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은 연재를 쉬는 날인데, 내 글보다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이 있어서 오늘 올린다. <신천지> 제1권 제6호(1946년 7월)에 실린 이 글(오기영 <진짜 무궁화>(성균관대학교 출판부 펴냄) 161-164쪽)에서 65년 전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알아볼 수 있다.


<모세의 율법>


애급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 철쇄로부터 해방되어 조국을 향해 광야로 40 년의 긴 유랑을 계속할 때 영도자 모세는 동포상잔을 최소한도로 막기 위하여 율법을 베풀었는데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 갑이 을의 눈 하나를 뽑았으면 을로 하여금 갑의 눈 하나를 뽑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처벌을 복수로써 행하였다. 살인자를 벌할 권리는 국가에 있고 피살자의 유족에게 이 권리를 주지 아니할뿐더러 복수도 범죄로 규정하는 20세기의 법률관념으로서 비판하면 이 율법은 지극히 야만적이라 할 만한 원시적 복수행위의 신성화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가 차라리 이 원시적 율법을 재인식하고 모세의 재림을 이 땅에 바라야만 할 지경이라면 이것은 대단한 비극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눈알 하나에는 눈알 하나요, 이 한 개에는 이 한 개로 정하고 이 한계를 넘지 않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눈알 하나를 뽑혀서 애꾸가 된 피해자가 가해자의 두 눈알을 몽땅 뽑아서 아주 장님을 만들고도 그리고도 분해서 씨근거리는 모양을 장차 우리 조선에 진보적인 민주주의 법률을 베풀고 인민을 위하여 정치를 하여줄 큰 인물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비극이란 말이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아직도 못 알아듣는 이들을 위하여 한 번 더 주석을 하라면 이러하다. 갑당이 을당의 험구를 한 치쯤 하였더니 복수라면 점잖지 않지마는 을당은 한 자쯤의 욕설로서 갑당의 모략을 분쇄하였다. 한 치에 비하여 한 자는 아홉 치가 더하니 “한 눈은 한 눈으로”의 모세 율법에 어긋남이 심하다. 이번에는 다시 갑당이 분연히 을당의 아홉 치를 분쇄하기 위하여 무려 일장의 대봉(大棒)을 내두르지 않을 수 없이 되었다. 일장의 대봉을 꺾기 위하여는 다시 상대편은 십장 백장의 몽치를 들고 나서게 되니 어시호 좌우 양당의 기고만장은 정히 과장이 아니다. 이리하여 서로 게거품을 물고 욕은 욕으로 대하되 한 마디를 두 마디 세 마디로 응수하고 모략은 모략으로 대하되 응수가 거듭할수록 그 심모원려는 가히 일취월장의 진보적이라 무(無)에서 의사(擬似)로 다시 진성(眞性)으로 드디어 악잘(惡疾)로 발전하고 있다.

이리하여 좌는 모두 극렬분자가 되어버렸고 우는 모두 반동분자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아귀다툼에 싫증이 나서 이들의 머리가 냉정하여지고 반성하는 날이 있기를 기다리면서 하후하박의 불공평을 범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좌우를 물을 것 없이 쌍방이 하루바삐 아집에서 해탈하라고 충고하는 부류가 생겼는데 이들에게도 명예는 분배되었다. 가로되 기회주의자라고. 그러니 극렬분자와 반동분자와 기회주의자뿐인 조선은 어찌될 것이란 말인가. 우에 속한 아버지는 반동분자요, 좌에 속한 아들은 극렬분자인데 만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가만있으면 이근 기회주의자요, 부창부수로 각기 남편을 따라서 고부마저 진영을 달리하면 극렬과 반동은 뚜렷할까 모르거니와 이것이 도시 이 집안의 흥조(興兆)냐 망조(亡兆)냐.


항상 자기비판에 무자비한 좌익이면서 극렬분자라는 욕설이 단순한 반동분자의 욕설이라고만 고집하며, 토지국유를 옳다고 시인하는 우익이면서야 어째서 이할 미만의 지주를 위하여 반동분자라는 불명예에 허심탄회 무관심한지 짐작은 하지마는 똑똑치는 아니하다.

탄식하거니와 좌우는 아직 각자의 아집에서 해탈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삼십팔도선의 한 끝씩을 붙들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설마 그렇게 무식할 리는 없는데 이 줄다리기로 이 줄이 꼭 끊어지고 상대편이 앞으로 고꾸라질 줄만 믿지나 않는가.

이것은 대단한 오산이다. 삼십팔도선은 한 끝씩 붙잡은 좌우가 서로 앞으로 다가와서 걷어치울 수는 있으려니와 잡아당겨서는 끊어질 줄이 아니다. 그건 아무리 잡아당겨 보아도 끊어질 줄은 아니다.

하물며 이 줄다리기 구경에 흥이 나서 해리 트루먼 씨와 스탈린 씨가 한 번 씨름을 해볼 흥미가 일어나면 이기는 편을 위하여 마땅히 상우(賞牛)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는 이가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할 것이다.(물론 점잖은 트루먼 씨와 스탈린 씨가, 더구나 조선 풍속에 어두운 이 분들이 단오도 지난 이 때에 씨름을 할 리 만무라 상우 자금을 갹출할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이기는 하다.)

그러나 역시 아무래도 궁금한 것은 어째서 좌는 극렬분자요, 우는 반동분자냐 하는 것이다. 좌의 심판자 우가 아니요 우의 심판자도 좌가 아니다. 심판자는 오직 민중이거늘, 민중은 알지 못하는 새에 피차 이런 명예의 교환은 신사적이 아니다. 민중의 심판에 앞서서, 심지어 민중의 심판을 간섭하여 상대방을 거꾸러뜨리는 것은 비인민적이다. 묻노라 이 말이 과한가?

 

Posted by 문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3.07.26 16:41

    지금은 반짝반짝 빛이 나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빛은 사라저버릴거야,지금 우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