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조선위원단은 소련의 북조선 입경 거부에 직면하자 “총선거를 통한 조선 국민정부 수립”이라는 사명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소총회에 보고하여 활동방향에 대한 지침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메논 의장이 2월 19일 소총회에 조선 상황을 보고하면서 조선위원단에서 고려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가) 조선위원은 그 사업을 추진시켜 미군이 점령하고 있는 남조선에만 선거를 실시하고 남조선에 조선 전체를 위한 정부를 수립할 수도 있다.

(나) 조선위원은 남조선에 남조선을 위한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남조선 선거를 실시할 수도 있다.

(다) 또 조선위원은 남북조선을 통일할 다른 가능성도 강구할 수 있다.

 

지금까지 ‘분단건국’이란 말을 써 왔는데, 그 의미를 엄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위의 (가), (나)안을 비교한다면 (나)를 ‘분단건국’으로, (가)는 ‘단독건국’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할 수도 있다. (가)안은 남조선 선거만으로 조선 전체의 국가를 세운다는 것이고, (나)안은 남조선 선거를 통해 남조선만의 정부를 세운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나)안은 사실 ‘건국’까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북에 세워져 있던 북조선인민위원회를 북조선 인민을 대표하는 북조선 임시정부로 보고 그에 상응하는 남조선 임시정부를 세워서 완전한 건국은 양쪽 임시정부가 주체가 되어 진행해 나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유엔의 역할은 건국 작업의 기반조건을 만들어주는 데 그치고 진짜 건국은 조선인 손에 맡기는 결과가 될 것이었다.

 

한편 (가)안은 유엔의 손으로 조선 건국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조선 전체의 국가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분단건국’이 아니라고 그 지지자들은 주장하지만, 3분의 2 주민의 선거만으로 전체를 위한 국가를 만든다는 이념적 문제가 있었고, 그와 똑같은 논리로 이북에서도 조선 전체의 국가를 만들 형편이 분명했다는 점에서 현실적 문제가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분단건국’ 방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메논은 보고연설에서 위원단의 다수 의견이 (나)안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데도 2월 25일 소총회에서 미국대표는 (가)안을 소총회 결의안으로 제안했다. 미국대표 필립 제섭은 전날 회의 발언에서 제안 취지를 설명했는데, 그 요지를 서울 주재 미국무성대표 랭든이 군정청 공보부를 통해 성명서로 발표했다. 성명서 전문이 2월 26-27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되었는데, 중요한 내용이 담긴 뒷부분만을 옮겨놓는다.

 

조선위원단은 그들을 원조하고 있는 점령당국과 협의하여 선거법 및 그 세칙을 제정하며 적령자 선거권을 기초로 비밀투표에 의한 선거를 실시하기 위하여 투표지역 혹은 지대를 규정하고 선거일자를 결정하도록 그 조치를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 지역 혹은 지대에서 동시에 선거를 실시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는 동 위원단의 인원수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동 위원단은 수 지역 혹은 지대에서 순차로 선거를 감시할 것 즉 조선의 남부 도로부터 실시하여 그 도가 완료되면 점차로 북쪽으로 이동 실시하도록 한다는 것을 발표하여야 할 것이다. 또 위원단은 총선거의 목적은 동 위원단이 조선국민의 자유 및 독립의 긴급 달성에 관하여 협의할 수 있는 대표자 즉 국민의회를 구성하여 조선중앙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대표자들을 선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즉시 발표하여야 할 것이다.

 

국련조선위원단은 그들이 발표한 계획에 따라 마땅히 총선거 감시의 업무를 추진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동위원단이 38선에 도착하여 그들의 중대한 사명인 남북조선 통일선거 감시를 이행함에 있어서 추호라도 저지되는 일이 없이 국련총회에서 부여된 정당한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여 주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만약 불행히도 동 위원단이 소련당국의 방해로 인하여 38이북지국의 총선거감시의 업무를 계속 추진시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조선국민의 3분지 2이상이 그의 해당한 조선 국민의회의 대표를 선출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선국민의 3분지 1은 동 의회에 그들의 대표를 참석시킬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또 조선국민은 물론 전 세계의 모든 국민은 이러한 기회를 그 누구가 거부하였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선 국민의회는 성립될 것이다. 좌석이 다 차지 않더라도 성립될 것이다. 그리고 동 의회는 그가 원한다면 국련총회의 결정에 명시된 바와 같이 조선 국민정부 수립에 관하여 동 위원과 협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동 의회가 북조선의 인민들과 그들이 국민정부에 참여할 것을 협의하는 데 성공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와 같이 국련총회 의결 중 나머지 조항을 실천하는 데 관하여 동 위원단과 협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간단히 말하면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동 위원단이 소총회에 제출한 제1안을 시인 채택하여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제2제안에 대하여는 답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소총회에 배부하여 달라고 서기국에 대기한 결의안 중에 우리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미국에 관한 한 미국대표는 총회의 결의안의 제 조항을 이행함에 있어서 미국의 협력을 이에 서약하는 바이다.

 

여기서 “조선 국민의회(Korean National Parliament)”라 한 것이 전 조선인을 대표하는 정치기구로써 “조선 국민정부(Korean National Government)”를 세우는 주체로 제안되는 것이다. 요점은 ‘가능지역 선거’를 통해 통일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설명에는 요점 외의 다른 내용이 들어있다. 결의안 주문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실제로 실행되지도 않을 내용이다. 선거를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남쪽 끝에서 시작해 도 하나씩 차례로 선거를 실시하며 북쪽으로 올라오게 한다는 것이다.

 

왜 실행하지도 않을 이런 방법을 설명한 것일까? 각국 대표들이 메논의 보고에서 당연히 품게 되었을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다. 의혹은 두 가지였다. 남북을 포괄하는 진짜 ‘총선거’를 이렇게 쉽게 포기해도 되는 걸까? 조선인 사이의 큰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위원단의 역량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과연 가능할까?

 

소총회는 이전 총회에서 1년간 설치를 결정한 기구였다. 안보리에서 다룰 안건들이 소련의 거부권 때문에 막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국이 제안해서 만든 편법기구였고, 극히 제한된 기능만을 가진 기구였다. 총회와 안보리에서 위임한 안건만을 다룰 수 있었고 어떤 결정에든 출석회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했고, 가맹국에 대해 권고를 직접 행할 권한도 없었다. 지금 조선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도 1947년 11월 14일의 총회 결의안에서 조선위원단이 “필요한 일이 있을 경우 소총회와 협의할 것”을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제한된 기능의 임시기구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총회에서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였다. 공산국가 아닌 나라라 해서 미국 주장을 무조건 지지해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 주장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찬성하는 ‘괴뢰국가’들도 몇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국가는 주체적 입장을 지키고 싶어 했다. 그중 일부는 미국이 원조 등 정책수단을 통해 지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꼭 마음먹은 제안은 통과시킬 수 있었지만 비용이 들었다. 억지스러운 제안일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48년 2월 하순의 소총회에서 미국은 조선의 단독건국 방안을 꼭 관철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2월 26일 회의에서 찬성 31, 반대 2, 기권 11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당시 출석상황에서 미국 제안의 통과를 위해서는 30표의 찬성이 필요했다. 공산권 6개국이 참석했다면 34표의 찬성이 필요했을 것이다. 소총회 설치에 찬성한 나라들도 소련 주장처럼 소총회를 미국의 허수아비로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보이콧을 하지 않았다면 1948년 2월 26일의 조선 관계 결의안 같은 억지스러운 결의안의 통과는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반대한 나라는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였다. 소련을 쉽게 편들어줄 나라들이 아니다. 기권한 나라는 아프가니스탄, 콜럼비아, 덴마크, 이집트, 이라크, 노르웨이, 파나마, 사우디아라비아, 스웨덴, 시리아 및 베네주엘라였다. 기권도 미국 제안의 통과를 가로막는 효과에 있어서는 반대와 마찬가지였다.(한 나라의 반대나 기권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의 찬성이 필요하다.) 불출석은 소극적으로 도와주는 효과를 가진 것이었다. 2월 28일자 <동아일보>의 한 기사에서는(“찬성과 기권국”) “이 나라들은 소련과의 인접한 나라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만족을 느끼지 아니하는 회교도가 많은 나라들”이란 해석을 붙이기도 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의 다른 기사에서는(“정부 수립에 자유 협의 - 국의 권한의 각서”)에는 소총회에서 여러 나라 대표의 발언이 소개되어 있다. 찬성한 대표들 중에도 미국 제안을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다.

 

인도대표이며 조위위원 의장인 메논 박사는 미국의 각서는 ‘유익한 지침’이라고는 보나 이는 위원단을 구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였다. 메논 씨는 또한 조선으로부터 협의 목적을 위한 선거계획 이외의 여하한 계획도 국련이 고려치 않는 데 실망을 표명한 수십 통의 전보를 수취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뉴질랜드 대표 제임슨 손 씨는 미국안을 지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인데 무위는 남조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조선인에게는 독립이 약속되었다. 국련은 그 자체의 헌장을 실시하는 데 단호한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 위원단에 대한 위탁사항이 총회에 의하여 변경되지 않는 한 위원단은 모든 가능한 수단에 의하여 그를 추진시켜야 할 것이다. 만약 방해가 계속된다면 위원단은 가능한 곳에서만 선거를 진행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키스탄대표 마이스파하니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미국안은 이상적도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이는 평화를 저해하거나 조선인 자신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가장 적은 것이다. 특별총회를 소집한다 하여도 이는 어느 파의 심경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문제 처리를 더욱 지연시키고 조선 내 분열을 그동안 심화시킬 것이다. 이 총회는 모 국가의 방해를 예견하였던 것이며 위원단이 소련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여 업무를 진행시킬 것을 희망하였다.”

 

호주대표 레이프 하리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용 빠져 있음]

 

필리핀대표 로물로는 25일 미국안이 모종 위험성을 띠운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위험성은 중대한 것이며 우리는 이를 무릅쓰고 나갈 권한이 없는 것이다. 나는 협의목적만을 위한 선거를 희망하는 바이며 중간에 있어 미소간 교섭재개를 요청하는 바이다.”

 

칠리대표 죠아킨 라라인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호주, 카나다, 스칸디나비아 제국은 우리가 염려할 만한 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여차한 우려는 행동을 방해하여서는 안 된다. 국련은 그가 특수한 정책을 갖고 있는 때에 체념상 침묵을 할 수 없다. 그는 지체없이 행동노선을 따라서 나아가야 한다. 나는 미국안에 찬성하는 바이다.”

 

덴마크대표 워리엄 보르베르그 씨는 소련이 결석하고 있으므로 기권하겠다고 말하고,

 

스웨덴대표 군나르 학그로프 씨는 “신사태 발전이 화해에 의하여서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하였으므로 미소 교섭을 재개하거나 불연이면 5대국의 협의 또는 특별 국련총회 소집을 원한다.”고 말하였다.

 

에콰도르대표 호메로 비테리-라프론테 씨는 미국안을 지지하면서 이는 남북조선에 대립하는 정부를 출현시킬 위험이 있는데 만약 쌍방이 다 국련에 신청한다면 국련은 어느 정부를 승인할 것인가를 질의하였다.

 

이집트대표 마무드 베이 파우 씨는 위원단이 미국결의안을 실시할 실력이 없으므로 기권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캐나다 대표 레스터 피어슨 씨는 선거가 불법이라고 경고하였으며,

 

레바논대표 카림 아쓰쿨 씨는 조선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 결정의 기회를 조선인에 주는 것이라 하여 미국안을 지지하였다.

 

우루과이대표 유레스크 로드리게스 씨는 선거 직전 및 후에 더욱 화해를 목적한 교섭을 추진시키라고 말하였다.

 

노르웨이대표 핀 모 씨는 미국안은 총회 계획을 이탈하는 것이며 이의 채택은 국제법을 위험하게 개혁하는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