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뜻하신 바도 크게 이루시길 바랍니다.

 

연락이 늦었습니다.

저는 지금 서울입니다.

도착한 지 5일째 되는 아침입니다.

아침 다섯시에 눈이 떠지는 걸 보면, 시차 적응도 된 것 같고요.

제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침형 인간입니다.

 

1차적으로는 종합시험도 보고, 논문 중간보고도 겸해 왔습니다.

더 크게는 사람들 만나며 내년부터 '뭘 할까' 구상을 다져나가는 중입니다.

기질상 대학에서만 머물 수 없지 싶고요.

백영서 선생님은 내년부터 '논객'으로 일 좀 하라고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창비를 염두에 두신 거겠죠.

 

하지만 말 잘 안듣는 제자는 다른 꿍꿍이로 신이 나 있습니다.

저는 제가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는 매체를 만들까 합니다.

동(아시아)학에 특화된 온라인 저널로요.

애당초 윤여일에게, 대화로 주고받는 <동아시아를 묻다>를 제안한 것도,

저 나름으로는 '몸 풀기' 같은 작업이었습니다.

이쪽이 전해준 인쇄술에 그리스 고전이 얹혀서 르네상스가 일어났듯,

저쪽이 전해준 인터넷에 동방 고전이 접속하면 신-르네상스다. 라는 상상을 종종 합니다.

올해는 좀 구체적으로 사업(?)의 틀을 짜볼까 합니다.

 

'실록' 작업 얘기 처음 듣고는 저는 조금 아쉬웠더랬습니다.

선거 결과의 파장이 여실하구나 해서 놀랬고,

무언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작업하실 수 있는 분을 놓치는 듯한 안타까움이 있었지요.

그런데 말씀하셨듯,

'20세기 동아시아'의 문제의식을 '실록'에 충분히 담아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꾸려가는 매체가 정말로 출범이 된다면,

그쪽에서 '20세기 동아시아'도 진행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더 잘된 일이구나 하고 있습니다.

강호의 고수들이 계급장 떼고 자유로이 노니는 동학의 터전을 일구고 싶습니다. 

신문과 논문 사이에서 2-30만의 고급 독자 시장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동학으로 추려도, 10만은 되지 않을까.

신문은 얕고, 논문은 멀리 있으니,

그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우물을 파고 싶은 것이지요.

수준은 프레시안 북스에, 동아시아에 관한 지식/정보/담론을 집약하는 허브가 되면 좋겠네요.

누구와 할 지, 돈은 얼마나 들지, 또 어떻게 마련할지 등등등.

미국에서 차분하게 공부하던 때와 달리,

한국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가슴만은 한껏 부풀어 뜨거워지고 있던 참입니다. 

 

일단 이렇게 간단한 인사부터 드립니다.

저도 종종 '뭘 할까'에 부합한 내용으로 자문을 구하게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이번 글에 대한 칭찬은 조금 지나치신 걸요. ^^

저도 나름 애쓴 글입니다.

1월 2일 출국이었는데, 1월 1일 온종일 썼습니다.

헌데 내가 지금 무리수를 두고 있는 건가,

또는 나 혼자 지적으로 즐거운 자폐적인 작업인 건가, 고민이 있었지요.

한국에 들어가서 다시 읽어보고, 공론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폐기하자 했습니다.

그런데 인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법 괜찮게 수정이 되었습니다.

나름 흡족한 바 있어서, 강양구 기자에게 보냈고요.

이렇게 크게 호응을 표해 주시니, 저도 크게 기쁩니다.

이쪽으로 생각을 일으켜 주신 점도 크게 감사드리고요.

작년 후반부터 선생님과의 교신이 준 영향이 매우 큽니다.

 

이번 서울 행에 연재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몇몇 분도 만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부러 피했습니다.

글로 나눌 인연이 지긋하기에, 직접 뵙는 것은 훗날로 미루려고 합니다.

능히 이해해 주시시라 생각됩니다.

 

도착한 날 밤, 서울의 추위에 혼쭐이 났습니다.

짐을 끌고 동생 집으로 향하는데, 새끼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더군요.

매서운 겨울, '건강'하게 나시길 바랍니다.

 

-이병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