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7. 15:55
漸入佳景!
가을 동안 글을 아끼고 지내면서 충전을 엄청 해놓은 모양입니다. 몇 차례 계속 '골 때리는' 글을 쏟아내고 있네요. 연말에 올린 글 보고도 바로 메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실록> 구상의 틀을 막 잡아내고 있어서 틈을 내지 못했어요. 그러다 오늘 올라온 글을 보니'점입가경!'의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실마리는 내가 제공한 건 줄 알겠어요. 그런데 몇 달 동안에 그처럼 완벽하게 소화한 것을 보며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최근 세 편의 글에서도 단계가 느껴집니다. 12월 초의 글이 반가운 정도였다면 연말의 글은 놀라웠고, 오늘 글은 정말 어안이 벙벙합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온 문제들이 두루 담겨 있는데다가 활발하면서도 탄탄한 표현을 보면 이 선생 생각이 나를 앞지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연과학 개념의 적극적 활용도 반갑습니다. 사람들에게 별로 익숙지 않은 생각을 내놓는 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죠. 스스로 생각을 다듬는 데도. 자기 자신에게 잘 표현할 수 있어야 생각이 잘 다듬어지니까. 전보다 과학 개념 많이 활용하는 것도 내게 물든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면서, 역시 놀랍기도 합니다. 워낙 자연과학 쪽 감각이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을 잘 접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동아시아의 20세기> 과제를 나보다 이 선생 같은 분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 동안 조금씩 해 왔는데, 오늘 글 보고 두 손 들었습니다. 이 선생이 훨~ 잘하겠어요.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다듬어온 구상의 범위 안에서는. 더 좋은 다른 일거리 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장점이 많은 과제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몇 주 전부터 과제로 떠올리고 있는 <실록>도 "한국의 20세기 후반"을 핵심 내용으로 삼을 전망입니다. <실록>은 구상이 늦게 떠오른 과제이지만 일단 떠올리고 보니 피할 수 없는 과제란 생각이 듭니다. 주어진 때와 장소에 묶이지 않으려고 발버둥깨나 쳤지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기분입니다. 넓은 공부를 더 하지 못한 능력과 노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해놓은 공부라도 풀어놔야죠.
<해방일기>에서는 지나친 사명감 때문에 몸이 굳었달까, 내 공부의 강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직한 자세를 지킨 덕분에 하나의 '입장'을 세울 수 있었죠. <실록>은 <동아시아의 20세기>로 하고 싶었던 일을 이 입장에 맞추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이게 내 분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분수를 깨닫는 참에 내 하고 싶었던 일 잘 할 선수를 보게 되다니, 이게 우연한 일일 뿐인 것인지...
<실록>은 1948~1987년의 매 1년에 대해 8꼭지씩의 에세이를 쓰는 것으로 구상을 다듬고 있습니다. 총 3백여 꼭지를 4년간 쓰는 거죠. 아마 그 3분의 1가량이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 주제를 다루게 되겠죠. 꽤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아요. 2017년이 되어 그 일 끝낼 때쯤 되면 시간을 확장해서 21세기까지 계속 내려올지 공간을 확장해서 다시 동아시아로 향할지 판단을 할 수 있겠죠. 그 판단에는 그 동안 이 선생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도 중요한 참고사항이 될 것 같은데요?
새해에 계속해서 공부가 잘 풀리시기 빕니다.
김기협 드림
프레시안 포맷이 바뀌고 연재기사 찾아 보기가 무척 힘들어졌네요. 오늘 올라온 이병한님 글 옮겨놓습니다.
기사입력 2013-01-07 오전 8:10:52
유엔과 天下
계사년이 밝았다. 동아시아는 환치 않다. 아베 신조의 (재)등장은 조바심을 일게 한다. 박근혜의 집권도 석연치가 않다. 일거에 드리운 세습 정치의 풍경도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나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지금은 문자 그대로 카오스의 시기이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 불안하고 불길하다.
9·11과 3·11로 20세기는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새 질서는 여태 마련되지 않았다. 거대한 이행기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그래서 정권을 바꾸고, 정책을 수정하면 혼돈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는 커다란 착각이다. 선거가 변화에 대한 환각을 선사해 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 약발이 오래가지 않음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다음 선거는 앞선 선택을 뒤엎는 심판이 되기 일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과 정책의 변화 그 이상이다. 시대의 교체,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2010년대는 1910년대와 견줄 수 있다. 100년 전, 1차 세계 대전(1914년)과 러시아 혁명(1917년)이 일어났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흥기했다. 20세기의 출발이었다. 그 결과 국제연맹이 등장했고, 국제연합(유엔)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유엔은 이제 유명무실이다. 사무총장이 한국인이라고, 판단이 흐려질 수는 없다. 상임이사국 5개국은 앙시앵 레짐이다. G7, G8도 고색창연하다. G20이 대안적 질서를 창출하지도 못했다. G2 또한 인상 비평에 가깝다. 사실상의 아노미 상태이다.
올해는 한국 전쟁 정전 협정(1953년) 60주년이다. 공교롭게도 유엔이 창설되고 처음 군대를 파병한 곳이 한반도였다. 그 유엔의 맞은편에 섰던 나라가 (북조선과) 신중국이다. '국제질서'에 도전한 셈이다. 그래서 가혹한 봉쇄를 당했다. 헌데 그 신중국의 동태가 예사롭지 않다. 재차 유엔 이후의 세계 질서 재건에 강한 의욕을 표하고 있다. '천하론'이 분출한다.
<천하체계>(자오팅양 지음, 노승현 옮김, 길 펴냄)라는 책이 있다. 국내에도 이미 번역이 되었다. 중국에서 출판된 것은 2005년 4월이다. 학술서지만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끌었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같은 해 9월, 후진타오가 직접 천하를 호출했다는 점이다. 장소는 유엔 본부였다. 마침 유엔 창립 60주년이기도 했다. 유엔은 칸트의 '영구 평화론'을 모태로 한 국제기구이다. 헌데 바로 그 곳에서 '조화 세계'를 천명했다. 공자, 맹자, 묵자를 인용했고, 홍수전과 캉유웨이도 언급했다. 홍수전은 '태평천국'을 꿈꾼 혁명가이고, 캉유웨이는 <대동서>를 쓴 개혁가이다. 국제법의 심장에서 <예기(禮記)>를 인용한 점도 인상적이다.
유엔 연설은 기폭제였다. 학계는 적극 지원에 나섰다. 고전 철학자와 외교부 관료들이 입을 맞춘다. 중앙당교와 사회과학원은 물론이요, 대학과 민간 지식인도 머리를 맞댄다. 특히 청화대학교 국제관계학 연구소가 앞서 달린다. 박사 과정을 신설하고, 교수진을 다시 꾸렸다. 영어 학술지도 따로 발간한다. '조화 세계'의 내실을 다질 뿐 아니라, 담론 수출에도 열성이다. 그래서 '천하'와 '조화 세계'로 검색되는 논문이 천을 헤아린다. 배출한 박사도 이미 다섯이다. 중국에서만 그치는 것도 아니지 싶다. 이곳에서 벗 삼은 중국 유학생도 19세기말 천하론으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일종의 트렌드이다.
20세기 중국 지식인들의 목표는 구국이었다. 나라 구하기가 지상의 과제였다. 21세기는 세계를 구하러 나섰다. 중국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의 표출이다. 물론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란다며 흉을 볼 수 있다. 얼핏 옛 선비들의 우환 의식에 마르크스-레닌의 혁명적 낭만주의를 결합한 듯도 하다. '관방 지식인'의 허세로 폄하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러한 혐의를 말끔히 털어내지는 못했다. 탓에 뾰족한 비판을 던지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방의 독자적 정치철학과 풍부한 역사 경험을 소홀히 여길 수 없다고도 여긴다. 그래서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니 매우 주시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상품 생산에서 지식 생산으로, 경제 대국에서 사상 대국으로 변모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건국 100년을 맞는 2049년의 중국을 상상해 보곤 한다. 얼추 청제국의 하드웨어에 당제국의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는 모양새가 아닐까? 당나라는 불교와 이슬람의 외래 문명을 껴안은 코즈모폴리턴 제국의 정수였다. 슬쩍 조짐도 엿보인다. '사회주의 시장 경제'가 좌/우의 하이브리드(hybrid)라면, '유가 사회주의'는 전통/근대의 혼종이다. 중국이 축이 되는 세계 질서라고 다를 성 싶지 않다. 대동과 천하 등 고유한 개념으로 카오스 이후의 코스모스를 탐색할 법하다.
천하와 복합계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작은 물고기는 새우를 잡아먹는다." 혹독한 약육강식의 세계 같다. 혹자는 '자연 상태'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회 계약을 맺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절묘한 것은 그 다음이다. "큰 물고기는 새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새우는 작은 물고기만 무서워한다. 큰 물고기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큰 물고기를 반긴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구세주인 까닭이다." 이것이 진짜 '자연 상태'이다. 평등도 아니요 차별도 아닌, 차등으로 작동하는 생태계, 즉 복합계이다.
국제 질서가 오작동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국제 질서는 오직, 오로지 국가만이 주체이다. 국가가 아닌 정치체는 배제된다. 즉 세계를 국가로 획일화하는 단순계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미 큰 일(지역/세계)을 하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일(지방, 일상)을 다루기에는 너무 크다. 국제법은 아이작 뉴턴에서 출발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법의 정신'이 나왔다.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적용 가능한 것이 법이다. 때와 상대에 따라 변주되는 '예'와는 다르다. 그리하여 국제법 또한 문명의 제한이 없다. 일률적이고, 일방적으로 지구촌을 접수했다. 그래서 불과 한 세기 만에 지구촌은 200여 개의 국가로 쪼개졌다. 600년 오스만 제국이 붕괴한 '극단의 세기', 발칸 반도는 피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국가 외의 공동체를 억압하는 점 못지않게, 국가 간 평등의 역설도 만만치 않다. 무굴 제국은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분열했다. 그럼에도 인도는 여전히 12억 명의 대국이다. 인도양 건너에는 스리랑카가 있다. 2000만 명이다. 결코 적은 인구가 아니다. 하더라도 인도에 견주면 턱없는 소국이다. 헌데도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이 두 국가가 똑같이 한 표씩을 행사하는 유엔의 의사 결정 방식은 '민주'적인 것일까? 13억 명의 중국과 500만 명의 싱가포르는? 서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시에 '주권'을 부여하는 것은 또 온당한 것일까? 아귀가 맞지 않는다. 국제 질서의 구멍이다. 1인 1표와 1국 1표 사이에 현저한 낙차가 있다. 그래서 20세기는 지구적 민주의 차원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시대였다.
유럽부터 각성을 했다. 재차 국가 이후를 모색했다. 일생 탈근대에 냉정했던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탈국가의 성좌(the post-national constellation)'를 궁리하며 말년을 보낸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새로운 중세'의 도래를 예감한다. 그러나 순조롭지 않다. 유럽연합(EU) 대통령은 국가별로 순회한다. 다수결로 했다가는 독일, 프랑스 등 대국들이 독식할 판이다. 유럽적 지평의 '민주'를 위하여 선거 제도를 기각한 것이다. 순회제는 차라리 제비뽑기에 가깝다. 그래서 권력의 집중을 막고 리더십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정책적 불안정성을 노정하고 있다. 다양성이 곧 만병통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여차하면 도리어 무질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이 방면으로는 역시 동아시아가 익숙하다. 인류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중국을 품고서도 독자적인 질서를 영위해 왔다. 차등에 기반을 둔 위계 질서였다. 인, 의, 예, 덕, 화 등의 개념이 이론과 실천의 기반이 되었다. 대/소의 차이와 원/근의 분별은 상대적인 것이다. 월남은 중국에 사대하면서도, 이웃 소국들의 사대의 대상이었다. 또 류큐와 조선과는 교린의 사이였다. 즉 사대-사소-교린은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성의 이론이다. 그래서 대중화만큼이나 소중화도 여럿이다. 즉 겹겹의 중화 질서가 물결처럼 포개진 프랙털(fractal) 구조였다. 그리하여 '천하무외(天下無外)'라 했다. 밖이 없다 함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음을 뜻한다. 요즘 말로 자기 반복, 자기 유사적인 프랙털이며, 옛 말을 빌면 하늘 아래 한 가족(天下一家)이다. 이로써 국가/민족의 절대성을 규제하고 제어했던 것이다.
이 천하 질서의 원리를 복합계(complexity systems)에 견줄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복잡계'라는 말이 정착이 되었다. 하지만 오역까지는 아닐지라도, 정확한 번역도 아닌 것 같다. 복잡한 것(complicate)이 곧 복합적인 것(complex)은 아니다. 컴퓨터의 작동 원리는 복잡하다. 하지만 두뇌와 같은 복합계는 아니다. 복합계는 환경에 반응하고 적응하여 재조직되고 재조합을 이루는 체계이다. 생물학적 질서에 가까운 것이다. 국제법이 유클리드 기하학과 물리학적 질서라면, 천하는 제법 생태계와 유사하다. 국제가 수학(數學)이라면, 천하는 시학(詩學)에 근접한다.
'동아시아 예외론'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실 민족과 국가의 약진을 억제하는 것은 천하만의 남다름이 아니다. 이쪽에 천하가 있었다면, 저쪽에는 천주(天主)가 있었다. 저쪽이 가톨릭(catholic)이라면, 중앙에는 또 칼리프(caliph)가 있었다. 바티칸과 메카와 취푸(曲阜)는 국가의 돌출을 제약하는 우주의 배꼽이었다. 즉 개별적 정치 단위는 커다란 문명의 구속 안에서 존재했다. 일종의 유기체였던 것이다. 이것이 (암)세포 분열하듯 사분오열되어 독립과 평등과 자유와 주체로 달음질한 것이 지난 20세기이다.
돌아보면 개인, 자유, 평등, 독립, 성장, 발전 등 그간 '진보'의 산실로 여겼던 근대적 개념들은 하나같이 무질서를 촉발하는 것들이다. 그 항상적인 카오스에 딱 어울리는 정치 제도가 바로 '민주주의'였다고도 하겠다. 천주는 군주로 대체되었고, 그 군주의 목을 친 것이 민주였다. 그 찬란한 기세로 천하도 해체하려 들었다. 그러나 천주와 천하는 달랐다. 하나의 종교를 품은 천주와는 달리, 천하는 여러 종교와 문명을 아울렀다. 그래서 종교 전쟁도 없었다. 그럼에도 민주의 돌진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민주는 민주 이외의 가치와 체제에 좀체 관용을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즉 민주는 그 속 깊이 천주의 속성을 빼닮았다. 비민주에 대한 호전적 태도는 왕년의 종교 전쟁을 방불케 한다. 끝내 천하를 허물어 동아시아에 전국시대를 몰고 왔다.
'진보'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다. '보수'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변화를 억제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그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주 만물은 한시도 쉬지 않고 운동한다. 그래서 억압만으로는 질서가 창출되지 않는다. 멀게는 진나라가 30년 만에 무너졌고, 가깝게는 소련이 70년 만에 해체되었다. 아니 동방은 도리어 변화를 탐구하는데 능숙했다. 영원불변의 이데아를 추구한 적이 없다. <주역>은 빅 데이터(big data)를 집대성한 변화의 경전이다. 다만 진보가 아니라 진화를 궁리했다. 그래서 시세를 따르고 때를 움켜잡아 역동적인 균형을 취하는 것, 즉 중용을 추구했다. 그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 천하=복합계가 자리한다.
부강(富强)과 건강(健康)
가치가 변해야 한다.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동아시아론은 여전히 수줍다. 아직도 '주변'의 비판적 역할에 머문다. 그래서 대안적 생활론/세계론을 개척하지 못했다. 난세를 헤쳐가는 대장부의 호연지기가 아쉽다.
'건강'은 어떠할까? 부강은 20세기의 논리였다. '강성대국'이 후진 것은, 그 목표 자체가 낡았기 때문이다. 쿨하지 못하다. 부강이 아니라 건강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도 건강하고 볼 일이다. 아니 지나친 자유와 평등이 건강을 해친다면 과감히 보류해야 한다. 즉 건강은 중용의 상태이다. 절제와 절도의 산물이다. 모자라서도, 지나쳐서도 아니 된다. 저발전만큼이나 과잉 발전 또한 병리적이다. 비만/기아처럼 몸의 건강이 집합적으로 무너지는 사태와 지구의 건강이 붕괴되는 기후 변화는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아니 깊이 결부되어 있다. 부국강병이 천하를 교란하고, 인간과 지구의 몸을 어지럽힌다. 건강을 잣대로 삼자면, 근대문명은 철저/처절하게 실패했다.
자유가 아니라, 자연스러워야 한다. 평등이 아니라 공정하고 온당해야 한다. 민주도 절제되고 조율되어야 한다. 정의는 합당한 차등에서 달성된다. 그래야 오순도순 자매/형제애와 이웃애도 피어난다.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국가, 건강한 문명을 지향할 일이다. 세계는 아프다. 건강한 천하를 일구자. 부디 2013년, 동아시아의 건강을 빈다.
계사년이 밝았다. 동아시아는 환치 않다. 아베 신조의 (재)등장은 조바심을 일게 한다. 박근혜의 집권도 석연치가 않다. 일거에 드리운 세습 정치의 풍경도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나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지금은 문자 그대로 카오스의 시기이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 불안하고 불길하다.
9·11과 3·11로 20세기는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새 질서는 여태 마련되지 않았다. 거대한 이행기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그래서 정권을 바꾸고, 정책을 수정하면 혼돈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는 커다란 착각이다. 선거가 변화에 대한 환각을 선사해 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 약발이 오래가지 않음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다음 선거는 앞선 선택을 뒤엎는 심판이 되기 일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과 정책의 변화 그 이상이다. 시대의 교체,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2010년대는 1910년대와 견줄 수 있다. 100년 전, 1차 세계 대전(1914년)과 러시아 혁명(1917년)이 일어났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흥기했다. 20세기의 출발이었다. 그 결과 국제연맹이 등장했고, 국제연합(유엔)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유엔은 이제 유명무실이다. 사무총장이 한국인이라고, 판단이 흐려질 수는 없다. 상임이사국 5개국은 앙시앵 레짐이다. G7, G8도 고색창연하다. G20이 대안적 질서를 창출하지도 못했다. G2 또한 인상 비평에 가깝다. 사실상의 아노미 상태이다.
올해는 한국 전쟁 정전 협정(1953년) 60주년이다. 공교롭게도 유엔이 창설되고 처음 군대를 파병한 곳이 한반도였다. 그 유엔의 맞은편에 섰던 나라가 (북조선과) 신중국이다. '국제질서'에 도전한 셈이다. 그래서 가혹한 봉쇄를 당했다. 헌데 그 신중국의 동태가 예사롭지 않다. 재차 유엔 이후의 세계 질서 재건에 강한 의욕을 표하고 있다. '천하론'이 분출한다.
<천하체계>(자오팅양 지음, 노승현 옮김, 길 펴냄)라는 책이 있다. 국내에도 이미 번역이 되었다. 중국에서 출판된 것은 2005년 4월이다. 학술서지만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끌었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같은 해 9월, 후진타오가 직접 천하를 호출했다는 점이다. 장소는 유엔 본부였다. 마침 유엔 창립 60주년이기도 했다. 유엔은 칸트의 '영구 평화론'을 모태로 한 국제기구이다. 헌데 바로 그 곳에서 '조화 세계'를 천명했다. 공자, 맹자, 묵자를 인용했고, 홍수전과 캉유웨이도 언급했다. 홍수전은 '태평천국'을 꿈꾼 혁명가이고, 캉유웨이는 <대동서>를 쓴 개혁가이다. 국제법의 심장에서 <예기(禮記)>를 인용한 점도 인상적이다.
유엔 연설은 기폭제였다. 학계는 적극 지원에 나섰다. 고전 철학자와 외교부 관료들이 입을 맞춘다. 중앙당교와 사회과학원은 물론이요, 대학과 민간 지식인도 머리를 맞댄다. 특히 청화대학교 국제관계학 연구소가 앞서 달린다. 박사 과정을 신설하고, 교수진을 다시 꾸렸다. 영어 학술지도 따로 발간한다. '조화 세계'의 내실을 다질 뿐 아니라, 담론 수출에도 열성이다. 그래서 '천하'와 '조화 세계'로 검색되는 논문이 천을 헤아린다. 배출한 박사도 이미 다섯이다. 중국에서만 그치는 것도 아니지 싶다. 이곳에서 벗 삼은 중국 유학생도 19세기말 천하론으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일종의 트렌드이다.
20세기 중국 지식인들의 목표는 구국이었다. 나라 구하기가 지상의 과제였다. 21세기는 세계를 구하러 나섰다. 중국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의 표출이다. 물론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란다며 흉을 볼 수 있다. 얼핏 옛 선비들의 우환 의식에 마르크스-레닌의 혁명적 낭만주의를 결합한 듯도 하다. '관방 지식인'의 허세로 폄하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러한 혐의를 말끔히 털어내지는 못했다. 탓에 뾰족한 비판을 던지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방의 독자적 정치철학과 풍부한 역사 경험을 소홀히 여길 수 없다고도 여긴다. 그래서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니 매우 주시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상품 생산에서 지식 생산으로, 경제 대국에서 사상 대국으로 변모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건국 100년을 맞는 2049년의 중국을 상상해 보곤 한다. 얼추 청제국의 하드웨어에 당제국의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는 모양새가 아닐까? 당나라는 불교와 이슬람의 외래 문명을 껴안은 코즈모폴리턴 제국의 정수였다. 슬쩍 조짐도 엿보인다. '사회주의 시장 경제'가 좌/우의 하이브리드(hybrid)라면, '유가 사회주의'는 전통/근대의 혼종이다. 중국이 축이 되는 세계 질서라고 다를 성 싶지 않다. 대동과 천하 등 고유한 개념으로 카오스 이후의 코스모스를 탐색할 법하다.
ⓒ프레시안 |
천하와 복합계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작은 물고기는 새우를 잡아먹는다." 혹독한 약육강식의 세계 같다. 혹자는 '자연 상태'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회 계약을 맺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절묘한 것은 그 다음이다. "큰 물고기는 새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새우는 작은 물고기만 무서워한다. 큰 물고기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큰 물고기를 반긴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구세주인 까닭이다." 이것이 진짜 '자연 상태'이다. 평등도 아니요 차별도 아닌, 차등으로 작동하는 생태계, 즉 복합계이다.
국제 질서가 오작동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국제 질서는 오직, 오로지 국가만이 주체이다. 국가가 아닌 정치체는 배제된다. 즉 세계를 국가로 획일화하는 단순계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미 큰 일(지역/세계)을 하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일(지방, 일상)을 다루기에는 너무 크다. 국제법은 아이작 뉴턴에서 출발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법의 정신'이 나왔다.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적용 가능한 것이 법이다. 때와 상대에 따라 변주되는 '예'와는 다르다. 그리하여 국제법 또한 문명의 제한이 없다. 일률적이고, 일방적으로 지구촌을 접수했다. 그래서 불과 한 세기 만에 지구촌은 200여 개의 국가로 쪼개졌다. 600년 오스만 제국이 붕괴한 '극단의 세기', 발칸 반도는 피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국가 외의 공동체를 억압하는 점 못지않게, 국가 간 평등의 역설도 만만치 않다. 무굴 제국은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분열했다. 그럼에도 인도는 여전히 12억 명의 대국이다. 인도양 건너에는 스리랑카가 있다. 2000만 명이다. 결코 적은 인구가 아니다. 하더라도 인도에 견주면 턱없는 소국이다. 헌데도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이 두 국가가 똑같이 한 표씩을 행사하는 유엔의 의사 결정 방식은 '민주'적인 것일까? 13억 명의 중국과 500만 명의 싱가포르는? 서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시에 '주권'을 부여하는 것은 또 온당한 것일까? 아귀가 맞지 않는다. 국제 질서의 구멍이다. 1인 1표와 1국 1표 사이에 현저한 낙차가 있다. 그래서 20세기는 지구적 민주의 차원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시대였다.
유럽부터 각성을 했다. 재차 국가 이후를 모색했다. 일생 탈근대에 냉정했던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탈국가의 성좌(the post-national constellation)'를 궁리하며 말년을 보낸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새로운 중세'의 도래를 예감한다. 그러나 순조롭지 않다. 유럽연합(EU) 대통령은 국가별로 순회한다. 다수결로 했다가는 독일, 프랑스 등 대국들이 독식할 판이다. 유럽적 지평의 '민주'를 위하여 선거 제도를 기각한 것이다. 순회제는 차라리 제비뽑기에 가깝다. 그래서 권력의 집중을 막고 리더십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정책적 불안정성을 노정하고 있다. 다양성이 곧 만병통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여차하면 도리어 무질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이 방면으로는 역시 동아시아가 익숙하다. 인류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중국을 품고서도 독자적인 질서를 영위해 왔다. 차등에 기반을 둔 위계 질서였다. 인, 의, 예, 덕, 화 등의 개념이 이론과 실천의 기반이 되었다. 대/소의 차이와 원/근의 분별은 상대적인 것이다. 월남은 중국에 사대하면서도, 이웃 소국들의 사대의 대상이었다. 또 류큐와 조선과는 교린의 사이였다. 즉 사대-사소-교린은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성의 이론이다. 그래서 대중화만큼이나 소중화도 여럿이다. 즉 겹겹의 중화 질서가 물결처럼 포개진 프랙털(fractal) 구조였다. 그리하여 '천하무외(天下無外)'라 했다. 밖이 없다 함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음을 뜻한다. 요즘 말로 자기 반복, 자기 유사적인 프랙털이며, 옛 말을 빌면 하늘 아래 한 가족(天下一家)이다. 이로써 국가/민족의 절대성을 규제하고 제어했던 것이다.
이 천하 질서의 원리를 복합계(complexity systems)에 견줄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복잡계'라는 말이 정착이 되었다. 하지만 오역까지는 아닐지라도, 정확한 번역도 아닌 것 같다. 복잡한 것(complicate)이 곧 복합적인 것(complex)은 아니다. 컴퓨터의 작동 원리는 복잡하다. 하지만 두뇌와 같은 복합계는 아니다. 복합계는 환경에 반응하고 적응하여 재조직되고 재조합을 이루는 체계이다. 생물학적 질서에 가까운 것이다. 국제법이 유클리드 기하학과 물리학적 질서라면, 천하는 제법 생태계와 유사하다. 국제가 수학(數學)이라면, 천하는 시학(詩學)에 근접한다.
'동아시아 예외론'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실 민족과 국가의 약진을 억제하는 것은 천하만의 남다름이 아니다. 이쪽에 천하가 있었다면, 저쪽에는 천주(天主)가 있었다. 저쪽이 가톨릭(catholic)이라면, 중앙에는 또 칼리프(caliph)가 있었다. 바티칸과 메카와 취푸(曲阜)는 국가의 돌출을 제약하는 우주의 배꼽이었다. 즉 개별적 정치 단위는 커다란 문명의 구속 안에서 존재했다. 일종의 유기체였던 것이다. 이것이 (암)세포 분열하듯 사분오열되어 독립과 평등과 자유와 주체로 달음질한 것이 지난 20세기이다.
돌아보면 개인, 자유, 평등, 독립, 성장, 발전 등 그간 '진보'의 산실로 여겼던 근대적 개념들은 하나같이 무질서를 촉발하는 것들이다. 그 항상적인 카오스에 딱 어울리는 정치 제도가 바로 '민주주의'였다고도 하겠다. 천주는 군주로 대체되었고, 그 군주의 목을 친 것이 민주였다. 그 찬란한 기세로 천하도 해체하려 들었다. 그러나 천주와 천하는 달랐다. 하나의 종교를 품은 천주와는 달리, 천하는 여러 종교와 문명을 아울렀다. 그래서 종교 전쟁도 없었다. 그럼에도 민주의 돌진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민주는 민주 이외의 가치와 체제에 좀체 관용을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즉 민주는 그 속 깊이 천주의 속성을 빼닮았다. 비민주에 대한 호전적 태도는 왕년의 종교 전쟁을 방불케 한다. 끝내 천하를 허물어 동아시아에 전국시대를 몰고 왔다.
'진보'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다. '보수'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변화를 억제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그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주 만물은 한시도 쉬지 않고 운동한다. 그래서 억압만으로는 질서가 창출되지 않는다. 멀게는 진나라가 30년 만에 무너졌고, 가깝게는 소련이 70년 만에 해체되었다. 아니 동방은 도리어 변화를 탐구하는데 능숙했다. 영원불변의 이데아를 추구한 적이 없다. <주역>은 빅 데이터(big data)를 집대성한 변화의 경전이다. 다만 진보가 아니라 진화를 궁리했다. 그래서 시세를 따르고 때를 움켜잡아 역동적인 균형을 취하는 것, 즉 중용을 추구했다. 그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 천하=복합계가 자리한다.
부강(富强)과 건강(健康)
가치가 변해야 한다.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동아시아론은 여전히 수줍다. 아직도 '주변'의 비판적 역할에 머문다. 그래서 대안적 생활론/세계론을 개척하지 못했다. 난세를 헤쳐가는 대장부의 호연지기가 아쉽다.
'건강'은 어떠할까? 부강은 20세기의 논리였다. '강성대국'이 후진 것은, 그 목표 자체가 낡았기 때문이다. 쿨하지 못하다. 부강이 아니라 건강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도 건강하고 볼 일이다. 아니 지나친 자유와 평등이 건강을 해친다면 과감히 보류해야 한다. 즉 건강은 중용의 상태이다. 절제와 절도의 산물이다. 모자라서도, 지나쳐서도 아니 된다. 저발전만큼이나 과잉 발전 또한 병리적이다. 비만/기아처럼 몸의 건강이 집합적으로 무너지는 사태와 지구의 건강이 붕괴되는 기후 변화는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아니 깊이 결부되어 있다. 부국강병이 천하를 교란하고, 인간과 지구의 몸을 어지럽힌다. 건강을 잣대로 삼자면, 근대문명은 철저/처절하게 실패했다.
자유가 아니라, 자연스러워야 한다. 평등이 아니라 공정하고 온당해야 한다. 민주도 절제되고 조율되어야 한다. 정의는 합당한 차등에서 달성된다. 그래야 오순도순 자매/형제애와 이웃애도 피어난다.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국가, 건강한 문명을 지향할 일이다. 세계는 아프다. 건강한 천하를 일구자. 부디 2013년, 동아시아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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