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료란 특이한 맛, 냄새, 색깔을 가진 물질이고 그중에는 더러 특별한 생리적 효과를 가진 것도 있다. 근대화학의 발전에 따라 합성향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당연히 모두 천연재료였고, 식물의 여러 부위를(, , 열매, 뿌리 등) 말려서 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15-16세기 유럽인의 대항해시대를 이끌어낸 것이 향료였다는 말에 어리둥절하기 쉬운 것은 이것이 “spice" 같은 서양말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향료로 여긴 물질을 동양에서는 양념이나 약재로 대개 생각했다. ‘향료(香料)’라면 냄새를 맡는 것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향료의 범주를 확인하고도 어리둥절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군주들이 국력을 기울이고 수많은 선원들이 목숨을 걸고 미지의 세계로 나서게 만든 동기가 한낱 양념이나 약재에 있었다니? 금은보화라면 모른다. 거의 무제한한 교환가치가 있으니까. 하지만 필수품 성격이 약한 (식량이나 옷감에 비해) 향료가 어떻게 그리 큰 경제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문명 초기 장거리교역의 주인공 향료

 

음식을 불에 익혀 먹는 것이 인류만의 특징이고, 1백만 년 이상 된 일이라고 한다. 이 재주 덕분에 식량의 비축이 쉽게 되었고, 그것이 문명발생의 토대가 되었다.

 

조리 기술의 발달에 따라 여러 재료를 섞어 먹는 관습이 생겼고, 섞는 재료 중에 맛을 좋게 해주는 양념과 건강에 보탬이 되는 약재 등 향료의 범위가 만들어졌다. 기원전 1720년경으로 추정되는 시리아의 한 유적에서 한줌의 정향(丁香, clove)이 들어있는 토기가 발견되어 그 시기에 향료의 장거리교역이 이뤄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향은 동남아시아 출산물이다.) 그 무렵 이후에는 이집트의 에버스 파피루스, 인도의 라마야나 등 향료의 광범한 유통을 증언하는 문헌들이 나타난다.

 

가치에 비해 무게가 가벼운 향료는 육로로든 해로로든 초기 교역에서 중요한 상품이었다.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 동방 상품으로 특별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중세 후기 유럽에 매년 약 1천 톤의 후추와 1천 톤의 다른 향료들이 수입되고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위키피디아>에 소개되어 있다. (150만 명 인구의 식량과 맞먹는 가치였다고 한다. 당시 약 1억 명으로 추정되는 유럽 인구에 비추어 꽤 큰 가치이기는 하지만 압도적인 크기는 아니다.)

 

생산재 아닌 소비재가 문명의 흐름을 바꿀 만큼 큰 경제적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식량과 옷감은 노동력을 양성해 준다는 점에서 생산재의 성격을 가진다.) 여기서 소스틴 베블렌이 말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가 떠오른다.

 

 

과시적 소비가 열어준 근대세계

 

베블렌이 <유한계급론>(1899)에서 과시적 소비를 말할 때는 산업혁명의 진행에 따라 사회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특히 미국에서는 노예제 철폐에 따라 귀족성격의 농장주로부터 부르주아지성격의 상공업자에게로 주도권이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신분 의식에 큰 혼란이 일어나고 신흥 부유층이 새로운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소비를 위한 소비에 몰두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베블렌은 과시적 소비가 인류 역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있었던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행태가 사회의 좁은 구석들을 얼룩지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를 소비주의로 휩쓸어 그 명운을 좌우하기에 이르는 것은 특별한 상황이다. (“consumerism”1970년대 이후에는 소비자의 권리를 강조하는 소비자주의의 뜻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지만 베블렌 당시에는 소비 확대를 지향한다는 소비주의의 뜻이었다.)

 

15세기 유럽이 그런 특별한 상황이었다. 14세기에 거듭된 대기근과 흑사병으로 급격한 인구 감소가 유럽의 사회구조에 전면적 변동을 가져왔다. 르네상스의 문화적 역동성에도 이 구조변동의 에너지에서 파생된 측면이 있었다.

 

문화의 발전은 소비의 발전과 맺어진다. 르네상스를 이끈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소비문화에서도 유럽을 이끌었다. 모든 유럽인의 선망을 받은 이탈리아의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풍요는 이슬람권과의 교류와 교역을 통해 이뤄진 것이었다. 유럽 각지의 상류층은 문화와 함께 소비도 이탈리아를 따라하러 나섰고, 그 중요한 표적이 향료였다.

 

 

지구 표면을 크게 바꾼 콜럼버스 교류

 

베블렌이 지적한 소비주의는 20세기를 거쳐 지금까지 계속 확장돼 왔다. 이것을 산업혁명의 결과로 통상 해석한다. 대량생산된 상품의 소비 확대에 산업자본 세력이 총력을 기울인 결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대항해시대를 전후해 유럽의 기호품 시장이 확대된 추세를 보면 소비주의를 산업혁명의 원인으로 볼 여지도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발견 때 카나리군도에서 가져간 사탕수수를 이스파니올라섬에 심은 사실이 눈길을 끈다. ‘인도를 향해 떠나면서 그곳의 향료를 가져오는 것만 아니라 당시 카나리-마데이라 등지에서 재배가 시작되어 고수익을 올리던 사탕수수를 그곳에서 재배할 가능성까지 모색한 것이다. 그래서 대항해시대에 이뤄진 동-식물종의 전 세계적 확산 현상을 콜럼버스 교류(Columbian Exchange)’라 부르게 되었다.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옮겨진 사탕수수와 커피, 그리고 신대륙에서 가져온 담배의 플랜테이션이 근대 초입에서 유럽 확장의 동력을 제공했다. 초기의 주된 플랜테이션 품목이 기호품-소비재였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면화, 곡물, 고무 같은 필수품-생산재의 대량재배와 장거리운송은 18세기에야 시작되었다. 향료에서 나타난 소비주의 풍조가 근대 초기까지 유럽경제의 발전을 이끈 것이다.

 

 

근대제국주의의 첨병 동인도회사

 

네덜란드와 영국이 17세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부터 해상활동의 주도권을 넘겨받으면서 민간회사를 앞세운 것은 민생과 거리가 있고 투기성이 강한 사업 성격 때문이었다. 영국동인도회사(EIC, 1600-1874)와 네덜란드동인도회사(VOC, 1602-1799)는 신흥자본 세력과 국가의 특이한 합작이었다.

 

EICVOC는 국가가 (도덕적 문제 등으로) 직접 수행할 수 없는 사업의 하수인 역할을 맡다가 차츰 군대, 조세징수권, 재판권, 화폐주조권 등 국가 기능을 갖추면서 18세기에는 회사 자체가 식민제국의 성격으로 바뀌었다. 19세기에 두 회사가 사라진 것은 국민국가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국가가 근대제국주의의 주체로 나서게 된 결과였다.

 

EIC의 마지막 큰 작품은 아편전쟁(1839-1842)이었다. 전쟁의 결과는 중국을 치욕의 세기로 몰아넣은 영국의 승리였지만 본국 국민들은 이 전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184049일 하원 표결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동의안은 271표 대 262표로 간신히 부결되었다. “동인도회사에 좋은 것이 영국에 좋은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이 사라진 장면이다.

 

 

원고를 준비하다가 한의사 조성훈 선생에게 향료와 약재의 관계에 관해 물었다. 조 선생의 답변 중에 재미있는 대목이 있었다.

 

“‘藥’의 글자에 ‘樂’이 들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풍류를 통해 천인합일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과 약을 통해 질병을 이기고 심신을 기르는 것이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태와 어울려 투쟁하고 공생하는 과정을 음악의 화음에 비유한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물질을 음악의 ‘樂’에 ‘풀 草’자를 더하여 약이라는 글자로 사용한 것입니다.

 

음악이라는 것이 안 들으면 허전하고 익숙한 것을 찾게 되게 되는 것을 중독성으로 볼 수 있는데, 약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독성이 있습니다. 특히 약과 상업이 결부되면 점점 더 중독성이 강한 약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찾게 되는 것이 향료고 커피를 거쳐 결국 아편에 이르게 됩니다.”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향료-약재가 많이 나는 이유도 조 선생은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향료-약재 성분은 식물이 자기보호를 위해 생성하는 것인데 음습하고 균의 발생이 쉬운 열대-아열대 환경의 식물이 항균성이나 중독성 있는 물질을 생성할 필요가 크다는 것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Spice#/media/File:Gato_negro.jpg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향료가게.

https://en.wikipedia.org/wiki/Spice#/media/File:Spice_shop,_Mashad,_Iran.jpg 이란의 향료가게.

https://en.wikipedia.org/wiki/Spice#/media/File:Night_Spice_market_in_Casablanca.JPG 카사블랑카의 향료가게.

https://en.wikipedia.org/wiki/Spice#/media/File:Spices_of_Sa%C3%BAde_flea_market,_S%C3%A3o_Paulo,_Brazil.jpg 상파울로 벼룩시장의 향료 좌판.

https://en.wikipedia.org/wiki/East_India_Company#/media/File:IndiaPolitical1893ConstablesHandAtlas.jpg 1893년의 인도 제국지도. 동인도회사가 제국의 주인이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Dutch_East_India_Company#/media/File:VOC_duit.jpg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동전.

https://en.wikipedia.org/wiki/Flying_Dutchman#/media/File:KLM_Flying_Dutchman_Poster_(19290401110).jpg 문학과 영상의 소재로 많이 쓰인 전설적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KLM 항공사 광고에도 쓰였다. “더치맨VOC 선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어느 항구에도 기항하지 못한다는 이 유령선의 전설은 VOC의 운명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https://en.wikipedia.org/wiki/Thorstein_Veblen#/media/File:Veblen3a.jpg 소스틴 베블렌(1857-1929). 자본주의체제를 비판하는 새로운 (공산주의 아닌) 시각으로 경제학의 제도주의학파(institutional economics school)를 열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Opium_War#/media/File:A_busy_stacking_room_in_the_opium_factory_at_Patna,_India._L_Wellcome_V0019154.jpg 아편이 쌓여있는 인도 파트나의 동인도회사 창고.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Opium_War#/media/File:Capture_of_Ting-hai.jpg 18407월 영국군의 주산(舟山)열도 점령 장면.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Opium_War#/media/File:British_ships_in_Canton.jpg 18415월 영국군의 광동(廣東) 상륙 장면.

 

Posted by 문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22.05.09 11:23

    소비재 위주의 경제가 세계화를 견인했다는 견해가 흥미롭습니다.
    이점은 비단 역사학에서만 아니라 경제학에서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로 알고 있습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생산재(일반대중 상대)에 비해 소비재(상류층 상대)의 구매층은 비록 수는 적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회의 부를 독점하는 상류층이기에 씀씀이가 일반대중의 소비의 합에 비해 큼을 어렵지 않게 상상합니다.
    현대의 명품 시장에서 관찰되는 과시성 소비의 비대칭 경제에서도 쉽게 관찰되구요.
    또한 WORK보다는 FUN을 위한 산업이 배보다 배꼽이듯이, 예컨데 반도체와 컴퓨터 산업만해도 고도의 공학 계산을 위한 슈퍼컴보다는 게임과 인터넷을 위한 PC 산업의 시장이 더 크듯이요.
    그러고보니 현실은 이러한데 왜 학교 교육에서는 '필요'위주의 지식과 경제만을 가르치는지 갑자기 의문이 드네요. 모범생들이 졸업후 그만그만하게 사는것도 이런 이유에서일까요? ㅎㅎ

    • 2022.05.11 23:17 신고

      경제발전론을 좀 체크해 봐야겠습니다. 경제의 급성장에서 사치품-소비재가 주도적 역할을 맡는 게 일반적인 현상인지?

  2. 2022.05.30 01:59

    예술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항료' 중에는 코로 들어가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거기로 들어가지 않고 눈으로 들어가는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안료'라는 품목이 베네치아로 들어올 때 향신료로 분류되어 들어왔다고 하네요.
    동서 안료 무역을 빼놓고 중세 이후 유럽 회화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것도 풍류라고 할 수 있을지...
    최근 미술사 수업에서 배운 내용이 떠올라 잘난 척 하고 갑니다.

    ps. 선생님의 글은 색깔은 회색이지만, 특이한 향이 납니다. 중독성도 강한데요.

    • 2022.05.30 09:10 신고

      회색 향료! 재밌는 말씀이네요. ^^ 이제 막 주문할까 하다가 않기로 한 책이 말씀 듣다가 생각나네요. https://www.amazon.com/gp/product/1596915994?ref=em_1p_0_im&ref_=pe_2313390_641920070
      '안료'가 "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그것도 재밌는 말씀이네요. 그 말씀을 들으니 '안' 자가 '얼굴 안' 자인지 '눈 안' 자인지 헷갈리려고 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