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정과 응석"에 대한 내 반응이 아니라 블로그 독자님들 반응을 짐작한 겁니다. 강호에 실전된 초식을 들고 나온 기이한 협객(이건 내 마구잡이 바둑에 대한 김수영 사범님의 평입니다.)의 재간에도 슬슬 식상하는 참에 본때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 신진 고수가 들고 나오는 초식이 기껏 "투정과 응석"이라니!!!
 
그래도 그렇게 귀엽고 징그러운 제목 달아준 데서 좀 가벼운 마음으로 메일 쓸 계기를 찾습니다. 아무래도 블로그 손님들에게 공개하면서 쓰려니 목에 힘이 좀 들어가는 거 같아요. 이 선생은 어떤지 몰라도 내가 그 동안 보내고 싶은 만큼 메일 보내지 못한 데는 그 이유도 조금은 작용한 것 같습니다.
 
앞서 메일을 받지 못했다니 참 이상하네요. 쓰고 나서 며칠 후 나도 "혹시 발송을 깜빡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불쑥 들어서 '보낸 편지함'에 들어가 확인했거든요? 지금도 다시 확인했는데, 보낸 것으로 분명히 되어 있습니다.
 
요즘 한 친구를 되찾게 되어 매우 기뻐하고 있어요. 유시민 선생이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둔다는 뉴스를 보고 친구 하나 찾나 하는 희망이 떠올랐죠. 전화를 한 번 돌렸는데 안 받기에 그냥 놔두고 있었는데, 어제 보내준 책이 배달됐어요. 책 받고 또 전화 돌렸는데 또 안 받았지만 잠시 후 콜백이 왔어요. 열흘쯤 후에 만날 것 같습니다.
 
늦게 만난 친구지만, 그래도 이제 생각하니 15년이나 됐네요. 98년 독일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알게 되어 꽤 가까이 지내다가 02년 국회 들어갈 때부터 금배지 달고 있는 5년 동안 깨끗이 안 보고 지냈어요. 대구에서 떨어지고 난 직후에 또 만나게 되어 한 동안 꽤 재미있게 지내다가 참여당 만들면서부터 발길이 갈라졌는데... 이제 정치 그만둔다니 또 보게 됩니다.
 
다시 보게 된 것 반가운 게, 공리적인 면이 많이 있어요. 5년 전 내가 저술활동 시작할 때 그 친구 조언이 참 요긴했거든요. 그 동안 아쉬웠는데... 당장 "사론" 작업에 관한 의견부터 짜낼 일에 마음이 바쁩니다.
 
책을 받고부터 급한 교정 일 덮어놓고 얼른 읽어보고 있는데, 반가운 생각이 더 드네요. 그 친구가 '지식소매상'을 표방하는 데 대해 은근히 불만스러운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치업을 그만두고 돌아오는 곳이 유통업보다는 생산업 쪽으로 보여요. 뭘 맹글어내는 생산업일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전번 메일에서 꺼내 놓은 '절제'란 말에 생각이 더 머물렀습니다. 어눌함의 힘과 맛에 대한 느낌을 적은 일이 두 차례 생각나요. 한 번은 제주 있을 때 조훈현 사범, 장수영 사범과 바둑평론가 박치문 씨와 함께 앉았을 때, 승부에 집착하는 신진 기사들의 풍조가 당신 제자 이창호에게 원인 있는 거 아니냐는 누군가의 공박에 조 사범이 "그래도 창호는 모양을 알아..." 하던 장면. 또 한 번은 용산참사 직후 유시민 선생 만났을 때 "이 세상에 '악'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자문하듯 묻던 장면. 재기가 넘치는 분들인데, 표현을 억지로 절제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절제되는 데서 일어나는 감동. 떠올라 있는 주제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진 것인지 '불립문자'(不立文字) 차원의 표현이라 할까요?
 
양구님 뽑아준 제목이 상당히 적확한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했어요. 최원식 선생이 제시한 관점도 당시 시점에서는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이 선생 생각에는 적어도 20년 시차의 의미가 담겨진 것인데... 그 글의 문체에서 절제의 힘이 더 느껴졌으면 하는 생각을 특히 한 것도 그 점 때문이겠지요.
 
쓰다가 생각난 점 하나 더 적을게요. '천주'와 '민주'의 대비가 굉장히 큰 함축성을 품은 포인트라고 생각이 되는데, 지금까지 설명에서 좀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 대비를 다시 활용하기 전에 함축성의 범위를 좀 더 면밀하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네요.
 
김기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