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 잠깐 자리에 누운 채 수습한 꿈의 기억은 한 장의 추상화처럼 형체는 희미한데 인상은 뚜렷했다. 주인공이 내가 아니고, 가까이 느끼는 어떤 사람의 일을 구경하는 장면이었다.
젊은 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원숙한, 재능보다 품성에 근거한 名士의 풍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둘러싼 일 몇 가지가 연속해서 나타났는데, 기억을 더듬는 동안 다른 장면들은 흐려져 사라지고 한 장면만 남았다. <사기> "유협열전"에 나올 만한 장면이다. 郭解 이야기의 한 대목이 모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이름을 모르겠으니 "곽해"라 해둔다.
곽해가 존경하는 위 연배의 명사 한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이 곽해를 오해하고 서운하게 대하는 일이 있었다. 곽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욕을 당했다며 맞설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곽해가 벗으로 대하는 스님 한 분, 어떤 일에도 움직이지 않는 조용한 분이 나서서 "무슨 오해가 있는지 내가 가보겠소." 하고 일어서 나가니 곽해는 빙긋이 웃으며 전송하고 사람들에게 스님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스님이 저쪽 집에 가서 노 선생 만날 것을 청했지만 그 문인들은 스님이 곽해에게서 온 것을 짐작하고 막았다. 막는 이들이 누구인지 스님이 묻자 수제자가 이름도 밝히지 않으며 "우리는 이 댁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 우리에게 남기세요." 했는데 스님은 이름 밝히지 않는 실례를 따지지 않고 자기 이름을 밝히며 "저는 곽해를 대신해서 선생님을 뵙고자 왔는데 지금 뵙지 못하니 저든 곽해든 선생님 편리하실 때 다시 와 뵙도록 하겠습니다." 하고는 돌아서서 나갔다.
수제자가 스승에게 알렸다. "곽해가 보낸 사람이 왔는데, 뜻밖에 아무 조급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제가 이름도 밝히지 않았는데 실례를 따지지 않고 바로 조용히 돌아갔습니다." 스승이 대답했다. "네가 배울 사람이 나 하나만이 아니구나. 곽 선생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인 것 같으니 네가 예물을 가져가 내 경의를 전해다오."
생각이 높으면 까다롭기 쉽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용납하지 못하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곽해와 스님 사이를 출발점으로 신뢰가 확산되는 과정에 품성의 중요성에 대한 내 생각이 비쳐져 나타난 꿈 같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어제가 몽양 선생 기일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어제 추모식에는 안 갔지만 그제 심포지움은 방청했고 끝난 뒤에 식사와 입가심을 함께 하며 몇 분과 이야기 나눌 시간을 가졌다. 그 때문에 몽양 선생이 내 마음속에 어른거리고 있다가 곽해 비스무리한 모습으로 꿈에 나타난 것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그럴싸하다. 그저께 들은 이야기 중 새로운 것 하나가 선생을 그린 웹툰 제작 계획이다. 학술적 연구가 실체를 충분히 세울 만큼 쌓여 있는 이제, 그것을 바탕으로 선생의 모습을 대중에게 확산하려는 노력은 내년의 70주기를 앞두고 적절한 기념사업 방향이라고 나도 동의해 마지 않는다. 웹툰 이야기가 마음속에 남아 떠돌고 있어서 선생의 캐릭터를 그려보려던 자취가 꿈속에서 드러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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