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유엔 소총회의 메논 연설 전문이 20일 유엔조선위원단에서 공식 발표되었다. <경향신문> 2월 21일자에는 그 내용이 제2면에서 제3면에 걸쳐 게재되었다. 그리고 제1면에는 그 요지를 정리한 기사가 실렸다.

 

“남조선 총선거 등 3 구체안을 제시 - 19일 소총회에서 메논 씨 실정 보고”

 

[레이크석세스 20일 발 AP 합동] UN조선위원회 의장 K. P. S. 메논 씨는 19일 소총회 석상에서 조선 문제에 관하여 약 1시간 20분에 걸쳐 보고연설을 하였는데 그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북조선을 점령하고 있는 소련 측은 조선위원회와의 협조를 거부하고 동 위원회의 북조선 입경을 거절하였다. 따라서 UN총회가 UN조선위원회에 위임한 남북조선을 통한 총선거에 대한 사업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2. 그러나 만약 UN이 남북조선을 통일하는 데 실패한다면 조선은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조선 지도자들은 UN에 최후적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사한 조선 사태에 직면한 UN조선위원은 다음의 3개안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가) 조선위원은 그 사업을 추진시켜 미군이 점령하고 있는 남조선에만 선거를 실시하고 남조선에 조선 전체를 위한 정부를 수립할 수도 있다. (남조선에는 전 조선 인구의 3분지 2가 거주하고 있다.)

 

(나) 조선위원은 남조선에 남조선을 위한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남조선 선거를 실시할 수도 있다.

 

(다) 또 조선위원은 남북조선을 통일할 다른 가능성도 강구할 수 있다.

 

3. 그러나 UN조선위원은 아직 어떠한 방책을 취할 것인가에 관하여 특별한 건의안을 작성하는 데 합의를 보지 못하고 소총회로부터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UN조선위원 중에는 전술 3개 가능안 중 제2안을 지지하는 편이 다수이고 이 안이 남북 양 지대를 통일하는 공정한 방책이며 이 안이 양 지대의 통일이라는 목적 도달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위원이 남조선 단독선거를 실시하여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 UN위원 중에는 의심하는 파도 있다. 이러한 위원들은 북조선에 강력한 군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남조선 단독선거가 일층 곤란한 사태를 유치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4. 한편 UN조선위원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남조선에서 시민의 제 자유의 제한 또는 박탈에 관한 많은 증거가 있다. 그러나 선거는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수행될 수 있다. 따라서 남조선에서는 시민의 자유 제한에 관하여 수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남조선 미군당국 및 과도정부가 자유선거를 확보하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또 실제에 있어서 여사한 효과를 위한 예비적 지시가 발표된 것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위시한 소련 위성국은 소총회를 보이콧하고 이에 불참하였다.

 

전문은 너무 길기 때문에 모두 옮겨놓지 않는다. <경향신문>에는 열 개의 단락으로 구분해서 게재했는데 그 제목만 소개한다.

 

1. “조선은 유구무결(悠久無缺)한 독립국 - 기미년 비폭력으로 세계에 수범(垂範)”

2. “독립할 자격 충분 - 38선으로 일제 때 같다.”

3. “UN이 조선인의 최후 희망 - 남부 총선거 등 3개 대안을 결정”

4. “이승만 박사는 위대한 애국자”

5. “조위대표 3파로 - 총선거 주장 3, 반대 3, 중립 3”

6. “자유분위기라면 총선거 실시 추진”

7. “북조선 정세론 위원단은 무력”

8. “좌익 총파업으로 우리 위원단 배격”

9. “남북회담은 기대난(期待難)”

10. “조선의 운명은 소총회서 좌우 - 위원단은 공수(空手)로 안 돌아간다.”

 

전체적으로 정확하고 공정한 내용으로 이뤄진 연설이었다. 김구도 “국제호텔에서 회담하였을 때에도 그들의 조선 자주독립에 대한 호의에는 감격하였던 것이다. 오늘 발표문을 보니 나는 어느 하나라도 반대할 것을 발견치 못하겠고 전폭적인 동감을 가질 뿐”이라 논평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서울신문> 1948년 2월 22일) 그런데 옥에 티랄까, 전체적 논지에도 맞지 않으면서 편향된 내용이 있다. 이승만을 치켜 올린 제4단락이다.

 

몇 주일 전(1948년 1월 30일) 모윤숙과 낙랑클럽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 너무 더러운 이야기라서 이에 관한 서술 중에는 지나치게 격앙된 것이 많다. 비교적 차분하게 사실을 밝힌 서술을 최영희의 <격동의 해방3년>(한림대학교 출판부 펴냄) 449-451쪽에서 찾았다.

 

“2월 26일”

 

유엔소총회에서 유엔위원의 제1안인 가능지역 총선안이 가결됐다. 유엔위원에서 소총회 보고안이 작성되고 있을 때부터 이승만은 아주 초조했다. 그것은 총선거가 실시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보다는 김규식을 크게 의식한 때문이었다. 미군정은 김규식을 초대대통령으로 밀 방침이었으며, 유엔한위 각국 대표들도 그에게 큰 비중을 두고 접촉하고 있었다. 메논 의장도 남한단독정부안을 꺼리고 인도의 중립노선과 관련 김규식의 남북통일을 추구하는 중간노선에 관심을 모았다.

 

유엔총회에 참석케 되는 메논의 향배는 사실상 이승만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었다. 이승만을 지지하는 조병옥-장택상 등은 여류시인 모윤숙을 메논에 접근시켜 그를 이승만 지지 쪽으로 기울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메논은 유엔에 향발하기 전에 참고자료로 한국정치 지도자에게 각자 자기를 지지하는 60명의 연명서를 제출토록 했다. 이승만의 지지 연명서는 비서 이기붕이 분실, 메논의 출발 전날 밤에야 조병옥-윤치영 등이 급조했지만 전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이날 밤 이승만은 모윤숙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밤이 우리나라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니 어떻게 해서든지 메논을 데려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당부했다. 이에 모윤숙은 드라이브를 빙자, 메논을 이화장으로 안내, 이승만과 만나게 하고 프란체스카가 전해주는 연명서를 귀로에 메논에게 전하였다. 메논이 UN총회로 떠난 후에도 이승만은 모윤숙의 이름으로 남한독립정부 수립을 호소하는 서신을 띄웠다. 메논은 유엔 소총회에서 “이승만 박사라는 이름은 남한에서 마술적 위력을 가진 이름이다. 네루가 인도의 국민지도자인 것과 같은 의미에서 그는 한국의 국민적 지도자가 될 것이다. 이 박사는 한국의 영구적 분할을 옹호하기에는 너무도 위대한 애국자”라고 이승만을 극구 찬양하였다.

 

(...) 이 결의는 미국의 제의로 32 대 2, 기권 11로 통과되었다. 공산권이 기권했고, 유엔한위에 대표를 파견한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가 부표를 던졌다. 인도는 찬표를 던졌는데 부표가 예상되던 인도의 태도 돌변은 많은 의혹을 샀다. 인도정부와 메논 간의 견해 차이가 있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메논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것이 나의 업무에 있어 감정이 이성을 지배한 유일한 기회였다.”고 유엔 활동에 모윤숙을 크게 의식했음을 고백했다.

 

맨 앞에 인용한 <경향신문>의 메논 연설 요약 기사 중 밑줄 친 ‘3개안’이 소총회의 선택 대상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요약된 내용만으로 각 제안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연설 전문 중 이 3개안을 내놓은 제3단락 내용을 옮겨놓는다.

 

우리는 우리에게 열린 여러 가지 대안을 고려하였으나 그중 한 가지도 전 대표를 모두 만족시킬 것이 못 되었으므로 우리는 권고와 지시를 받기 위하여 소총회에 조회할 것을 결정하였다. 우리에게 허용된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로 결의 제2조 내용을 남조선에서만 추진하는 것인데 그것은 말하자면 필연적으로 남조선에만 국한되는 선거를 감시하여 남조선에 조선독립정부로서 인정되는 정부 수립을 촉진하는 것이다.

 

둘째의 대안이라는 것은 결의 제1조에 표시된 목적 즉 인민의 대표를 선출하여 그와 함께 협의한다는 국한된 목적으로 선거를 감시하는 것이다.

 

제3의 대안이라는 것은 제2분과위원회 협의 중에 제시된 안인데 조선 국가 독립 달성의 다른 가능성 즉 남북조선 지도자의 회합 같은 것을 탐구 또는 적어도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또 한 다른 안이 있었는데 그것은 현 사정에 있어서 우리의 사명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표시하고 우리가 위임받은 사무를 총회에 돌리자는 것이다. 위원단은 이 최후안을 삭제하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하였다.

 

조선 독립이 그 한 목적이었던 전쟁이 끝난 이래 2년이 지났건만 조선은 아직 독립이 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분단되고 있다. 일본정권 아래 가지고 있었던 또는 참고 있었던 행정적 통일 그나마도 지금은 없어져버렸다. 각계각층 조선인들은 UN이 그들의 최후의 희망이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접촉하여 왔다. 만일 이 최후의 희망이 역시 소멸된다면 조선은 폭발할 것이며 그것은 아세아와 전 세계의 큰 충격의 시초가 될 것이다.

 

메논은 조선위원단 내에서 제2안이 제일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요약 기사에서 “남조선을 위한 임시정부”라는 말 때문에 이것도 분단건국을 향한 것이 아닌가 오해할 수 있는데, ‘임시정부’란 말을 중시해야 한다. 남조선 인민을 임시로 대표하다가 통일정부 수립이 가능하게 되면 해소될 임시정부를 말한 것이다. 통일정부 수립의 길을 찾기 위해 유엔과 협의하는 것도 이 임시정부의 역할이 되는 것이다.

 

조선위원단 내의 토론 내용은 연설의 제5단락에 들어 있다.

 

만약 그렇다면 결의서 제2에 의하여 전국 선거를 거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적어도 결의서 제1에 의한 협의(協議)적 목적을 위한 남조선 선거를 거행함이 가능할 것이 아닌가? 이 문제는 UN위원회에 의하여 그 전반에 긍하여 검토되었다. (...) 본 위원회는 결의서 제1에 의하여 협의의 목적을 위하여 남조선에서 선거를 실시하는 문제로 2분되었다. 3대표는 선거에 찬성이며 3대표는 반대이며 3대표는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만약 중간위원회(주: 소총회)가 총선거를 본 위원회 감시 하에 실시할 것을 건의하는 경우에는 본 위원회는 여사한 총선거는 순전히 협의 목적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 결의서 제2에 규정된바 국민의회 및 중앙정부의 선구(先驅)가 될 것을 의미한 그러한 종류의 선거로서 해석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메논은 3개안을 소총회에 전달하면서 그중 제2안에 대한 지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1안, 즉 실제로 5-10선거를 통해 현실화되는 ‘가능지역 선거’를 통한 중앙정부 수립은 애초의 총회 결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남북협상을 통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제3안에 대해서도 확실한 전망이 없고 선거를 너무 미룰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뜻이 분명하다. 선거를 조속히 실시하되 최종적 의미를 갖지 않게 한다는 절충안으로서의 제2안이 메논 자신 외에도 위원 다수가 지지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2월 26일 소총회에서는 미국이 제안한 가능지역 선거를 통한 중앙정부 수립 방침이 32 대 2, 기권 11로 가결되었다. 공산권은 기권했고, 반대는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였다. 반대한 두 나라가 조선위원단 참여국이라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미국 눈치를 적게 보는 나라이면서 위원단 활동을 통해 조선 실정을 가장 잘 파악한 나라들이 반대에 나섰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인도대표 메논의 미국 제안 찬성은 이 표결에서 가장 눈길을 끈 투표였다. 19일의 보고연설에서도 중앙정부 즉각 수립에 반대하는 입장이 분명했던 그가 1주일 사이에 태도를 바꾼 까닭이 무엇일까? 낙랑클럽이 뉴욕까지 원정 활동을 펼친 흔적이 없는데, 메논의 표변은 미국 측 로비 결과로 봐야 할 것 아닌가? 모윤숙의 매력을 과대평가할 일이 아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