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ations Of Confucian-Chinese Civilisation / 유교-중국문명의 기초

 

이들과 기원도 다르고 역사적 발전의 궤적도 다른 또 한 종류의 문명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긴 세월을 통해 다른 문명들과의 접촉을 계속 가지면서도 고유한 특성을 지킨 것으로 보이는 유교-중국 문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교문명의 특성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문명의 성격을 살피는 데 특별히 중요한 하나의 영역이 종교입니다.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에 퍼진 유일신의 종교가 있고 샤머니즘과 조상숭배에서 세속적 백가(百家)사상으로 넘어간 중국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다신교적 신앙과 관습을 가진 인도-유럽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무신론적 불교 경전도 있습니다.

 

각 문명의 발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지식의 원천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양쪽 다 바이블이든 코란이든 성서(聖書)가 모든 사상의 출발점이고 지혜의 그릇이었습니다. 두 종교 모두 그리스-로마 세계관과 교섭을 가졌습니다. 기독교 쪽은 그 교섭 단계를 잊어버렸고, 이슬람 쪽은 얼마동안 살펴보다가 결국 버리고 말았습니다. 천년이 지난 후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로마 고전을 흡수할 새로운 계기를 가졌고, 그로부터 우리 현대문명이 빚어져 나왔습니다.

 

중국 문명의 출발은 이와 달랐습니다. 수십 개 국가가 수백 년간 전쟁을 벌이며 지내다가 결국 통치의 정당성은 전쟁으로 결정된다는 법가 원리를 진나라가 세웠습니다. 그러나 진나라는 오래가지 못하고 지속적 중앙집권 체제를 세운 것은 그 뒤의 한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어떤 문헌을 경()으로 삼을지에 대해서도 합의가 없었습니다. 여러 계열 사상이 법가의 딱딱함을 완화하는 데 활용되다가 백년이 지난 한 무제 때에야 유가 사상이 가장 효과적인 통치수단으로 낙착되었습니다.

 

한나라 멸망 후 4백 년간 분열기에 통치술의 여러 가지 실험이 있었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유목민이 유가-법가 구조를 물려받아 강화하려 하기도 했고, 인도에서 수입한 불교도 활용되었습니다. 차츰 유가의 효용성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판명되면서 그쪽 경전이 전면에 나서고, 통치에 참고할 역사서도 그쪽에서 고르게 되었습니다. 당나라 초기에 유가 문헌이 공교육의 필수 교재로 자리 잡고 송나라 때인 11세기에는 6(六經)이 학문의 기본 텍스트로 정해졌고 13세기까지 13경으로 늘어났습니다.

 

경전의 범위를 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지식이 인위적인 것이며 그 평가에 시간이 걸린다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11-12세기 송나라 황제들은 유가의 세련된 가르침을 최고의 성취로 보았습니다. 그 가르침이 몽골족의 정복을 막아주지는 않았지만, 14세기에 명나라가 한족 통치를 회복하자 그 원리를 재확인하고 모든 지식을 네 개 범주로 정리했습니다. (, 유가 경전), (, 역사기록), (, 철학과 기술), (, 글 모음)의 순서로 중요성을 가졌습니다.

 

중국 문명이 이슬람 문명과 같은 식으로 유럽 문명과 대립한다고 보는 헌팅턴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뿌리를 함께하는 상대와 수백 년간 대립을 겪어 온 이슬람 세계와 달리 중국은 19세기까지 기독교 세계와 별 접촉이 없었습니다. 중국인이 유럽의 과학과 군사력과 경제 능력이 우월함을 인정하고 배우러 나서면서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인이 경탄한 이 기술들이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공유하는 유일신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속적 그리스-로마 유산의 산물이라는 것이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Can Civilisations Be Borderless? / 문명에는 경계선이 꼭 있는 것일까?

 

이제 문명들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문명들 사이에 경계선이 없어서 지속적 접촉으로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언제나 확고한 경계선이 있어서 마주치기만 하면 충돌하게 되어 있는 것일까요? 거대한 도전 앞에서 문명을 지키려 애쓴 근대중국의 경험에서 문명의 경계선 없는 속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의 영역에서 참고가 되는 사례들을 뽑아 보겠습니다.

 

오래전부터 중국 학자들은 <시경>, <서경>, <예기>, <춘추><역경>십익(十翼)” 등이 중국의 초기 역사를 담은 것으로 여겨 왔습니다. “는 좋은 정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의 고전에는 보편적 원리들이 정착되었고 의 역사서는 제도적 기억방법과 정치의 구조를 제공했습니다.

 

중국이 다민족 국민국가로 모습을 바꾸는 오늘날에는 고전의 보편적 타당성에 대한 믿음을 지켜가기 어렵습니다. “의 고전은 이제 중국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 가치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국가적인 것이라면 문명의 규범이 아니라 배타적 이데올로기일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사상가들은 고전의 보편적 타당성 앞에 자가당착의 입장에 빠졌습니다. 참으로 중국을 위대한 문명을 가진 현대국가로 내세우고 싶다면, 중국의 포부를 표현하는 데 의 영역을 계속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고대세계에서 정치절서를 세우던 과정의 요약 설명으로 고전들을 본다고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 왕조의 기초가 된 경험들이 고전들에 담겨 있습니다. 그 후의 경험들은 ”, 역사서에 편입되어 2천 년간 중국의 구조와 형태가 결정되어 온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경-사 연속체를 오늘날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비교할 수 있겠는데 다만 중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입니다.

 

경전을 세속적인 시각으로 살펴보는 길을 통해 중국은 그 필요에 맞는 근대성이 어떤 것인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중국인은 과거 경험의 총합 위에 세워진 실제적 지식의 거대한 영역들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 경험의 총합에는 여러 사상과 제도, 정책 결정의 기록, 법률과 규칙, 토지와 자원의 보고서 등 오랜 세월 동안 정치의 수준을 높여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중국의 지식 유산에는 사이의 전일론적 관계가 들어 있습니다. 수천 년간 지도자들이 경계선 없는 제국을 운영하게 해줌으로써 문명에 도움이 된 측면입니다.

 

2015년 베이징 포럼 "문명의 조화와 만인의 번영" 개막 강연 내용.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