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현대사산책> 23책을 주문했다. 3년 전 <친일인명사전> 이후 최대의 주문이다.

 

“해방일기” 작업을 위해 책상 주위에 모아놓은 책이 약 3백 권이다. 빌린 책, 얻은 책, 산 책이 각각 3분의 1가량씩이다. 얻은 책과 산 책 중에는 이 작업 전부터 갖고 있던 것이 절반쯤 된다.

 

그중에 <현대사산책>의 “1940년대 편” 두 권이 있다. 작업 시작 단계에서 많이 의지하다가 진전에 따라 차츰 활용이 줄어들어 왔다. 그 시기에 대해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점들이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에 대한 내 서술은 분량이 열 배 가까이 큰 것이니 출발점을 떠난 후로는 활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실록”을 생각하면서는 <현대사산책>의 존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구상하는 서술 분량이 <현대사산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밀도의 서술, 그것도 믿을 만한 품질의 서술이 이미 나와 있는데 따로 내 작업이 필요할 것인가? 강준만의 작업 위에 내가 보탤 것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봐야 내 작업의 구상도 구체화하고 확정할 수 있을 것이다. 보탤 것이 많지 않다면 보완 성격의 규모가 작은 작업으로 줄이고 생각해 오던 다른 과제로 노력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해방일기”에 묶여있는 몸이지만 틈틈이라도 얼른 검토해보기 위해 서둘러 주문한 것이다. 1940년대의 두 권에서 받은 인상으로는 내 ‘실록’ 작업도 별도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제부터 전체를 면밀히 검토해봐야겠다.

 

1940년대 후반을 놓고 그 동안 생각해 온 내용을 한 차례 정리해 본다. 강준만의 두 권은 이런 구성으로 되어 있다.

 

1권

 

머리말 한(恨)과 욕망의 폭발

 

제1장 36년 묵은 한(恨)의 분출 / 1945년

도둑같이 찾아온 8.15해방

'해방은 16일 하루뿐이었다'

30분 만에 그어진 38선

소련군의 평양 진주

조선인민공화국 선포

한국인을 적(敵)으로 간주한 미군

한국민주당 창당

'통역 정치'와 정치에 대한 굶주림

더 큰 힘을 갖게 된 '일본화된 경찰'

가짜 김일성의 등장?

이승만의 귀국

전평의 결성과 조선인민당 창당

김구의 귀국, 임시정부의 분열

김일성의 권력 장악, 인공 불법화

'신탁통치' 갈등과 투쟁

'언론의 둑은 터졌다'

38선의 밀수품

'문화의 둑'도 터졌다

'일제 시대보다 더 고통스럽다'

자세히 읽기 : ‘준비 부족론’ 논쟁 / 함석헌과 윤치호 / 방송과 미군정 홍보

 

제2장 좌우(左右) 갈등의 폭발 / 1946년

'신탁통치' 갈등은 전쟁이었다.

국방경비대 창설

'쌀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민주의원과 민족전선 출범

김일성 암살 미수와 북한의 토지개혁

'가거라 38선'은 불려지건만

정판사 위폐사건과 좌익의 ''지하화(地下化)'

김규식과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

이승만의 단정론과 김구의 의리

우익 청년단체의 전성시대

'국립서울종합대학안' 파동과 '교육출세론' 확산

좌우합작과 좌익 3당 합당

조선노동자전국평의회의 총파업

대구 10월항쟁

과도입법의원 설치

여운형과 김규식의 좌절

이승만의 방미(訪美)

'종이'와 '극장'을 달라

자세히 읽기 : ‘4당 합의’와 ‘5당 회의’ / 마지막 경평전 축구

 

2권

 

제3장 분열에서 분단으로 / 1947년

반탁독립투쟁위원회 발족

3.1절 유혈사태

이승만을 도운 '트루먼 독트린'

제2차 미소공위와 '6.23 반탁데모'

과도입법의원의 친일파처벌법

여운형 암살과 '테러 정치'

이승만과 김구의 결별

지하로 간 좌익 언론과 예술

자세히 읽기 : 리영희가 겪은 1947년 / 서재필의 귀국 / 여운형과 김구 / <신라의 달밤> <베사메무초> <빈대떡 신사> / ‘마돈나’와 ‘모나리자’

 

제4장 욕망과 폭력의 제도화 / 1948년

유엔위원단 입국과 단독선거 확정

단독선거 반대운동과 토지개혁

공창제도 폐지

제주 4.3항쟁

김구와 김규식의 방북

5.10 단독 총선거

단전(斷電) 적화(赤化) 기아수입(飢餓輸入)

대한민국 정부 수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

이승만을 총재로 모신 대한청년단

여순사건

국가보안법 공포

제주에서의 '인간 사냥'

자세히 읽기: “서북청년회는 4-3과 아무 관계 없다” / 스웨덴에 0 대 12로 패한 런던올림픽 축구

 

제5장 반공(反共)의 종교화 / 1949년

반민특위와 학도호국단

'국회 프락치 사건'과 반민특위의 와해

국민보도연맹

김구 암살

이승만 우상화

'사바사바 정치'와 '요정 정치'

개신교의 반공.친미주의

'연설 정치'와 '혈서 정치'

6.25 직전, 무슨 일이 벌어졌나

자세히 읽기 : 그날이 오면

 

맺는말 전투적 극단주의의 배양

 

4년 반의 기간에 대한 서술이 “자세히 읽기”를 빼고도 “머리말”과 “맺는말”까지 70개 절로 구성되었고, 각 절은 다시 몇 개의 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기의 웬만한 주제들을 빠트리지 않고 제시했다는 데 이 책의 첫 번째 가치가 있다. 이 영역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이 책을 보며 생각의 균형을 다시 맞춰볼 수 있고, 그리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이 시기에 관해 꼭 필요한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다. 전체 분량은 2,500매 전후?

 

같은 기간을 나는 ‘실록’ 작업에서 그 절반가량의 분량으로 서술할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을 처음 떠올릴 때 “대한민국 실록”이란 가제를 생각했는데, 지금은 ‘실록’이란 말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하게 될 경우 다른 제목을 찾겠지만, 당분간은 ‘실록’이란 이름으로 이 과제를 표시하겠다.) 30~35매 크기의 에세이 35꼭지가량으로 구성하려는 것이다. (1년을 4계절로 나눠 계절마다 두 꼭지씩)

 

강준만의 서술은 주제를 제시하고 사실을 밝히는 데 중점이 놓여 있다. 해석에 있어서는 기존의 해석을 소개하는 데 그치고, 그 기본 목적은 ‘반공교육’ 탈피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작업이 따로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공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대안으로 삼을 세계관을 우리 현대사에서 나타낼 필요를 생각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라도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새로운 해석의 제시는 전문연구자의 영역이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3년 전에는 한국현대사 전문연구자가 절대 아니었고, “해방일기” 작업도 그 한계를 전제로 수행했다. 그런데 지난 3년간의 작업에 짱짱한 박사논문 하나 쓸 공은 들이지 않았는가? 나도 ‘일종의’ 전문연구자가 되었다고 우길 수 있지 않을까? ‘비이사(非而似)’ 연구자라 할까?

 

초년부터 한국현대사 연구에 정진해 온 ‘진짜’ 연구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나 같은 ‘비이사’ 연구자가 더듬을 수 있는 구석도 있을 것이다. 전통시대에 대한 이해를 비롯해서 한국현대사의 ‘바깥’에 더 익숙한 측면이 많으니까. 다만, ‘비이사’가 ‘진짜’ 흉내를 내다가는 ‘사이비’가 되어버리기 쉬우니 ‘비이사’의 본분을 지키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다.

 

이런 생각을 바닥에 깔고 지금까지 작업해 온 해방공간을 다시 바라본다. 이 기간에 ‘실록’ 방식을 적용한다면 어떤 구성을 할 수 있을까? 떠오르는 생각대로 24꼭지를 뽑아본다.

 

1945 가을 “2차대전 종전 상황과 조선의 위치” / “조선인의 독립 역량”

 겨울 “해방 조선의 경제 상황” / “신탁통치안을 둘러싼 좌우대립의 격화”

1946    봄 “미-소 양군 점령정책의 차이” / “반탁운동을 통한 반공극우세력의 형성”

 여름 “미군정의 좌우합작 지원과 중간파의 등장” / “종전 후 1년간의 동아시아”

 가을 “남조선 민중항쟁과 좌익 재편” / “해방 1년 후 남북의 상황”

 겨울 “남조선입법의원과 북조선인민위원회” / “냉전 출범을 앞둔 이승만의 방미”

1947    봄 “경찰국가가 완성된 남조선” / “좌익 탄압의 신호탄, 정판사사건”

 여름 “미소공위의 좌절” / “여운형이 남긴 빈 자리”

 가을 “유엔에 상정된 조선의 운명” / “38선의 실상”

 겨울 “유엔임시조선위원단” / “김구와 이승만의 엇갈린 길”

1948    봄 “제주항쟁” / “통일건국을 위한 마지막 시도”

 여름 “각자 치른 선거” / “각자 세운 정부”

 

‘봄’은 2~5월, ‘여름’은 5~8월, ‘가을’은 8~11월, ‘겨울’은 11~2월로 하고, 경계선이 되는 달은 상황에 따라 어느 쪽으로도 들어갈 수 있도록 융통성을 두려는 것이다. 한 꼭지에 30여 매씩으로 서술한다면 <현대사산책>과 다른 범위의 공헌이 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별도의 내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록’ 작업의 필요성을 더 단단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분단건국 직후의 얼마 기간에 대한 샘플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해방일기” 작업을 통해 상황이 파악되어 있으므로 그 기간(전쟁 발발 전까지)에 대해서는 실제 작업을 통해 어떤 성과를 뽑아낼 수 있겠다는 전망을 실행 차원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 달가량은 주말을 이 일에 써야겠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