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어제 제주에서 열린 ‘최고수뇌회의’에서 선생님이 방성통곡을 터뜨렸다는 얘기를 김익렬 연대장에게 들었습니다. 회의 경위를 김 중령에게 듣고 그 통곡의 의미를 대충 짐작합니다만, 65년 후의 독자들을 위해 심경을 말씀해 주시지요.

 

안재홍: 일본 패망이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미군 점령 하에서 거듭거듭 해 왔습니다. 미군의 압제가 일본인의 압제마다 덜하지 않다는 사실을 중요한 대목마다 느껴 왔고, 친일파가 일본의 압제를 거들어준 것처럼 미군의 압제를 거들어주는 친미파가 활개를 치는 세상이라면, 그것을 누가 ‘해방’이라고 하겠습니까?

 

작년 초 민정장관에 취임할 때 백범께서 말씀하셨죠. 그대는 이루는 것 없이 나쁜 말만 듣게 될 것이라고. 저도 그렇게 될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이 과도정부란 것이 조선인의 정부가 아니고 미군정의 간판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찌 내가 모르겠습니까. 그런 정부에서 조선인을 위해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양심 없는 친미파가 그 자리를 맡는 경우보다 나쁜 짓을 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어제 다시 처절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양심 없는 친미파가 멀쩡한 사람들을 친공-친소로 몰아붙이면서 자기네만이 미군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아양 떠는 짓은 늘 있어 온 겁니다. 통상 그렇게 몰아붙이는 대상은 그래도 자기주장을 나서서 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제 조용히 살아가는 순박한 농민들까지 공산폭도로 몰아붙이다니, 민족이 처한 참혹한 상황을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작년 10월 사태 때보다도 더합니다.

 

김기협: 그 동안 민정장관으로서 도지사의 보고를 통해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계셨나요? 어제 회의에서 접한 상황이 뜻밖의 것이었는가요?

 

안재홍: 유해진 지사로부터 이틀이 머다 하고 보고를 받고 있었는데도 막상 와보고 새로 깨우친 것이 많습니다. 폭도 수가 이리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을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폭도’가 아니라 불안한 마음에 마을을 떠난 주민들이 대다수겠지요.

 

일제 말기에 제주도에는 약 100명의 경찰관이 주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300여 명까지 증원이 되어 있었는데도 이번 사태가 일어난 것을 보면 경찰이 약해서 일어난 일이 절대 아닙니다. 사태 발발 후 천여 명 응원경찰을 들여오고도 사태 확산을 막지 못해 경비대까지 끌어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힘으로 억누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김기협: 경찰이 약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경찰이 너무 강해서 일어난 일일까요?

 

안재홍: 바로 그래요. 일제시대 경찰이 포악했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숫자만 배치해 놓으면 저희들도 주민들 눈치를 안 볼 수 없어요. 그런데 너무 많이 깔아놓으면, 옛말에 “소인이 한가로이 있으면 착하지 못한 짓을 한다”(小人閑居爲不善)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어요.

 

주민이 자발적으로 따라오는 정치라야 성공할 수 있는 정치입니다. 경찰이 자기네 힘만 믿고 주민을 억압해서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어떻게 ‘치안’(治安)이 이뤄질 수 있습니까? 경찰은 모든 치안 문제를 적색분자의 획책으로 몰아붙이는데, 그렇게 치안의 껍데기만 쳐다봐서는 백성의 마음을 편안히 하는 진짜 치안이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입니다.

 

제주도만이 아닙니다. 남조선의 경찰 인원은 일제시대의 두 배를 넘어 세 배를 바라보고 있는데 치안 상태가 더 못한 근본 원인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미국인의 의도가 일본인의 의도보다는 덜 나쁜 것으로 믿지만 행정력은 일본인보다 못하고, 그 때문에 조선인에게 더 큰 고통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김기협: 유해진 지사는 선생님과 가까운 인물이고 선생님이 추천해서 제주도에 오게 된 것으로 압니다. 공식 보고 외에 제주 사정에 관한 그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은 없는가요?

 

안재홍: 속마음 털어놓은 게 있다면 내가 발설해서 안 되겠죠. (웃음) 없습니다. 어제 딘 장군이 먼저 돌아오고 송호성 장군과 나는 하룻밤 묵으면서 사정을 더 알아보려 했는데 딘 장군이 같이 돌아오자고 서두르는 바람에 유 지사와 조용히 얘기할 틈도 없었어요. 딘 장군은 제주도에 관한 정책,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거죠.

 

유 지사와 일본 시절부터 알던 사이고 국민당 이래 정당도 함께 해온 사람이기는 하지만, 내가 추천했다고 하는 데는 어폐가 있어요. 그 사람은 중앙정부 직책은 몰라도 목민관 스타일은 아니죠. 보낼 만한 사람이 따로 없어서 부득이 보낸 거예요.

 

김기협: 보낼 만한 사람이 따로 없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안재홍: 제주도가 막 도(道)로 승격해서 관직은 높지만 근무조건이 안 좋아서 가려는 사람이 없어요. 나 같은 사람은 절대 못 가요. 봉급은 얼마 안 되고 비용 들 일은 많은데 딴 재주 피울 생각 없는 사람은 갈 수가 없죠. 유 지사는 집이 부자인데다가 염치는 아는 사람인지라 그런 의미에서는 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기협: 김익렬 연대장은 어제 회의에서 조병옥 부장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자기가 분노를 참지 못했다고 하는데 두 사람 태도를 선생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안재홍: 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그렇게 눈이 뒤집어질 소리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조병옥 씨 태도는 원래 온 조선에 다 알려져 있는 것 아닙니까? 김 중령이 아무리 옳은 말을 했다 하더라도 회의 진행을 불가능하게 만든 책임은 분명히 그에게 있었습니다.

 

김기협: 얘기를 돌려서... 어제 김구, 김규식 두 분 선생이 평양에서 돌아왔습니다. 만나보셨는가요?

 

안재홍: 우사 선생은 어제 찾아가 만났고, 백범 선생은 오후에 가 뵈려 합니다.

 

김기협: 이번 평양행의 성과를 김규식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안재홍: 생각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씀하면서도, 그리 만족한 기색은 아니더군요. 그분이 원래 염세적인 분이잖아요? (웃음) 보름 전 떠날 때 비관적인 말씀만 하던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희망적인 생각을 좀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김기협: 제일 큰 성과로 어떤 것을 말씀하던가요?

 

안재홍: 무엇보다 북쪽에서 전쟁 일으킬 염려를 덮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북쪽에 인민군 만들어놓은 것이 소련의 조기 철군 주장을 미국이 거부하는 이유 아닙니까? 4자회담 때 그 문제를 제일 많이 제기했는데, 민족상잔을 피해야 한다는 김두봉 위원장과 김일성 장군의 의지를 분명히 확인했다고 합니다.

 

김기협: 그런 일이 의지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일까요? 군대를 만들어놓은 이상 군대가 동원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 아닙니까? 설령 그쪽에서 도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쪽에서 도발할 수도 있는 일이고...

 

안재홍: 저쪽의 평화적 통일노선에 충분히 실현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에 전쟁 걱정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공산주의 노선을 고집하지 않고 대다수 인민이 환영할 만한 민족주의 노선을 앞세우려는 자세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 평양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토론에서 수정이 있었다고 해요. 수도를 평양으로 하기로 했던 것을 서울로 바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낫과 망치가 들어가는 국기 대신 태극기를 그대로 쓰기로 하고요. 이 헌법안이 북조선에 세울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통일국가의 헌법을 위한 북측의 제안이라는 거죠. 마찬가지로 인민군도 통일국가 군대를 만들기 위한 북측의 준비라는 겁니다.

 

김기협: 두 분 선생만이 아니라 이남의 중간파 모두가 걱정하던 것이 북측에서도 단독건국을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였죠. 이번 방문으로 그 의심을 없앴군요. 그밖에도 생각을 바꾸신 것이 있던가요?

 

안재홍: 이북 인민의 생활상이 이남에 알려져 있던 것보다 괜찮은 편인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놓였다는 말씀을 하더군요. 이북 사정을 나쁘게만 선전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월남민이 많은 것을 보면 사실 걱정이 많이 되었죠. 그런데 이번에 가 보니 고급품 시장은 서울에 비해 아주 빈약해도 식량과 생필품 사정은 괜찮아 보이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장을 방문해 보니 장래가 밝게 보인다고 합니다. 일본 기술자를 보호하고 우대하며 기술을 순조롭게 넘겨받고 소련 기술자들 도움도 많이 받았다는데, 가동이 잘 되는 공장이 많다고 합니다. 경제원조는 이남에서 미국에게 받은 것보다 훨씬 적었는데도 그만큼 상황을 개선해 온 것을 보며 경제독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기협: 이번에 전력대금 문제에도 성과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며칠 전 <서울신문>에도(5월 4일자) 북측의 송전 단절 가능성을 제기하는 기사가 나왔는데, 작년 5월까지의 전력 대금을 아직까지 20퍼센트밖에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군요.

 

미군정 하는 일에 이해 안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전력 문제는 진짜 이상해요. 발전시설 확충하는 데는 예산을 쓰면서 전기요금을 안 내다니. 게다가 북조선인민위원회에서 오는 청구서는 본 척도 안 해요. 자기네는 소련군사령부만 상대한다면서. 과도정부에선 미군에게 미루고, 미군은 소련군에게 미루고, 소련군은 북조선인위랑 얘기하라고 하고. 전기 끊어지면 고생하는 건 남조선 인민이고 망가지는 건 남조선 산업인데, 미군은 뭐 하러 조선에 와 있다는 거예요?

 

작년 봄과 가을 전력대금 미납 문제가 심각할 때 오정수 상무부장이 평양 가서 협정을 맺어 온 덕분에 송전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것 아닙니까. 전력처럼 민생과 산업에 두루 중요한 문제는 미군들 눈치 볼 것 없이 과도정부라도 나서야 할 아닙니까?

 

안재홍: 오늘 딘 군정장관 기자회견에서 이런 문답이 있었습니다.

 

(문) 북조선 전력대금 지불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는 원인은?

(답) 지난번 80차량의 물자를 지불하였다. 그러나 북조선대표들이 요구하는 물자를 만족하게 공급할 수 없다. 더구나 쌀 같은 것을 요구하여 오는 데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러므로 달러로 지불하고자 교섭하였으나 듣지 않는다. 현재 받고 있는 전기에 대하여 일정한 장소와 시일을 정하여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고자 수차에 걸쳐 공문을 보내었으나 아직 아무런 회답도 없다. 그리고 인천과 부산에 발전함이 설치되었으나 남조선의 전력소비는 자율적으로 유효적절하게 배전 공급을 하는 동시 일반의 절전을 보다 더 철저히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동아일보> 1948년 5월 7일, “북조선 전력대 요구대로는 응할 수 없다.)

 

전력대금을 현물로 준다는 것은 협정이 되어 있는 일인데, 현물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충분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도정부에게는 현물 마련을 위해 예산을 쓸 권한도 없고, 군정장관이 승인하지 않는 조그만 조치 하나도 취할 길이 없어요. 우리는 구경꾼입니다.

 

전력대금 미납에 따른 송전 중단 가능성을 없앴다면 이번 남북협상의 매우 중요한 성과입니다. 인민이 체감하는 문제고, 미군정의 무성의와 과도정부의 무능으로 늘 불안해하던 문제니까요. 송전 계속의 보장은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평양 측의 선의와 진정성이 이남 인민의 큰 신뢰를 받게 해줄 것입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