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한 친구에게 메일 쓰다가 생각이 났다. 사마천은 아주 먼 옛날 역사를 서술한 이였다는 인상을 늘 갖고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도 현대사 전공이었다. <사기> 작업은 한 제국이 세워진 1백년 후에 진행된 것이었고, 그 내용의 절반 이상이 한나라 역사였으니까.

 

전통시대 동아시아 '역사가'의 일반적 모습으로 생각이 번져나간다. 후세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마광이나 유지기처럼 긴 기간을 다룬 사람들은 전통시대 역사가 중 예외적인 사람들인 것 같다. 역사가라기보다 역사철학자로 분류하는 게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실록 정리 같은 것이 전통시대 역사가의 표준적 작업 아니었겠나. 그중 특정한 시기에 살던 사람들이 정사 편찬에 종사했겠지만 그들 역시 현재와 동떨어진 과거를 다루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과거를 과거로만 생각하는 현대 역사가들의 일반적 자세는 근대역사학에서 나타난 풍조 아닌가. 그렇다. 전통과 근대 사이의 단절감은 근대사회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과거를 밝힌다고 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고 하는 기본 인식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역사학은 실제로 과거를 관에 담아 못을 박고 묘에 넣어 흙을 덮는 작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근대문명만을 유일한 문명으로 간주하는 뉴라이트 현상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자본이 지배하는 체제를 절대적으로 옹위하려면 불순물을 배제하기 위해 전통과의 단절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으니까. 현존 체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정당화하는 목적 아래서는 역사의 취사선택과 왜곡이 불가피한 일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것은 근대역사학의 일반적 경향이고, 뉴라이트는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도 합리화하기 힘들 정도로 극단화시킨 하나의 사례일 뿐인지도 모른다.

 

전통시대 '사관'의 자세를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지금 세상에서 가능한 일도 아니고 바람직한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표준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참조할 필요는 있겠다. 근대역사학에서 나타난 역사가의 모습에서 먼저 배울 것이 많기는 하지만, 그들 모두 '근대'라는 조건에 어떤 식으로든 매여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본다면 지금 시점에서 모델로 삼기에는 조심해야 할 점이 있을 테니까.

 

역사학도가 자기 자신을 사마천에 비교한다는 것은 웃지 않을 사람이 없는 망발이다. 하지만 비교할 만한 점이 있으면 비교도 해야지.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이 더 살았으면 했을 일을 대신 하노라 애쓴 것일 뿐이라고 적었는데, 단순한 겸손의 말씀이 아니라고 본다. 시간을 넘나드는 작업을 하는 역사가에게는 현재 자신의 눈에 보이는 시야를 넘어 다른 시점의 시야를 절실하게 열어주는 '창문'의 존재가 실제로 필요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창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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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