민주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나 트럼프 같은 인물들이 선출되는 상황 앞에서.

또 하나 권하고 싶은 책은 악셀 호네트의 <사회주의 재발명>입니다. 사회주의 이론의 거장 호네트는 이 책에서 사회적 자유를 말합니다. 원자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개인주의를 벗어나 유기론적 세계관의 도입을 제창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또한 미래 세계에서 가치를 발휘하려면 개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전망입니다.

서세동점의 해소가 몰고 올 현상은 미국의 영향력 쇠퇴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힘에 의지해서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정치-사회-경제 구조에 변화의 필요가 함께 닥칩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근대체제를 지향해 왔습니다. 이제 그 체제 가운데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살려서 보다 안정적인 미래 체제를 빚어갈 수 있을지 체계적 탐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3. 국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선거민주주의는 근대세계에서 정권 정통성의 가장 일반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선거민주주의의 부작용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쉽게 버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국가를 절대주권의 주체로 보는 근대세계의 고정관념이 이 문제에 영향을 끼치는 점도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냉전이 끝날 때 문명의 충돌을 말한 새뮤얼 헌팅턴의 통찰력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보다 훨씬 윗길이었지요. 미국의 힘이 대표하는 근대문명의 승리를 후쿠야마가 구가할 때 헌팅턴은 근대문명의 흐름을 규정해 온 이념의 약발이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머릿속의 이념이 아니라 존재하는 현실의 대표로서 문명권들이 세계의 앞날을 견인하는 주체가 될 것을 헌팅턴은 예언했습니다.

근대적 주권국가는 이념으로 획정된 존재입니다. 국가는 문명사회에 늘 있어 온 자연스러운 존재죠. 하지만 그 형태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다양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모습의 절대주권을 가진 국가들이 지구를 쪼개 가진다는 관념은 근대세계의 특이한 현상이었고, 근대체제의 해소에 따라 이 관념도 흐려질 것입니다.

헌팅턴이 문명권을 미래 세계의 주체로 내다보면서 다른 관계 아닌 충돌을 얘기했다는 데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칠 때 충돌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관계가 또한 가능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homo economicus”로 규정하고 이해관계의 충돌만 보려는 경향이 있죠. 하나의 근대적 현상입니다. 마찬가지로 국가 간 관계도 이해관계의 충돌로만 보는 시각이 근대국가의 관념 밑에 깔려 있습니다. 국가 아닌 문명권이 관계의 주체가 되더라도 충돌의 가능성만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겠지요.

자오팅양은 <천하체계>에서 세계정치, 세계정부의 관념을 못 가진 것이 근대 정치철학의 근본적 결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동아시아의 천하관념이 세계정치의 표상이었고 그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슬람권의 움마”(이슬람의 집) 관념도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이슬람의 전통 정치사상은 우리 사회에 생소하지요. 저는 이병한의 글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 약간의 이해를 얻고 있습니다.) 세계질서 내지 세계정치에 대한 인식은 근대 이전 안정성을 이룬 어느 문명에서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근대세계에서 그 인식이 사라진 것은 지속적 안정성을 갖지 못한 근대문명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세력이 주도한 근대문명이 퇴화하고 있는 지금 단계에서 한민족 통일국가를 구상함에 있어서도 국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가 5천년이라고 하는데 민족국가의 역사는 1천년가량으로 저는 봅니다. 고려 통일을 계기로 한반도를 영역으로 하는 민족국가가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민족국가의 역사 대부분은 중국 중심의 천하체제의 한 단위로 존재했습니다. 중국의 왕조에 조공관계로 종속된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왕조에 종속된 위치가 한민족 국가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위치였다고 제가 말한다면 사대주의라고 기분 나빠할 분들도 있겠죠. 조선의 중국에 대한 사대관계에 사대주의란 말을 만들어 폄하한 것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조선의 개항을 강요한 제물포조약에서도 청일전쟁을 마무리한 시모노세키조약에서도 일본은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청나라와의 특수관계를 부정해야 조선에 마음 놓고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의도에서 사대주의란 말도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대관계는 일방적인 예속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이 명나라, 청나라와 사대관계를 맺고 있던 5백년간 중국 군대의 조선 주둔은 임진왜란 때와 청일전쟁 직전, 두 차례뿐이었지요. 저는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에서 이렇게 사대관계의 성격을 설명했습니다.

 

천하체제를 가리켜 '사대주의'라는 말이 많이 쓰여 왔는데, 이것은 천하체제의 전복을 꾀하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천하체제의 한 측면만을 악의적으로 폄훼한 것이다. '사대(事大)'는 약소국이 강대국을 대하는 원리로서 강대국이 약소국을 대하는 '자소(字小)'의 원리와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맹자>(양혜왕편)에 이 원리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이 아니고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섬길 수 없나니, 그런 까닭으로 탕임금이 갈()을 섬기고 문왕이 곤이(昆夷)를 섬긴 것이요, ()가 아니고는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길 수 없나니, 그런 까닭으로 대왕이 훈육(獯鬻)을 섬기고 구천이 오나라를 섬긴 것입니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섬김은 하늘을 기쁘게 함이요,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김은 하늘을 두려워함이니, 하늘을 기쁘게 하면 천하를 지킬 것이요, 하늘을 두려워하면 나라를 지킬 것입니다."

약육강식의 논리는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므로 강자에게도 한 순간에는 이익이 크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의 한 왕조가 어느 시점에서 이웃나라를 침략해 큰 이익을 거둘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힘을 남김없이 휘둘러 버린다면 상대방의 원한을 비롯한 많은 부담을 떠안게 된다. 힘이 조금 떨어지기만 해도 곧장 쓰러져버리게 된다. 힘의 사용을 아껴 상대방의 입장을 지켜주면서 꼭 필요한 범위의 이득만을 취해야 위험 부담 없이 유리한 관계를 오래 끌고 갈 수 있다. 그것이 "천하를 지키는" 길이다.

강자가 힘의 사용을 절제한다는 신뢰를 줄 경우 약자 입장에서도 강자와의 관계를 거부하거나 강자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모험하기보다 강자의 입장을 적정선에서 존중해 주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 된다. 그 적정선이 어느 선이냐를 놓고 수시로 갈등이 있겠지만, 벌거벗은 폭력의 세계에 비하면 훨씬 좁은 폭 안에서의 갈등이다.

 

19세기 이전 동아시아의 조공체제는 쌍무적 조약기구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다만 종주국과 번속국의 위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강자와 약자,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현실을 반영하는 중층적-유기론적 국제관계를 구축한 것이지요. 주권국가의 명목상 평등을 내걸었던 근대 국제체제가 유기론적 세계질서를 추구하는 세계정부에 접근해 가는 데 동아시아 조공체제가 중요한 모델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민족통일을 현실적 과제로 추구하려면 절대주권을 가진 근대국가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의 다른 형태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외관계만이 아니라 내부관계에서 남한 주민, 북한 주민, 해외 교민 등 오랫동안 서로 다른 국가체제에 속해 있던 여러 요소들의 원만한 통합을 위해서도 국가의 형태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세계를 지배한 원자론적 원리를 버리고 유기론적 원리를 추구하는 것을 큰 방향으로 생각합니다.

 

 

4. 평화통일을 위해 종북정신이 필요하다.

 

평화통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승만의 북진통일에 대항해서, 전쟁 아닌 방법을 통한 통일을 주장하는 말로 쓰였죠.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서 평화를 넘어 목적으로서 평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통일이 이 세상에 위험을 줄이고 평화를 늘리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통일이 아니라면 방법이 평화적이 되기도 어렵습니다. 북한의 인적-물적 자원을 남한 자본가들이 마음껏 착취하게 하는 통일이나 강대국이 되어 다른 나라들을 억압하려는 통일이라면 반대하는 세력이 없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민족통일이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되게 하려면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저는 하나의 예만 들겠습니다. 에너지 소비량입니다. 위키피디아의 “World Energy Consumption" 항목에 따르면 인류의 에너지 소비량은 1973년에서 2012년 사이에 대략 갑절로 늘어났어요. 이 소비량 급증이 인류평화에 큰 위협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에너지 소비량을 어느 수준까지 줄여야 인류문명이 어느 정도의 지속가능성을 가지게 될지는 연구가 더 필요한 주제입니다만, 최소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얼마라도 줄이기는 줄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민족통일 역시 한반도 전체의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계기가 되어야만 평화통일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의 1인당 평균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평균보다 크고 북한은 적습니다. 그렇다면 통일을 계기로 북한 주민이 남한 주민의 생활방식을 따르기보다 남한 주민이 북한 주민의 생활방식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북(從北)’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소비량 같은 기술적 문제를 놓고 종북이란 말까지 꺼내느냐고 웃으시겠지만,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방식과 가치관도 이에 따라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인권 의식에서도 빼야 할 거품이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 아닌 사회적 자유를 생각해야 한다는 악셀 호네트의 주장처럼, 인권도 개인의 절대적 인권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 안에서 상대적으로 허용되는 인류공동체의 권리로 생각을 좁히지 않는다면 인류 전체가 불행에 빠지는 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권리는 책임과 짝을 이뤄야 합니다.

큰 복권의 당첨자 중에 오히려 그로 인해 불행에 빠지는 사람이 꽤 많아서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큰 이유가 가치관의 결함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손에 넣는 것만을 행복의 조건으로 보고, 행복을 위한 더 구체적인 조건을 생각지 않기 쉽지요. 그러다 갑자기 돈이 생겼을 때 그 돈에 실린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아무 데나 함부로 휘둘러서 주변에 고통을 끼치고 그 고통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쉬운 것 아닐까요.

지난 150년간 동아시아인을 괴롭혀 온 서세동점 현상이 해소된다 해서 이제는 우리가 남을 괴롭힐 차례가 되었다고 신나 할 일이 아닙니다. 박근혜의 몰락이 정권의 교체에 그치지 않고 국가체제의 개선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근대문명의 한계점에서 우리는 패권의 교체가 아니라 세계체제의 개선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박근혜 정권이 가리고 막아 왔던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찾기 위해 바쁩니다. 마찬가지로 서양세력이 휘둘러 온 패권이 해소되고 있는 지금, 그 패권의 전횡에 가리고 막혀 온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문명사를 공부해 온 저로서는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사람들이 생각을 많이 쏟아야 한다고 봅니다. 근대문명은 사회 안의 개인도 세계 안의 국가도 원자 같은 독립된 개체로 보면서 그 개체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겼지요. 경쟁에 몰두한 개체들은 공동체의 과제들을 잊어버렸습니다. 자연을 착취(개발) 대상으로만 보는 근대인은 자연과의 관계를 인류공동체의 과제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반성할 점이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갑질을 삼가자는 얘기는 좋습니다. 그것은 상대적 존엄성입니다. 그런데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화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시스템에 속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자연을 소외시키는 태도는 결국 인간 자신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근대적 발전에 뒤진 북한인의 생활방식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전에 적은 글을 보여드립니다.

 

저성장시대에 대비하는 것은 한국 사회만의 과제가 아니다. 전 인류의 과제다. 산업혁명 이래의 고성장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이 외면하고 계속 경제성장에 집착한다면 약간의 성과는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와 80년대처럼 만병통치약의 효능을 가진 성과는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반동적 정책노선은 전 세계적 상황을 악화시키는 역할에 한국을 몰아넣어 국제사회에서 불리한 입장에 빠질 것이다. 20세기의 이코노믹 애니멀이 경멸의 대상이었다면 21세기에는 증오의 표적이 된다.

경제의 고성장은 많은 문제를 감춰준다. 약자에게도 스며 내려가기(trickle-down)’ 같은 말이 통할 수 있다. 당장 내 몫이 적어도 생존에 위협은 없고, 경제에 이렇게 활기가 있으면 언젠가는 나도, 하다못해 내 자손이라도 더 나은 입장에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저성장시대에는 약자에게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게이츠나 버핏 같은 배려 정도로 안 된다. 강자들 모두가 생활양식을 바꾸는 구체적 희생을 치러야 한다. 자유와 인권의 관념에서도 거품을 빼야 한다. 요컨대, 근대인이 경멸해 마지않던 봉건적중세인이 살아가던 방법에서 배워야 한다. 저성장시대가 요구하는 긴축은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밖에서 본 한국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지금까지 길들어 있던 낭비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해 있다. 냉난방을 갖춘 널찍한 주거와 자가용 승용차 등 선진국 중산층의 생활양식이 세계 인구 대다수에게 확산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확산의 추세가 관성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제동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파국의 충격이 클 것이다.

남한 중산층이 이런 생활양식에 접근해온 것은 최근 30년간의 일이다. 그보다 몇 배 긴 기간 동안 누려온 선진국 사람들도 있고, 이제 겨우 접근하기 시작하는 나라들도 있다. 오래 누려온 사람들은 바꾸기가 힘들고, 이제부터 누리려던 사람들은 억울하다.

긴축에 따르는 고통과 불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세계화에 경제통합만이 아니라 정치통합의 측면이 필요한 것이 이 때문이다. 자유방임은 강자의 기회를 극대화시켜주는 정책이며, 비용이 많이 드는 정책이다. 팽창의 시대에는 상당한 범위에서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긴축의 시대에는 허용되는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의 세계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330-331)

남한 사람들은 60여 년 동안 미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세계를 바라봐 왔다. 미국이 변화를 주도하던 시대에는 유효한 관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저성장시대에의 적응을 제일 힘들어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주도해 온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생활양식 바꾸기가 제일 힘든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버려야 할 때다.

긴축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긴축정책의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전기료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 상승이다. 10년 후의 파국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일 뿐 아니라 ‘1%의 특권을 당장 해소하는 데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긴축의 불가피성을 인식한다 하더라도 과연 전기료 3배 인상을 공약으로 내놓을 수 있는 정치세력이 한국에 있을까?

작금 일본의 경험에서 약간의 희망을 얻는다. 전력공급의 30%를 맡고 있다던 50여 기의 원전이 거의 다 가동을 멈춘 상태에서 일본은 돌아가고 있다. 이미 한국보다 3배나 비싼 전기료를 더 올리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원전을 갑자기 다 끄고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생산이 유지된다면 긴축의 길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밖에서 본 한국사>에서 미약한 어조로나마 또 한 가지 예측을 한 것이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전개에서 북한의 역할이 크리라는 것이다.

바닥을 친 북한 경제의 건드려지지 않은 잠재력이 21세기 초반에 어떤 모습으로 터져 나올지, 한반도가 이제부터 겪어나갈 변화에서 중추적 작용을 할 것이 기대된다.” (305)

물리학에 운동량(momentum)’이란 개념이 있다. 질량과 속도를 곱한 것으로,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운동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운동량 보존의 법칙이다. 북한이 장차 변화하기 시작하면 그 속도가 당분간은 대단히 빠를 것이다. 그 단계에서는 남한이 덩치(질량)가 크더라도 운동량은 북한 쪽이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의 우선적 기준을 북한 쪽에 두는 편이 변화를 순조롭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것도 일종의 종북주의일까? 3대 세습 논란 때 그것을 절대악으로 볼 것은 아니라는 글을 썼다가 나도 종북주의자로 몰린 일이 있는데, 사실 나는 앞으로의 남북관계 전개에서 현실적으로 종북주의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3대 세습이건 뭐건, 우리 잣대로 재단하려 들기보다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앞으로 우리도 저성장시대에 대비하려면 풍요의 꿈에 젖어 있던 지금까지의 우리 가치기준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 조정을 위해서는 긴축경제에 이골이 난 북한 주민들로부터 배울 것도 많지 않을까?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인이 만족과 위안을 얻는 대상이 인간관계에서 물질로 많이 옮겨져 왔다. 그런 가운데 인간관계에서 협력보다 경쟁의 측면이 더 두드러지게 되었다. 저성장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여러 가지겠지만, 인간관계의 협력 측면을 회복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 같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도, 남과 북 사이에도. (20124)

 

 

5. 통일을 위해 내 손으로할 일은?

 

남의 탓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근현대사를 통해 우리 민족공동체의 대응에 반성할 잘못이 많이 있었지만 그 대부분이 외부 사정으로 촉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남의 탓 할 일이 줄어 가고 있다는 전제 위에 내 손으로할 일을 생각해 봅니다.

근대화를 추구하는 동안 우리 사회는 부유하고 강한 나라들을 부러워하며 그 뒤를 따르려고 애써 왔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민족 분단도 감수했고 사회 양극화를 초래했으며, 베트남 참전처럼 이웃을 괴롭힌 일까지 있습니다. 그 결과는 헬조선입니다.

민족통일은 이 사회가 당면한 여러 과제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듦으로써 인간세상다운 인간세상을 열어가는 노력의 한 측면으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분단은 근대세계 속에서 민족사회가 처해 온 곤경의 한 측면일 뿐입니다.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인류사회 전체가 근대세계 속에서 많은 문제를 품고 살아 왔는데 그 문제들 중에는 오랫동안 겪다 보니 당연한 것, 또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있습니다. 물을 마음 놓고 먹지 못하게 된 지 수십 년인데 이제 공기도 마음 놓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는 환경 문제, 에너지 절벽을 바라보면서도 경제개발의 박차를 늦추지 못하는 자원 문제, 생산인구 감소와 복지 수요 증가 사이의 모순 등, 근대체제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인류사회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분단이라는 우리 사회의 독특한 문제는 근대 세계체제의 모순을 직시하게 해주는 열쇠일 수 있습니다. 그 열쇠를 잘 활용하는 데서 분단으로 겪은 고통의 보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분단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체념한다면 지난 150년간 겪어온 치욕과 고통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한 근대 세계체제의 한계를 넘어설 길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비장한 자세를 취해야만 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자세를 냉철한 눈으로 돌아보기만 하면 나아갈 길이 떠오를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난 반년간의 촛불운동이 이런 낙관을 뒷받침해 줍니다. 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어떤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내다보기 힘들었지요. 그러나 이제 들어선 문재인 정권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안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좋은 시작입니다.

투표가 진행될 때까지도 저는 문재인 정권의 성격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막상 나타난 모습을 보고 예상치 못했던 큰 신뢰감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경쟁과 대립의 정치를 벗어나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바라보는 자세가 진행되고 있는 문명 전환의 방향에 잘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용지식인으로 나서는 제 입장을 적나라하게 보여드리기 위해 며칠 전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취임식 날 아침에 아내가 tv 보라 해서 보니... 각 당 지도부 순방하는 모습이 나오더군. 아내는 한국 와서 십여 년간 정치라면 "너 죽고 나 살기" 살벌한 경치밖에 못 봐서 넌덜머리를 내는 터인데, 새 대통령이 겸손한 태도로 다니는 걸 보며 저럴 수도 있었나?” 대단히 좋아하는군.

수행원도 별로 없이 적진(?) 중에 들어가 앉아 천연스레 담소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꽤 놀라고 감동했어. 두어 달 전 자네 찾아갔을 때 그분 이야기를 잠깐 나눴지. 그때 내 생각은, 아무리 품성이 훌륭한 사람이라도 과도한 긴장 상태를 오래 겪으면 품성을 지키기 힘들다는 일반론이었고, 단편적인 모습이 그 생각에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고 있었지. 그런데 속이 복잡한 상대들을 찾아다니며 자기 참모들이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니, 정말 특별한 품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 性善說을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체현하는 사람? 5년 전 이정우 교수가 이 사람은 정말 도와줄 만한 사람이라고 열 올리던 까닭을 비로소 이해할 것 같네.

다음 주(20) 강연 하나를 준비 중인데("분단은 남의 탓, 통일은 내손으로") 그 중의 한 대목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

헌팅턴이 문명권을 미래 세계의 주체로 내다보면서 다른 관계 아닌 충돌을 얘기했다는 데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칠 때 충돌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관계가 또한 가능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homo economicus”로 규정하고 이해관계의 충돌만 보려는 경향이 있죠. 하나의 근대적 현상이라고 저는 봅니다. 마찬가지로 국가 간 관계도 이해관계의 충돌로만 보는 시각이 근대국가의 관념 밑에 깔려 있습니다. 국가 아닌 문명권이 관계의 주체가 되더라도 충돌의 가능성만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겠지요.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세계는 자원 공급의 무한한 확장에 대한 믿음 위에서 펼쳐졌기 때문에 과잉경쟁의 낭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 2차대전 후 그 믿음의 근거가 사라지는데도 경쟁과 대립의 체제가 계속되어 온 것은 기득권세력의 집착 때문이었다는 게 내 생각이야. 구성원들 사이의 경쟁-대립을 억제하고 협력을 늘릴 필요가 국가 차원에서도 세계 차원에서도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고. "順天者하고 逆天者한다"는 이치가 그런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는 거지. 그런 생각 위에서 새 대통령의 유연한 모습을 보니 이 사회가 횡재를 했다는 기분이 드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5년 전에 쓴 글 하나를 밑에 붙이니 틈 날 때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종북의 자세를 죄악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담은 글인데, <프레시안>에 올릴 당시에 엄청난 폭격을 당했지요. 그때에 비해 지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읽어주실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해서 다시 내놓습니다.

 

 

가짜 종북주의자는 가라!

 

1. 천안함 침몰 원인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

 

지난 주 백분토론에서 진중권 교수가 이런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은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핵 개발도 좋고 3대 세습도 괜찮다고까지 하는 건 좀...” 김진 논설위원이 여기 화답하는데, 말도 안 되는 행태의 사례를 하나 더 붙인다. 천안함 북침설을 부정하는 것.

김진에게는 북한의 천안함 격침이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인 모양이다.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 자격도 지성인의 자격도 의심스럽다고 보는 것 같다. 정부 발표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에게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고 나처럼 그 발표에 반대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김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천안함 관계 정부 주장을 맹신하는 김진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언론에 공개된 그 숱한 반증을 보고도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김진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한국 반공주의의 역사 때문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무조건 최악의 생각만 하라는 교육과 선전에 수십 년 동안 세뇌당해 오지 않았는가. 지금 정부의 천안함 주장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국민이 60퍼센트가 넘는 것은 이 사회가 세뇌상태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상당수 있고, 그 사람들 입맛에 맞추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 현상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계속 줄어들고 있는 현상이니까. 그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핵 개발이나 3대 세습을 말도 안 되는 짓으로 여기는 진중권의 관점이다. 이 관점에는 이 사회에서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많이 동조하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것이다.

핵 개발은 평화를 위협하는 짓이고 3대 세습은 민주주의 원리에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짓으로 보인다. 그래서 남북관계의 발전을 바라는 사람들도 그 두 가지만은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2. “사람 행동은 형편 따라가는 거란다.”

 

연변의 어느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조선족 작가 L씨의 북한 친척 중 연변에 자주 출장 온 분이 있다고 했다. 상당 수준의 관직이나 당직에 있었던 모양이다.

1956년생의 L씨가 어렸을 때는 이 아저씨가 우리 관념으로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먹을 것, 입을 것, 아이들 위한 것, 어른들 위한 것, 늘 뭔가 잔뜩 가져오는 사람이었다. 1970년대까지, 북한이 중국보다 사정이 좋았을 때의 기억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이 아저씨가 가져오는 사람으로부터 가져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출장 오면 L씨 집에 묵는데, 우선 가져오는 것이 차츰 없어졌다고 한다. 뭔가 나름대로 선물을 가져오기야 하겠지만 풍족해지는 중국 형편에 비추어 눈에 띄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문제는 이 아저씨 다녀가고 나면 값나가는 물건이 하나씩 둘씩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이 사실이 의문의 여지없이 분명해졌을 때 화를 내는 L씨에게 그 어머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람 행동은 형편 따라가는 거란다. 걔가 착한 사람이란 건 오래 겪어봐서 알지 않냐? 우리가 참아줄 수 있는 건 참아줘야 한다.”

 

3. 이웃의 행동을 바꾸는 외과적 방법과 내과적 방법

 

그렇다. 사람 행동에는 형편을 따라가는 면이 있다. 누구나 형편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의로운 사람이라면 어느 범위의 나쁜 짓은 어떤 형편에서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다. 공자가 말한 불인지심(不忍之心), 말도 안 되는 짓이다. 이 의지가 사람의 도덕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높은 도덕성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그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너무 높은 도덕성을 바라보는 사람은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고 실패할 위험이 크다. 더군다나 자기 기준을 남에게까지 요구했다가 실패할 경우 악인보다도 더 추한 위선자로 전락할 수 있다. 형편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내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일은 극히 조심해야 한다.

북한이 핵 개발을 그만두고 국가권력 세습 체제에서 벗어나기 바랄 때 그 행위를 금지시키는 외과적 방법과 그런 행위를 해야만 하는 형편을 바꿔주는 내과적 방법이 있다. 형편이 괜찮은데도 우리가 싫어하는 짓을 굳이 하려 든다면 외과적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북한의 형편이 대단히 나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형편을 나쁘게 만드는 데 남한 정부도 한 몫 해 왔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연평도 포격 같은 짓은 하면 안 된다. 대차대조표가 단순한 그런 행위의 비판에는 조심스럽게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다. 핵 개발은 훨씬 복잡한 함의를 품는 일이다. 그리고 국가권력 세습은 그보다도 더 의미가 복잡한 일이다.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채 우리 기준만으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4. 되살아나고 있는 민족정체성의 중요성

 

북한을 배려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은 괜찮지만, 그런 사람들도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진중권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생각을 달리한다.

첫째, 북한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사람(종북주의자?)이 우리 사회에 조금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진중권의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남북관계에는 민족정체성의 문제가 걸려 있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나와 남의 관계라면 남북관계는 잃어버린 반쪽끼리의 관계요, 대아(大我)와 소아(小我)의 관계다. 전문가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는 일이요, 민족을 아끼는 마음 가진 사람 모두에게 직접적인 자기 일이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도 나와 남의 관계를 넘어서는 층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비교해서 하는 얘기다.)

민족과 국가의 힘과 뜻이 줄어드는 세계화의 시대에 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한 노력이 민족정체성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근년 내 글쓰기의 주된 목적이 이 주장의 반박에 있다. 원자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개인의 파편화가 현대인, 특히 한국인의 대다수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 원인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세계화의 주된 흐름이 개인의 파편화를 더욱 심화하는 경제적 세계화에 쏠려 있다는 것이 잘못된 일이다. 세계화 자체는 시대의 흐름인데, 경제적 세계화보다 정치적 세계화에 비중을 두어야 현대인의 불행을 줄이고 인류문명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을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것이 정치적 세계화다.

정치적 세계화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정체성이 확실해야 한다. 파편화된 개인이 강자의 횡포 앞에 방치되는 일을 막는 전 세계적 네트워크, 즉 세계정부의 기반이 그 위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불화와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민족은 정치적 세계화에 공헌할 수도 없고 그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민족문제 해결이 경제성장이나 민주주의 발전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다.

 

5. 남한이 북한을 흉보고 동정할 주제가 되나?

 

둘째, 핵 개발과 3대 세습 같은 일은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진중권의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사정을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앎(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공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북한 사정을 잘 모르더라도 핵 개발이나 3대 세습이 나쁜 짓임은 분명한 것 아니냐고 진중권은 생각하는 것 같다. 역사를 공부한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일 수는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나쁜 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핵무기는 20세기 중엽에야 나타난 것이니 역사학도가 특별히 뭐라고 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권력의 혈연 세습은 인류사회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민주공화제가 군주제를 널리 대치한 것은 20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민주정치다운 민주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곳은 지금도 많지 않다.

남한에서도 핵 개발과 1인 종신독재를 시도한 일이 있었다. 1970년대의 일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남한 형편에서는 그런 일이 말도 안 되는 짓이 되어 있다. 지금 북한 형편은 어떤 것일까? 지금의 남한 형편보다는 40년 전 남한 형편에 가까운 것 같다.

남한의 민주정치 역시 아직도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남한 사람이 북한 독재정치를 흉보거나 동정할 주제가 되는지 생각할 점이 많다. 민주공화제가 혈연 세습보다 좋은 것이라고 우리가 진정 믿는다면 북한에서도 민주정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도울 길을 찾아야지, 그런 짓 하면 안 된다고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오만은 악인만의 것이 아니다. 착한 사람의 오만이 더 무섭다. 북한을 호의적으로 대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도 제국주의시대의 백인의 짐(white man's burden)’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식민 지배를 확장하면서 문명을 전해준다고 자부한 것과 같은 마음으로 민주주의의 전파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6. 명분을 버리고 음모에만 매달리는 종북주의자

 

통합진보당 사태 앞에 당권파=NL=종북주의의 등식을 그리며 종북주의를 척결하면 폭력과 혼란의 성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종북주의는 폭력과 혼란이 낳은 결과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북한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반공주의 관점도 긍정적으로만 보는 종북주의 관점도 똑같이 정보 차단의 결과다. ‘이 없으니 믿음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종북주의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있다. 비현실적인 믿음이 일어나는 것은 정보 부족 때문이고, 비밀과 음모의 조직력이 득세하는 것은 불합리한 처벌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비밀과 음모를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밝은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큰 조직을 이룰 기회가 별로 없어서 각자 취미생활 차원에서 성향을 드러낼 뿐이다. 그런데 억압과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조직 활동을 벌일 명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작고 비밀스러운 조직에는 명분 자체를 아끼기보다 비밀과 음모를 좋아해서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이따금 180전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명분보다 음모를 좋아하던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를 보며 우리 사회가 많이 밝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한 종북은 비밀조직을 위한 강력한 명분으로 남아있다. ‘민족 대의사회 정의를 포괄하는 당당한 명분이면서 제도적 억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권파의 행태를 보면 명분은 간 데 없고 음모만 판을 친다. 원칙과 상식을 무시한 그 희한한 꼼수들은 민족 대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런 비밀조직을 통하지 않고도 종북의 길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만큼 사회가 밝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어두움을 좋아하는 자들만이 비밀조직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내가 종북주의자임을 당당히 밝힌다. 잡혀갈 걱정 않으면서.

 

7. 우리는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

 

종북(從北)’이란 표현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친북(親北)’은 일반 국제관계에 쓰이는 말이라서 그와 차원이 다른 남북관계에 쓰기가 어색하다. 고르라면 중북(重北)’이라 하고 싶지만 번거롭게 그럴 것 있나. 좋은 뜻으로는 아니더라도 종북이 많이 쓰여 온 말이고 글자의 뜻 자체가 맞는 것이니 내 주장을 종북주의로 표현해 둔다.

내 주장의 요점은 이렇다. (1) 분단 극복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제다. (2) 분단 극복은 당사자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 (3) 분단 극복과 아울러 해결할 과제들이 남한보다 북한에 많다. 고립상태 때문이다. (4) 따라서 분단 극복의 구체적 방법은 남한보다 북한 사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강구되어야 한다.

(2), (3), (4)에 대해서는 독자 대부분이 쉽게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1)에 대해, 중요하다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종북주의의 실질적 의미가 이 차이에 걸려있다.

분단 극복의 필요성을 매우 크고 강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한다. 사치를 포기하는 경제적 양보만이 아니라 사회보장의 약화와 자유의 축소 등 사회적 정치적 양보도 생각할 수 있다. 종래의 종북주의자들이 무조건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내 주장은 아무것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서 일단 벗어나자는 것이다.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절에서 민족문제 해결의 시대적 중요성을 내 나름대로 간략하게 제시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이유로 더 큰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청하는 것은 분단 극복의 필요성을 지금까지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통일을 이념의 문제 아닌 현실의 문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끝으로 종북주의깃발을 지켜온 분들에게 한 마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깃발을 지켜 온 공로를 치하한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있을 수도 없는 북한 지령이 있는 척하면서 당신들은 명분을 등졌다.(지령이 있었다면 북한 한 모퉁이의 음모집단이 보낸 것이겠지.) ‘종북의 명분과 진보의 이름을 이용 대상으로만 여긴 당신들은 국가를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는 극우세력과 적대적 공생관계로 야합했다. 이제 깃발을 내려놓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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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