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은 유럽대륙의 여러 나라들과 서머타임 시행일자를 달리했다. 다른 나라들이 모두 5월 1일부터 시작하면 영국은 5월 10일부터 시작하고, 다른 나라들이 9월 10일에 끝맺으면 영국은 9월 5일에 끝맺는 식이다. 항공기나 페리의 운행시간표는 이 차이에 맞추느라고 영 지저분하게 되고 여행자들은 적지 않은 불편과 혼란을 겪었다.


대륙국가 사람들, 특히 프랑스사람들은 영국인의 이런 ‘주체성’을 여간 밉살스러워하지 않는다. 남들 다 하는 식을 따라하지 않고 꼭 튀어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영국인들의 심성이 고약해서 남들 불편하게 하는 일이라면 자기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저지른다는 불평까지 한다.


영국인들도 이런 불평과 비난을 곱게 받아들이기만 할 생각은 없다. 경박한 프랑스인, 미련한 독일인, 미치광이 스페인인, 사기꾼 이탈리아인의 모습은 많은 영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이다. 그뿐 아니라 같은 영국 내에서도 잉글랜드인은 뺀질이로, 스코틀랜드인은 구두쇠로, 웨일즈인은 미개인으로, 서로서로 흉보는 일을 수백 년간 계속해 오면서 지쳐하는 기색이 없다.


오랫동안 가까이 접해 오는 이웃 민족끼리 존경심과 애정보다 경멸감과 혐오감을 더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도 풀이된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국민정서도 침략의 역사나 경쟁의 현실 같은 구체적 조건뿐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원초적 조건 때문이라고 봐야 할 측면이 많다.


수십 년간 유럽공동체를 외면해 온 영국이 90년대 들어 유럽연합에 참여하게 된 것은 ‘세계화 시대’의 변화다. 서머타임 날짜도 다른 나라들과 맞추기로 했다. 지리적인 거리의 뜻이 퇴색하는 새로운 시대에는 이웃간의 아웅다웅도 맥이 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에서나 프랑스에서나 근년에는 이웃나라보다 미국, 일본 등 먼 나라에 대한 적대감이 비중을 키우고 있다.


지난 15일 일본의 한 지방재판소가 한일간의 분쟁이 된 문제에 한국 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국익이나 국민감정을 도외시한 이런 판결에도 ‘매국노’를 규탄하는 시위가 재판소를 덮치지 않는 사실이 일본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일본 사법부의 의연한 자세에 경의를 표하면서 동시에 일본 극우파의 어떤 난폭한 주장에 대해서보다도 더 깊은 두려움을 품는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