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집단은 각자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문화는 기술 발전과 결합해서 문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civilisation”은 인간이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로 17세기 유럽에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고대세계에서 교양을 빚어낸 도시생활과 시민집단을 묶어준 가치관과 물질조건의 출현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는 문화나 문명과 같은 뜻의 말이 없어도 깨인 집단과 깨이지 않은 집단 사이의 구별은 늘 있었습니다. 위계질서의 인식에 중점이 있었는데, 한쪽에는 친족집단 내의 혈연관계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국가구조의 안정성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19세기부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산업화된 서양에서 문명의 새로운 기준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접촉 초기 유럽인들은 동아시아문명의 위대함을 인정했으나 19세기에 계속 군사적 승리를 거두면서 그 문명은 이제 쇠락한 것이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자기네 문명에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필요한 점은 서양문명에서 뽑아 배울 자세를 취했습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서로 다른 문명 사이의 경계선이 문명과 야만 사이처럼 쉽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반응의 과정을 되짚어보며 과연 우리가 경계선 없는 문명의 시대에 접어든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Perspectives From Two Political Scientists / 후쿠야마와 헌팅턴의 관점

 

짧은 강연으로는 문명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논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문명의 역할을 논한 미국 사회과학자 두 사람의 주장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론이고 또 하나는 그 반응으로 나온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론입니다.

 

후쿠야마의 결론은 현대문명의 한 갈래가 완전한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고, 인간의 궁극적 성취가 어떤 조건 위에서 이뤄지는 것인지 이제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과학혁명 위에 세워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세계경제 등 서양에서 유래한 제도들이 궁극적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경쟁하는 문명들로부터 좋은 사상과 제도를 받아들이는 포용력에 그 성공의 열쇠가 있었고, 그 틀을 전 세계가 따라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헌팅턴은 종점이 아직 멀리 있고 우리 앞에는 문명의 충돌에 따른 투쟁의 시대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많은 문명이 이 세상에 존재했고, 그중 적어도 둘, 유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은 지금의 권력체제에 도전하는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헌팅턴이 불러온 논쟁에서 중요한 질문은 문명이란 것이 충돌하게 되어 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명들이 서로에게 배워가며 인류의 발전 기반을 확충해 온 많은 사례를 헌팅턴의 비판자들은 지적했습니다. 호전적인 일부 인간들의 충돌이지, 문명 자체의 충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후쿠야마와 헌팅턴 모두 과거로부터 미래에 관해 배울 것이 많다는 관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후쿠야마는 나아가 정치질서의 기원을 탐색했습니다. <정치질서의 기원 The Origins of Political Order>(2011)에서 그는 인간 질서의 열쇠가 국가에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양대 세력 사이의 중앙 균형이 하나의 초국가로 대치된 후 유일한 슈퍼파워 미국은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오래 그 지배적 위치를 지켜나갈까요?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기보다는 문명의 기원과 속성을 질문에 연결해 보겠습니다. 문명이 성공할 수도 있고 죽어갈 수도 있다는 아놀드 토인비의 생각에 수긍하면서, 문명이 탄생하고 쇠퇴하고 사망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성공한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 문명들을 살펴보면서 그 역사적 발전 과정에 어떤 특이점이 있는지 따져보겠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서양문명이 가장 강한 문명임을 인정합니다. 두 개 문명이 그 서양문명에 도전할 수 있고 실제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는 헌팅턴의 생각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유교-중국 문명과 이슬람문명입니다. 저는 오늘의 세계적 문제에 대한 보다 분석적인 시각을 통해 문명 간 교섭을 지금 가로막고 있는 것이 한편으로는 동족상잔 성격의 전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뿌리 깊은 오해라는 견해를 제시하겠습니다.

 

 

Common Roots Of Christianity And Islam / 같은 뿌리에서 나온 기독교와 이슬람

 

서양문명의 핵심 요소들이 이슬람문명과 비슷한 일신교적-초월적 신앙에 뿌리를 둔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지적합니다. 서양문명과 이슬람문명은 유대교와 지중해권 고대문화의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유대교로부터 기독교의 여러 교파와 이슬람의 순니파와 시아파가 갈라져 나왔습니다. 그 교파들이 다신교 적대세력을 어떻게 상대했는지, 기독교가 어떻게 그리스-로마 문명에 승리를 거두었는지, 그 후 분열된 기독교 집단들이 예언자 마호메트의 영성으로 뭉친 아랍인에게 세력권의 절반을 정복당하기에 이르는지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학자와 사상가들은 그리스 사상을 소화해 초기의 과학 발전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후에 합리적 분석과 과학적 방법론을 거부하고 자기네 성서를 모든 지혜의 유일한 원천으로 여겼습니다. 그 문명은 치명적인 역주행을 통해 기도와 칼에만 의지한 독점무역으로 마호메트 혁명의 영광을 지키는 데만 매달렸습니다.

 

그들의 적 기독교인들은 십자군으로 반격했으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자기네가 우월한 문명이라는 공허한 주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자기네가 심각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에야 나르시시즘에서 깨어나 상황을 새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인도와 중국 등 다른 문명권과 육로가 막혀 있던 유럽인은 힘과 자신감을 되찾을 길을 찾아 바다로 눈을 돌렸습니다. 해로 개척 성공에 이어 놀랍도록 왕성한 활동으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펼치면서 열세에 몰려있던 유럽이 압도적인 무력과 재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의 싸움이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누구 신이 진짜 신이냐 하는 다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싸움이 격화된 것은 그리스-로마 문명을 적극 받아들인 세속파와 이를 신성모독으로 배격한 근본주의적 신앙파 사이의 대립 때문입니다. 이 대립은 산업자본주의와 세속적 근대국가를 출현시킨 근대문명과 격렬한 성전(聖戰)을 통해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복고파 사이의 대결로 이어졌습니다.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본 것이 이 장면입니다. 양측의 영성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고, 피차의 역사가 그렇게 뒤얽혀 있고, 지난 1500년간 양측의 성쇠를 좌우한 사상과 제도를 서로에게서 배워온 사이인데, 어떻게 그 충돌의 주체가 문명 자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