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9일) 이병한님이 해방일기 사랑방에 와주어서 얼굴을 처음 마주쳤습니다. 잠깐 귀국한 참이라 만날 틈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제 저녁 공교롭게 시간이 비었다고 연락도 없이 와줬네요.
열한 시까지 여러 분이랑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진 뒤 한 시간가량 둘이 오붓한 시간을 가졌죠. 아무래도 메일로 얘기하는 것보다 쉽게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이 내 실물을 보니 글에서 받았던 느낌과 크게 다르다고 하네요. 글에서 받은 인상은 근엄-엄격-정확 쪽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인상을 받고 있는 독자들이 많이 계신지요? 계시다면 틈 날 때 사랑방에 놀러오세요. 환상을 깨뜨려 드리겠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일전의 메일 발췌해서 올린 것, 나머지 내용 밝혀도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이 선생의 사업 구상에 관한 것이라 다른 사람이 밝히는 게 조심스러웠는데, 본인 자신이 열심히 밝히고 있는 거라고 하네요. 메일 전부를 다시 올립니다.
뭘 할까?
김기협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뜻하신 바도 크게 이루시길 바랍니다.
연락이 늦었습니다. 저는 지금 서울입니다. 도착한 지 5일째 되는 아침입니다. 아침 다섯시에 눈이 떠지는 걸 보면, 시차 적응도 된 것 같고요. 제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침형 인간입니다.
1차적으로는 종합시험도 보고, 논문 중간보고도 겸해 왔습니다. 더 크게는 사람들 만나며 내년부터 '뭘 할까' 구상을 다져나가는 중입니다. 기질상 대학에서만 머물 수 없지 싶고요. 백영서 선생님은 내년부터 '논객'으로 일 좀 하라고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창비를 염두에 두신 거겠죠.
하지만 말 잘 안듣는 제자는 다른 꿍꿍이로 신이 나 있습니다. 저는 제가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는 매체를 만들까 합니다. 동(아시아)학에 특화된 온라인 저널로요. 애당초 윤여일에게, 대화로 주고받는 <동아시아를 묻다>를 제안한 것도, 저 나름으로는 '몸 풀기' 같은 작업이었습니다. 이쪽이 전해준 인쇄술에 그리스 고전이 얹혀서 르네상스가 일어났듯, 저쪽이 전해준 인터넷에 동방 고전이 접속하면 신-르네상스다. 라는 상상을 종종 합니다. 올해는 좀 구체적으로 사업(?)의 틀을 짜볼까 합니다.
'실록' 작업 얘기 처음 듣고는 저는 조금 아쉬웠더랬습니다. 선거 결과의 파장이 여실하구나 해서 놀랬고, 무언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작업하실 수 있는 분을 놓치는 듯한 안타까움이 있었지요. 그런데 말씀하셨듯, '20세기 동아시아'의 문제의식을 '실록'에 충분히 담아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꾸려가는 매체가 정말로 출범이 된다면, 그쪽에서 '20세기 동아시아'도 진행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더 잘된 일이구나 하고 있습니다. 강호의 고수들이 계급장 떼고 자유로이 노니는 동학의 터전을 일구고 싶습니다. 신문과 논문 사이에서 2-30만의 고급 독자 시장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동학으로 추려도, 10만은 되지 않을까. 신문은 얕고, 논문은 멀리 있으니, 그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우물을 파고 싶은 것이지요. 수준은 프레시안 북스에, 동아시아에 관한 지식/정보/담론을 집약하는 허브가 되면 좋겠네요. 누구와 할 지, 돈은 얼마나 들지, 또 어떻게 마련할지 등등등. 미국에서 차분하게 공부하던 때와 달리, 한국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가슴만은 한껏 부풀어 뜨거워지고 있던 참입니다.
일단 이렇게 간단한 인사부터 드립니다. 저도 종종 '뭘 할까'에 부합한 내용으로 자문을 구하게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이번 글에 대한 칭찬은 조금 지나치신 걸요. ^^ 저도 나름 애쓴 글입니다. 1월 2일 출국이었는데, 1월 1일 온종일 썼습니다. 헌데 내가 지금 무리수를 두고 있는 건가, 또는 나 혼자 지적으로 즐거운 자폐적인 작업인 건가, 고민이 있었지요. 한국에 들어가서 다시 읽어보고, 공론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폐기하자 했습니다. 그런데 인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법 괜찮게 수정이 되었습니다. 나름 흡족한 바 있어서, 강양구 기자에게 보냈고요. 이렇게 크게 호응을 표해 주시니, 저도 크게 기쁩니다. 이쪽으로 생각을 일으켜 주신 점도 크게 감사드리고요. 작년 후반부터 선생님과의 교신이 준 영향이 매우 큽니다.
이번 서울 행에 연재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몇몇 분도 만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부러 피했습니다. 글로 나눌 인연이 지긋하기에, 직접 뵙는 것은 훗날로 미루려고 합니다. 능히 이해해 주시시라 생각됩니다.
도착한 날 밤, 서울의 추위에 혼쭐이 났습니다. 짐을 끌고 동생 집으로 향하는데, 새끼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더군요. 매서운 겨울, '건강'하게 나시길 바랍니다.
-이병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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