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어제 민정장관에 취임하셨죠. 하지 사령관, 러치 군정장관에 이어 군정청 서열 제3위의 직책인데, 그보다도 조선인으로 최고 행정책임자라는 의미가 큽니다. 몇 달 전부터 진행되어 온 군정청의 ‘조선인화’가 선생님의 장관 취임으로 한 차례 매듭을 지은 것입니다.

섣불리 축하는 드리지 않겠습니다. 야심 있는 분이라면 요새 말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겠지만, 선생님 기질과 이념으로는 미군정 서열체계 속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이죠. 더구나 민정장관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기 힘든 조건이 첩첩이 쌓여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정장관이란 과연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 조선인에게 맡기는 가장 중요한 자리를 그 동안 군정청과 거리를 두고 지내 온 선생님께 맡기는 까닭이 무엇인가? 선생님께서는 뭘 믿고 그 자리를 맡으시는 건가?

민정장관의 역할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 주시죠.


안: 기본적으로는 군정의 ‘민간행정’ 부문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그 동안 존슨 장관이 수행해 온 직무죠. 그런데 이제 조선인을 이 자리에 앉히는 데는 조선인 관리의 대표자라는 의미가 덧붙습니다. 미군이 남조선에서 모든 공식적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군정 하에서라도 가능한 한 조선인이 조선의 문제를 처리하게 함으로써 자치능력을 키우는 것이 ‘조선인화’의 목적입니다. 그 노력을 체계화하는 중심 역할이 민정장관에게 있습니다.


김: 군정청의 정책노선에 남조선 인민과 정치세력의 휴척과 득실이 걸려 있는 상황입니다. 조선인으로서 가장 큰 영향력과 결정권을 가진 민정장관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정치세력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군정청 입장에서도 그런 중요한 자리를 자기네와 협조가 잘 되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을 텐데요. 지금까지도 중요한 자리는 모두 미국 유학자나 기독교인에게 맡겨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선생님처럼 영어도 잘 못하고 고분고분하지도 않은 분에게 맡기는 까닭이 뭘까요?


안: 하지 중장, 러치 소장, 브라운 소장, 모두 입맛대로라면 내게 맡기고 싶지 않겠죠. 그런데도 내게 맡기는 것은 상황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에 진주한 지 1년 반이 되어 가는데 민심이 갈수록 군정으로부터 이반되어 가는 것을 그들도 느끼겠죠.

같은 시기에 소련군이 진주한 이북 지역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용은 차치하고 형식면에서 이북 지역의 조선인 자치는 계속 발전해 왔어요. 군정청 대신 임시인민위원회가 전면에 나선 지 1년, 이제 보통선거를 통해 ‘임시’까지 떼어낸 인민위원회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련군은 점령군으로서 역할을 끝내고 물러갈 태세가 되어 있는 거죠.

미소공위 재개를 앞두고 미국 측은 명분에서 불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점령’ 상태를 빨리 끝내는 것이 미소공위의 목적이니까요. 그래서 입맛에 안 맞더라도 조선인의 실질적 자주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미군정의 성격을 돌리기 위해 나 같은 사람을 택한 겁니다.


김: 이남에서 ‘친미파’의 역할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미군 진주 무렵 좌익이 주도한 인공 수립에서 ‘반공투사’ 이승만 씨를 주석 자리에 올린 것도, 이승만 씨 귀국 후 선생님이 독촉 결성에 앞장선 것도 친미파의 생산적 역할을 기대한 까닭 아니겠습니까? 미국을 잘 알고 미국과 가까운 사람들이 미국과 조선 인민 사이의 관계를 잘 맺는 데 공헌해 주기 바란 거죠.

그런데 그 동안 “영어깨나 하는 자들”의 행태는 이 기대를 등졌습니다. 중하급 관리들은 ‘통역정치’로 혐오의 표적이 되고 조병옥, 장택상 등 경찰 간부들은 식민경찰을 되살려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이승만 씨는 미국에 의존하는 분단건국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씨가 김구 선생과 말다툼 중에 “영어도 할 줄 모르면서!” 윽박질렀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영어가 특권의 근거처럼 통하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얘기죠.

영어깨나 하는 이들 중에 자기 이익보다 민족의 입장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면 지금까지 미군정이 일으켜온 폐단도 줄일 수 있었고, 지금 상황에서도 선생님 같은 분이 어려운 자리에 불려나오는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안: 영어 잘하는 이들 중에도 민족을 앞세운 분들 많아요. 얼마 전 경찰에서 쫓겨난 최능진 씨, 여운형 씨 형제 같은 분들이 잘 알려져 있죠. 민족을 앞세우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박헌영 씨도 영어를 잘한다고 하데요.

문제는 영어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미군정이 사람 고르는 방식에 있어요.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자기네에게 고분고분하고 당장 이익을 갖다 주는 사람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않으니까요. 군정의 목적에 대한 투철한 인식 없이 권력을 운용하다 보니 군정청이 “선한 자는 오지 않고 오는 자는 선하지 않은(善者不來 來者不善)” 곳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 같은 사람 불러 쓴 소리 듣겠다고 하는 것은 인식이 좀 나아진 결과겠죠.


김: 설령 군정 당국자들이 늦게나마 철이 들어 선생님을 민정장관으로 모시고 싶어 하더라도, 그것을 가로막고 싶어 하는 강고한 세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 자리를 탐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선생님 같은 민족주의자가 그 자리 맡는 것을 꺼려하는 분단주의자들이 이제는 군정 당국자들도 어쩌지 못할 만큼 자리를 잡고 있는데요.

선생님도 참여한 조미공위에서 다른 무엇보다 역점을 두고 요구한 경찰개혁을 생각해 보세요. 미국인들도 그 필요를 수긍했지만, 조병옥과 장택상을 중심으로 굳어진 경찰 체제를 뒤집어엎을 엄두를 내지 못했죠. 그리고 이승만 씨는 미국 가서 하지 사령관을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있고요.

보름 전 입법의원의 반탁결의안 표결 때, 선생님 수정동의에 반탁의 의미가 더 약한 것이 아닌데도 44대 1이란 결과가 나왔죠. 내용을 보고 표결한 게 아니라 한민당, 독촉 등 극우파가 세력 과시를 위해 눈감고 찍은 것이잖아요? 합작위에서 활동해 온 선생님의 제안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동의할 수 없다는 배짱이죠. 그들에게 선생님의 장관 임명을 가로막을 힘이 없었다는 사실이 얼른 이해되지 않습니다.


안: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죠. 그러나 한민당 수뇌부에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심지어 한민당 쪽에서 나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는 이야기도 돕니다. 나무에 올려놓은 다음 흔들겠다는 뜻인지...

반탁결의안은 너무했어요. 제 별명이 ‘44 대 1’이 되었답니다. 원안에서는 같은 뜻이라도 너무 편벽된 시각으로 표현했어요. 하지의 편지 한 장만을 문제 삼는 식으로. 그래서 하지가 인신공격을 당했다고 발끈했죠. 나는 언론 자유 보장을 양쪽 사령관에게 요청하는 표현을 제안한 건데, 결의안을 추진한 한민당과 독촉 쪽에서 합작위 사람이라면 무조건 왕따를 놓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미군정에서는 미소공위 재개를 앞두고 합작위를 지켜온 중간파(중도파)를 앞세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죠. 그리고 민정장관 자리가 힘든 자리라고 한민당 쪽에서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나처럼 힘없는 사람에게 맡겨놓았다가 적당한 시기에 쫓아내고 되찾으려는 속셈이 아닐지.


김: 선생님은 내내 우익을 표방해 오셨는데, 사실 지금에 와서는 좌익과의 힘겨루기보다 우익 내의 분단건국 추진세력과의 대결이 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승만 씨는 단독정부 수립 주장을 8개월 전에 내놓았고 이제 3상회의 결정 폐기 주장까지 와 있습니다. 연합국 합의에 의한 건국을 포기한다면 미국에 기대어 이남 정부를 만들자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북은 소련에 기대어 자기네 정부를 만들라는 얘기 아닙니까.

이북에서는 실제로 인민위원회가 단독정부의 성격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공산당도 북로당으로 바꿈으로써 이북만의 정당이 되었죠. 통일건국을 위해서는 이남 정계가 민족의 대의를 빈틈없이 받들어야 할 텐데, 이승만 씨 추종세력이 커지고만 있으니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선생님이 속한 한독당과 그 영도자 김구 선생이 민족의 대의에 앞장설 것을 모든 인민이 바라는데, 오히려 반탁운동에 매달려 분단건국 추진에 이용당하는 감이 있습니다. 김구 선생께서는 분단건국의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고 계신 건가요?


안: 한독당으로 합당한 뒤에도 아직까지 융화가 잘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에서 비주류로 겉돌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같은 당에서 모시게 된 이후로 김구 선생과도 오히려 소원해진 감이 있어요. 이번 민정장관 취임도 정식 제안을 받은 후 1주일 가까이 고심, 완전히 결심을 한 뒤에야 선생께 찾아가 말씀드렸습니다. 나와 생각이 상당히 다르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 혼자 결정할 일로 생각한 거죠.

김구 선생의 민족 대의는 일체의 외세를 배격하는 겁니다. 그 대의만 투철히 지킨다면 부득이하게 일시 분단을 겪더라도 끝내 극복할 것이라고 믿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조선의 해방이 연합국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현실을 감안해서 보다 현실적 노선을 취하시라고 권해드리지만, 선생께서는 우리 자신의 광복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믿음에 집착하십니다.


김: 민정장관 취임에 대해서는 뭐라 하시던가요?


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승낙을 이미 하였으면 도리가 없는 것이고, 승낙하기 전이라면 나로서 단연 그대의 취임을 말라고 했을 것이요.” 뒤이어 “금후 그대는 도로무공(徒勞無功)일 것이고, 결국 득담(得談)만 많이 할 것”이라고도 하셨죠. 모두 내가 예상했던 말씀입니다.


김: 선생님은 민주의원에도 참여하지 않으려다가 밀려서 들어갔고, 입법의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도 제안이 있은 후 완강하게 거절하다가 결국 맡으셨습니다.

민주의원이나 입법의원은 개인적으로 내키지 않아도 낄 수 있겠죠. 여럿이 함께 하는 일이니 선생님이 있는 것으로 해서 없는 것보다 낫게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민정장관은 혼자서 책임지는 일인데, 정말 수락하기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경륜을 마음껏 펼치기는커녕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하고 김구 선생님 말씀대로 원망과 비난을 모으는 자리니까요.

하지만 힘들고 괴롭더라도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서 수락하셨겠죠. 군정 당국자들의 취향이나 정국의 동향이 모두 불리한 여건으로 보이는데, 무엇을 믿고 수락을 결심하셨는지요?


안: 내가 아무 자리나 무조건 도리질하는 사람처럼 보는 모양인데, 내가 자청해서 맡는 자리도 있어요. 합작위 참여를 비롯해서 합작에 관계되는 일은 사양한 일이 없습니다.

민정장관 얘기도 합작위 활동의 연장선 위에서 나온 겁니다. 지난 5월 좌우합작 얘기가 나올 때부터 미국인들은 합작 사업을 지원해 왔습니다. 합작의 의미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얕아 수박 겉핥기에 그친 감도 있지만,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인식이 많이 깊어졌어요. 조미공위 같은 데서는 사실 우리 합작위원들의 기대보다 이야기가 더 깊이, 더 멀리 나간 면도 있죠.

우리 합작위원들에 대한 그들의 신뢰가 꽤 커져서 조미공위에 임하던 우리 입장을 더 지속적으로 추진할 기회를 주게 되었어요. 그래서 김규식 박사에게 입법의원 운영에 상당한 재량권을 주고 민정장관을 내게 맡긴 겁니다. 입법부와 행정부, 게다가 김병로 씨의 사법부까지 3부 운영을 조선인에게 맡기고 자기네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노력으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나 스스로 장담 못합니다. 그러나 김규식 박사와 김병로 씨처럼 믿음직한 분들과 도와가며 적극적 실천의 기회를 갖는 것이 해방 후 1년 반 만에 처음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