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2월 1일자 <경향신문> 제2면은 “3인 정담(鼎談) - 정치, 경제, 문화에 걸쳐”로 채워졌다. 참석자는 한협 외교위원장 장면(1899~1966년), 불교총무원 원장 김법린(1899~1964년), ‘무소속’ 김정설(1897~1966년)의 3인이었고 사회자는 오종식 경향신문 주필이었다.

 

장면과 김법린은 당시 입법의원 의원이었는데, 장면은 한협 직책으로 밝혀져 있는 것처럼 한민당 중심의 반공세력 소속이었고 김법린은 중간노선이었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이 초청은 두 사람을 정치세력이 아니라 종교-사상을 대표하는 입장으로 내세운 것으로 이해된다. 두 사람이 입법의원에 관선의원으로 지명된 것도 가톨릭계와 불교계를 대표한 것이었다.

 

이 정담이 종교-사상의 대표자로 기획되었다는 사실은 제3의 참석자 김정설의 존재로 확인된다. ‘범부(凡夫)’라는 아호로 더 널리 알려진 김정설은 동양철학 연구에서 출발해 화랑정신 연구에 몰두한 민족주의 사상가였다. 화랑 연구의 가장 뚜렷한 성과물 <화랑외사(花郞外史)>를 이 해에 발표한 김정설은 소설가 김동리의 가형이기도 하다.

1948년 초의 조선 상황을 당시 50세 전후의 대표적 사상가들이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정담 기사 전문을 옮겨놓는다.

 

우리 민족은 가장 중대한 시기에 봉착하여 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그 지향할 바를 찾아 헤매고 있는 오늘날의 절박한 현실에 비추어 본지는 그 몇 분지 일이라도 민족의 갈구에 기여하고자 이에 장면, 김정설, 김법린 세 분 선생의 고견정담을 게재하는 바이다.

 

사회(인사생략)=UN조선위원단이 덕수궁에서 지금 그 업무를 진행시키고 있는데 이 UN위원단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 국내문제와 세계문제의 현재와 장래에 대하여 세 분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장면=UN위원단이 그 본래의 사명대로 꼭 성공할는지 어쩔는지 그 결과를 미리 똑똑히 알 수는 없으나 우리는 그것(사명의 성취)을 희망하며 따라서 성의껏 협력해야 되리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내 여론통일이 긴급하다고 생각한다. 협의대상으로 나아간 단체나 혹은 개인들이 각인각설의 의견 제출을 해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곤란한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전부가 다 같은 의견을 제출할 수야 없겠지만 그러나 같은 진영 내에서라도 어느 정도 통일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김정설=국론 통일이 문제된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사상통일은 잠간 두고라도(이건 더 복잡하고 곤란한 문제니까) 정책적 통일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의 현실을 볼 때 민중은 민중대로 지도자들의 통일 합의를 희망하고 있으며 지도자들은 지도자대로 또 민중을 향해 통일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이것이 위에서 말한바 가능성의 조건이 된다.

 

한걸음 나아가서 그러면 이 현상을 통하여 그 분열의 책임소재를 묻는다면 그것은 지도자층에 있음이 분명하다. 지도자 자신이 분열되어 있으면서 민중을 향해 통일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요청이다. 지도자가 분열되어 있다면 그 지도자에 의하여 지도받는 민중이 분열되어질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 기회에 지도자들의 단결이 절실히 요청된다.

 

김법린=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의 분열이란 더욱이 범상한 것이 아니다. 조선 문제란 것이 세계 문제와 아주 분리된 것이 아닌 이상 세계 문제에 있어 이미 미소가 대립되고 동서구가 분열되어 있다면 그 여파가 우리들에겐들 미치지 않을 수 없을 줄 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는 지도자고 민중이고 너무 이론을 세우는 것보다 우리의 민족적 현실에 입각하여 최대 노력으로 단결에 힘써야 할 것이다. UN은 공정한 기구이다. UN위원단이 전번 미소공위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서로 협력하고 성심껏 노력해야 할 것이나 UN위원단이 이번에 또 실패한다면 이건 비단 조선 문제 하나만의 실패에 그칠 것이 아니라 UN기구 자체의 파산이요 세계평화의 논의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사회=조선 경제문제의 기본대책은?

 

장면=토지개혁은 시일 문제다. 최속기일 내에 단행되어야 할 것이며 단행될 것을 믿는다. 이와 아울러 생각할 문제는 중소공업의 문제다. 농업의 기업화문제 토지 못 가진 사람의 중소공업에의 전향 문제 등이다. 중소공업 발전의 대책 없이 토지개혁만 단행한댔자 조선의 경제는 반신불수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일부에서는 토지개혁만 단행하면 경제문제가 해결될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것은 잘못이다. 모든 경제는 상호관련을 가진 이상 중소공업의 발전대책은 토지개혁보다도 못지않은 중대문제다.

 

김법린=계획경제이어야 할 것은 당연한 문제다. 그리고 자원 개발 문제도 함께 넣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장면=자원개발이라면 첫째 광산 개발 그 다음 수산도 중시된다.

 

김법린=목축도 중요하다.

 

사회=사유를 인정한다면 무슨 원칙에서인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절충인가? 개량사회주의인가?

 

김정설=현실은 그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 그 원칙이 제출되지는 않았다. 자본주의가 그대로 연장될 수 없는 것은 결정적이다. 공산주의는 소련이 대표적으로 실험해본 결과 더 바라볼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절충’이니 ‘개량’이니 하는 것도 말이 덜 된다. 무엇이라 표어를 달 수는 없으나 첫째 국가를 인정할 것 둘째 민족적 개성을 인정할 것 어쨌든 건전한 의미에 있어서의 사회주의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사회=세계정부와 조선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김정설=지금까지 있어온 국제연맹이니 UN기구니 하는 것은 모두 열강본위의 기구였다. 그러나 인류는 앞으로 좀 더 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이러한 기구가 열강본위가 아니라 약소민족 본위로 구성될 것이다. 참된 의미의 세계정부가 논의될 수 있다면 그것은 약소민족 본위가 아니고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참된 의미의 세계정부가 실현된다면 그때는 각 민족의 군사적 실력보다 문화적 실력이 중시되어질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 나는 조선민족의 장래를 낙관하는 것이다.

 

첫째 조선민족은 지리적 조건에 있어 무력 본위의 시대에는 여간 불리하지 않았다. 주위가 모두 강적들이었다. 그러나 문화 본위의 시대가 온다면 그동안 불리하였던 지리적 조건이 전화위복으로 도리어 유리한 조건이 될 것이다. 동서문화의 교류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며 대륙과 해양의 교회지(交會地)라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산명수려(山明水麗)하여 일반적으로 총명한 천자(天資)들을 타고나 있다. 오늘날과 같은 교통이 발달되어 가고 있는데다 더구나 문화 본위의 시대가 온다면 특히 앞으로의 문화가 지역적 문화가 아니요 국제적 성격의 세계적 문화라면 조선민족은 전 세계에 가장 우수한 문화를 산출해 낼 것이다.

 

장면=각 민족의 문화적 성격이 각이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는 동서문화란 것이 또한 그 체계에 있어서나 사명에 있어서 여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교통이 발달되어 있으면 이러한 장벽은 아주 감소될 것이다. 특히 장래의 문화는 지금까지 서로 충분히 교류되지 않은 동서문화의 완전한 회통(會通)에서 새로운 세계적 문화가 건설되지 않을 것인가 생각된다.

 

김법린=그러나 아무리 앞으로 세계적 성격의 문화가 온다 하더라도 민족적 개성이 전적으로 결여된 세계문화란 불가능할 것이다. 교통이 발달되고 국경이 완화되면 우리들의 민족적 생활은 점차 국제성을 띠게 될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각 민족의 문화적 성격이 또한 국제적 성격을 띨 것은 알 수 있는 일이나 그렇다고 전연 민족적 개성이 배제된 국제문화가 일어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UN기구의 역사성과 그 장래에 대하여는?

 

김정설=UN기구를 의식적으로 멸시하려는 일부 국가군은 별문제로 하고라도 일반적으로 이를 다소 경시하려는 경향들이 있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특히 이번의 UN조선위원단의 구성을 보고 나는 UN기구의 세계사적 성격을 중시하고 싶다. 오늘날의 세계사적 사명의 과제는 약소민족 해방에 놓여져 있다. UN조선위원단이 대부분 약소민족 대표들로써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약소민족 해방의 문제가 세계사적 궤도 위에 점차 원칙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약소민족은 약소민족의 손으로 해방되지 않으면 원칙적 해방이랄 수는 없는 것이다.

 

김법린=동감이다. 지금까지의 약소민족의 해방은 열강의 힘으로만 성취되어 온 기회 해방이었다.

 

김정설=열강의 세력균형을 위하여 열강의 손으로 된 약소민족 해방은 원칙적 해방이 아니다. 기회 해방은 가해방(假解放)이다.

 

사회=그러나 UN위원단(약소민족으로 구성된)을 보낸 그 모체는 역시 열강이 아닌가.

 

김정설=UN기구 그 자체가 약소민족 본위가 아니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약소민족 본위가 아닌 UN기구는 그러면 왜 UN조선위원단을 약소민족으로 하여금 구성케 하였는가? 열강은 왜 UN조선위원단을 구성하는 데 약소민족들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무엇이 그렇게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였는가? 누구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압력이 그렇게 한 것이다. 열강 본위의 세계는 지금 바야흐로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종금(從今)의 세계문제의 대상은 약소민족 해방 문제에 놓여질 것이다.

 

사회=무산계급혁명의 문제는 오늘날과 같은 상태에서 정체된 채 약소민족 해방의 문제가 세계문제의 중심으로 또는 전경(前景)으로 화하게 된 이유는?

 

김정설=소련은 제2차대전에서 왜 무산국가와 결합하지 않고 부대(富大)국가와 결탁하게 되었던가? 왜 그 자신 제국주의로 화하고 말았는가?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일체의 관념은 현실을 전적으로 카버할 수 없는 것이다. 소련은 처음 공산주의를 의도하였으나 공산주의란 관념 밑에서 진행하다 보니 이제 제국주의적 현실에 봉착하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장면=소련도 현재 세계무산계급혁명보다 약소민족 정책에 치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그러면 소련식 약소민족 정책과 미국식 약소민족 정책은 그 어느 것이 승리할 것인가?

 

김정설=보다 더 현실성을 가진 것이 승리할 것이다. 어느 쪽의 약소민족 정책이 보다 더 약소민족 해방을 원칙화시키는 데 가까우냐 하는 데 승패는 달려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소련의 약소민족 정책은 원칙부터 고쳐야 한다. 지금의 ‘연방정책’으로써는 세계사적 현실로서의 약소민족 해방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이에 비하여서는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부르짖고 있는 소위 민족자결주의란 것은 우수한 편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의 이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실천을 주목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보다 더 약소민족을 해방시키는 편이며 어느 쪽이 보다 더 약소민족을 침식하고 유린하는 편인가. 그들의 현실은 그들의 이론 이상의 역사적 운명인 것이다.

 

사회=새로운 국민도의의 형태는?

 

장면=인류생활엔 점차 고도의 도의가 요청되리라고 생각한다. UN기구 같은 것도 인류생활이 점차 도의의 수준을 높이는 데서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 있어서나 미래에 있어서나 또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모든 도의의 기본적 중심은 신(神)에 두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 있어 국민도의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종교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법린=그러나 오늘날의 교육방침엔 일정한 기본이념이 서 있지 않는 것 같다.

 

김정설=그것이 큰 문제다. 우리는 과거 40년 동안 국가생활을 가져보지 못한 난민들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40년 여부도 아니다. 국가 없는 국민이란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항용 국민 국민 그런 말을 들을 때처럼 나는 비극을 느낄 때가 없다. 국민이란 일조일석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본국민이나 영국국민이나 독일국민이나 프랑스국민이란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국민형을 가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국민형은 무엇인가? ‘군자’인가 ‘신사’인가 ‘사무라이’인가? ‘화랑’은 신라의 국민형 ‘유자(儒子)’도 지나간 이야기다. 오늘날 조선의 국민형은 무엇인가? 국민형의 구상이 없는 교육이란 과목 나열에 불과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국가란 것을 부정할 수 없다면 우리의 교육은 국민훈련에 기본을 두어야 하는 것이며 우리의 머릿속에 일본국민이나 미국국민이나 혹은 소련국민들의 ‘형(型)’만 가지고서 조선국민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국민을 훈련시키려면 먼저 조선국민의 ‘형’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긴급하고 중대한 문제이나 그렇다고 추상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다.

 

65년이 지난 후의 우리는 당시의 세계가 냉전에 빠져들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안다. 유엔의 권능에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도 안다. 유엔조선위원단의 결정에 미국의 의도가 얼마나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지도 안다. 분단건국이 전쟁을 불러온 사실도 안다.

 

65년 전의 최고 지성인들이 이런 것들을 우리처럼 확실한 사실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 개연성을 어느 정도는 알아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희망적인 전망을 그려보려고 애썼을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전망이 이후의 사실과 어긋난 것을 놓고 그들의 눈이 밝지 못했음을 탓하기보다, 위기를 주체적으로 극복할 길을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에서 가르침을 얻어야겠다. 2013년 대한민국에 닥쳐 있는 위기가 1948년 조선의 위기보다 덜 심각한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적어도 ‘리더십’ 측면에서는 지금 대한민국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최근의 인사청문회에서 거듭거듭 확인하고 있다. 다른 위기상황 속에서 우리 선인들이 무엇에 희망을 걸고 있었는지 면밀히 살펴본다면 최소한 전철(前轍)을 알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