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06:00 버스로 연길 출발. 07:40 화룡(和龍)시 공안국 출입경관리국에서 출국 수속. 10:00 고성리(古城里) 구안(口岸)에서 입국 수속. 11;00~13:30 조선 삼장리 구안에서 삼지연까지 버스로 이동. 15:30 점심식사 후 삼지연 혁명성지를 참관하고 평양행 비행기 탑승. 17:00 평양 도착 후 만경대와 김일성광장을 구경하고 저녁식사 후 호텔 투숙.
6월 15일 07:00 원산으로 출발(버스). 12:30~15:00 원산에서 점심식사 후 금강산으로. 15:30~18:30 해금강, 삼일포 구경 후 온천욕(옵션)을 하고 저녁식사 후 고성의 호텔 투숙.
6월 16일 07:30~12:30 외금강 구룡연 구역 관광. 13:30 평양으로 출발.
6월 17일 07:30 개성으로 출발. 10:30~15:30 판문점과 개성 관광. 18:00 평양 도착 후 지하철 구경.
6월 18일 08:00~09:30 개선문, 우의탑 등 구경 후 공항으로. 12:00 삼지연공항 도착 후 백두산 관광.
6월 19일 07:30 삼지연 출발. 11:00 삼장리-고성리 구안을 거쳐 연길 귀환.

이 5박6일 관광의 참가비는 1인당 인민폐 4300원(한화 70여만 원). 중국 내의 관광에는 옵션이 많이 붙어있어서 참가비 외의 비용이 많이 드는데,(지난 달 10일간 산샤(三峽)를 다녀올 때는 입장료 등 옵션이 1인당 1000원가량 들었고 식사도 십여 끼를 본인이 해결해야 했다.) 이 조선 여행에는 일정표에 온천욕 하나만 옵션으로 들어있고 ‘자유식사’도 전혀 없어서 부대비용이 별로 필요 없었다.


일정표에 표시되지 않은 중요한 옵션이 하나 있었다. 평양 도착하는 날 저녁의 집단체조 참관이었다. 800원씩(약 15만 원) 내고 부부가 참관을 예약했는데 공연이 취소되어 환불받았다. 나중에 들으니 6월 20일 시진핑 방문 때의 공연 준비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해 그 전의 공연을 취소한 것이라 한다. 시진핑의 평양 방문은 6월 17일 공식 발표되었는데, 그 사흘 전의 공연이 취소된 것을 보면 준비가 벌써부터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취소가 임박해서 이뤄진 것을 보면 ‘14년 만의 중국 최고지도자 조선 방문’치고는 매우 촉박하게 진행된 것 같다.


이 관광을 다녀온 것은 아쉽게도 우리 부부가 아니라 김용길 선생 부부였다. 두 분이 한국에서 몇 해 살 때 가까이 지냈다. 아내에게는 두어 살 위인 부인이 “언니”였고 김 선생은 두어 살 위인 내게 “형님”이라 불렀다. 책 읽기 좋아하는 김 선생에게 내 책 나올 때 한 권씩 드리곤 했는데, 한번은 속표지에 뭐를 좀 적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莫上莫下 龍吉 兄께”라고 적었더니 보고 “막상막하? 내가 생각하는 그런 뜻인가?” 하기에 “아마 그렇겠지요.” 하고 함께 박장대소를 한 일이 있다. 어제(6월 23일) 집에서 두부를 한다고 불러서 시내에서 좀 떨어진 댁에 갔다가 막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십년쯤 전 칠보산 관광 갔을 때와 달라진 몇 가지 사정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보안의 압력이 줄어든 것. 28명 여행단에 동행한 것이 기사와 가이드, 그리고 하는 일 없이 따라다니는 아저씨 하나였다고. 이 아저씨가 보안 요원일 텐데,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고 그저 좀 귀찮은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족 관광객들은 곳곳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때때로 한족 관광객을 위해 통역을 해주기도 하는데, 이 보안 아저씨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하다가 이야기가 아주 길어질 때 한두 번 나서서 “이제 그만 하시지요.”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또 하나는 도시환경이 깨끗해진 것. 평양은 깨끗할 뿐 아니라 으리으리하기까지 해서 중국인들이 부러워할 정도였고, 고성과 개성 등지도 생활환경이 훌륭해 보이더라고 한다. 우발적으로 마주친 주민들에게 받은 인상도 10년 전보다 당당해 보이더라고. 중국인 관광객에게서 담배, 과자 등 중국 물건을 얻기 바라는 사람들도 거저 얻기보다는 뭔가 바꿀 궁리를 하더라고 한다. 피워보라고 김 선생이 “금강산”과 “아리랑” 두 가지 담배를 권하는데, 중국 담배에 품질을 맞춘 것이었다. 예전에 도문(圖們) 교두(橋頭)에서 팔던 ‘조선 담배’와는 아주 다르다.

 

금강산 등 관광지에는 내국인 관광객도 꽤 있었는데, 판문점에만은 외국인 관광객만 허용되고 있다고 했다. 남북 정상 ‘번개’ 회담의 현장 판문각을 포함해서 판문점 북측 구역을 마음껏 돌아다녔다는 이 ‘외국인’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에너지 부족 상황은 변함이 없더라고 한다. 호텔방까지도 밤이 늦으면 전기를 끊더라고. 그런데 평양은 차등이 있는 모양이다. 부인이 “평양에서는 밤에 전기를 안 끊더라고요.” 하니까 김 선생 반박하기를, “당신은 잠만 자니까 안 끊은 줄 알지. 나는 옆방에서 술 먹다가 11시 반에 전기가 끊어지는 바람에 휴대폰 켜고 (LED 불빛으로) 먹었어.” 고성과 삼지연에서는 10시에 전기를 끊었다고 한다.

 

평양의 점 하나만 보이는 북한의 야간 위성사진. 다른 곳의 불이 꺼진 밤 10시와 평양의 불이 꺼지는 11시 반 사이에 찍은 것일까?

 

금강산과 개성 다녀오는 길에 비해 삼지연에서는 ‘고난의 행군’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비행장 주변도 호텔 부근도 모두 공사판으로 어수선한데, 동력 장비가 없어서 곡괭이로 바위를 깨뜨리는 식의 공사를 하는 것이 마치 50년 전의 풍경 같더라고. 공사 인력은 거의 군인으로 보였다고 한다. 백두산의 케이블카와 에스컬레이터도 가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북한 개방에서 제일 급한 목표가 관광 사업에 있다고 하는데 경제제재 하에서는 그 준비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겠더라고.


북한의 전력 사정이 어떻게 파악되고 있는지 보려고 <위키피디아>에서 “각국의 전력소비량”을 찾아보았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electricity_consumption) 2014~2017년의 데이터에 입각해 만든 표인데, 북한 항목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 연간 총 소비량 15,000,000,000 kWh, 1인당 평균소비량 1347 kWh이라고 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 들여다보니, 인구가 11,134,588 명으로(2016년 기준) 되어 있다. 실제 인구가 그 갑절이 넘으니 1인당 평균소비량을 650 kWh가량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항목 “Energy in North Korea“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Energy_in_North_Korea)

남한 통계청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 데이터를 근거로 작성한 통계에 의하면 (북한의) 연간 1인당 평균 소비전력은 1990년의 최고점 1247 kWh에서 2000년의 최저점 712 kWh까지 떨어졌다가 2008년 819 kWh까지 회복되었지만 아직 1970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항목에는 북한 인구가 2004년 2238만 명, 2013년 2490만 명으로 나와 있어서 큰 오류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내용이 있다. 북한이 에너지 수출국이며 2004-2009년 간 인구 비례 에너지 생산량은 남북한 사이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첨부된 표에는 2013년 북한의 에너지 생산이 280 TWh, 수출이 112 TWh, 1차 소비량이 168 TWh로 되어 있다. 이것은 경제제재 심화에 따라 석탄 수출만 하고 석유 수입을 못하는 상황이 비쳐진 것 같다. 2007~2009년에 생산이 229~242 TWh, 수출이 6~15 TWh, 소비가 214~236 TWh로 나와 있는 상황이 정상 상태에 가까웠던 것 같다. (TWh는 10억 kWh를 표시하는 단위다.)

 

이 표는 이렇게 말해준다. “북한의 연간 에너지 생산량은 2008년경 230 TWh대에서 2013년 280 TWh로 20% 가량 늘어났다. 반면 소비량은 220 TWh대에서 168 TWh로 30% 이상 줄어들었다.” 외화 획득을 위해 석탄을 바득바득 캐내면서 소비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으로 읽힌다. “에너지 수출국”! 얼른 듣기 좋은 이 이름이 사실은 참혹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역점을 두고 있는 관광 산업의 핵심 기지 삼지연의(‘삼지연관현악단’의 위상을 보라.) 개발에도 동력 장비를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전력 생산량을 들여다보면, 2008년 19.54 TWh에서 2013년 16.44 TWh로 줄어들었다. <위키피디아>의 “전력 생산(electricity generation)” 항목에 주요국의 발전량이 표로 나와 있는데, (https://en.wikipedia.org/wiki/Electricity_generation#Production_by_country) 한국의 연간 발전량은 446 TWh로 북한의 20배 이상이다. (2008년 기준. 미국은 4369 TWh, 중국은 3457 TWh, 일본은 1082 TWh.) 그런데 한국 발전량의 98% 이상이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지한 것이고 수력발전은 5.6 TWh에 불과하다. 수력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비율이 세계적으로 18%인데 한국에서는 1.5%에 불과하다. 남한은 확실한 ‘에너지 수입국’이다.


북한 전력생산에서 수력발전의 비중을 확인하지 못했으나 세계 평균보다 크게 높을 것은 짐작이 된다. <위키피디아>를 뒤져보던 중 북한의 국장(國章)에 수풍댐의 모습이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1948년 정부 출범 때 채택된 이 국장에 담겼다는 데서 수풍댐이 북한 지도부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진 것이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1943년 완성된 이 댐은 일본의 대륙 침략을 상징하는 뜻을 가진 것인데도 북한 건설의 근거로 워낙 큰 가치를 가진 것이기에 국장 속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왼쪽은 1948년 채택된 북한 국장. 오른쪽은 1993년에 개정된 국장으로, 배경의 산이 백두산으로 바뀌었다. ‘백두 혈통’을 중시하는 뜻의 개정이었지만 수풍댐의 중요성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압록강에는 수풍댐(63만 kW)에 이어 운봉댐(1967, 40만 kW), 태평만댐(1987, 19만 kW), 위원댐(1987, 39만 kW)이 건설되었는데, 수풍댐의 모습이 이 여러 댐들을 대표하는 듯하다.

 


북한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남한의 20분의 1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일단 접어두자. 생산과 소비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게 되어 있다면 소비 규모에 열 배 스무 배 차이는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2008년에서 2013년 사이에 소비가 30% 줄었다는 사실을 남한 사회에 대입해 본다면, 과연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본다면, ‘북한 붕괴’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구경 이야기를 한참 해주다가 잠깐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기던 김 선생이 말한다. “앞으로... 조선이 많이 가까워질 것 같아요.”


우리 또래 연변사람들은 북한이 가깝던 시절을 초년에 겪었고, 그 후에 점점 멀어지는 과정을 겪었다. 1956년생의 작가 한 분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조선의 친척 아저씨로 연길에 출장 올 때마다 자기 집에 묵던 분이 있었는데, 올 때마다 과자도 가져오고 옷도 가져오는 반가운 아저씨였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가져오는 선물이 빈약해지더니, 어느 때부터 그분 다녀갈 때 값진 물건이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하더란다. 참다못해 어머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달래시더라고. “사람 행동은 형편 따라가는 것 아니냐. 그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우리 다 잘 아는 사실인데, 지금 행동만 따지지 말고 잘 대해 드리려무나.”


문화혁명 시기에 북한과 중국의 사이가 멀어지고 1980년대 이래 북한 경제는 침체의 길에 빠졌다. 그 후 남한과 중국의 관계가 커지고 중국 경제가 발전하는 동안 북한은 소외되어 있었다. 연변에서 눈에 띄는 ‘조선사람’은 초라한 행색의 탈북자뿐이었다. 연변은 조선과 접경해 있다는 위치에서 덕 보는 것은 없고 불편만 느끼는 상황만을 오랫동안 겪어 왔다.


그 상황이 바뀔 조짐을 김 선생은 느끼는 것이다. 그가 이번 여행에서 본 북한사람의 모습은 연길 시내를 배회하던 탈북자들은 물론 10년 전 여행 때 본 모습과도 다른 것이었다. “사람 행동은 형편 따라가는 것”이라는 리 작가 어머님의 생각은 많은 조선족이 공유하는 것 같다. 북한의 개방과 발전이 조선족의 위상에도 도움이 될 것을 그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 기대감에는 같은 민족을 아끼는 ‘민족심’에서 우러나오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조선족자치주가 조선과 연결됨으로써 ‘벽지(僻地)’의 조건을 벗어나기 바라는 공리적 타산도 있을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 발전이 조선족사회에 큰 이득을 가져다주었지만 노동 인구의 대거 유출로 지역 발전의 길은 막힌 채로 사회 붕괴의 위험만 커져 왔다.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컨센서스는 남한이나 북한보다 연변에서 더 잘 이뤄져 있는 것 같다. 이들에게 더 큰 발언권과 결정권이 있었으면.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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