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5. 14:43

 

동네에서 자주 어울리는 벗들이 있다. 출판인으로 유 대표(아이필드), 우 대표(유리창),(두 분이 함께 일하던 시절에는 그들을 보며 '우유부단'이란 말을 떠올리곤 했다.) 김 주간, 이 선생(이상 서해문집)이 있고 작가로 또 한 분 이 선생이 있다. 보여줄 만한 책 하나 누가 내면 모이고, 껀수 없이도 곧잘 모인다. 우유부단 두 분과 이 작가는 서로 아주 오래된 사이고, 나랑도 십여 년 어울려 형제간처럼 지내는 사이다. 세 분이 나보다 열 살가량 아래고, 다른 두 분은 더 젊다.

 

엊그제 망년회라고 모인 자리에는 이 다섯 분과 나, 그리고 홍 선생과 강 선생 두 분이 합쳐 여덟 사람이 앉았다. 강 선생은 나도 오랜만에 보는 참이지만 다른 분들도 다 잘 아는 분인데, 홍 선생은 다들 알기는 알지만 면식은 별로 없는 분이었다. 혹시 싶어서 아침에 전화해 보니 마침 저녁때 한가하다 하고, 함께 만나면 다들 좋아할 것 같아서 내가 청했다.

 

홍 선생이 마침 서해문집에서 만화책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참이라서(천하의 홍아무개가 만화책 번역을? 파리꼬뮌을 다룬 골때리는 프랑스 만화라고 한다. 이 블로그 손님들 모두 기대할 만한 물건 같다.) 그쪽 두 분이 기뻐하는 것은 물론, 많은 먹물들의 흠모를 받는 그분과 술잔 부딪치며 소탈하게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모두들 즐거워했다. 그분 불러낸 덕분에 나는 여러 모로 덕을 봤다. 한편으로는 이런 훌륭한 분과 어울리는 사람이라 해서, 나를 좀 우습게 보려던 벗들의 시각이(할배가 손자 너무 귀여워해 주면 수염 뽑힌다.) 다소 부드러워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분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덕분에 연장자의 부담을 벗어나 자리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홍 선생도 무척 즐거워했다. 인사치레로만 즐거워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술도 별로 안 좋아하는 그분이 2차까지 흔쾌히 참여한 사실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뿐이랴! 1~2월 중에 네 차례 모임을 예약까지 했다.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었다. 나부터, 둘이 조용히 앉았을 때보다 더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말 많이 할 필요도 없이 듣는 데 주력하고 있었는데, 한 패거리가 담배 피우러 나가서 자리가 좀 조용할 때, 오랜만에 보는 강 선생이 정색을 하고 묻는다. "선생님 근래 글을 보면 개인주의를 배척하는 입장을 보이시는데, 인간의 가치를 발현하는 길로서 개인주의를 아끼는 마음으로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이 친구, 변화구를 모르는 선수다. 그저 돌직구뿐이다. 내 글을 찬찬히 읽어 요점을 파악하면서 아마 논지에는 수긍하면서도 그 결론이 납득되지 않은 모양이다. 이 분 한 사람만의 문제일 리 없다. 글쓰기에서 독자의 혼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각별히 노력할 필요를 느낀다. 어쩌면, 요즘 소설로 발표 형태를 옮길 궁리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필요 때문일지 모른다.

 

생각을 가다듬어 차분하게 설명하도록 애를 썼다. 개인주의를 박멸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개 기준 중의 하나로 개인주의도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이 기준이 다른 기준들을 압도해 버리는 데 있다. 세상사 중에는 이런 기준으로 임해야 할 것이 있고 저런 기준으로 임해야 할 것이 있는데, 개인주의 하나에만 매달리는 데서 온갖 문제가 일어난다. 개인주의에 반대하는 전체주의도 다른 기준들을 배제해 버리는 데 문제가 있다. 요컨대 개인주의냐, 전체주의냐, 사회주의냐, 조합주의냐, 어느 것을 고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하나의 정답만 찾아내면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다는 근대인의 환원주의가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내 입장이라고 했다. 강준만 씨의 조선일보 공격이 조선일보를 없애자는 게 아니라 제 자리를 찾아주자는 것처럼, 나도 개인주의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기 바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2045>를 생각하면서도 큰 요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포용성'이다. 환원주의를 대표하는 원자론적 관점에서는 모든 것을 배타적-독점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세계관에서는 질서의 원리도 독점적 패권을 중심으로 구축될 수밖에. 유기론적 세계관이 세계질서의 주축을 형성하게 된다면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게 될 것을 나는 희망한다. 2045년 무렵에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공존적 세계질서가 확장-강화되는 가운데 기득권에 집착하는 자본주의 세력도 그 안에 포용되면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폭력적 힘을 포기해 가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전망이 단순한 희망일 뿐일까? 개인의 희망에 그치지 않고 현대세계가 바라볼 만한 합리적 전망이라고 40여 년 역사 공부를 밑천으로 주장하고 싶다. 그런데 '근대학문'의 표현 기준으로는 이 생각을 아주 그럴싸하게 내놓을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학문의 표현방법이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를 겪기 바라지만, 당장 내 손으로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소설을 생각하는 것이다.

 

두고두고 생각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되어, 하룻저녁 즐거운 기억과 함께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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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