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fred E Eckes, Jr, Opening America's Market / U S Foreign Trade Policy Since 1776

 

"자유무역 실현될까, 미 정책의 고민"

 

 

세계시장의 단일화를 향한 개방 압력이 여러 해째 우리를 들볶아대고 있다. 이 압력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주역으로 나서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아는 것이 긴요한 일이다. 이런 관심에 꼭 맞는 책이 막 나왔다. 앨프리드 엑스의 <미국 시장 개방의 길>. 현대사 연구자이면서 1981~1990년 9년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저자가 미국의 무역정책을 실무와 학술 양쪽에서 바라보며 쓴 책이다.

 

저자는 제일 먼저 자유무역과 시장 개방이 미국 정신의 본질과 연결된 것이라는 통념을 배격한다. 자유무역론의 출발점이 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발표된 것이 공교롭게도 바로 미국의 독립선언이 나온 1776년의 일이었다. 많은 미국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스미스의 새로운 세계관에 공감했다. 그러나 그 공감은 원론적이고 정서적인 데 그칠 뿐, 현실정치에는 큰 작용을 하지 못했다.

 

엑스는 대표적 자유주의자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인물들이 독립 초기의 이상론적 자유무역 주장으로부터 현실론적 보호관세 정책으로 돌아서는 과정을 밝혔다.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이 식민지 산업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당시에 선진국들의 불평등 무역정책에 시달리며 자기 방어를 위한 현실론을 굳혀가는 과정은 각별한 감흥을 갖고 읽어나가게 되는 대목이다.

 

1812년의 대 영국 전쟁 무렵까지 확립된 보호관세 정책이 한 세기 이상 미국의 성장을 뒷받침해준 '전통적 미국 무역정책'이 되었다고 저자는 본다. 미국사의 다른 측면들과 연결해보아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엑스의 관점에서 가장 논란을 일으킬 대목은 과연 이 보호무역 정책의 종말을 어떻게 풀이하느냐 하는 데 있는 것 같다.

 

1929년 10월 대공황이 터질 당시 미국 의회는 보호무역 정책을 확인하는 스무트 관세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법이 이듬해 6월 확정됨에 따라 미국의 공황이 유럽까지 번져 무역전쟁 분위기를 촉발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1992년 선거를 앞두고 앨버트 고어가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로스 페로에게 스무트 상원의원과 홀리 하원의원 초상을 선물로 보내며 그런 파국이 또 일어나기를 바라냐고 야유하는 촌극이 있었다. 그만큼 스무트 관세법은 잘못된 국가이기주의 정책으로 정평 있었다.

 

자유무역 이념에 냉소적인 입장인 저자는 스무트 관세법에 별다른 잘못이 없었으며, 때맞춰 일어난 파국의 책임을 뒤집어쓴 희생양이 된 것이라고 해명한다.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스무트 관세법에 대한 통상적인 비판점들을 반박하는 것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면들이 있다. 희생양을 많이 필요로 해온 미국 정치의 특성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호무역을 선호하는 저자의 관점으로 인해 역사성이 외면당하는 듯한 불만감이 이 대목에서부터 일어난다. 그의 고찰은 대부분 19세기 상황을 배교 대상으로 하고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한 상황 변화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에게 1910년대 저관세 정책은 일시적인 일탈 현상일 뿐, 시대 변화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대공황이 하나의 우발적인 사건처럼 그려지는 것이다.

 

이후 상황의 서술을 보면 이 불만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엑스는 무역정책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냉전시대 서방진영의 역량과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우방으로부터 수입을 규제하지 않음으로써 국내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감수한 일, 탈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지도력 정립을 위해 구체적 국익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자유무역 체제를 추구하는 일이 그에게는 모두 불만스러운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대표적 비판자였던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국부론>이 개인의 부와 인류의 번영만을 고찰 대상으로 하면서 국가의 존재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뒤를 따라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엑스의 관점이 이 시대에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 인물이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세계화'의 길목에서 간과하지 못할 일이다.

 

인류가 국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과연 '자유무역의 천년왕국'은 열릴 것인가. 엑스의 책을 덮으며 떠오르는 의문이다. 엑스가 인용한 카를 마르크스의 말이 귓전에 남는다. "자유무역 체제는 국가 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간의 대립을 극한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 결과 사회혁명이 촉진되리라는 단 한 가지 이유에서 나는 자유무역 체제에 박수를 보낸다." 다가오는 상황에 대한 고찰의 방향을 넓힐 필요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1995년 11월 26일)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