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선생님, 오늘은 곧장 응답을 합니다. 어제까지 샌디에고에 다녀왔습니다. 3박 4일간 아시아학회(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총회가 열렸거든요. 1년에 한번씩 열리는 아시아학의 박람회 쯤 되더군요. 본래 학술회의는 그 고답적인 측면이 마땅치 않아서 잘 가지 않는 편인데, 마침 올해는 가까운 곳에서 열려서 바람도 쐴 겸 구경하고 왔습니다. 차를 타고 두 시간을 가깝다고 하니, 거리감각이 한국과는 또 다른 셈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밀린 메일 쓰면서 쉬어가자 싶던 차, 선생님 메일을 받았습니다.
혹시나 했던 공동 작업과는 점점 멀어지네요. 그렇다면 저는 이 교신을 더욱 잘 활용해서, 선생님이 쌓아오신 내공을 쏙쏙 더 빼어가 제 작업의 밑거름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선생님은 점점 더 '현장'으로 귀의하시는 듯 하고, 저는 점점 더 관심의 범위가 커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번 학회에서도 유독 중국의 서쪽으로 관심이 기울더라고요.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등,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에 있는 문명권의 '초기 근대'라고 할까, 유라시아의 지난 천년의 역사에 대한 공부가 무척 재미납니다. 선생님이 그간 혼자서 즐겁게 해오셨던 공부가 이런 쪽이 아니었을까 짐작이 되고요. 그래서 그런 안목과 식견이 쌓인 분의 한국현대사 서술은 어떻게 다를까 기대가 됩니다.
대학원에서의 제 얕은 경험을 빌자면, 지금 한국(사)학을 하는 후속세대들이 더 관심의 지평이 좁은 것 같아요. 저마냥 이웃나라 역사는 물론 국문학이며 중문학, 정치학, 지역학 들쑤시고 다니다가, 정작 동양사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는 경우도 바람직하지야 않겠지만, 대학원 내내 한국사 수업만 듣는 친구들도 좀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2년여간 이끌었던 세미나에서 다른 학교, 다른 전공, 다른 나라 친구들 엮어내서, '通-統-筒'이라고 이름을 지었던 적이 있어요. 문자 그대로 경계 너머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거점을 만들자 한 것인데, 중국, 일본 전공하는 친구들은 외국으로 나오고, 지금은 사실상 와해된 것 같습니다. 그 중에 뜻이 맞는 후배 둘이 별도의 살림을 꾸려서, 동아시아 현대사 책을 읽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고요. 세미나에서 이런 시도에 대한 토론도 해보라고 편지를 주었는데, 답이 없는 것을 보면 왜 밖에 나가서도 참견이냐, 못마땅했나 봐요.
왜 그럴까 종종 생각해 보고는 하는데, 한글전용세대의 문제는 아닐까 하는 '감'이 들기도 합니다. 한자 문맹의 보편화가 영어 일변도와 무관치 않아 보이고, 그것이 한국현대사나 현대문학, 나아가 사회과학 전반의 '깊이의 부재'와 직결되지 않나. 이는 비단 학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의 '저열함'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20세기에 한자와 가장 급진적으로 단절했던 베트남에서 이 문제를 좀 깊이 생각해 보자, 스스로 하나의 과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얼핏 386세대가 꼭 한글전용 1세대쯤 되더군요. 그들의 역사적 실패(라고 저는 2012년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뿌리와의 단절의 소산이 아닐까. 좌/우의 신청년들이 주도했던 근대화(산업화와 민주화)가 막을 내린 것 아닌가. 인쇄술-유럽-알파벳에서 인터넷-중국-한자로의 전환이 진행중인 것은 아닐까. 한자는 활판을 만들어야 하는 인쇄술 시대에는 불리한 문자였지만, 디지털 공간에서는 그 특유의 조합-재조합-변형의 '레고 놀이'의 면모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한자 네트워크와 그 문자로 구현된 세계관이 접속하면? 표음문자 표기로 민족/국가들이 갈라졌던 근대세계에서, 표의문자를 공통으로 사용하되 저마다 읽는 발음은 제각기였던 중화질서와 유사한 세계가 펼쳐지지 않을까, 그런 엉뚱한 '감'만 굴리고는 합니다. 이 디지털과 한자의 접속 또한 베트남에서 궁리할 숙제거리로 여기고 있고요. 한 백년 전에 지석영이 펴낸 <아학편>을 보니, 한자 하나를 통하여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그리고 영어를 동시에 배우게 했더군요. '디지털-아학편'이라는 컨텐츠 사업도 해볼만 한것 아닌가? 중국이 세계의 중원이 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면? 스마트폰과 디지털-아학편이 결합하면? 미래 세대의 수요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시장일텐데, 하고 흰 꿈도 꿔봅니다. 샌디에고에서 디지털 아시아학에 관한 세미나에 몽땅 참여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샌디에고에서도 한국학 전반에 대한 불만/불안이 없지 않았어요. 너무 끼리끼리만 논다고 할까요. 백낙청 선생이 특별 섹션에 초청되어 오셨습니다. 분단체제론과 최근 한반도 동향에 대한 특강을 하시고, 몇몇 분의 코멘트와 토론이 진행되는 식이었죠. 문자 그대로 빈 틈 없는 '만석'이었고, 그 자리를 채운 이들의 면면도 충분히 상징성을 담는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온통 한국학 관련자라는 점만은 저로서는 좀 아쉽더군요. 제가 재미있어 뵈어서 찾아다녔던 섹션에는 다양한 국가/민족/인종의 구성이 어우러지는 반면에, 또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면 샌디에고까지 와서 영어로 하는 한국 세미나를 구태여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이런 형식적인 면은 별도로 치더라도, 한반도의 20세기 경험이라는 것을 잘 풀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인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을 법한데, 그런 면에서 여전히 취약해 보입니다. 중동의 오리엔탈리즘, 남미의 종속이론, 인도의 탈식민/서발턴연구 등등. 무언가 "made in (divided) korea" 담론이 나와 세계와 소통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밖에서 본 중국사' 작업에는 손을 놓기로 하신 것이라면, (제가 꿍꿍이 하고 있는 매체가 정말로 출범하게 되면 간곡히 부탁드려 볼까 싶지만요) '밖에서도 통하는 한국사'를 써주셨으면 합니다. '20세기 동아시아'를 통해 담고자 했던 문제의식을 농축해서 수출하는 것이지요. 물론 수출 이전에 내수가 튼튼하게 다져져 순항하시기를 바라고요.
사실 여쭙고 싶은 게 많습니다. 이번 샌디에고 회의에서도 유교 등 동방사상(여기서는 중국사상이라 했지만.)이 지구적 정치이론이 될 가능성이나, 국제관계의 '중국화' 등 흥미로운 지점이 적지 않았거든요. '유교 국가'에 대한 확신(?) 같은 걸 갖고 계신 듯 한데, 유구한 농경사회의 정치체제가 산업사회, 나아가 탈산업사회와 어떻게 조우할 수 있는지, 그 이행의 경로를 흐릿하게나마 전망하고 계신 것인지, 또 선생님과 통하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 미야지마 히로시의 한국사 이해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등등.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하자면, 하루에 한 편씩 메일을 써도 모자랄 듯 합니다. 진중한 얘기는 제 생각이 모이면 질문을 겸하여 풀어놓겠습니다.
-이병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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