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선생님,

어쩐지 답이 없으시다 했는데,

블로그에 올리고 저한테 메일 보내는 걸 깜빡-하셨나 봅니다.

뒤늦게 찬찬히 읽어 보았습니다.

자제와 절제를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사이 퇴고 과정에서 표현도 더 세지고 치고 나가버린 형국이었네요.

 

작년 말부터 쓴 글들,

더 정확히 말하면 선생님과 교신하며 번쩍-하는 바 있어,

3개월간 연재를 작파하고 공부하며 무언가 깨였다- 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홀연 근대의 밖으로 나와서 돌아볼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기분이었지요.

그게 지나친 자신감으로 글에 묻어났나 봅니다.

묵히고, 삭히고, 익혀야 할 텐데, 채 흥분을 감추지 못했구나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강양구 기자의 그 발랄한 제목 뽑기 감각을 넉넉히 인정함에도,

<최원식을 넘어서>라는 제목까지 감히 달았겠지요.

저는 3일 후에 그것 보고 식겁, 했더랍니다.

기념 삼아서 일종의 오마쥬를 바친 것인데, 도리어 도전하는 듯한 인상을 풍겨서요.

강기자에게 너무하셨다고 투정 섞인 불만을 슬쩍 드러내었는데,

그 진원지는 기실 제 문체와 내용 자체에 있었나 봅니다.

자숙을 다짐하고 있던 차,

강기자가 답신에서 고종석의 옛 책의 머리말을 따왔습니다.

 

꽁지에 발표 지면이 명기되지 않은 글들은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들이다.

그 서툰 기사들이 쓰여지던 시절 그 신문의 문화면을 책임지고 있던 김선주 지영선 두 분의 체취가 그 글들에는 짙게 배어 있다. 그것은 내게 황홀경이다.


손윗사람을 향한 투정과 응석은 그러나 손아랫사람의 특권이다 :

이 책에 묶인 글들에 조금이라도 읽을 만한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내 애씀 덕이고,

그 이외의 모든 어설픔은 죄다 두 분의 데스크權 남용 탓이다.

 

저도 투정과 응석의 특권을 조금 누렸다 여기고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실록 작업의 방향이 사론쪽으로 흐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보이네요.

그 편이 선생님의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듯 하고요.

저로서는 가장 크게 기대되는 지점이 "내가 살아온 사회와 시대"에 대한 실감과 성찰입니다.

대한민국의 탄생과 성장 과정이 선생님의 인생과 포개진다고도 할 수 있겠죠.

사료에 입각해 논리로 풀어내는 일반의 금욕적인 역사학 작업과는 결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동감 혹은 현장감이라고 할까요.

강만길 선생의 <역사가의 시간>이라는 자서전이 있지요.

뒷담화 등이 풍성해서 재미나게 읽은 기억이 나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살아오신 시대, 소위 근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미진한 듯 보였거든요.

그 아수라장, 허둥지둥과 허겁지겁이 지배했던 대한민국을 곡진하게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독자로서 지극한 바램입니다.

 

한반도 소식은 남북 가리지 않고 안팎으로 흉흉하네요.

요즘 해방일기의 내용들이 더욱 절실하게 읽힙니다.

평정, 평안하시길 빌며-

 

-이병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