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대세계의 주류 자본주의체제

 

The scientific revolution is a concept used to explain the emergence of modern science during the early modern period, when developments in mathematics, physics, astronomy, biology (including human anatomy) and chemistry transformed the views of society about nature. The scientific revolution took place in Europe towards the end of the Renaissance period and continued through the late 18th century, influencing the intellectual social movement known as the Enlightenment. While its dates are debated, the publication in 1543 of Nicolaus Copernicus's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On the Revolutions of the Heavenly Spheres) is often cited as marking the beginning of the scientific revolution. (from <Wikipedia>, "Scientific Revolution")

 

근대과학을 만들어낸 계기가 과학혁명이었다. 위 설명에서 보는 것처럼 과학혁명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시작된 것이다. “과학하면 자연과학을 떠올리는 통념도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Social science is a major category of academic disciplines, concerned with society and the relationships among individuals within a society. It in turn has many branches, each of which is considered a "social science". The main social sciences include economics, political science, human geography, demography and sociology. In a wider sense, social science also includes some fields in the humanities such as anthropology, archaeology, psychology, jurisprudence, history, and linguistics. The term is also sometimes used to refer specifically to the field of sociology, the original 'science of society', established in the 19th century.

Positivist social scientists use methods resembling those of the natural sciences as tools for understanding society, and so define science in its stricter modern sense. Interpretivist social scientists, by contrast, may use social critique or symbolic interpretation rather than constructing empirically falsifiable theories, and thus treat science in its broader sense. In modern academic practice, researchers are often eclectic, using multiple methodologies (for instance, by combining the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researches). The term social research has also acquired a degree of autonomy as practitioners from various disciplines share in its aims and methods. (from <Wikipedia>, "Social Science")

 

자연과학이 종래의 종교를 대신할 만한 새로운 권위를 빚어내는 데 편승해서 사회과학이 생겨났다. 실증적(positivist) 사회과학이건 해석적(interpretivist) 사회과학이건 과학의 의미를 넓게 잡느냐 좁게 잡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연과학의 원리를 원용한다는 점에서는 다 마찬가지다. 사회과학의 출발점을 18세기 중엽 디데로(1713-84)의 백과사전이나 루소(1712-1778)의 정치철학까지 올려 잡기도 하지만 체계적 사회과학의 본격적 출발을 오귀스트 콩트(1798-1857)의 실증적 방법론에서 찾는 것은 초창기 사회과학이 당시 자연과학의 실증적 성격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의 해석적 측면은 20세기에 들어와 확충된 것이다.

이번 고찰은 21세기 들어 사회과학의 성격 변화 조짐을 살피는 것이다. 사회과학 연구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 운용방법의 탐구에 있다. 문명 발생 이전 정글상태에서 지구상 인류의 개체수는 1천만 이내였을 것으로 고생물학자들이 추정한다. 1천배에 이른 것은 문명 발달 덕분인데, 문명의 공헌은 식량 획득기술과 사회 운용기술 양쪽으로 작용했다. 자연과학의 발달이 식량 획득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옴에 따라 세계 인구가 지난 200년간 약 20배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른 사회 운용기술의 수요가 사회과학의 발달을 뒷받침해 왔다.

식량 획득기술이 인간사회와 외부 사이의 관계를 바꿈으로써 발전해 온 것이라면 사회 운용기술은 인간사회 내부의 조직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19세기 들어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 조직방법의 변화는 사회 유동성 증가를 주축으로 이뤄졌고, 따라서 이 무렵에 형성된 사회과학은 개인주의 인간관을 바탕에 깔게 되었다. 자본주의를 뒷받침한 (고전적) 자유주의도, 이에 대항한 공산주의도 개인주의 인간관에 기울어졌다.

개인주의 인간관은 19세기 초 돌턴이 발표한 원자론에서 영감을 얻었다. 물질세계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a-tom) 원자로 구성된 것처럼 인간사회도 개인을 기본 단위로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물리학계에서는 19세기가 끝나기 전에 소립자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원자론이 폐기된 반면 원자론의 유비(analogy)에 근거를 둔 사회과학계의 개인주의 인간관은 그 후에도 오래 지속되었다. 제도와 관습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인간관에 입각한 사회 조직방법은 19세기 중엽부터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쟁을 옹호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공산주의와 제도주의 원리가 제시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강화는 큰 견제 없이 진행되어 20세기 전반부에는 자본주의 세력끼리의 대결로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기에 이른다.

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체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주축으로 유지되면서 두 가지 수정을 겪었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진영이 형성되었고,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자유방임의 극한적 자유주의를 완화한 착근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가 주류가 되었다.

산업혁명 진행에 따른 생산력 향상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다가 19세기 후반 들어 속도가 떨어지면서 지속가능성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는 자본주의 세력 사이의 경쟁 격화가 제국주의의 형태로 나타났고, 20세기 들어서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이 공산주의 깃발을 들고 일어남으로써 냉전체제를 불러왔다. 여기까지는 산업문명의 지속가능성 문제가 피상적으로 드러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20세기 후반 들어 인류문명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났다.

카슨의 <침묵의 봄>(1962)과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1973)를 계기로 환경과 자원 문제가 일반인들에게까지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의 오일쇼크를 통해 자원의 한계가 현실정치의 문제로 제기되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유지에 필요한 수준의 성장이 어렵게 된 상황에서 자본주의 진영의 주류가 신자유주의로 돌아선 것은 자본주의체제를 오히려 확대-강화함으로써 난국을 돌파하려는 반동적 정책이었다. “반동적이라 함은 체제 주류집단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지속가능성을 더욱 급속도로 악화시키는 방향이었다는 뜻이다.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의 힘 앞에 공산권이 붕괴되어 상당량의 미개발 자원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었지만 체제의 지속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파탄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래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헤게모니국가인 미국의 힘이 떨어져 안으로는 질서 유지가 어렵고 밖으로는 세계체제를 더 이상 끌고 나가기 어렵게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이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2. 개인주의 인간관의 퇴조 가능성

 

20세기 후반 사회과학 연구에서 미국 학계가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배경 위에서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의 원리에 입각한 연구가 지배적인 것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런 측면을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한 것이 공산진영 붕괴로 도취감이 극도에 달했을 때 나온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1992)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1996)이라고 할 수 있다.

후쿠야마의 책을 놓고는 그것을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겠다. 나도 그 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지만 널리 주목받은 담론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학술계의 성향을 반영하는 의미는 살필 필요가 있다. (2004년 아메리칸엔터프라이즈 연구소 연례 만찬에서 딕 체니가 미국 헤게모니의 단극체제 출범을 선언했을 때 후쿠야마는 속으로 내 친구들 모두가 현실을 잃어버렸구나.(All of my friends had taken leave of reality.)” 생각했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그러나 후쿠야마가 진보의 완성이라는 이념에 집착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자신이 애초에 현실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후쿠야마와 헌팅턴의 관점을 세세히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불과 20년 전 세상을 휩쓸던 두 사람의 담론을 지금 와서는 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의 방향이 달라진 데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최근에 대니얼 벨의 <The China Model>을 번역하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 방향의 변화를 생각해 본다.(저자를 같은 이름의 사회학자로 착각하지 말 것. 캐나다인으로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하고 최근 십여 년간 칭화대학 정치철학 교수로 재직해 온 사람이다.) “차이나 모델이라면 경제모델로 대개 고찰되어 왔는데 저자는 정치모델로서의 중국체제를 논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국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말 것을 제안한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기준은 최고지도자를 직접선거로 뽑느냐 여부에 있는데 중국에서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밀실에서 의논해서 뽑는다. 이것을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능력주의(meritocracy)’ 원리로 저자는 보고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냉정한 평가를 꾀한다. 그 결과 민주주의와 능력주의 원리의 적절한 배합이 중국의 필요에 적합한 길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나아가 민주주의만을 유일한 원리로 생각해 온 사회에서도 능력주의의 배합을 고려할 여지가 많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차이나 모델이다.

저자는 자유민주주의가 최고의 정치원리라고 하는 통념 내지 적어도 가장 덜 나쁜 정치제도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해체하기 위해 이 책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 미국에서 대통령 역할에 매우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 당선되고 한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의 놀라운 수준의 일탈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 덕분(?)에 저자의 노력은 쉽게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를 떠받들어 온 종래의 통념과 고정관념이 어떤 근거 위에 서 있었던 것인지 돌아보기도 쉬울 것이다.

벨이 제시하는 능력주의민주주의와 비교하면, 정치의 주체를 어떻게 파악하느냐 하는 데 우선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주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이다. 특히 선거에서 투표의 주체가 개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직접투표, 비밀투표 등 선거의 원칙이 목표를 둔다. 반면 능력주의에서는 정치의 출발점에서는 개인이 주체가 되지만, 단계의 진행에 따라 형성되는 집단이 주체의 역할을 넘겨받는다. 중국에서 그 정점에 위치한 집단은 국가 최고지도부를 선출하는 수십 명으로 구성된 중국공산당 정치국이다. 그런 집단에서 트럼프나 박근혜 같은 최고지도자를 뽑을 가능성이 극히 적으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인정할 것이다.

정치의 주체에 앞서 경제의 주체가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많은 각도에서 지적되어 왔다. 여러 형태의 조합 운동은 그 지적에 따른 결과의 일부다. 경제 방면에 지식이 적은 나로서는 앞세워 논할 능력이 없지만, 경제적 개인주의에 대한 반성이 보다 강고한 정치적 개인주의에 의해 억제되어 왔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성시하다시피 해 온 정치적 개인주의가 이제 물러서기 시작하는 데 따라 개인주의의 전반적 퇴조가 급속히 진행될 가능성을 바라보게 되었다.

 

 

3. 학문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세계속에서 형성되고 발전해 온 사회과학이 근대세계의 통념에 지배를 받아 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주변적 현상에 그치고 사회과학 여러 분야의 주류는 근대 세계체제의 원리를 지키는 데 복무해 왔다. 그런 추세의 단적인 사례 하나를 기회비용개념의 형성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회비용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비저(1851-1926)1914년에 제시한 개념이다. 그런데 그가 원용한 근거 하나가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1801-1850)1848년 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2010)에 이에 관해 쓴 대목 하나를 옮겨놓는다.

 

경제학 언저리에서 더러 인용되는 "깨진 유리창" 이야기가 있다. 어렴풋이 알던 이야기를 이제 조사해 보니 프레데리크 바스티아의 1848년 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Ce qu'on voit et ce qu'on ne voit pas)"에 나온 것이라 한다.

빵집의 유리창을 주인 아들이 실수로 깨뜨렸을 때, 새 유리를 끼우기 위해 돈을 내야 할 주인이 마음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사회 전체를 봐서는 나쁜 일이 아니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유리가게 주인에게 일거리가 생겨 수입을 얻고, 그가 그 돈을 다시 소비하고, 경제의 활성화에 보탬이 되는 행위가 이로부터 연쇄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바스티아는 이런 관점이 "보이는 것"에만 얽매여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는 오류라고 지적한다. 유리가 안 깨졌으면 빵집 주인이 유리값으로 쓸 돈을 뭐든 다른 곳에 써서 어차피 비슷한 경제 활성화 현상을 일으켰을 것 아니냐는 말이다. 유리가게 주인이 실제로 번 돈은 빵집 주인이 쓴 돈보다 작을 수밖에 없으니, 그 손실이 사회 전체에게는 의미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가 말한 "보이지 않는 것"이 그 후의 경제학에서는 '기회 비용'이란 개념으로 채택되었다.

바스티아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경제 활성화를 절대시하는 풍조는 계속되고, 오히려 더 확대되었다. 20세기 후반에는 '군사적 케인스주의(Military Keynesianism)'라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군비 증강에 경제 활성화의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1930년대 나치 독일과 1980년대 미국의 상황을 예로 든다.

 

바스티아가 제시한 개념이 비저에 의해 경제학계에 채택되기까지 66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놀랍다. 그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깨진 유리창우화가 19세기 후반 내내 횡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스티아가 제기한 개념이 경제학계에서 무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생산력의 급속한 확대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라며 생산되는 제품만 보고 소진되는 자원은 쳐다보지 않는 세상이었다. 자원 획득 경쟁이 한계에 부딪쳐 세계대전이 일어날 상황에 이르러서야 보이지 않는 것에 경제학계가 눈을 돌린 것이다.

20세기 내내 사회과학은, 적어도 그 주류는, 자본주의체제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학문, 특히 사회과학의 사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명우가 <사회학의 쓸모>(지그문트 바우만 외 지음)에 붙인 역자 후기에서 그런 인식을 알아볼 수 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쓸모없다고 박대당하고 있는 철학을 슬픈 학문이라고 불렀다. 사회학 역시 철학과 더불어 또 하나의 슬픈 학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도르노는 슬픈 학문의 마지막 희망을 철학이 방법론으로 변질된 이후 지성의 냉대를 받거나 자의적 경구에 머물다가 끝내는 잊히게 된 영역, 올바른 삶의 이론을 회복하는 데서 찾았다. 철학만큼이나 슬픈 학문인 사회학의 마지막 비상구 역시 거기에 있다.

제도화된 사회학은 방법론적 정교화에 몰입한 나머지 질문의 능력을 상실했다. 사회학적 질문은 질문을 위한 질문이 아니며, 사회학적 연구의 최종 목적지는 계량화된 연구 실적이 아니다. 질문을 위한 질문, 연구를 위한 연구와 같은 동어반복적 폐쇄회로의 저편에 놓여 있는, ‘올바른 삶을 위해 던지는 사회에 대한 질문, 사회학은 그러한 질문에 내재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질문의 힘을 잃어버린 사회학은 주어진 현재에 존재하는 사실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무엇이 없어야 하고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상상을 상실했다. ‘좋은 삶좋은 사회에 대한 상상을 키우는 질문의 힘을 잃어버린 사회학은 그저 세간의 눈으로는 쓸모없어 보인다.

 

질문의 힘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서양에서 이라는 뜻의 “science”란 이름으로 조직된 지적 활동체계를 옮겨오면서 묻는다는 뜻을 담은 學問이란 말을 쓴 것은 한자문명권의 지적 전통이 작용한 결과다. 자로가 ()”에 대해 물을 때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앎(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대답했다. 사실의 인지라는 행위 차원의 앎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할 때 도덕 차원의 앎이 세워진다는 뜻이다. 행위 차원의 앎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묻는 자세를 한 시도 거둘 수 없다.

아도르노와 노명우가 탄식한 것은 학문이 도덕 차원의 궁극적 앎을 외면하고 체제에 복무하는 방법론으로 전락하는 추세였다. 그런 탄식은 찾아보면 근대세계의 구석구석에서 이어져 온 것인데 근래 들어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한 것이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근대세계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생계를 보장받은 것이 바로 방법론으로 복무하는 역할 덕분 아니었는가. 그런데 과연 그 역할이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인지 널리 반성을 요구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4. 근대국가 이후의 사회과학

 

2차 세계대전 이후 종래 식민지들의 독립에 따라 지금은 모든 인간이 약 200개의 국가 중 하나에 속해 있는 상황이 되었다. “국가라 함은 베스트팔렌 주권 개념에 입각한 국민국가를 말하는 것이다. 영토 내의 모든 국민에게 배타적 지배력을 보유하는 국민국가는 19세기 중 유럽에서 표준적인 국가 형태로 자리 잡고, 유럽의 힘에 의해 세계로 전파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슬람세계의 칼리프 체제와 동아시아의 천하 체제가 해체되었다.

정치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여러 분야 연구는 20세기 내내 베스트팔렌 국제체제를 표준으로 수행되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는 국민국가의 의미에 대한 회의감이 늘어나고 있다. 회의감 확산의 한 축은 유럽연합이다. 냉전기의 유럽경제공동체(EEC)를 모태로 냉전 후(1993) 결성된 EU는 가입국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단일 통화와 단일 시민권을 운용하는 초()국가의 성격으로 자라났다. 종래의 국민국가 모델을 준용하면서도 새로운 국가체제를 추구해 나가는 움직임이다. 최근의 브렉시트 사태는 재래식 국민국가와 새로운 초국가의 성격 충돌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회의감 확산의 또 하나 축은 이슬람국가(IS)를 둘러싸고 나타난다. 20세기 초에 칼리프 체제가 무너진 후 오스만제국은 수십 개 국민국가로 나뉘어졌는데, 그 대부분이 국가 기능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가 21세기로 들어오면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파탄을 드러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기존 국가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이 IS로 모이면서 칼리프 체제의 복원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백 년 전 칼리프 체제의 해체를 이슬람세계 몰락의 상징으로 부각시키면서 침략자에 대한 저항을 호소하는 이 운동은 전략적 가치를 넘어 이슬람세계의 정치적 재조직 노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칼리프 체제의 성격은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 1><프레시안>에 연재 중인 글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데, 이슬람세계의 최고지도자 칼리프에게 각지의 군주들이 복속하는 형태가 황제 중심의 동아시아 천하 체제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한다.)

백 년 전의 정복자였고 지금도 우월한 정치경제적 여건을 누리고 있는 유럽과 백 년 전의 피정복자였고 지금도 불리한 여건에 빠져 있는 이슬람세계 양쪽에서 모두 국민국가를 넘어서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국민국가는 지속가능성을 가진 정치체제가 못 되고 19~20세기의 상황에서만 유효했던 모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가 개개인으로서의 국민을 파악하는 국민국가의 원리가 원자론의 틀에 묶여 국가사회의 유기체적 속성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도 생각된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담론이 중국의 한 철학자에게서 나왔다. 자오팅양(趙汀陽)<천하체계>에서 이런 이야기를 내놓았다.

 

중국의 정치철학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정치적 세계관, 즉 내가 말한 천하체계의 이론을 창조하려고 했다. 이것의 이론의 틀과 방법론은 서양의 정치철학과 매우 다르다. 먼저 이론의 틀에서 살펴보면 중국의 정치철학은 천하를 가장 높은 단계에 위치한 정치 분석의 단위로 간주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딴 것에 앞서는 분석의 단위로 간주했다. 이것은 국가의 정치 문제를 천하의 정치 문제에 종속시켜 이해하려고 한 것이자 천하의 정치 문제는 국가의 정치 문제가 근거하는 것임을 의미했다. (29-30)

 

천하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한 뒤에, 국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그에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 중국인의 표준적 태도였던 것이다. 반면 근대 서양의 정치학은 국가 내의 정치현상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국가 간의 현상에 대해서는 국제이론을 적용했지만, 국제관계의 정치적 가치는 종속적인 위치에 그친다. 예컨대 기후, 환경 같은 세계적 문제에 대한 각국의 태도는 국내 문제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철학의 이념이 없는 곳은 반드시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다. 서양의 정치철학이 주도하는 세계는 반드시 혼란스러운 세계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오늘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제도가 있고 관리가 있고 질서가 있는 세계는 아직도 존재하지 않지만, 지리나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세계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황무지가 되거나 멋대로 약탈하고 쟁탈할 수 있는 공공 자원이 되거나 정복을 일삼는 전쟁터가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난제이다. 즉 전체적으로 무질서한 세계이자 정치적 의미도 없는 세계는 단지 폭력이 주도하는 세계일 뿐이다. (...) 한 마디로 말해서 세계는 세계가 되지 못한다. 마치 국가는 국가 제도 때문에 국가가 되는 것처럼 세계는 세계 제도 때문에 세계가 되는 것이다. (31-32)

 

국민국가가 표준적 국가 형태로 부각되던 2백 년 전과 지금의 상황에는 차이가 많다. 19세기 유럽인에게 유럽 밖의 세계는 (그 주민까지 포함해서) 착취 대상으로서의 자연자원이었다. 경쟁은 유럽 내에서만 일어났고, 그 경쟁에 유리한 정치조직이 국민국가였다. 지금은 전 인류가 지구촌의 구성원이고, 지구를 잘 관리할 책임과 지구촌 내의 질서를 잘 운용할 필요를 모두가 나눠 갖고 있다. 국민국가는 그 책임과 필요에 적합한 형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자오팅양은 이렇게도 말한다.

 

세계를 책임지는 것은 단지 자신의 국가에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론에서 중국 철학의 관점이고 실천에서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다. 즉 무엇보다도 먼저 천하를 정치/경제적 이익에 관한 분석 단위로 삼아서 천하로부터 세계를 이해하는 것, 세계를 사유의 단위로 삼아 문제를 분석하여 서양의 민족/국가의 사유 방식을 뛰어넘는 것이며, 세계를 책임지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아 새로운 세계 이념과 세계 제도를 창조하는 것이다. 세계 이념과 세계 제도는 역사적으로 줄곧 결여되었던 이 세계의 가치관이자 질서였다. 일찍이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과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는 지금까지 모두 국가 이념만 존재했다. (...) 따라서 영국과 미국의 세계 사유는 단지 특수한 자신의 가치관을 널리 보급하여 보편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왜 타자는 생각할 만한 가치도 없는지를 증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근본적으로 합법성을 상실했다. (12-13)

 

이 관점은 잘 알려져 있는 <맹자>의 한 대목에도 나타나 있는 것이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선생께서 천리를 머다 않고 오셨으니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지신 것이겠지요.” 할 때 맹자가 임금께서는 왜 꼭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어질음[]과 옳음[]이 있을 따름입니다.” 대답했다는 장면이다.

다른 대목에는 맹자에게 스승 자사가 정치의 궁극적 목적이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 있으며 어질음과 옳음은 그 수단이라고 일러주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도 맹자가 양혜왕에게는 왜 이로움을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양혜왕이 말한 이익이 천하의 이익이 아닌 위나라의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사익(私益)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공익(公益)을 해칠 수 있다. 맹자는 위나라의 국익(國益)도 사익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 것이다.

자오팅양은 중국을 비판한’[檢討中國] 지난 백년을 넘어 중국을 다시 생각하는’[重思中國] 긍정적인 반성을 통해 중국을 다시 세우는’[重構中國] 길로 나설 것을 제안한다. 나는 이것을 지금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학문적 요구에 대한 반응의 하나로 본다. 국민국가의 틀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라는 요구다. 다른 곳에서도 같은 요구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이 이어져 나올 것을 기대한다.

문명 발생 이래 지속성을 가진 거대문명 안에서는 인식할 수 있는 범위의 세계전체를 운영하는 정치 원리와 제도가 개발되었다. 이슬람세계의 칼리프 체제도, 동아시아의 천하 체제도 그런 성격의 체제였고, 로마제국도 중세유럽의 교황 체제도 그런 성격을 어느 정도 띤 것이었다. 근대 유럽에서 형성된 국민국가는 그런 성격을 갖추지 못한 체제이기 때문에 지속성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지금 밝혀지고 있다.

근대 세계체제는 18세기 후반 계몽주의시대에 자리 잡은 가치체계 위에 세워졌다. 그 가치체계는 그 안에서 이루어진 사회과학 연구에도 준거가 되었다. 이제 근대 세계체제가 지속성의 한계에 직면한 단계에서 자유평등을 중심으로 한 이 가치체계에 재검토의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이 가치체계의 바탕이 된 원자론적 세계관과 개인주의 인간관에 재검토의 초점이 놓일 것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학문과 사상의 주축을 맡았던 근대적 가치체계가 크게 변하거나 대체된다면 어떤 가치체계가 빚어져 나올 것인가. 생산력의 급성장기에 적합한 근대적 가치체계를 대신하는 가치체계는 생산력 성장이 완만하던 전근대기에 통용되던, 유기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가치체계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동아시아만이 아니라 여러 문명권의 전통이 새로운 시각 아래 참고가 될 텐데, 그중에서 전통의 풍부함과 지금의 현실 속에 쌓아놓은 힘으로 보아 동아시아문명의 역할이 클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최근에 나온 악셀 호네트의 <사회주의 재발명>이 두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 가지는 마르크스 이래 사회주의 이론을 지배해 온 마르크스의 관점을 벗어난다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유기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사회적 자유를 가치체계의 중심에 둔다는 점이다. 저자는 사회주의 담론의 범위 내에서 이 논점을 끌어낸 것인데, 근대 이전 문명의 유기론적 전통에 접합시킨다면 담론의 확장 발전이 쉽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가 중국 고전에서 사회적 자유의 표현을 찾는 작업을 머지않아 벌일 것 같다.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계를 더듬어 온 세계체제론에서 큰 몫을 맡아 온 조반니 아리기(1937-2009)가 마지막 작업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에서 중국으로 눈을 돌린 것도 주목할 일이다. 중국의 전통에서 미래를 위한 참고를 얻으려는 노력은 하나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옌쉐퉁(閻學通)<Ancient Chinese Thought, Modern Chinese Power>는 전국시대 사상에서 새로운 국제정치론을 도출하려는 노력을 담은 책으로 기존의 주류 이론을 따르면서도 새 영역을 열어갈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문명을 사회과학의 새로운 발판으로 끌어들이려는 구체적 노력의 사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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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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