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 냉전 종료 선언을 들으며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소련이 ‘악의 제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냉전을 빌미로 일어났던 많은 나쁜 일들이 이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꽤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 나라도 이제 좋은 쪽으로 많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었다. 그 나라의 나쁜 측면으로 보이던 것이 대개 냉전과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힘겨운 가상적이 없어진 만큼 외부 세계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에 여유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세계경찰’이란 말이 통한 것이다. 한 국가 내에서 경찰이 ‘공익을 위한 폭력’을 맡는 것처럼 미국의 그 막강한 군사력 운용이 조금이라도 더 인류의 공익을 향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담은 말이었다.

 

1990년대에 많이 쓰이던 이 말이 지금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아마 2001년 9-11테러가 이 말이 사라진 계기가 아니었던가? 미국이 지나치게 호전적인 태도를 보일 때 “세계경찰이 저래도 되는가?” 하던 비판의 기준이 이제는 없어졌다. 미국에게 남들 입장 생각해 줄 여유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사라진 것이다.

 

냉전 종식을 계기로 미국인의 생활이 좋아진 것 같지도 않다. 냉전 종식 후 미국에 가본 일이 없어 실정을 잘 모르겠지만, 뉴스나 책을 통해 접하는 미국의 풍경은 그때보다도 살기 힘든 쪽으로 많이 변한 것 같다.

 

냉전 종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냉전 시대에는 나쁜 일의 원인이 모두 냉전 상태에 있고, 상대방을 쓰러트려 냉전을 끝내기만 하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선전에 파묻혀 살았다. 그런데 막상 냉전은 종식되었는데 더 좋은 세상은 온 것 같지 않다. 미국인에게조차도.

 

그래서 냉전 종식이 미국이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 부득이해서 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볼 필요를 느낀다. 이런 설명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현재 ‘중국의 부상’이나 ‘인도의 부상’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한 번 더 글로벌 축적을 시도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전략적 보루(중국, 인도 같이 자원이나 노동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를 동원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전장에서 어떤 군대가 마지막 남겨놓은 전략적 보루를 사용한다는 것은 패배 직전까지 몰렸음을 의미한다. 현재 세계경제의 발전은 현존하는 세계체제에 내재한 몇 가지 주기적인 운동이 이제 역사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은연중 암시한다. (리민치 <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종말> (류현 옮김, 돌베개 펴냄 46쪽)

 

리민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발판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한다. 이 정도 설명은 세계체제론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만 갖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가 정치권력의 작용 없이 시장의 동력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불평등’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자원과 노동력의 분포가 고르지 않아야만 그 격차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이윤이 자본의 움직임을 위한 동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댐의 낙차가 있어야만 발전용량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발되지 않은 자원의 존재가 자본주의체제의 동력원이 되는 것처럼, 미개발 노동력의 존재도 자본주의체제의 활력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자본주의체제의 패권을 쥘 무렵의 광대한 저개발 지역이 그 후 반세기 동안 상당 수준의 산업화를 이뤘다.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노동력의 조직과 임금의 상승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 과제는 아직 개발이 덜 된, 따라서 아직 임금이 낮은 지역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이전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냉전 종식은 아직까지 자본주의식으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력이 존재하는 광대한 지역, 즉 옛 공산권을 자본주의체제에 편입시킬 필요에 몰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리민치의 견해다. 그는 냉전 종식을 앞둔 시기에 미국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본다.

 

세계시장에서 서유럽과 일본의 맹추격을 받고 베트남전 패배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으면서 전후 ‘글로벌 뉴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미국 헤게모니는 역사적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1970년에서 1990년까지 미국 행정부는 미국 헤게모니의 쇠락을 늦추고, 나아가 이를 재건하기 위해 세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첫째, 서유럽과 일본을 ‘정치적 동반자’로 인정함으로써 그들의 경제적 영향력을 무력화하고자 했다. 둘째, 주변부 및 반주변부 국가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핵확산금지조약’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셋째, 자국 기업의 이윤율을 회복하고 글로벌 경제에서 실추된 위상을 되찾기 위해 신자유주의 의제를 강요했다. (위 책 200쪽)

 

이 책은 2009년 중국에서 나오고 이듬해 한국에 소개된 책이다. 미국의 냉전 종식이 넉넉한 힘으로 여유 있게 이뤄낸 것이 아니라 위기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했던 일이라는 생각은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전에는 떠올리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 미국 대외정책의 난맥상과 2008년 금융공황 앞에서 미국의 입장이 불안하게 보이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소련에 대한 군사적 압박정책의 반동성을 나도 2008년에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펴냄) 181-182쪽에서 지적한 바 있다.

 

1970년대의 경제 위기는 두 진영 모두에 타격을 가했다. 그런데 공산주의 진영이 효과적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무기력한 침체에 빠진 반면, 자본주의 진영 일부가 미국의 주도하에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나왔다. 신자유주의 노선은 상황의 문제점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격화시켜 파국을 앞당김으로써 추진 주체가 상대적 이익을 얻자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 레이건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함께 추진한 군사정책이 어떤 것이었던가. 그야말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드는 ‘별들의 전쟁’이었다. 경제 여건에 역행하는 군비 확장은 상대방이 먼저 손들도록 압박하는 치킨 게임이었다. 냉전의 대결 상황이 이 소모적이고 반동적인 정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1973년의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를 계기로 자원과 환경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고 때맞춘 석유위기로 현실적 위기감까지 일어났다. 그래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란 이름을 얻은 당시의 악성 경기침체의 원인으로 자원 측면이 중시되었지만, 착취의 여지가 줄어든 노동시장의 상황도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패권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려온 자본주의체제가 1970년대 들어 여러 거시적 지표에서 한계에 부딪친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1980년대 미국의 위치가 위기 상황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대책을 강구할 압력은 존재했던 것이다. 냉전 종식은 냉전시대의 모든 문제가 해소되는 계기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기본 문제들이 새로운 형태로 모습을 바꿔 나타나는 계기로 봐야겠다.

 

독일은 냉전 해소와 함께 통일을 이뤘는데 한국은 이루지 못한 사실을 한국 민족주의자들은 통탄한다. ‘냉전의 내면화’를 흔히 그 이유로 지적한다. 물론 상당히 중요한 이유라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1990년을 전후한 이른바 냉전 종식이 당시의 인식에 비해 한계를 가진 현상이라고 본다면, 독일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 사이의 차이점도 생각할 수 있다. 동유럽의 전선(前線)이 사라진 것과 달리 동아시아의 전선은 새로 형성되고 있지 않은가.

 

21세기 들어와 미국의 모습이 초라해져 온 데는 중국의 흥기와 대비되는 까닭이 있었다. 1990년대 말까지도 중국은 냉전 이후의 세계 상황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존재였다. 그런데 불과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향후 세계의 진로에 미국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주체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또한 지금까지 크게 자라나 왔고, 앞으로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적 상황 변화, 특히 한반도가 처한 상황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패권 성격의 변화와 중국 흥기의 의미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