꽂힌 거 같아요. "노무현의 대한민국"!
애초에 이 선생과의 메일을 블로그에 올리기로 한 게 좀 후회될 때가 있네요. 아무래도 여러분 눈을 의식하니까 어느 정도 이상 생각이 정리된 뒤에야 쓸 수 있고,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이 쌓여버리는 폐단이 더러 느껴져요. 이번에도 한 번 틈 내서 샌디에고 학회 소감에 관한 내 소감을 묶어서 얘기하고 싶었는데, 내 생각 먼저 털어놓고 싶은 게 떠올라 버렸어요.
엊그제 사랑방엔 마침 어버이날이기도 해서 참석이 적었기 때문에 아주 속닥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죠. 그렇게 앉아 있다가 (어쩌다 얘기가 그리로 흐르게 되었는지도 벌써 가물가물한데...) “노무현의 대한민국”이란 생각이 떠올랐어요.
내가 노 씨를 좋아하는 것은 무엇보다 기질이 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깊은 공감을 느낀 일이 많았죠.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그의 생각은 잘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이 많이 들리지만, 현실에서 큰 역할을 맡은 정치인으로는 특출하게 강한 역사의식을 가진 인물이 분명합니다.
기질은 통하면서도 성장 배경과 활동방식에는 대조적인 면이 많았죠. 그런 대상을 잡아서 그가 한국 사회와 역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는지 내 마음속에 재구성해 보며, 그가 걸어간 길을 걷게 된 근거를 설명해 보는 것이 좋은 일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개 필부로서 그와 공감하는 포인트들을 떠올리고, 다시 역사학자의 위치로 돌아와 그 포인트들에 대한 논평을 가하는 작업으로 생각해 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낀 데는 얄팍한 감상도 있었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는 담론 방식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큰 뜻과 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굵직한 이름을 남긴 사람들 중에 내가 보기에는 노 씨만큼 좋은 가르침의 재료를 남겨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이제 그의 가르침을 되새길 길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내 생각을 서술해 보겠다는 뜻을 세운 바에, 일방적 독백보다 그분과 대화하는 자세를 세워보는 편이 내 생각을 다듬는 데도 좋고 그 서술을 읽는 사람들의 감흥을 북돋워 주는 데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 시대의 키워드가 된 그의 이름으로부터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풀어나갈 길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시대를 겪은 역사학도로서 좋은 일거리가 되겠지요.
이 구상을 떠올리자 바로 생각난 것이 이정우 교수와 유시민 선생이죠. 노 씨의 생각을 전해주는 기록 자료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거니와, 이-유 두 분은 기록 자료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보완해 줄 만한 대화의 기억도 많이 가진 분들이니까요.
이 교수는 내 책 추천사에서 “모시고 지낸 나보다 만나본 적도 없는 김 아무개가 그분의 시대정신을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고까지 말해준 친구이니 도와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유 선생도 대략 같은 반응을 기대하는 터인데, 오늘 점심에 마침 약속을 해놓았던 참이라 만나서 얘기를 했죠. 기대 이상으로 반가워하네요.
노 씨 서거 후 하도 꼭지가 돌아서, 하던 일 접어놓고 “역사 속의 참여정부”란 가제로 작업 하나를 구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노 씨 모습 부각시키는 일에 달려드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몇 달 구상만 하다가 “나 같은 사람까지 안 나서도 더 잘할 사람들 많구나.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나 해야지.” 생각하고 “망국의 역사”로 돌아왔죠. 반년가량 시간을 허비했다고 좀 아깝다는 생각도 했는데, “노무현의 대한민국”! 떠올리고 보니까 손오공이 까불어도 부처님 손바닥 안인가? 하는 생각도...
떠올린 지 며칠 되지 않는 설익은 생각이지만, 끌리는 힘을 아주 강하게 느낍니다. 지난 연말 역시 꼭지가 좀 돈 상태에서 “대한민국 실록” 생각을 떠올렸었는데, 꼭지를 좀 가라앉히면서 생각을 차분하게 하려고 그 동안 노력해 왔어요. (내 꼭지는 왜 이렇게 잘 돌까? 의사 상담이 필요한 거 아닐까?) 그러다가 이 생각이 떠오르면서 다시 마음속에 격랑이 일어나는데, 여러 가지 지표가 그럴싸하게 보이기는 해요. 좀 가라앉히도록 노력은 물론 하겠지만 결국 뛰어들 공산이 크게 느껴집니다.
내 하고 싶은 얘기 대충 쏟아놓았으니, 이 선생 얘기에도 좀 신경 쓰는 척하겠습니다. 의암의 <우주문답> 재미있었다고요? 재미있죠. 나는 그 작품을 ‘표현의 혁명’으로 봅니다. 조선시대 선비님들, 말로는 그런 재미있는 생각 많이들 나누며 지냈을 것 같아요. 글로 표현할 일이 없었겠죠. 그러다 의암 시대에 와서 터져 나온 게 아닐지.
내 블로그에 “유연산” 카테고리가 있죠. <우주문답>의 느낌을 그대로 풍겨준 친구입니다. 의암의 문중 손자죠. 의암이 문중 손자는 잘 둔 셈입니다. (이 친구는 성폭행이나 성추행 능력은 없는 친군데, 성희롱에는 대가였어요. 이 친구한테 배운 노래 하나 가사를 보내드리고 싶은데, 블로그에 올릴 메일이라 참습니다. 노래 부르는 거 싫어하면서도 부르라 그러면 싫다는 적 없어요. 좋아라 나서서 이 노래를 부르면 더 불러달라는 얘기가 절대 안 나오죠.)
백 선생이 말했다는 “비판적 중국학의 긴장감” 얘기는 메일 받을 때부터 마음에 걸려 있습니다. 이 선생한테 메일 보낼 생각 할 때마다 그 생각이 떠오르죠.
학문에 비판적 자세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판적 자세만으로 되는 걸까요? 그것도 근대적 환상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유 선생이랑 얘기할 때, “노무현의 대한민국” 같은 일이 참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보는데 자기는 달려들 수 없다고 하더군요. 직접 걸려 있는 입장 때문에. 그러면서 내게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런 필요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격하게 공감하는 점 격하게 표현하겠다고. 표현할 공감 다 표현한 뒤에 전문가 입장으로 나 자신을 반성하는 각도에서 비판할 것을 덧붙이겠다고. 덧붙일 내용의 알맹이에 자신 있는 만큼 그 앞쪽에서는 거리감 없이 마음대로 끌어안겠다고.
세상에 어떤 일이 사랑 없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학문도 예외일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실체가 있은 뒤에 비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실체는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으로 학문을 하는 입장에서는 표현하기 힘들 수 있죠. 하지만 나야 걸릴 거 있나요? 그래도 이 선생께는 충고 한 마디 드립니다: “애들은 따라 하지 마세요~”
[본의 아니게 이병한 선생께 실례가 되었습니다. 어제 보낸 메일이 배달되지 못했다는 쪽지가 오고, 다시 메일을 시도해도 배달이 안 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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